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글은 인터엣을 통해 얻은 것으로 매우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고 이해하기 쉽게 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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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시초는 약 1000년전인데 그당시에는 금융업자들은 환전꾼이라 불렀다 합니다.
당시 은행으로 비유되는 금 거래상에는 금이나 귀금속을 보관하는 튼튼한 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돈을 예금하듯 그들(환전꾼)에게 자신의
금을 맡겨 놓고는 맡긴금의 가치에 해당하는 증서를 대신 받았습니다. 이 증서는 지폐의 시초가 되었고 ,금거래상들은 은행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사용이 편리한 종이증서는 무거운 금은동전을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폭팔적인 인기를 얻게되었습니다. 한 편 금거래상들은 금을 맡겼던 이들 가운데 소수만이
금을 되찾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꾀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금이 없으면서도 금이 있는듯 증서를 만들어 고리대금업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자 실제로 보관된 금보다 점점 더 많은 증서를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부분지준은제도의 시초가 된것입니다. 부분지준은제
도란 은행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돈의 10배이상 고객에게 대출해주고 이자를 챙기는 제도를말합니다. 즉 어느 은행이 1000원을 융자해주기 위해서는 100원만
들고 있어도 족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머지 900원은 존재하지도 않는돈으로, 엄격히 말하자면 은행이 900원의 위조지폐를 발행한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제 전세계는 정부의 허락하에 이러한 금융제도를 합법으로 시행하고있으며 은행이 누군가에게 8%의 이자로 돈을 빌려준다면 실제로는 80%의 이익을 얻는 셈임니다. -즉 100원 투자해가지고 80원을 번 셈이다.
지난 1988년 국제결제은행 BIS는 자신과 연계된 모든 은행에대해 1992년까지 8%의 지급 준비금 reserve 을 갖추라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나 일본의 은행들은 10분의 1도 채 안되는 8퍼센트 마저 마련하지 못해 쩔쩔맸던 적이 있습니다.
위를 보면 은행의 돈을 뻥튀기는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짐작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 이건 합법적인 도둑이다.
§자 그럼 이번 코너는 세계 최초의 국가 중앙은행에 대해 써올립니다.
17세기 말 영국이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한 처기에 있었습니다. 50여년에 걸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전쟁으로 국고를 탕진한 영국 정부는 다급해진 정황을 타개하고자 환전꾼과 타협을 하게 됩니다. 이때 환전꾼들은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개인소유의 중앙은행을 만들어달라 요구합니다. 정부의 제재를 받지않고 화폐를 발행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리하여 탄생한 은행이 세계 최초의 개인 소유 중앙은행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국민에게 곤란해진 정부는 개인 소유의 중앙은행을 마치 정부기관처럼 위장하기 위해 고심합니다. 그 결과 영국은행이란 명칭을 붙이게 됩니다.
이 후부터 양심있는(돈 안밝히는)정치가와 환전꾼 사이에 피튀기는 싸움이 벌어졌다고 하는군요. 비록 역사서에는 기록되어있진 않지만. 여하튼 이를 모델삼아 유럽전역에 중앙은행이 설립됬다 합니다.
환전꾼들은 인쇄비용밖에 들지않는 종이를 마치 피땀흘려 번 돈인 양 정부나 개인에게 빌려준후 이자까지 쳐서 되돌려 받았고 이것이 곧 세계금융의 기본이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소위 재벌정치가 생겨났고 정치가들은 출세를 위해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환전꾼으로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꼽을 수있고 아직까지도 이 가문은 세계의 모든 금융을 장악 하고 있다고 합니다.
§ 이제 미국중앙은행의 탄생 배경에 대해 써 올리겠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밴저민플랭클린이란사람에 의해 금에 상관없이 신용에의해거래되는 지폐를 타생시켰습니다.
당시 세계는 금본위제도가 뿌리박혀있던 터라 유럽은 미국의 돈을 거짓지폐라며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이지폐는 역활을 충분히 했고 미국을 단결시키는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영국은(영국의환전꾼) 1764년 식민지에서 지페발행을 금하는 화폐법을 통과시킵니다. 아울러 식민지가 영국에 내는 세금도 금전이나 은전만 지불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독립전쟁의 주원인이 됩니다. 전쟁중 미국은 전쟁자금을 마련하기위해 지폐를 마구찍어내고 극심한 인플레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결과 전쟁 발발당시 1천2백만달러에 불과했던 통화량이 종전무렵에는 5억달러가지 육박했습니다. 심한 인플래로 지폐는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맙니다.
