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티베트사태를 보는 눈 ①
청룽 “올림픽 이용하지 말라”…이연걸 “질문 받지 않겠다”
영화 홍보 회견장에 나온 두 스타의 엇갈린 표정
홍콩의 액션스타 청룽(성룡)이 “올림픽은 정치가 아니라 통합과 사랑, 평화를 상징 한다”며 “어떤 주장을 펴기 위한 수단으로 올림픽을 이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포비든 킹덤-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란 영화의 홍보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그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며 “스포츠와 정치를 결부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동양의 영혼을 담은 무예와 스포츠를 ‘장사’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청룽의 말이다. “‘내 장사’를 위해 수백만 티베트 민중들이여 죽더라도 신음소리도 내지 말아줘”라는 듯이.
올림픽을 주제로 한 비자 카드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해온 그는 “스포츠와 정치를 결부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이것은 그른 일이며 왜 사람들이 올림픽 정신을 파괴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인터뷰에 참석한 이 영화의 다른 주연배우 리롄제(이연걸)는 티베트 사태에 대해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자가 관련된 질문을 하자 리롄제의 홍보 담당자는 “그런 (정치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말을 끊었으며, 리롄제가 서류 폴더를 집어 들고 남은 인터뷰 시간 내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고 한다. 독실한 불자인 리롄제는 스스로 양심을 속일 수 없어, 고개를 들지 못했던 모양이다.
리롄제는 평소 티베트의 정신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만난 적이 있는 독실한 불자여서 티베트의 민중들이 눈앞에 밟혔으리라.
불교 장려하는 중국의 두 얼굴…진정한 올림픽 정신으로 돌아와야
그러나 리롄제와 세계인들이 지켜야 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 중국이야말로 국가적으로 ‘불교’를 장려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기독교 세계와 맞서기 위해 중국 내에서 선교를 제한하면서 내부적으로 불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중국 각지에선 불과 10여 년만에 수십만명의 불교 승려들이 붕어빵을 찍어내듯이 양산되고 있다. 아마 전 세계의 불교 신자(3억~4억명)보다 더 많은 불자들이 중국 내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장려하고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한다면 불교가 아니다. 중국 제국주의와 국가주의를 위한 또 다른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 도교적 정신 가치는 문화혁명과 그 뒤의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황폐화해버려 그 뿌리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중국이 진정으로 불교적 가치를 되살리려 한다면 아직도 그 전통이 남아 있는 티베트 불교의 유산을 귀중히 여겨야하겠지만, 중국은 그것을 상업화시키고 관광지화하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불교를 진흥하는 것도,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도, 진정한 정신적 가치와 평화를 실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야욕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의 일단이라는 것을, 과연 무엇이 진짜 정치인지를 청룽은 모른다는 말인가.
올림픽엔 룰이 있다. 룰을 벗어나서 승리에만 집착한 권투선수가 경기장 밖에서 상대방을 죽도록 두들겨 팬다던가, 검도선수가 상대의 급소를 찔러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중국은 룰을 잃은 지 오래다. 우리나라가 종종 중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주국을 유지해온 이상으로 티베트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유지해온 나라다. 그러나 중국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룰도, 가치도 무시하고 있다. 올림픽을 오직 자신의 야욕 달성을 위한 정치에만 이용하고 있다. 청룽은 그런 야욕의 정치의 게슈타포가 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지금 청룽과 세계의 스포츠인들이 지켜야할 것은 티베트도 불교도 올림픽도 아니다. 청룽이 진정으로 찾아야 할 ‘잊혀진 왕국’은 심산유곡이 아니다. 바로 그 자신의 양심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50년을 일관한 ‘비폭력’…베이징올림픽 오히려 지지
중국의 “폭력 배후조종자” 주장은 역사적 사실 왜곡
지금 달라이 라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권력인 중국 정부와 세계 최대 인구 집단인 한족 및 화교의 공적이다. 중국의 분리를 책동하는 분리주의자이며, 겉모습과 달리 티베트의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도 티베트 사태와 관련해 중국을 비판하면 한국 내에 사는 화교들의 큰 영향력과 비판도 물론 실감하게 된다.)
중국의 티베트 폭력 진압에 대한 전 세계의 지성과 매스컴의 비판이 고조되고, 베이징 올림픽 참여를 거부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일자 중국 정부와 한족들은 이처럼 모든 책임을 달라이 라마에게 돌리고 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달라이 라마가 폭력을 조장하고 올림픽을 방해하고 있다”고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 사태의 배후조종자로 지목했다.
