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을 위해/家庭 禮節

중국의 장례

hanngill 2008. 3. 11. 18:18
중국의 장례문화
납골당도 부족'...유골 뿌리기 캠페인/ 매장금지 불구 묘지면적 남한크기. 지도층 솔선수범.. 장례식도 화장장에서
 중국에서는 장례식 일체를 화장장에서 치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사람이 사망하면 우선 화장장에 신고를 하며 화장장에서 운구차를 보내 시신을 운반해 온다.
그런 다음 시신을 염하고 입관식을 치른다. 입관한 시신은 고별실로 옮겨지고 그 곳에서 장례식을 마친 다음 불에 태워진다. 시신의 유골은 유족들이 선택한 함에 넣어져 3일동안 화장장에 보관된 후 납골당으로 옮겨진다.
화장장에는 염을 하는 정용실, 장례식을 하는 고별실 등 각 과정마다 별도의 방들이 마련돼 있어 전혀 이용에 불편이 없다.
봉분 찾아 보기 힘들어

풍수지리사상의 원조인 중국대륙은 모택동이 공산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거대한 묘지'라고 불릴 정도로 어디를 가나 묘지가 빽?活? 들어차 있었다.
1933년 중국 남경 금릉대가 전국 22개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당시 중국묘지의 총 면적이 10만3천평방키로미터로 남한면적보다 넓었다.

세계인구의 20%가 넘는 12억의 인민들이 세계경작지의 7%밖에 안되는 땅에서 먹고 살아야만 하는 현실에 비춰 볼 때 묘지문제는 무엇보다 심각한 것이었다.
연간 평균 사망자 수가 6백만명에 달해 매년 엄청난 규모의 땅이 묘지터로 변하고 있었다.
결국 모택동이 이끄는 혁명정부가 1956년 화장을 법으로 정하고 시신을 관에 넣어 매장하는 토장제도를 금지시키는 <장묘문화혁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40년이 지난 현재 중국은 눈에 띌 만큼 달라졌다. 이제는 전국 어디에서나 봉분을 한 무덤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한발 더 나아가 지금 북경시에서는 <장묘문화 제2혁명>운동이 한창이다. 지난 94년부터 북경시 빈장관리처와 빈장협회가 공동으로 시작한 이 운동은 시신을 화장한 뒤 그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것.
지금까지 6차에 걸쳐 모두 246명의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
시 당국의 한 책임자는 "이 운동의 확산을 위해 일체의 비용을 무료로 해 주고 있다."며 "특히 지식분자나 간부들이 많이 참여 하는 등 각계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 머지않아 정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지난 79년에 사망한 주은래 전국무원총리도 유언에 따라 화장을 했으며, 그 유골이 비행기로 전국에 뿌려졌다."고 말하고, "89년 호요방 공산당 총서기가 사망했을때도 부인의 희망에 따라 화장된 유골이 강서성 개척지에 뿌려졌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장묘제도를 한 눈에 볼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북경시 서북부 지역에 있는 팔보산이다. 북경시내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있는 팔보산에는 혁명공묘를 비롯해 인민공묘, 화장장인 빈장관, 노산골회당 등이 들어서 있다. 또 북경시 빈장관리처와 빈장협회, 중국국제운구서비스센타, 북경판사처가 자리하고 있다. 이밖에 얼마 안 떨어진 거리에 납골묘지와 납골당이 있는 만안공묘가 있다.

팔보산 빈장관 최대
북경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장장인 팔보산빈장관은 한 해 2만여명을 화장처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화장된 시신은 당원과 군 지도자 등 모두 60여만기. 1957년에 건설된 이 화장장은 면적이 43여 평방 키로미터이며 화장로는 모두 14대가 설치돼 있다.

현재 2백여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40대의 영구차가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비용은 68콰이(원)부터 4백콰이까지로 다양한 편이다. 우리돈으로 6천원부터 4만원정도다. 관의 종류와 골회를 넣는 함에 따라 비용이 많이 달라진다. 북경시에는 귀왕화장장, 서부화장장 등 지역마다 비슷한 규모의 화장장이 설치돼 있다. 팔보산빈장관에서 처리된 유골을 담은 함은 모두 노산골회당으로 옮겨진다.

주은래 전국무총리가 직접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노산골회당에 모셔진 함의 안치 기간은 3년, 비용은 2백콰이로 한 번만 내면 된다. 우리 돈으로 2만원정도가 드는 셈이다.

