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을 위해/宗敎, 經典

종교는 독버섯처럼 무지와 가난과 질병과 압제의 음지를 찾아 피어 났다.

hanngill 2011. 5. 5. 00:30

*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유태교, 카토릭, 프로테스탄트, 이슬람, 불교, 원불교 기타 다른 종교 신자라면 거북한 느낌을 받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열린 마음으로 읽어 주기를 바란다. 사람의 뇌에 있는 잠재의식에서는 모든 인식이 비판없이 이루어 진다. 순진한 어렸을 적에나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적 주입에는 아무런 저항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특별한 제거 암시 방법을 쓰지 않는 한 평생 지워지지 않고 무덤까지 간다.  종교적 신앙심이 이렇게 심어지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재의식에서는 다른 것을 받아주지 않고 거부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이론이나 종교에 무조건 거부감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점 유념하고 마음을 열어 놓고 순수한 마음에서 읽어 보기 바란다. ( 태교나 어렸을 적 교육은 아주 중요하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바르게 교육을 하면 그야말로 좋지만 바르지 못한 교육이나 종교관을 심어주면 평생 인생을 망치기 쉽다. 조기 교육이야 말로 훌륭한 지도자가 해야 한다.)

* 하늘, 하느님, 신( God) 이란 우주의 운행 原理이고 Nature's Law 이요 Logos 로 이해하여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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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독버섯처럼 무지, 가난, 질병 그리고 압제의 음지를 찾아 피어나는 필요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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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서  종교는 모든 기성 미신적 고등 종교와 샤마니즘을  말한다.특히 기독교의 병폐가 컸음을 지적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 같다. 종교는 음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고 힘이 될 수도 있기에 그 명이 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인지가 발달하고 인간 이성이 주도하는 시대에 들어오고 있다. 학문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하고 우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창조의 근원이 과학적으로 밝혀질 날도 가까워지고 있다. 오늘날의 모든 기성 종교는 근거없는 맹신적 신앙에서 탈출해서 공허한 종교 논쟁을 지양하고 배타정신을 버리고 이성적, 인간 중심적, 윤리적, 도덕적, 自然宗敎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아니면 인류에게 해를 주는 종교는 말살되어야 하고 인류에게 길을 안내하고 희망의 빛을 주는 새로운 理性宗敎가 탄생해야 한다.


세계 역사를 볼 때 종교는 음지에서 피어나서 널리 퍼져 나갔으며 압제자들은 이를 교묘히 이용하여 지배의 수단으로 써 왔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신에게 의지하려는 인간심리에 종교는 쉽게 그 뿌리를 깊이 박는다.

무지하고 힘 없는 자에게는 의지의 대상으로 종교가 필요했고, 권력과 물질과 기득권을 누리는 힘 있는 자들에게는 대다수의 힘 없는 민중을 착취하고 이용하기 위해서 종교가 필요하였다.

 

유태교는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을 위한 결속의 수단으로,  예수교 (기독교)는 황제를 신의 아들이라 하여 숭배케 하는 로마제국의 압제로 부터 정신적으로 나마 자유를 찾고자  만민이 창조주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로 삼고 사랑을 실천하여 내세 천국을 지향하는 코스모폴리탄니즘을 외치고 나왔다. 

이슬람교는 기독교의 분파로서 삼위일체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교의)을 부정하여 갈라진 종교로 급 성장하여 기독교와 대립해 왔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적대하고 있는 한 지구에서 전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유대인에게 잃어 버린 땅을 주지 않으려 하는 한 중동의 평화는 없을 것이다.


불교는 창조주 신에 의지하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달리 인간에 관한 성찰을 하는 철학이다.

유교나 노장사상도 신에 의지하는 타 종교와는 다르다. 인간 중심적 사상이다.

동양에서는  평화를 중요시 하는데 대하여 서양에서는 지배와 정복 전쟁 식민 착취와 저항의 역사를 꾸며 왔다.

 

오늘 날 일어 나는 전쟁도 정의와 하느님과 인도주의를 표방하고 이용하는 종교 전쟁이요  정복과 착취을 위한 전쟁이다.