과연 그럴까? 달라이 라마는 이미 알려진 대로 1959년 중국에 점령당한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망명한 뒤부터 지금까지 줄곧 ‘비폭력 투쟁’ 노선을 지켜왔다. 그의 나이 불과 24살 때 망명한 지 50년이 다 된 지금까지 그의 노선이 혼선을 빚은 적은 없었다. 그는 사실상 티베트의 독립이 어려워지자 몇 년 전부터는 정치적 독립을 포기한 대신 종교의 자유 등만을 인정받는 고도의 자치권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베이징올림픽을 티베트 독립을 위해 활용하지 않고,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왔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의 항거분위기가
고조되자 오히려 “폭력사태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질 경우 지도자 자리를 내놓겠다”고 사퇴를 예고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이런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중국이 왜 달라이 라마를 굳이 ‘폭력의 배후 조종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티베트에서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오히려 항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
영향력 커진 중국의 위력 과시에 세계 각국 눈치보기
중국은 지구상에서 미국의 유일한 대항마가 될 만큼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 또한 13억여 명의 인구를 거느린 최대 집단이다. 세계 어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도 중국 시장을 제쳐놓고, 경제 성장을 기약하기 어려우며, 중국 정부에 밉보일 경우 자국 기업과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마치 중국의 속국이나 되듯이 티베트 인권문제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한 서북공정을 끝낸 뒤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공정에 나서리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임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그 때 그 때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게 하지 않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달라이 라마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에게 우호적이었던 나라들조차 중국 정부의 그 강력한 힘 앞에 갈수록 무력해지고 있다.
중국을 견제했던 네루 수상이 달라이 라마의 망명을 허용한 이래 수많은 티베트 난민들의 정착을 도왔던 인도 정부도 최근 중국과의 밀월에 나서고 있다. 티베트 사태가 불거진 뒤 인도 히말라야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티베트인 학살 반대 시위를 벌이는 티베트인들이 다람살라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와서는 안 된다며 인도 정부가 강력히 경고하고 나선 데서도 인도 정부의 변화된 기류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지구에서 점차 힘의 우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중국정부와 중국을 외면할 수 없어 이해득실에 따라 태도를 표변하는 세계 각국의 변화에 따라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망명정부는 갈수록 지구상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외교적인 힘에 있어선 중국과 티베트는 갈수록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앞으로 중국의 힘은 더욱 더 강력해지고, 티베트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달라이 라마의 편지를 읽고 자결한 게릴라 대장
중국의 영향력에 의해 ‘국가들’이 무력해지고 유엔조차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티베트의 폭압과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양심과 지성과 언론들이다. 중국의 침략으로 전 국민의 5분의 1인 120만 명이 숨지고, 6천여 개의 불교사찰이 파괴되어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음에도 보복과 원한을 내려놓고, 중국에 대한 자비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달라이 라마를 경이에 찬 눈으로 지켜보아온 양심들이다.
티베트 패망 이후 달라이 라마의 행보는 어느 누구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 나온 지 1년 뒤인 1960년의 일이다. 캄빠유격대는 네팔 접경지대인 히말라야 산중에서 중국군과 싸우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네팔 정부에 압력을 가했고, 결국 네팔 정부는 히말라야 산 속에 산재하는 게릴라들을 해산시켜 달라고 티베트 망명정부에 부탁했다. 달라이 라마는 육성 녹음을 해 네팔 산 속에 있는 유격대에 인편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나라를 위해 고생하고 싸우는 것은 훌륭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법(法·진리)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살생을 첫째의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중국 사람도 우리와 똑같아서 불행을 원치 않습니다.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던 게릴라대원들은 대성통곡했다. 게릴라 대장은 “자, 모두 우리는 부처님과 같은 존자님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면서 부대원들을 해산시킨 뒤 끝내 독배를 마시고 자결했다. 이후로 티베트 유격부대는 모두 해산했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은 달라이 라마 본인만이 아니었다. 티베트 스님 로폰라는 티베트를 탈출하려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 무려 18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았다. 그 뒤 풀려났다가 인도로 망명한 로폰나에게 달라이 라마는 “감옥에 있으면서 두려웠던 적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로폰라는 “내 자신이 중국인들을 미워하게 될까봐. 중국인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원한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무기대신 용서 선택
중국에서도 가장 강한 국가였던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싹쓸이했을 만큼 야만성이 강한 서융의 후손으로서 얼마든지 강력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뿌리를 지녔음에도 달라이 라마는 불보살의 수행으로 원한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무기 대신 용서를 선택했다. 원한과 증오로선 결코 고통의 윤회를 끊을 수 없으며, 오직 내면의 분노를 쉰 자비심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폭력의 배후로 몰아세우고 있다. 다른 제국들이 자신의 식민지를 포기한 2차대전도 한참 지난 뒤에서야 강제로 티베트 침략에 나섰기에 좀체 정당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중국 정부로선 자신의 잘잘못이 가려질 수 있도록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인들이 비폭력 노선을 포기한 뒤 야기될 ‘폭력적인 이전투구’를 내심 고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비폭력인 보살도와 양심들은 그 강력한 국가적 힘과 경제력과 인구수로도 무찌를 수 없고, 벨 수도 없기에.
