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 · 나의 時論

달을 밟았던 우주인 9명, 그 이후의 삶은 이렇게...

hanngill 2008. 4. 20. 05:57
‘우주인’ 굴레 벗고 ‘지구인’으로 걷다









[한겨레] 〈문더스트〉
앤드루 스미스 지음, 이명현·노태복 옮김/사이언스북스·1만8000원

달 밟은 우주비행사 9명의 ‘그후 삶’
단 수백초 머물렀지만 수십년간 ‘신비화’
“삶의 매순간이 소중” 달 착률의 교훈


1960년대 미국은 ‘긴급 조치’의 시대였다. 57년 옛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가 우주 시대의 개막을 극적으로 선언하자 미국은 단박에 옹색해졌다. “미국의 기초과학은 부실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주는 과학에 대한 긴급 조치를 상징하게 되었다.” ‘차가운 전쟁’보다는 차라리 ‘차가운 평화’였던 그 시절, 케네디 대통령의 젠체하는 성격에다 매카시즘의 추억이 겹치면서 그 나라 군부는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소련의 인공위성이 궤도비행을 하다 미국 상공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거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진실이 됐다. 그만큼 미국은 조바심을 못 견뎠다. 스푸트니크는 러시아어로 ‘동반자’를 뜻하지만 미-소는 동행보다는 경주를 즐겼다. 달에 사람 발자국을 남기겠다는 아폴로 계획은 이렇게 생겨났다. 케네디-존슨-닉슨이 차례로 백악관에 있던 시기, 냉전이라는 캔버스에 과학기술이라는 붓으로 낭만을 채색했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문더스트>의 지은이 앤드루 스미스는 69년 7월20일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을 밟으며 던진 말에 화들짝 들린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세계 인구의 7분의 1이 그날 그랬다. 이 책은 손등에 박힌 가시처럼 잊히지 않는 사건의 의미를 좇고 되돌아보는 한 편의 ‘로드 무비’다. 주인공은 달에 발자국을 남긴 열두 명의 우주비행사들.(아폴로 11·12·14·15·16·17호. 아폴로 13호는 산소 탱크 폭발로 달 착륙에 실패했다) 제임스 어윈과 앨런 셰퍼드, 피트 콘래드는 각각 심장마비와 암,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 달을 다녀온 지구인은 이제 칠순을 넘긴 노인 아홉만 남은 셈이다. “달 표면을 걸었던 사람들이 지상의 일상생활에 자신들을 잘 조화시키며 살아가는지, 이 세상 속에서 평화를 찾았는지”라는 물음을 품고 지은이는 1년 6개월에 걸쳐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닌다.

최초의 달 착륙자 닐 암스트롱은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강의하며 산다. 무뚝뚝하고 신중한 성격의 그는 지구 귀환 뒤 블랙홀처럼 강력했던 세간의 호기심을 완강히 뿌리친 사람이다. 반면 암스트롱의 동반자였던 버즈 올드린은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뒤늦게 화성탐사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 앨런 빈은 화가로 변신했으되 화폭에 우주만을 담으려 하며, 에드거 미첼은 물질-정신을 통합해 사유하고 명상하는 순수지성론연구소(IONS)를 만들어 활동했다. 데이비드 스콧은 사인으로 연명하는 처지에 몰렸으며, 찰스 듀크와 존 영은 교회 전도사로 나섰다. 마지막으로 달에 갔던 진 서넌은 유일하게 미 항공우주국(나사)에 남아 있다. 잭 슈미트는 상원의원을 거쳐 강연장을 누비고 다닌다. 지은이의 애정 담긴 묘사 속에서 이들은 ‘지구인의 얼굴을 한 우주인’이라는 굴레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암스트롱만 하더라도 불과 600초만을 달에서 보냈을 뿐인데 이후 30여년을 대중이 만든 ‘호기심의 실타래’에 묶여 지낸 셈이다. 여기에 아폴로 계획을 둘러싼 모호하고 모순투성이인 진실이 책갈피처럼 곳곳에 꽂혀 있다. 그것의 가장 간결한 표현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한 말이다. “그냥 헛짓.”


숨가쁘게 취재 여행을 마친 지은이는 새턴 로켓의 발사 순간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고백한다. “무한히 흩어져 있는 순간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이 우주에서 내 삶을 위해 활용하는 어느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행운아라고 느낀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바로 달에 간 모든 사람들이 전해 주는 뜻밖의 교훈이다.”

‘문더스트’(moon dust)는 우주비행사가 달 표면에 발을 딛는 순간 풀풀댔던 먼지를 가리킨다. “미국 최고의 시절이 곧 최악의 시절”이었으며 “1960년대는 거짓된 새벽들의 시대였다”고 지은이는 적었다. 거짓 희망을 거리낌없이 풀무질해 먼지를 날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한바 “모든 먼지 한 조각도 자신의 기쁨을 내뿜는다”는 문장을 인용한 데서 지은이의 본심이 읽힌다. 오늘 오후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지구로 귀환한다. 대한민국의 2008년이 또다른 ‘거짓된 새벽의 시대’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나. 책장을 덮고도 덮이지 않는 물음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