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을 위해/家庭 禮節

[스크랩] 10월의 이별과 미국식 장례식

hanngill 2008. 3. 11. 18:33

오늘 오후에

LA 의 어느 공동체 안에 오랫동안 함께 몸담았던,

중년의 가장으로 이민 생활을 열심히 하시던,

굳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원칙을 구부러뜨리지 않고 사셨던 분의

장례식을 끝내고 파란 잔디밭 땅에 묻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남겨진 삼남매와 부인, 어머니가 슬픔에 힘겨워하시던 모습이 영 접어지지 않는다.

특히 그 어머니는 8 년 전에 43 살의 딸을 교통사고로 잃으셨고, 오늘은 58 살의 아들을 암으로

먼저 보내셨다.

큰 소리내어 울고 또 우셔도, 가혹한 운명을 탓해도 위안이 쉽게 얻어지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시어머니 걱정에 그 부인은 울지도 못하고 강하게 버티고 서서 통곡하는 시어머님을 꼭 붙잡고 있었다.

 

성당서 장례미사를 마치고 바로 뒤이어서 고별식을 했다.

보통은 고별식을 하루 전 날에 하고 다음 날에 장례식을 하는데, 간소하게 하려는 뜻에서

한꺼번에 하기로 정했다고 한다.

반만 열어놓은 관 뚜껑 속에 보여진 그 분의 모습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형상이 아니었다.

일 년간의 암의 고통 속에서 투병을 하시던 분이라 너무 마르셨고,

화장을 했어도 대리석 같이 차갑게 느껴지는 누렇고 검푸른 피부색이 이미 이 땅의 사람이 아닌 것을

섬뜻 되새기게 했다.

 

미국 이민 오셔서 정말 열심히, 그리고 힘들게, 애쓰시면서 살으셨던 분이라 마음이 더 아프고

더 경애가 표해진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간이 좋지않은 것 같은 검은 마른 얼굴에 실없는 미소를 잘 띄셨다.

술을 좋아하셔서 무척이나 마셨다고 푸근한 얼굴의 정많은 부인이 말씀하시곤 했다.

 

일 주일에 꼭 한 번씩 어머니 아파트를 방문해서 화투를 하면서 돈을 잃어주셨다던 분이다.

우리 집의 페인트 일을 하실 때에는 꼼꼼하셔서 집 안팎을 3, 4주씩 걸려 마무리하시던 분이라,

일꾼들에게 인권비를 지불하고 남은 것이 있나를 걱정할 정도였다.

자신이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셨으며 자부심이 대단하셔서 믿음직하시던 분이다.

오늘 장례미사 때의 신부님 말씀에 의하면, 작년에 암 진단을 받고 이틀 후에 �아 오셔서

"신부님, 도와 주세요! 어떻게 죽을 준비를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도움을 청하셨단다.

 

지난 일 년간 혼자서, 그리고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었고 고독했었을까!

삶이란 망망대해에서 얼마나 허우적거리셨을까!

우리는 죽는 날짜를 모르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웃으면서 살 수 있다.

그러나 저 세상으로의 여행이 가까와졌다는 것을 감지할 때에는

물질에 대한 집착, 인간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자신의 주변 정돈과 과거의 반추,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과 하고싶은 일들을 실행하면서

잔잔한 마음으로 죽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리라!

 

후의 나는 이 상황에 처하면 무엇부터 먼저 할까?

 

내가 옆에서 죽음을 지켜본 분들 중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인

나의 친정 아버지와 시아버님은 죽음의 목전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final day 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마지막 순간에서야 하셨던 것 같았다.

두 분 모두 명석하고 생각이 많았던 분으로 생에 대한 애착이 아주 강하셨던 분들이었다.

고통을 속으로 조용히 삭이는 성격의 아버지나 고통을 전부 표현하시던 아버님이나

이 땅의 삶의 인연을 쉽게 접지는 못하셨다.

 

바로 작년에,

너무 기운이 없어서 병원에 가셨다가 입원하신지 10 일만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마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신듯이, 병원 가시기 전의 2 주간 동안 잠을 거의 주무시지 않으셨다.

아니 잠을 거부하셨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침대에도 누우려고 하지를 않으셨고,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버티시다가 너무 피곤하고 졸리시면

잠시 앉아서 눈을 5, 10분 정도 붙이셨다가 다시 깨곤하셨다.

83 살의 노인이 잠을 그렇게 주무시지를 않으셨으니 순식간에 몸이 폐허가 된 듯했다. 