독립전쟁이 끝날무렵 미국의회는 화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의를 하던중 복잡한 화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781년 모리스란 사람을 주인으로하는 개인소유의 중앙은행 창설을 허락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첫번째 민간중앙은행 북미은행입니다.
모리스란 자는 로스차일드를 위해 일하는사람이었고 그들은 부분지불준비은제도를 이용해 수십배 이상의 막대한 자금을 긁어모았습니다.
영국중앙은행의 횡포를 잘 보아왔던 미국 지도자들이 1787년 헌법대회라는 모임을 갖고 미국에는 그런 제도를 도입하지 말하야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0~30년전 금의 뒷받침이 없어도 훌륭히 역활을 수행한 지폐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은채 전쟁중 인플레로 고생한 것만 생각한 국민과 모리스,해밀턴,와일링과같은 유럽 은행가에 의해 좌절되고 맙니다.
3년이 지난 1790년 새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해밀턴은 의회에 정식으로 개인 소유의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전권을 이양받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1년간의 논의 끝에 미국의회는 20년간의 차터권 (charter 특별한 권한)을 개인 은행에 주는 의안을 동의하게 됩니다. 그때 탄생된은행이 미국제1은행이며 그때부터 미국 지폐는 이 은행에서만 발행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 은행의지분은 80%를 개인이 사고 20%를 정부가 샀는데( 모두 뒤에 반환하기로 하고 현금을 가져간것), 20%를 정부가 사게한 이유는 정부를 산모 역활을 하게끔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미국 정부는 애초 200만 달러를 현금 지불했고( 즉 제일은해에 reserve 해 놓고) 부분지준은제도를 이용해 주주들에게 돈을 융자해 주고 그융자된 돈으로 개인 투자금 800만 달러를 만들어 총자산 1천만 달러의 돈이 되게 한 것입니다.
미국제1은행이란 이름을 만들어 국민들을 기만했고, 여러해가 지난후 항간에 미국중앙은행 배후는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는 소문이 떠돌게 됩니다.
(어째거나 돈한푼 안들이고 미국 중앙은행을 차지한 것)
그후 1811년 미국 정부는 미국 제1은행의 특권 charter을 연장시키자는 은행법을 다시 의회에 상정 시켰습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고 펜실베이니아 주와 버지니아 주는 주의회에서 의결하여 은행의 사립화를 중단시키라고 미국의회에 압력을 가할 정도였으며 각 언론도 중앙은행에 대해 독사.이리떼.매 등으로 표현하며 환전꾼들을 공격했습니다.
그에 로스차일드는 만일 미국이 개인 소유의 중앙 은행을 허락하지 않고 차터권을 연장해 주지 않을 경우에는 가공할 전재의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를 할 정도였습니다. 상원에서 표결을 부친 결과 찬반 동일하게 표가 나왔고 그렇게 되자 당시 부통령인 조지클린턴이 반대쪽에 표를 던져 미국에 두번째 중앙은행인 미국 제1은행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결과 로스차일드가 경고한대로 5개월도 채안되 영국은 미국을 침략하였고 이전쟁이 1812년의 전쟁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반격에 미국이 전쟁에 승리하게 되었고 환전꾼들은 일시적으로 후퇴했습니다.
1816년 미국의회는 또 하나의 개인 은행을 허용하는 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은행을 미국 제2은행이라 불렀는데 , 그 조직 내용은 미국 제1은행을 복제하다시피 한 것입니다.
미은행이 경제를 움직인 지 12년이 지났을때 테네시주 출신의 영웅 앤드루 잭슨 을 중심으로 개인 중앙 은행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뭉치게 되고 그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828년 젝슨은 국민들의 성원속에 대통령에 당선 되었습니다. 그는 곧 중앙은행을 없애려는 작업에 돌입했지만 이미 법적으로 그은행의 차터권이 1836년까지 유효했으므로 젝슨도 그때까지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젝슨은 기회가 닿는대로 중앙 은행을 없애려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첫 임기에 정부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만천명의 공무원에서 2천명을 감원시켜 은행과 전투?할 준비를하고 있었습니다.
1832년 그의 두번째 대통령 임기기 4년 남았을때 은행들은 다시 20년 간의 차터기간을 연장하려는 의안을 의회에 상정시켜 상하 양원에서 모두 통과시켰지만 잭슨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하여 이 법안을 기각시켰습니다.
그리하여 환전꾼들은 일시적인 패배를 맞아 1832년 7월 차기 대통령 선거애서 잭슨을 없앤뒤 다시 모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선거에서도 잭슨이 승리를 거두었고 재무 장관으로 테이니 를 임명하여 미국제2은행의 돈을 전부 정부은행으로 입금시키라 명령했습니다.