한겨레 조현 종교전문기자
청룽 “올림픽 이용하지 말라”…이연걸 “질문 받지 않겠다”
영화 홍보 회견장에 나온 두 스타의 엇갈린 표정
홍콩의 액션스타 청룽(성룡)이 “올림픽은 정치가 아니라 통합과 사랑, 평화를 상징 한다”며 “어떤 주장을 펴기 위한 수단으로 올림픽을 이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포비든 킹덤-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란 영화의 홍보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그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하며 “스포츠와 정치를 결부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는 것이다.
동양의 영혼을 담은 무예와 스포츠를 ‘장사’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청룽의 말이다. “‘내 장사’를 위해 수백만 티베트 민중들이여 죽더라도 신음소리도 내지 말아줘”라는 듯이.
올림픽을 주제로 한 비자 카드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해온 그는 “스포츠와 정치를 결부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이것은 그른 일이며 왜 사람들이 올림픽 정신을 파괴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인터뷰에 참석한 이 영화의 다른 주연배우 리롄제(이연걸)는 티베트 사태에 대해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자가 관련된 질문을 하자 리롄제의 홍보 담당자는 “그런 (정치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말을 끊었으며, 리롄제가 서류 폴더를 집어 들고 남은 인터뷰 시간 내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고 한다. 독실한 불자인 리롄제는 스스로 양심을 속일 수 없어, 고개를 들지 못했던 모양이다.
리롄제는 평소 티베트의 정신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만난 적이 있는 독실한 불자여서 티베트의 민중들이 눈앞에 밟혔으리라.
불교 장려하는 중국의 두 얼굴…진정한 올림픽 정신으로 돌아와야
그러나 리롄제와 세계인들이 지켜야 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 중국이야말로 국가적으로 ‘불교’를 장려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기독교 세계와 맞서기 위해 중국 내에서 선교를 제한하면서 내부적으로 불교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중국 각지에선 불과 10여 년만에 수십만명의 불교 승려들이 붕어빵을 찍어내듯이 양산되고 있다. 아마 전 세계의 불교 신자(3억~4억명)보다 더 많은 불자들이 중국 내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장려하고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한다면 불교가 아니다. 중국 제국주의와 국가주의를 위한 또 다른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 도교적 정신 가치는 문화혁명과 그 뒤의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황폐화해버려 그 뿌리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중국이 진정으로 불교적 가치를 되살리려 한다면 아직도 그 전통이 남아 있는 티베트 불교의 유산을 귀중히 여겨야하겠지만, 중국은 그것을 상업화시키고 관광지화하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불교를 진흥하는 것도,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도, 진정한 정신적 가치와 평화를 실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야욕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의 일단이라는 것을, 과연 무엇이 진짜 정치인지를 청룽은 모른다는 말인가.
올림픽엔 룰이 있다. 룰을 벗어나서 승리에만 집착한 권투선수가 경기장 밖에서 상대방을 죽도록 두들겨 팬다던가, 검도선수가 상대의 급소를 찔러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청룽과 세계의 스포츠인들이 지켜야할 것은 티베트도 불교도 올림픽도 아니다. 청룽이 진정으로 찾아야 할 ‘잊혀진 왕국’은 심산유곡이 아니다. 바로 그 자신의 양심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마음산책] 티베트사태를 보는 눈 ②
50년을 일관한 ‘비폭력’…베이징올림픽 오히려 지지
중국의 “폭력 배후조종자” 주장은 역사적 사실 왜곡
지금 달라이 라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권력인 중국 정부와 세계 최대 인구 집단인 한족 및 화교의 공적이다. 중국의 분리를 책동하는 분리주의자이며, 겉모습과 달리 티베트의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도 티베트 사태와 관련해 중국을 비판하면 한국 내에 사는 화교들의 큰 영향력과 비판도 물론 실감하게 된다.)
중국의 티베트 폭력 진압에 대한 전 세계의 지성과 매스컴의 비판이 고조되고, 베이징 올림픽 참여를 거부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일자 중국 정부와 한족들은 이처럼 모든 책임을 달라이 라마에게 돌리고 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달라이 라마가 폭력을 조장하고 올림픽을 방해하고 있다”고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 사태의 배후조종자로 지목했다.