 

지금까지도 이상하게 생각된다.

그런데로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잠을 고집스럽게 거부하시다가 급기야는 병원에 입원하셔서

페렴으로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독하게 다가오는 죽음과 싸우듯이 버티셨지만,

돌아 가시던 날에는

낮 12시에 나와 남편의 손을 잡으시고(우연히 그 때에 둘만 병실에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려는 듯이 따스함을 담은 눈으로 무엇을 표현하려는 의미의 눈길을 주셨고,

밤 12시에 고통없이 조용하게 그리고 다소곳하게 유명을 달리 하셨다.

 

이렇게 독특하고 강인하셨던 시아버님의 첫번 째의 기일이 내일 10월 12일 이다.

사시는 동안에는 옆 사람들을 아주 힘들게 하시던 분이셨지만,

가시고나니 보고싶고 생각도 많이난다.

좀 더 잘해드리고 이해해드리지 못한 후회와 감사한 마음에서 오는 미련도 크다.

 

왜 나는 항상 지내고 난 후에 뒤늦게 후회를 할까?

이제는 양쪽 아버지가 다 계시지 않는 현실에 대해 나 자신에게 연민도 가끔 갖는다.

 

바보! 후회하면 무얼해. 다 역사 속으로 지나간 추억이 되었을 뿐인데...

그래도 무지 사랑하는 친정 아버지와 불편했던 시아버님을 함께 다시 보고싶다.

 

시아버님은 내일 기억하고,

오늘은 땅에 묻히신 사베리오 아저씨를 생각하고 싶다.

"돌아가신 사베리오씨의 가여운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 세상에서의 힘들었던 여정을 저 세상에서의 평화와 안식으로 위로해 주십시요!"

 

사베리오씨의 마지막 길을 함께 보면서 한국과 다른 미국식 장례문화를 엿보자.

 

성당서 장례미사와 고별식으로 가시는 분과 마지막 작별의 길을 시작했다. 

 

장지에 도착할 때까지 경찰이 자동차 행렬을 호위하고 교통을 통제해준다.

 

장지로 가는 차들이 funeral 이라고 쓴 빨간 색의 스티커를 창에 붙이고 일렬로 서서

프리웨이로 진입하고 있다.

 

 

드디어 장지인 할리우드( Hollywood) 산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들어섰다.

 

이미 구덩이를 파 놓은 위에 놓여진 받침대에 관을 올려놓고, 장례꽃들은 옆으로 한데 치워서 모아둔다.

초록 색의 천은 구덩이 판 흙을 덮어놓은 것이다.

 

 

받침대 위에 잠시 놓여졌던 관은 땅 속에 이미 들어가있던 석관 속으로 들어가고, 석관의 뚜껑을 닫는다.

(이곳서는 나무 관을 그대로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나무 관을 석관 속에 넣어서 땅에 묻는다)

이를 위한 도구인 crane 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방수 종이를 땅 속에 들어간 석관 뚜껑 위에 덮는다.

 

무거운 돌을 옮기던 crane 이 이제는 삽이 되어서 흙을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옆에 쌓였던 흙더미는 금방 구덩이 속으로 사라졌고, crane 은 흙을 다지는 기계가 되어서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위에 보이는 작은 트럭에는 땅 위를 덮을 둘둘말은 잔디가 실려있다.

 

 

장지에 도착한지 정확히 1시간 30분만에 관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고

파졌던 땅은 채워지고 그 위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파란 잔디로 다시 덮혀졌다.

 

신통한 장비 하나를 가지고 기막히게 빠른 속도로 일을 끝낸 숙련된 인부 아저씨들은

감쪽같이

오늘도 또 한 사람 더를 땅에 묻은 것이다.

 

아! 나의 인생이여.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지... 나의 색깔은 무엇이지...

파란 하늘을 쳐다 볼 수 있고 신선한 공기를 들어마실 수 있으며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에 정말 잘 살아야겠다.

 

It is so wonderful to be alive on one fine October day...

 

 Hollywood Hills 의 묘지의 한 부분 모습이다.

 

출처 : 참숯과 나무 in LA
글쓴이 : rejungna 원글보기
메모 :

'아름다운 삶을 위해 > 家庭 禮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식, 장례식에는 가족만 모여야 한다.  (0) 2012.05.06
부부간의 호칭  (0) 2009.11.08
중국의 장례  (0) 2008.03.11
부부 싸움을 하지 말라  (0) 2007.09.07
어느 중년 여성의 가정관  (0) 2007.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