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 · 나의 時論

광주 5.18 사태의 진상은?

hanngill 2017. 9. 25. 19:59

광주 5.18 사태의 진상은?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은 북한으로 부터 남파된 공작원과 특수부대의 폭동이 함께 했다고 보인다.

https://youtu.be/bvdqfYtHqtM

https://youtu.be/Nw8PfRz_JrI

https://youtu.be/YGR4d-cYH-8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936

https://youtu.be/SbehkBROKv4

https://youtu.be/811z8MSy26I


 1980년 "광주518민주화운동" 의  의의에 어느 정도 상처가 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시에 광주시민을 기만 충동하여 극도로 분노케한 북한 남파 특수군과 공작간첩들의  만행이 있었다면 이거야말로 광주시민이 憤慨할 일이고 이를 자세히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愛國 愛民하는 것이다. 지금 남한은 主思派 종북세력이 장악하고 언제 공산화 되어 북에 조공을 바치고 사는 노예가 될 줄도 모르고 있는데 영예롭지 못한 사적 이익을 앞에 놓고 싸우고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랑하는 광주시민은 북한의 남파 간첩들에 의해서 속고, 좌파 정치 세력에 의해서 이용당하고, 군사 독재자에 의해 무시 당하고 ... 이렇게 맨날 당하고 살아왔다. 이에 각성하고 옳고 그름을 냉정히 分揀하여 현명하고 명예로운 광주시민의 정신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호남 사람들 영리하고 현명한 머리로 小를 버리고 大를 위하는 지혜를 보여주기 바란다. 나라사랑하는 바른 마음으로 모든 국민으로 부터 존경받는 광주시민이 되기를 바란다.

*전라도 사람들의 일반적 성품은 마음씨 좋고, 너무 인정많고, 예능적 감각이 뛰어나고, 사람을 잘 믿는다. 그래서 대사깃군이나 나쁜 놈들에게 속아 넘어가 이용당하기도 쉽다. 못된 지역감정 때문에 전라인들은 김대중을 짝사랑한 것이다. 순박하고 단순하고 인정많은 것이 무슨 죄인가?  전라인을 욕하지 말라!  지역감정 부추기지 말라, 어디나 언제나 나쁜 놈들은 있다. 이 속인 놈들을 욕하라. 사안을 올바르게 보지않고 함부로 말하는 자도 문제는 있다.  이 나라가 이분 사분되어 혼란스런 것은 거의가 외세나 북한의 공작에 의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고 믿고 나눌 수 있는 풍토로 이어질 것을 바란다.*



지금 여러 자료들을 보니 북한 특수부대 간첩들이 내려와 폭동을 일으켜 많은 시민과 군을 살상하였고, 광주시민들은 이에 자극되어 계엄군과 유혈 마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광주5.18민주화운동의 내용은 재편되고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광주시민, 전남도민은 박정희 정권의 호남 박대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박정희에 대항하는 김대중의 편에 항상 서서 싸웠다. (김대중이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을 사랑한 것은 아닌것 같더라. 단지 광주시민, 전남도민이 김대중을 짝사랑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나는 늘 가지고 있었다. 광주시민이 이용당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더라. 대통령이 된 것도 광주시민, 전라도 사람들이 전적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종북파 임종석과 임수경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주고, 노무현을 차기 대통령으로 밀어 준 이유를 나는 모르겠더라. 대통령이 되고나서 국방력 강화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던 까닭을 이제는 조금 알만하더라.)

박정희는 3선개헌을 하였고 종신독재를 하려고 유신혁명을 일으켜 유신헌법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구성하고 여기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도록하였다.( 이 때 만든 헌법을 신문을 통해 전문을 다 읽어 보았다. 이것도 헌법인가, 이런 것을 헌법이라고 공부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후 헌법을 한번도 읽어 본적이 없다.) 

유신헌법은  내로라 하는 어용 헌법학자들이 만들어낸 기가막힌 작품이었다.  이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김영삼 김대중이었다. 마치 그들은 해당 출신지역의 신격이 되었다. 이 후 경상도와 호남이 대립하여 선거때마다 싸웠다. 

박정희의 독재로 많은 학생들이 대모를 하고 희생자도 많았다. 국민들은 독재 타도를 부르짓고 새로운 사람이 나와 민주정치를 할 것을 바라고 있었다. 

이 때 김재규가 오만무례한 대통령비서실장 차지철을 쏘고 또 박정희를 쏘았다.  