과연 그럴까? 달라이 라마는 이미 알려진 대로 1959년 중국에 점령당한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망명한 뒤부터 지금까지 줄곧 ‘비폭력 투쟁’ 노선을 지켜왔다. 그의 나이 불과 24살 때 망명한 지 50년이 다 된 지금까지 그의 노선이 혼선을 빚은 적은 없었다. 그는 사실상 티베트의 독립이 어려워지자 몇 년 전부터는 정치적 독립을 포기한 대신 종교의 자유 등만을 인정받는 고도의 자치권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베이징올림픽을 티베트 독립을 위해 활용하지 않고,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왔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의 항거분위기가
이런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중국이 왜 달라이 라마를 굳이 ‘폭력의 배후 조종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티베트에서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오히려 항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
영향력 커진 중국의 위력 과시에 세계 각국 눈치보기
중국은 지구상에서 미국의 유일한 대항마가 될 만큼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 또한 13억여 명의 인구를 거느린 최대 집단이다. 세계 어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도 중국 시장을 제쳐놓고, 경제 성장을 기약하기 어려우며, 중국 정부에 밉보일 경우 자국 기업과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마치 중국의 속국이나 되듯이 티베트 인권문제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한 서북공정을 끝낸 뒤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공정에 나서리라는 게 공공연한 비밀임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그 때 그 때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게 하지 않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달라이 라마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에게 우호적이었던 나라들조차 중국 정부의 그 강력한 힘 앞에 갈수록 무력해지고 있다.
중국을 견제했던 네루 수상이 달라이 라마의 망명을 허용한 이래 수많은 티베트 난민들의 정착을 도왔던 인도 정부도 최근 중국과의 밀월에 나서고 있다. 티베트 사태가 불거진 뒤 인도 히말라야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티베트인 학살 반대 시위를 벌이는 티베트인들이 다람살라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와서는 안 된다며 인도 정부가 강력히 경고하고 나선 데서도 인도 정부의 변화된 기류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지구에서 점차 힘의 우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중국정부와 중국을 외면할 수 없어 이해득실에 따라 태도를 표변하는 세계 각국의 변화에 따라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망명정부는 갈수록 지구상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외교적인 힘에 있어선 중국과 티베트는 갈수록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앞으로 중국의 힘은 더욱 더 강력해지고, 티베트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달라이 라마의 편지를 읽고 자결한 게릴라 대장
중국의 영향력에 의해 ‘국가들’이 무력해지고 유엔조차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티베트의 폭압과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양심과 지성과 언론들이다. 중국의 침략으로 전 국민의 5분의 1인 120만 명이 숨지고, 6천여 개의 불교사찰이 파괴되어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음에도 보복과 원한을 내려놓고, 중국에 대한 자비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달라이 라마를 경이에 찬 눈으로 지켜보아온 양심들이다.
티베트 패망 이후 달라이 라마의 행보는 어느 누구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 나온 지 1년 뒤인 1960년의 일이다. 캄빠유격대는 네팔 접경지대인 히말라야 산중에서 중국군과 싸우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중국 정부는 네팔 정부에 압력을 가했고, 결국 네팔 정부는 히말라야 산 속에 산재하는 게릴라들을 해산시켜 달라고 티베트 망명정부에 부탁했다. 달라이 라마는 육성 녹음을 해 네팔 산 속에 있는 유격대에 인편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나라를 위해 고생하고 싸우는 것은 훌륭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법(法·진리)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살생을 첫째의 덕목으로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중국 사람도 우리와 똑같아서 불행을 원치 않습니다.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던 게릴라대원들은 대성통곡했다. 게릴라 대장은 “자, 모두 우리는 부처님과 같은 존자님 달라이 라마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면서 부대원들을 해산시킨 뒤 끝내 독배를 마시고 자결했다. 이후로 티베트 유격부대는 모두 해산했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은 달라이 라마 본인만이 아니었다. 티베트 스님 로폰라는 티베트를 탈출하려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 무려 18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았다. 그 뒤 풀려났다가 인도로 망명한 로폰나에게 달라이 라마는 “감옥에 있으면서 두려웠던 적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로폰라는 “내 자신이 중국인들을 미워하게 될까봐. 중국인들에 대한 자비심을 잃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원한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무기대신 용서 선택
중국에서도 가장 강한 국가였던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싹쓸이했을 만큼 야만성이 강한 서융의 후손으로서 얼마든지 강력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뿌리를 지녔음에도 달라이 라마는 불보살의 수행으로 원한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무기 대신 용서를 선택했다. 원한과 증오로선 결코 고통의 윤회를 끊을 수 없으며, 오직 내면의 분노를 쉰 자비심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중국은 달라이 라마를 폭력의 배후로 몰아세우고 있다. 다른 제국들이 자신의 식민지를 포기한 2차대전도 한참 지난 뒤에서야 강제로 티베트 침략에 나섰기에 좀체 정당성을 획득하기 어려운 중국 정부로선 자신의 잘잘못이 가려질 수 있도록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인들이 비폭력 노선을 포기한 뒤 야기될 ‘폭력적인 이전투구’를 내심 고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비폭력인 보살도와 양심들은 그 강력한 국가적 힘과 경제력과 인구수로도 무찌를 수 없고, 벨 수도 없기에.
한겨레 조현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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