이 지구상에 전쟁이 없어지려면 종교가 독 버섯처럼 피어나가는 음지가 없어져야 한다.

인지가 깨어나야 한다. 미신적 종교가 없어지고 이성이 깨어나서 이성적 윤리적 도덕적 종교가 새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종교가 인간 이성을 중심으로 새로 피어나야 한다. 기성 미신적 종교가 피어나는 음지가 좁혀저 나가야 한다.

한국 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근세 들어와서 문예부흥이 일어나고 계몽사상이 피어나면서 인간 이성이 다시 피어나고 어두었던 중세 카도릭 교회가 설 땅을 잃어가는 마당에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와 그 뿌리를 점차 뻗혀서 지금에 그 극한을 이루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20개중 10개가 한국에 있다한다. 이것은 한국이 독버섯이 피기기 좋은 음지가 넓다는 뜻이다.

종교는 정신적 이지적 측면에서 아직 미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피어난다. 병들고 가난하고 힘없이 사는 음지의 사람들을 상대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외적으로 치부하고 군림하고 지배하는 의식으로 영광을 누리고 살아 왔다. 그들은 기득권을 누리기 위해서 모든 양심을 감추고 선한 양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 왔다.

물질을 권력을 영예를 다 누리려고 은근히 노력하면서 살아 왔다. 성경에 따라 예수의 말씀에 따라 가난하게 헌신하면서 밀알이 되려고 사는 종교인은  없다.  예수 예수 하는 종교지도자는 예수처럼 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 하나도 없다.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하고 아예 저 멀리 놓고 숭배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종교를 신앙으로 믿거나 전도하는 것 자체가 지상에서의 세속적 개인적 욕심으로부터  또는  내세에 천당가고자 하는 개인적 욕심으로부터 나온다.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승인 하였던 것도, 국교로 받아들였던 것도 기독교 신앙이 옳고 좋아서가 아니고 98 퍼센트가 넘는 무지의 민중을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였다. 십자군 8차의 원정도 예루살렘 성지를 찾고자하는 의미 보다는 착취와 정복 전쟁의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였던 것이다. 신대륙의 발견이나 서인도제도에 식민하고 착취하기 위해서 먼저 들어 갔던 것도 카도릭 종교였다. 원주민을 상위에서 착취하고 다스리기 위해 교육하고 길들이기에는 종교가 최적이었다. 그 수 많은 원주민( 오늘날 파악 되고 있는 바에 의하면 남 북미 원주민 소위 인디안 인디오 2억이 정복자들에 의해 희생되었다 한다.)으로 부터 물질과 노동력 착위를 위해 기독교가 가장 큰 역할을 해 왔다.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 종교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음지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욱더  종교가 가면을 쓰고 음지를 찾아 교묘히 뻗어 나가는 독버섯이 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는 소수의 선각자나 깨어 있는 자들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기성 종교와 타협하거나 입을 다무는 것은 엘리트가 할 태도가 아니다.

 

참으로 하느님이 있다면, 전지 전능한 하느님이 있다면 하느님을 팔아 먹는 이런 정복자들에게 천벌을 주었어야 한다.

참으로 하느님이 있다면, 예수가 하느님이라면 이를 그렇게 소리지르며 믿으라 외치지 않아도 다 서로 믿으려 할 것이다.

이 땅에 인간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려면 이성이 께어나야 한다.  인간 이성으로 인간을 중시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 God and Reason are Identical. 신본주의도 근본은 인본주의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물질이 중심이 아니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 만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임을 진정으로 깨우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정복이 아니고 군림이 아니고 나누고 사랑하고 사는 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성이 깨어 나야 한다. 그래서 온 세상 인류가 하나가 되어 한 길로 바르게 살아 나가야 한다.

 

문화도 종교를 위한 문화가 아니고 신이나 지배자를 위한 문화가 아니고 인간이성에서 나오는 인간 인류를 위한 문화이어야 한다.