이래 모든 국민은 슬퍼하기 보다는 한국에 새봄이 오누나 하고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런데 전두환이 구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법회의에서 김재규와 그 부하들을 처형하고, 다음 정권 도전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자들을 축출하였다. 대통령 최규하를 위협하고 선거를 치루어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라는 어수선하였다. 계엄령이 선포되자 마자 북한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새라 급히 특수 훈련된 전투간첩을  남파하여 폭동을 일으킨 것이 분명하다. ( 북한 간첩이나 이에 물든 자들은 남한에 시위나  혼란이 있을 때는 반드시 좌 우 파 어느 쪽이나 끼어들어서 혼란과 폭동을 조장한다. 이것이 그들이 하는 임무이다.)

1980년 5월 17일 계엄을 선포하고 김대중 등 정적을 간첩혐의로 잡아 들였다. 그러니 광주시민과 학생들은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광주에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서 계엄철폐와 전두환 물러나라고 왜쳤다.  그러나 아직 폭력은 아직 없었다.

5월 20일 넘어 북한에서 여러 루트를 통해  몇일 사이에 간첩을 무더기로 남파한 것이다. 이들은 남한 거주 간첩들과 내통하면서 광주로 들어와 군, 관, 민으로 가장하여 폭동에 가담하여 격화시켰다고 한다.  남파 전투간첩 600 여명과 그외 이를 보조하는 많은 인원이 남파된 것 같다. 이들 잘 훈련된 군인들이 5월 21일 아침 남한의 계험군의 차량과 탱크를 빼앗아 몰고 아시아 자동차에 들어가  많은 장갑차와 트럭등 수 많은 차량을 강탈해서 활보했다고 한다 ( 고급 기술과 집단적 훈련이 필요한 이런 끔직한 행위는 일반시민이나 학생들이 할 수 없다). 4시간만에 광주시와 주변여러 시읍면에 있는 향토예비군 무기고를 습격해서 칼빈총과 실탄, 수류탄등을 탈취해서 광주시내 계엄군을 가장하여 무차별 민과 군을 향해 쏘았다 한다. 민으로 가장하여 군을 쏘고, 군으로 가장해서 우리 민을 쏘고  해서 우리 군과 시위대를 자극한 것이다.

이때의 사진을 보면 이들은 모두 카빈총을 거꾸로 매고 있었다. 우리군은 카빈총이 아닌 M16을 총구가 위로 가게 맨다. 우리 군은 완전군장을 하고 있는데 괴뢰는 강한 인상을 가지면서 아군복만 입고 핸드무선기를 가지고 있었다. 철모에 흰띄, 목에 흰마후라를 비표로 둘렀다. ( 육사22기출신 지만원 박사가 보여준 자료를 보아도 믿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2017년 10월 12일(목) 오후 2시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25호 법정에서 지만원 박사의 재심 재판이 열릴예정, 지박사가 보여준 자료중 사진 매치가 완전히 일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정황을 볼 때 북의 개입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확실히 모른다고 아닌 것이 아니다.)

북의 전투간첩은 180여 사상범을 포함하여 2700 죄수가 있는 광주교도소를 6차례나 습격했는데 이 때 우리 군이 참호를 파고 기다렸다가  습격 간첩들을 많은 수 살해 했다한다( 이 때 사망자 166면중 카빈총에 맞은 수 80여명, m16총 맞은 수 36명이란다).  설사 시민군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들이 교도소를 습격할리 만무하다. 폭동기간동안 사살된 간첩이 490명이라니 살아 간자 얼마 안된다 한다. ( 남은 자들은 동해안 철조망 밑을 파고 빠저 나갔고 평양에 가서 김일성으로 부터 영웅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많은 시체 행방을 못 찾았다 한다. 2014년 5월에 청주에서 운동장을 만들다가 발굴한 의문의 집단 유골 430 구가 발견되어  이를 컨테이너에 넣어두었는데 감쪽같이 없어젔다하는데 이 시체가 광주교도소 습격시 사살된 시체가 아닌가 하고 이를 밝히라고 우파에서 외치면서 데모를 하고 있다. (구글에 가서 '청주 유골' 로 검색해 볼것)


이와 같은 것이 사실이라면 광주사태는 북한 간첩에 의한 만행으로 광주시민과 우리 군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광주시민은 북괴에 의해 철저히 속은 것이다. 아직도 북괴만행이 아니라고 우기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광주시민은 2번이나 우롱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 북괴에 속고, 북괴를 감추려하는 세력에 속고.  5.18 사태 관련 동영상을 보면 북괴 간첩의 의심이 있는 사진이 감추어지고 있다. 여러 동영상을 보니 카빈 총을 거꾸로 맨 건장한 사람들, 핸드무전기든 간첩용의자들, 교도소 습격 관련 사진들,  머리와 목에 흰띄를 두른 건장한 군복입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광주시민들은 폭력이 아니고 단순히 시위를 하여 전두환 물러날 것과 계엄해제를 왜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북괴들이 불을 질러 사태를 악화시킨 것이다. 