당시 미국2은행 대표였던 비들은 통화량을 줄여 거대한 디플레를 조장함으로써 정부와 싸우겠다는 사실을 공표 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미국의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고 실업자들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이후 의회에서 표결에 부친 결과 134대 82로 차터권을 연장시키는 안이 부결되여 잭슨이 승리하고 의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특별위원회까지 만들어 은행의 비리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의 송장까지 가지고 은행에 나타나 서류의 인계를 요구하였지만 그들은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이런 줄다리기 끝에 잭슨은 계획을 꾸준히 진행시켜 1835년 1월 8일 마지막으로 국가의 부채를 완전히 갚아 빚없는 정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미국 제 2은행도 여기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 뒤 사설은행은 77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다시 등장합니다.
§ 연방준비제도 Federal reserve system 의시작은 1907년 경제공황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1907년 MA로스차일드와 JP모건은 미국에 중앙 은행을 재설립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무렵 모건은 몇달간 유럽에 머물며 런던과 파리의 두 로스차일드 가문을 번갈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JP모건 연구자들은 이때 그가 미국에서 일으킬 경제 공황을 준비했던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모건은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뉴욕에 있는 니커보커 은행이 넘어가게 되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소규모 은행들은 부분지준은제도에 따리 과다대출을 한 나머지 심한 경우에는 지급준비금이 1%도 안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 실정에 모건의 말은 굉장히 설득력있게 들렸고 그래서 은행들에게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와 돈을 찾는 바람에 "런" 현상이 시작되었고 니커보커은행의 run 은 곧이어 미국 전역으로 퍼저나가 1907년 의 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모건은 여론을 조작해 경제계 인사들로 하여금 시중의 일반 은행들은 너무 불안하니 반드시 중앙은행이 필요하다는 이론을 주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공황주범인 모건이 혜성처럼 나타나 당시 돈으로 2억달러를 찍어내 은행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가 발행한 2억은 금으로 뒷받침 되지 않는 종이 돈이었을 뿐이며 이런일은 불법이지만 의회는 다만 경제가 회복되는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이런 혼란 끝에 허술한 은행들이 합병되며 미국의 금융은 몇사람이 소유하는 체제로 재정비 되었습니다.
여하간 이런 혼란을 거쳐 모건은 미국민들에게 중앙은행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입시켰고 지금도 경제 교과서에는 연방지급준비제도가 1907년 경제 공황이 직접적 원인이 되어 만들어졌으며, 다시는 공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연방준비은행이란 이름은 사실과 걸 맞지 않은 이름이다. 단지 거대한 사유 중앙은행일 뿐이다.hanngill
공황을 맞게된 의회는 은행의 모든 문제를 조사하고 좋은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국가화폐위원회'라는 특별 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위원들은 모두 jp모건 일파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헌트클럽이란 곳에 비밀리에 모여 연방지급준비제도,즉 미국 중앙 은행법에 해당하는 법을 헌법에 삽입하기 위한 법안을 작성하였습니다. 그 법안의 주요 골자는 미국 화폐의 독점 발행권을 차지하여 금의 뒷받침 없이 신용을 근거로 화폐를 발행하도록 하는것이었습니다.
여기 참가한 사람들은 올드리치 상원의원을 비롯, 앤드루 재무장관, 쿤롭계열인 뉴욕의 내셔널 시티 은행의 밴덜립, 쿤롭사의 동업자 와벅, J.P 모건의 동업자 데이비슨,모건 계열의 뉴욕퍼스트내셔널 시티은행의 노턴, 모건계열인 뱅커스트러스트사의 스트롱 등이었습니다.
이들이 다른 국회의원 몰래 행동한 이유는 이것이 옳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 모임의 주요 안건중 하나는 그들 소유의 중앙은행을 창설하는데 장애가 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였고 또 하나는 대형 은행들의 시장 점유율이 줄어드는 것은 어떻게 반전시킬 수 있을까 였습니다.
§ 1913년 완성된 연방준비은행의 미국정부에대한 횡포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연준은은 정부가 세수입이 모자라고 할 일은 많아 당장 돈이 필요할 때 정부공채 (-차용증서)를 발행을 인가합니다. 정부공채는 단지 정부가 돈을 빌려쓰고 나중에 갚겠다는 약송증서로 공채 매수자는 일정 시기가 되면 보증된 이자와 함께 돈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정부는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고 공채를 되돌려받아 소각하게 됩니다.
1998년말 미국정부는 거의 6조 달러에 달하는 공채를 가지고 있고 이는 1981년 1조 달러였던 것이 18년만에 5조달러가 증가한 것으로 시간이 갈수록 빚이 늘어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이겠습니다.