옛날에 건축된 웅대하고 화려한 성전이나 궁전을 보면서 옛날 문화가 발전하였슴에 감탄하기 보다는 소수의 영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나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음악. 미술, 건축, 사상이 오직 신이나 지배자 숭배를 위해 발달하였고 오랜세월을 걸쳐 그 뿌리를 굳혔다. 그래서 아직도 옛날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보다.  오늘날 종교음악 종교미술이 감동을 주고 있음이 다 그런 것 같다. 성경이나 여러 경전도 오랫동안 전승되어 내려오면서 신앙중심으로 잘 다듬어져 사람들의 뇌리에 심어져 왔다. 그래서 이런 사상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아무런 지식인이라도 한 번 빠지면 못 나온다.

 

이성이 잠들어 있는 한  인간은 가지 각색의 마녀(종교)의 최면에 걸려 미몽속에서 로버트 처럼 살아 갈 것이다.

마녀는 항상 아름다운 환상과 달콤한 말로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끊임 없이 매혹해 나갈 것이다.

이성이 깨어 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사랑과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요 인간 중심의 참 문화는 꽃 필 수 없을 것이다.

 

마음에 선을 간직하고 사랑을 배푸는 자가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아음에 악을 품고 이기적이고 타인을 억압하고 타의 이익을 착취하여 부를 누르는 자는 아무리 신에게 축복을 빌어도 끝내는 어두움이 드리우게 되는 것은 다 자연의 이치이다.

마음이 착하여 편안하고 즐거운 자는 몸의 기운도 순행을 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마음에 악하여 불안하고 괴로운 자는 몸의 기운도 역행을 하여 건강을 잃고 괴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인생의 목표가 돈 출세 명예 권력 우월감 지배욕 등 결국에는 허무한 동물적 욕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인생의 참 목표는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나누어 주고 사랑을 받는 즐거움속에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자연 파괴하면서 얻는 이득이 물질과 문명이 인간에게 행복을 주리라는 것은 잘 못된 생각이었다.

정신을 바르게 가다듬고 마음을 바르게 품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부지런히 열심히 살면서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세상이 축복 받은 세상이다.

 

신은 이성과 동일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자연의 이치가 신이다. 신이 성경속에 교회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정신, 뇌와 연관) 속에서 자연의 신을 만나라.  마음속에서 깨어나는 신의 소리를 들어라.

누구나 마음속에 양심이 있고 자연이 있고 우주가 있고 신 즉 하느님이 함께하고 있다.

양심에 따라 살고 마음속에 있는 신에게 다짐하고 기도하면서 살라.

 

나는 자연의 일부이므로 自然의 法則에 따라 살 수 밖에 없다. 자연의 법칙을 어기고 옳지 않게 살면 벌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의 법칙이 이른바 神의 法이다. 내가 착하면 福을 받고 악하면 禍를 돌려 받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 인간의 양심과 이성에 의하여 도출된 自然法的 倫理나 道德도 여기에 포함된다. 사랑과 나눔으로  공생 공존하고자 하는 기본적 사회 질서의 법칙이 윤리 도덕이다.)

나를 자연의 법칙에 의탁하고 착하게 바르게 즐겁게 사는 것이 인생이리라.

이 이상 무슨 허망한 신을 만들어 숭배하고 기도하고 축복을 바랄 필요가 있겠는가?

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느다.

修人事 待天命 (수인사 대천명; 사람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에 따르라는 뜻이다.)

위의 두 문장에서의 '하늘' (God = 天)은 하늘의 이치, 자연의 이치를 뜻한다.

' 사람으로서 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살 것이니 하늘(하느님)이 나를 도와 주소서'  하고 기도하라.

사람으로서 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살면 축복이 오리라는 확신이 信仰이요 하늘의 뜻( God, Reason, Nature's Law )에 맡기고 사는 것이 올 바른 신앙생활이다.