그 후에는 각 자 회수해 집에서 모시거나 공묘에 평장한다.
이곳의 책임자인 리썽밍씨(40)는 "지난 58년부터 운영돼 현재 6만여기가 안치돼 있다."고 밝혔다.
지난 58년, 명.청시대의 강공호국사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팔보산혁명공묘에는 유골을 보관하는 방이 29개가 있으며 유골을 쌓아 놓는 벽이 8개가 있다.

이곳에는 국가영도자나 고위 간부들만 모셔진다. 70여평방키로를 자랑하는 방대한 규모의 이 혁명공묘 내부는 골회당과 묘구 2부로 나뉘어져 있다.
각 묘구에는 국가유공자들의 유골이 모두 평장으로 가지런히 묻혀 있다. 북경시 빈장관리처가 관리하고 있는 만안공묘는 중국정부의 화장정책이 낳은 납골묘지와 납골당 등 중국의 묘지형태를 모두 갖춘 곳이다.

부부합장식인 묘지면적은 각 0.5, 1, 2, 2평방미터이상 등 4가지가 있으며 최근에는 묘지가 모두 바닥나 골회당, 골회정, 골회랑 등 다양한 형태의 납골당이 세워져 묘지를 대신하고 있다.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골회당에는 모두 1만여기의 유골이 빽빽하게 안치돼 있다. 안치기간은 3년. 그 뒤에 있는 골회정과 골회랑은 유골을 20-30년 안치할 수 있다. 연간 안치비용은 30콰이부터 80콰이까지로 위치에 따라 다르다. 우리 돈으로 3천원에서 8천원 정도.
연간 안치비 3-8천원
북경시에 비해 섬서성의 서안시는 1년정도 늦은 59년부터 화장문화가 도입됐다.
일찍 장안으로 불리던 서안시는 기원전 1134년 서주서부터 11왕조의 도읍으로서 1천년 이상을 지낸 세계 제일의 고도다.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병마용갱과 진시황릉을 비롯 양귀비가 노닐었다는 화청지 등이 주변에 산재한 서안시에서 남쪽으로 5km 정도 거리에 서안시 삼조빈장관골회공묘가 있다.
이곳 삼조빈장관에서는 지금 <모택동을 위시한 혁명지도자 사람화장 의식개혁 40주년 기념행사>가 한창이다.

서안시의 한 당국자는 "지난 59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3만9천여기가 화장됐다."며 " 그 때문에 토장하는 것에 비해 841평방 키로미터이상의 농토가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삼조빈장관에서 얼마 안되는 곳에 삼조국유 영구골회공묘가 있다. 현재 묘역 정리작업이 한창인 이 공동묘지에는 입구에 정자모양의 납골당 2채가 나란히 세워져 있으나 아직 빈 자리가 많이 남아 있다.
납골함을 묻는 묘 1기의 면적은 평균 0.5평방미터로 모두 부부 합장묘다. 묘는 3-4종류의 일정한 크기의 비석과 상석으로 이뤄져 있으며, 비석에는 한결같이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부부 가운데 사망한 사람의 이름에는 붉은 색으로 표시를 한다. 나중에 남은 사람이 사망하면 합장하게 된다.

우리에게 '봉천'으로 더 알려진 심양은 동북 3성 가운데 가장 남쪽에 치우쳐 있는 요영성의 수도이다. 중국에서 북경 상해 천진에 이은 4번째로 큰 도시인 심양은 8만명을 넘는 조선족들이 시내 서쪽에 위치한 서탑 지역에 <한국의 거리>를 만들 정도로 우리 문화를 가장 많이 받아 들이고 있다. 인구는 약 6백만명.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20km쯤 거리에 <회룡강혁명공묘>가 있는데 이곳에서 심양시 일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장례가 대부분 치러진다.
화환도 화장장 것 빌려 써야
1989년에 제정된 심양시장례사무관리잠행규정(심정발73호)는 장례식은 반드시 화장장에서 간편하게 해야 하며 예외없이 모두 화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또 국가규정에 의해 예외로 인정되지 않는 한 관에 넣은 채 땅에 묻는 <토장>을 하지 못하며, 시신을 불에 태운후 그 유골을 지정된 장소에 묻을 수는 있으나, 될 수 있는 한 깊게 묻어야 하고 봉분을 남겨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례를 치를 때 사용하는 화환도 모두 화장장측에서 만든 것을 빌려 쓰도록 하고 있으며, 장례식에 사용할 목적으로 옷을 만들거나 종이꽃이나 돈과 기타 용구를 일절 사용하지 못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밖에 개인이나 단체를 막론하고 누구도 화장장을 벗어나서 어떠한 장례행사를 못하도롤 하고 있다.
<회룡강혁명공묘>에 있는 화장장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망자를 위한 제단이 마련돼 있는 <제전원>이 있다.
유족들은 화장한 시신의 유골을 매장하기 전에 공원처럼 잘 가꿔진 <제전원>으로 모시고 가 마지막 분향을 한다. 고인의 유골을 납골당에 모셨을 경우에는 유골이 든 함을 이곳으로 가져와 향을 피우고 넋을 위로하기도 한다.