만일 미국 정부의 예산과 세수에 20억 달러의 차이가 난다고 치고, 정부는 공채를 발행해 그 돈을 만들어 내려고 할것입니다.
1단계:의회는 재무부가 20억달러를 만들어 내는 것을 허락하는 안을 통과시킨다.
2단계:정부는 돈을 만들어내는 연준은에 가서20억달러가 필요하다고한뒤 이자율과 상환 기간등에대해 합의를 본다.
3단계:형식적이지만 연준은의 공개시장위원회는 정부의 공채 발행을 인가한다.
4단계:의회는 다시 재무부가 20억달러의 채권 =차용증서 을 찍도록 허락한 뒤 이를 연준은에 가져다 준다.
연준은행은 공채를 공개시장에 내 놓고 국민들에게 팔거나 새로 화폐를 발행하여 정부에게 20억 달라를 준다. 이렇게 해서 돈을 융통시킨다.
다음으로 시간이 지난 뒤
5단계:연준은은 공개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는 공채를 산다.
6단계:연준은은 공채를 판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기 위해 매도자의 은행 구좌에 전지환으로 입금시킨다. 실제는 시중은행으로 돈이 들어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실제로 돈이 매도자에게 가는것이 아니라 숫자상으로만 매도자의 구좌에 입력된다는 점이다. 연준은은 매도자에게 숫자상의 돈, 즉 신용만 준 셈이지만 입력된 그 돈은 구매력이 있어 무었이든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바꿀 수도있다.통화량 증가의 원인이 된다.
7단계: 이 돈을 시중은행은 지급준비금으로 인정해 10배 20배의 금액을 대출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지금 준비금 2%를 허용하면 그 50배의 돈에 대하여 이자를 받고 대출해 줄수있으며 국제 결제은행의 요구처럼 8%기준으로 하면 12.5배까지 대출할수 있다.
연준은이 만일 1백만 달러 상당의 공채를 구입했다면 1,250만 달러상당의 금액을 이자를 받고 융자해 줄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간단히 계산해 연준은은 숫자상 새로운 돈 10퍼센트를 만들어내고, 다른 은행들은 나머지 90퍼센트를 부분을 지준은제도에 따라 창조하여 이자를 받고 고객인 국민에게 융자해 준다는 것이다.
정부가 채권을 방행하여 차입한 돈은 실제로 연준은에 갚지 않고. 연준은 새로운 돈을 발행한 셈이 된다.
이게 왜 횡포냐구요? 연준은은 금의 뒷받침 없이 숫자로만 돈을 만들어내고 정부는 그 연준은이 만들어낸 위조달러(?) 를 사용하며 1998년 기준으로 6조원의 빚을 연준은에 지게 되었습니다.
§ 다음은 Federal Reserve Bank 의 경기 순환 조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물가를 올리기위한 수단으로 연준은 이사회에서 할일은 다만 이자율을 낮추는것 뿐입니다. 그리하여 여신을 팽창시키고 주식 시장의 주가를 올려놓은 다음
사업가들이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싶으면 제동을 걸어 독단적으로 이자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자율을 시계추처럼 이자율을 약간씩 변동시켜 가면서 경기를 완만하게 올렸다 내렸다 하거나 ,이자율을 크게 변화시켜 경기가 격렬하게 변동하도록 조작 할 수 있습니다. 경기가 좋아지든 나빠지든 그들은 내적인 경제 조건을 알고 앞으로 올 변동에 대한 사전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부가 처음으로 특수층에 특혜를 베풀어 준 것으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일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이것은 다만 남의 돈으로 최대한 이득을 보려는 개인이 소유하는 제도인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 공황을 일으켜야 할지 또 언제 멈추어야 할지 미리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조정하는 인플레나 디플레는 모두 그들에게 항상 수지맞는 일인것입니다.
1913년 연준은 법령이 통과되어 연준은이 통화량을 마음대로 늘이고 줄일 수 있게되자 언론은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이제야말로 과학적으로 경제를 조정하여 공황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식의 사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양심적으로 쓰자면 "이제야말로 과학적으로 공황을 조작할수 있게 되었다"라고 써야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정부에는 연준은 감사 권한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정치인들은 연준은이 무엇을 하는지 연준은의 예산과 지출을 얼마이며 어디세 사용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지금도 연준은은 남세 의무에서 면제되어 미국 정부는 아무런 보고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연준은이 어디에 어떤돈을 사용하여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 연준은의 실제 주인은 미국의 록펠러,골드만삭스,레먼 등 세가문 그리고 유럽의 로스차일드,와벅,라자드,쿤롭,시프등 다섯 가문입니다.
( 이 글 올린 분께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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