 

( 미래에는 뇌에 관한 연구와 정신 의식 잠재의식 에 관한 연구에서 확신(믿음 신앙)과 행동(결과)이 어떤 연관이 있는가 밝혀 낼 것이다. 또한 우주의 탄생과 활동 소멸이 과학적으로 어느정도 밝혀질 것이다. 이 때는 여러 경전 내용이 얼마나 허구였나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내 아이들이 보기를 바라면서 썼다. 이성이 판단하고 감성(열정)이 실행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성을 빼버리고 감성에만 맡기는 삶은  實 의미가 없다.  기적은 없다. 신이 그의 의지에 따라 내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運(운, 환경)의 흐름과 내 精神과 意志와 努力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억지로 듣고 믿으려 애먹지 말고 하늘이 만들어 준 이성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허무맹랑한 종교에 홀려 구속되어 헛된 말 듣고 헛된 생각하고 헛된 생활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바른 자연신앙을 가지고 열심히 행복하게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Religion 이라는 말의 어원은 'rely 믿고 의지하다' 이다. 믿고 의지 할 것은 자연의 이치, 그러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해야 하는 법칙 밖에 없다.( 자연법칙은 당위법칙을 포함한다) 

바른 삶은 自然을 사랑하고 生命을 아끼고 善을 행하고 惡을 품지 않는 생활이다.

이렇게 살면 행복이 온다는 확신이 자연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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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공통적인 특징은 현세 보다는 알 수 없는 내세를 중시한다. 따라서 알 수 없는 신을 만들거나 한 인물을 신격화하여 신의 아들로 둡갑시켜 그를 숭배하고 따른다. 그를 경배하고 의식을 갖추어 추모한다. 신은 초능력을 가지고 기적을 행한다. 그리고 이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복을 내려준다. 이런 식으로 이성으로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상상으로 몰고 간다. 이와 같은 것을 보다 높은 차원의 인간 이상 실현을 꿈꾸는 것으로 미화해서는 안된다. 허망한 무지개 같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간의 인간의 삶이다. 내세는 근거 없이 인생의 무상함을 달래려고, 힘든 현세를 탈출하려고 상상으로 만든 것이다. 한계를 느끼는 인간이 초인적 존재 즉 신을 만들어 의지하려는 것이다. 모두가 허망한 것 뿐이다. 지금 내가 가장 보람있게 행복하게 의미있게 자연과 화합하고 사람들과 화합하고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 비교하지 말라, 순순하게 자연으로 살아가라.

이것이 전부이다.  ( 종교는 개인의 현세적 불만에 대한 위로와 내세에 대한 희망을 주고  집단의 결집과 존속의 근거를 주고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미개사회에서는 인정이 가더라도 인지가 발달한 문명사회에 와서도 이런  허구 신앙을 이어나가야 하겠느냐 이 말이다.)

*

자연의 법은 하늘의 법이요, 당위의 법은 인간의 법이다. 자연의 법은 당위의 법 위에 있다.

윤리나 종교는 당위의 법에 속한다. 신앙은 자연의 법이 대상이 된다.

초자연은 실제로는 없다. 기적도 없다. 초자연으로 여기던 것도 알고 보면 자연이다.

자연의 법은 변함이 없고 사람은 뿌린만치 거둬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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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문화, 이슬람 문화, 불교문화등 기타 종교 문화가  그들의  종교 사상에 입각하여 만들어낸 위대한 건축 미술 조각  음악 그리고 경전 등은 참으로 경탄을 자아 내는 것들이 많다.  이런 것들을 접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이 이런 문화가 자연 사랑과 인간 사랑과 생명사랑의 정신에 입각한 이성종교 정신으로 문화가 꽃 피어 왔고 또 미래도 그러하다면 얼마나 좋았고 또 좋을가 하는 생각이다.

타성과 편견에서 벗어나 인간 이성을 깨치고 망녕된 사상이나 미몽에서 깨어나 참다운 자연 인간 생명 윤리 사상으로 인류가 하나가 될 때 범 인류적 사랑과 평화가 지구상에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2011.5.5.

HANNGILL

 

GOTO

http://blog.daum.net/hanngil/12407810  진인사 대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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