<회룡강혁명공묘>입구에는 서민들을위한 납골당인 <골회당>이 있으며, 중앙에는 국가 유공자들을 위한 <영구성골회당>이 자리잡고 있다. 두곳 모두 가로 30cm, 세로25cm 크기의납골함을 넣는 칸이 촘촘히 설치돼 있다. 그 칸에 고인의 유골이 든 함과 유품을 넣고 정면을 대리석으로 봉한다.
대리석에는 고인의 사진과 이름 및 사망시기 등이 새겨져 있다. 유족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앞에 꽃을 들고 와 고인을 추도한다. 그러나 <회룡강혁명공묘>의 가장 큰 자랑은 40평방키로를 넘는 방대한 <묘원>이다.

지난 92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현재 17평방키로가 완성됐다. 이곳의 관리원 '쟝웨이'씨(55)는 "회룡강묘원은 1개 특구와 10개 보통구로 이뤄졌다."며 대부분 가족 합장묘로 2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은 평균 4백콰이로 다른 지역에 비해 비싼 편이다. 특구는 보통구와 달리 묘터를 넓게 사용할 수 있으며 비용은 3천콰이에서부터 5천콰이까지로 다양하다. 우리 돈으로 보통구가 4만원, 특구인 경우 30만원에서 50만원 정도 드는 셈이다. 심양시 장례사무관리처가 풍수지리를 따져 가장 뛰어난 명당에 조성했다는 <회룡강묘원>은 그만큼 요령성 일대에 이름이 나 있다.
회룡강 묘원 40평방키로 '방대'
쟝웨이 씨는 "가장 먼데서 온 경우는 올 봄에 안장한 사천지방 사람"이라며 "최근 하루 평균 15기 정도 새로 묻힌다."고 밝혔다.
<회룡강묘원>은 특구를 제외한 보통구의 경우 1개구에 약 800기가 들어서 있다. 묘지면적은 일반적으로 0.5평방미터.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크기의 비석에 가족둘의 이름을 새겨넣고 망자의 이름에 붉은 색으로 표시한다.

한 개 묘지에 2-3명의 가족이 안치돼 있는 것으로 볼 때 2만여명의 유골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음력으로 4월5일 청명절이나 7월15일 귀신절에는 묘원을 찾는 유족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 평소에도 깔끔하게 잘 정리된 묘원에 유족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묘지를 살피고 돌아간다.

조선족 선우옥연씨(33)는 "직장 구성원 가운데 한 시람이라도 화장을 하지 않고 토장을 하면 직장 최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 정부에서 강력히 화장정책을 편 결과 이제 대부분의 중국 인민들은 화장풍습에 익숙해져 있다."며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이 토장문화에 대한 인민들의 의식 변화를 가져오게 한 가장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부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는 고유의 장례 풍습에 대해서 정부에서도 소수민족 보호 차원에서 모르는 척 넘어가는 등 까다롭게 규제하지는 않는다."며 "그러나 조선족 사회에서는 이제 토장을 고집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실정으로 모두가 사람이 죽으면 당연히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모시거나 평장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수민족도 화장제 동화
현재 중국에서 토장을 고집하는 민족은 회족 뿐이다.
실제로 심양시 동부 외곽 따뚱취에는 회족들만 이용하는 <성경침원>이라는 이름의 <영구성회족공묘>가 약 3평방 키로미터 정도 조성돼 있다. 물론 정부에서 인정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전통적 회족풍습에 따른 묘지가 봉분형식으로 조성돼 있다. <성경침원>의 한 관리자는 "최근 회족사회에서 조차 반드시 시신을 관에 넣어 토장하는 것이 전통은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멀지 않아 회족공묘도 상당히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자리를 옮길 계획으로 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당국의 감시를 피해 경작지 한 구석에 몰래 봉분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중국의 장례문화는 이제 완전히 토장에서 화장으로 바뀌었다.
정부의 공식발표는 화장률이 100%다. 우리나라 보다 1백배나 큰 국토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40년전부터 <장묘문화혁명>을 시작해 오늘에 그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와 같은 문화권으로 장묘제도도 비슷했던 중국이 정부의 강력한 정책과 지도층의 솔선수범에 힘입어 심각했던 묘지문제를 해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출처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