광주시민은 이들 북한 공산당 놈들의 장난으로 많은 생명ㅘ 재산을 잃은 것이다. 속은 것이다. 진실을 밝혀야 광주시민의 자존심과 긍지를 되 살릴 수 있다. 무언가 숨기고 감추려 하면 계속 의문은 꼬리를 달고 이어지는 법이다.


후손에 물려줄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사실은 사실대로 밝히고 알고 있어야 한다. 민주를 왜치고 정의를 왜친 우리 광주시민들은 밝힐 것은 밝히고 알것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애국시민인 것이다. 잘못으로 받은 어떤 이익도 있어서는 안된다. 

 

북한에서도 광주 5.18폭동을 기념한다고 한다. 영화도 만들었다고 한다. 왜 그들은 이런 행동을 할까.

5월 18일에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기념식을 거행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이거 이상하지 않은가?

황석영과 윤이상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북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니...

( 5.18 사태와 관련해서 김대중이 북한으로 부터 정치자금을 받아 활동한 간첩이었다는 말이 꼬리를 달고 다닌다. 이것도 사실을 밝히고 과연 김대중이 북한편에 서있는 자였던가 아니면 남한편에서 민주주의를 바로 새우기 위해 희생했는가, 한반도 통일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바르게 밝혀 뒷말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언론과 사상과 편견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력을 잃어 버린지 오래된다.

이런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슬프기만 하다.


hanngill

2017년 9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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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박사야 말로 애국자가 아닌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면서 모두가 모른척하는 감춰진 진실을 순수하게 밝히기 위해 노력하신 것을 치하하고 싶다.

그러나 남파특수부대 당시의 시진과 세월이 지난 사진을 가지고 일일히 대조해서 실재 인물을 찾아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서 틀릴 확률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특수군의 활동에 관한 사실 Fact 가 하나씩 밝혀지고 있어서 그 노고의 결실은  매우 크다고 본다. 역사는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장래가 밝다.  광주시민들은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스스로의 명예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남파 간첩들은 남한의 혼란을 공작하는 것이 주 임무이다. 어디서나 언제나 남한이 혼란을 야기할 좋은 기회가 오면 그들은 꼭 끼어 든다. 나라를 먼저 생각합시다.


다음 링크해 놓은 사진 두 노파는 구경나온 사람 같지는 않다.

렇다면 북에서 온 요원인데 노파로 가장하고 있는 것인가?


https://t1.daumcdn.net/cfile/blog/9912F43359D8B45F0B
지만원 박사는 이 사진이 동일인이라 한다. 그러나 아니다. 리을선은 아니다.
노파는 콧망울이 잘생겼다. 그러나 리을설은 콧망울이 약간 위로 올라 붙었고 콧 구멍이 들렸다.
노파는 콧 잔등이 꺼저 있어 과부상이거나 빈상이다. 그러나 리을설은 그렇지 않다.
노파는 귀바퀴가 흠이 없다. 그러나 리을설은 귀바퀴가 약간 뒤집혀 있다.

노파는 앞니가 하나 돌출되어 있고, 리을설은 가지런하다. 두 사진 치열이 다르다.
노파와 리을설이 풍기는 인상과 느낌이 다르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99C7423359D8B39716
광주 518 사진 중에서
이 노파는 구경나온 사람이  아닌 것 같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9975DC3359E407001A

이들 사진중에서 황장엽과 대조되는 사진을 보면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이마다 다르다. 황장엽 이마는 약간 뒤로 깎인 넓은 이마로 바가지 처럼 번드래하다. 그러나 대조 사진은 이마가 좁고 이마 중간 좌우가 내밀어 그늘이 잡힐 정도이다. 이마는 관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두 인물은 부모로 부터 타고난 분복이 매우 다른 상이다. 


* 강명도 같이 남한에 내려와 있는 "광수"들이 있다면 이들을 통해 당시 사진이 본인임을 확힌해 보길 바란다. 그 때야 모든 것에 신임이 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