아름다운 삶을 위해/人性敎育

禮節의 변천과 人事 방법

hanngill 2008. 8. 25. 17:49

禮節, etiquette

사회·직분에 따른 행동을 규제하는 규칙과 관습의 체계.


모든 사회단위는

법전에 의해 지탱되고 강제되는 공인된 행동규칙 즉 법 이전에 

관습에 의해 요구되고 집단의 압력에 의해 강제되는 행동규범이 있다.

 

고도로 계층화된 사회에는 으레 남이 자기에게 기대하고 자기가 남에게 기대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예절이 있다.

 

궁정은 한 사람의 군주를 중심으로 까다로운 예법들이 동심원적으로 퍼져나갔던 곳이기 때문에 자연히 예절의 산실이 되었다. 〈베오울프 Beowulf〉의 저자는 앵글로색슨족의 사회에 관한 기술에서, 왕비 웰서우는 '예절에 충실하여' 술잔을 맨 먼저 왕 앞에 놓고, 이어 정해진 서열에 따라 군신들 앞에 차례로 놓았다고 쓰고 있다.

 

서양의 중세시대에는 봉건제도가 엄격히 계층화되었던 만큼 예절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장 프루아사르는 그의 〈연대기 Chronicle〉에서 흑태자 에드워드가 푸아티에 전투가 끝난 후 포로로 잡힌 프랑스 왕 장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고 기술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예법서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저서들이 출판되어 행위규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저서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책은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예법서 Il libro del cortegiano〉(1528, 〈The Book of Courtesy〉라는 제목으로 1561년에 영역)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영국의 리처드 브래스웨이트가 저술한 〈영국 신사 The English Gentleman〉·〈양처의 특징 Description of a Good Wife〉과 같은 세부화된 예절이 수록된 권위있는 예법서들이 '메이플라워호'의 승객들과 함께 식민지 아메리카에 들어왔다.

얼마 후 이 영국의 수입판들을 본뜬 아메리카판 예법서가 등장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부모들을 위해 저술된 〈예절학교 School of Good Manners〉(1715, 엘리저 무디가 발표한 것으로 추정)가 있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 영국에서는 내시와 브러멀 같은 멋쟁이들의 즉흥적인 행동들이 귀족사회에서 예법으로 통용됨으로써 다시 한 번 예절의 준수가 크게 유행했다. 심지어 섭정궁 조지는 조끼의 단추를 브러멜이 정한 것보다 더 많이 잠그는 것을 원칙으로 삼을 정도였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상류사회 인사들은 예절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까지도 준수하는 것을 일종의 유희로 삼았고, 여성들은 이를 일거리로 삼았다.

갈수록 까다로운 의식들이 고안되어 그 의식들을 지키는 사람들은 특권의식을 가졌고, 그 의식들을 모르거나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엽에는 예의바른 행동에 대한 관심이 사회 특권층에서 벗어나 보편화되었다.

미국에서 사교계를 주름잡던 에밀리 포스트와 에이미 밴더빌트가 일상적인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이 지켜야 할 예절바른 태도를 기술한 책들을 출판하고,

가장 영향력이 큰 여류인사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사회적·정치적·외교적 상황들에서 직접 겪은 폭넓은 경험을 토대로 실용적인 저서 〈상식적인 예절 Book of Common Sense Etiquette〉(1962)을 출판한 것이 주효했던 것이다.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 평등이 강조되고 사회생활의 템포가 빨라지면서 행동양식이 보다 단순해졌다. 그러나 왕실 주변이나 공식적인 행사 및 전문직 또는 공동체 생활에서는 예절의 준수가 여전히 중시되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틀과 내용이 끊임없이 바뀌는 만큼 예절의 습관도 그와 더불어 바뀔 수 있고 또 바뀌고 있다.

 

 

 

 

 

人事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말이나 태도로 존경·친애·우정을 표시하는 상호간의 행위로서 
 민족·시대·계절·시간·조건·계급·신분·종교·직업·연령·성별 등에 따라 각기 구분이 있어 행동양식을 달리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무릎 밑까지 내려 절을 하였으며,
국왕에게 경의를 표할 때는 무릎을 굽히거나 땅에 엎드렸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인사를 할 때 상대편의 지위나 중요성에 따라 세 가지 정도의 단계가 있었던 것 같다. 즉
최대의 경의를 표시할 때는 몸을 땅에 엎드렸고,
보통 경의를 표시할 경우는 중국이나 한국에서 하듯이 상반신을 굽히고,
간단한 인사는 단지 머리만을 수그렸다.

 

이슬람교도는
액수례(額手禮:salaam)라고 하여 몸을 구부리고 오른손 바닥을 이마에 대는 절을 하며,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코끝을 서로 맞대며 인사한다.

 

그리스도교국의 남자 사이에는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오른발을 뒤로 끌어당기는(bow and scrape) 기사(騎士)시대 또는
궁정인(宮廷人)시대의 절에서부터,
가볍게 머리만을 숙이는 인사까지 여러 형태가 있었다.

 

그 밖에 탈모하거나 악수를 하는 인사도 행하여졌으며, 오늘날에는 딱딱하게 경의를 표하는 인사보다는 이 같은 적당한 형식의 인사로 변모하였다.

여성의 경우는 여왕이나 고귀한 사람 앞에서는 한쪽 다리를 뒤로 끌며 허리를 굽혀 절하는 궁정풍의 인사가 아직 남아 있다.

한국은 고래로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이에 따르는 인사법도 아침·점심·저녁이 다르고 상봉·이별·문안·안부 등에 각각 인사의 양식을 달리한다.
이 같은 인사법은 《상례(常禮)》에 자세한 설명이 있으나 요즈음은 서구식 문물의 유입과 함께 많이 생략되었고,

한편 서양식 악수나 포옹 또는 키스 등도 행한다.
악수는 구미에서는 누구나가 하는 것으로 오인하나 오히려 보통 때 몸을 굽히거나 머리를 숙일 뿐이며, 특히 친밀한 사이거나 특수한 경우에 행하여진다. 그것도 윗사람이나 부인 측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원칙이며 상대방은 내민 손을 한 호흡 동안만 가만히 다섯 손가락을 쥐는 것을 올바른 악수로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