散策길에서 <外>

[스크랩] 홀로 사는 게 행복하다는 희수(喜壽)의 辯

hanngill 2008. 2. 24. 04:42


      ** 홀로 사는 게 행복하다는 희수(喜壽)의 辯 ** 근래에 황혼기를 살아가는 친지 몇 사람이 마누라를 떠나 '홀로살기' 에 나서서 이를 즐기고 있다. T씨라는 사람은 직장에서 물러나자 곧바로 서울에서 삼백 여리 떨어진 산골로 주거지를 옮겼는데, 1,500여 평의 대지에 건평 30평 규모의 현대식 새집을 지어 혼자서 살고 있고, 또 한사람 L씨라는 사람은 서울 집에 가족들을 모두 남겨 놓고서 자신 만이 이천 어느 시골에 빈집을 얻어 나가서 농사일에 취미를 붙이고 소일하면서 지난날의 직장동료들을 심심치 않게 끌어들여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두 사람 K씨와 I씨는 불교에 입문, 각각 조계종과 태고 종의 스님이 되어 구도의 길로 접어들어 여생을 아쉬움 없이 인간답게 보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나보다 7년 연배이신 K형이 전남 어느 산중에 아담한 집 한 채를 사들이고 개축하여 들어가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거였다. 이들은 모두가 한때 세상을 주름잡으며 타인들이 보기에는 부귀 영화의 극치를 누리는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연령상으로는 칠십을 넘어 팔십을 바라보는 만추(晩秋) 초동 (初冬)의 할아버지들이며, 나의 눈에는 공처가 애처가로 비추이던 한 때 잘 나가던 만인 선망의 말쑥한 신사들이었다. 그 연세에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그처럼 애지중지하던 '안방마님'을 떠나서 살아야만 하는지? 이론적으로 추상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타고 따져 보면 그럴싸한 이유가 있을 법한데, 나의 지난날 생활에 대입시켜 판단컨데 역시 '글쎄올시다'란 답밖엔 나오질 않는다. 속언에 '원수야 악수야 해도 할멈이 최고야' 또는 '고운 정 미운 정 다 들었는데 갈라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이렇게 자포자기하는 것이 우리들 연배가 부부 백년해로의 혼인서약을 지키고 운명적으로 받아 드리는 변명이라면 변명일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중매로 아내를 맞이했고 전통혼례의 의식 절차에 따라 신부 집 마당에서 '신랑재배, 신부사배" 하고서 안사람과 부부가 되었고, 4남매를 낳아 길렀고, 그러는 중에 45년이라는 세월이 감쪽같이 지나면서 인정에 얽힌 모든 사연도 거의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 세월 속에 내가 출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끼도 빠짐없이 안사람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입혀주는 옷을 입고, 덮어주는 이불 속 에서 잠을 자고. 행주좌와(行走坐臥) 일거수일투족 무엇 하나 그 사람 의 보살핌이 미치지 않는 것 없이 살아 왔다. 이러한 생활에 만족하며 그 사람의 검은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하루 하루 쌓여온 지난 수십 년의 날과 달들이었다. 그 사람이 남편인 나 하나만을 바라보며 베풀어준 봉양과 손발노릇은 그의 운명적인 임무 이자 사명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삶의 보람이었을 것이고, 또 자신의 의도대로 그것이 완벽하게 수행 되었을 적에 그 자체를 최고의 행복 이라고 믿으며 만족감을 느끼곤 하였다. 내 안사람은 왜 일생동안 제 삼자가 보기엔 못난 짓(?)만 가려가면서 하고 살았을까? 이렇게 아내로부터의 내조는 물론, 외조마저도 거의 빈틈없이 받으면 서 한 평생을 살다보니, 마치 이 할마씨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나(녹진) 라는 인간을 보살펴 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런 생각이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아니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 지로 변함이 없다. 이와 같은 고정관념이 머리에 꽉 차 있는 나는 아내와 잠시라도 떨어저 있게 되는 경우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경우를 당하면 마음 한 구석에 알 수 없는 허전한 그 무엇이 너무나도 클것만 같았다. 그러한 나의 입장과는 완전히 반대로 부부 별거를 하고 마냥 행복에 겨워 살맛이 난다는 희수(77세) 나이의 노인이신 K형! 평소 존경하고 따랐던 선배님이기에 그 명분이 뚜렷하고 오랜 동안 세파에 조우하고 이를 극복하며 살아온 체험에 비추어 삶의 진리가 담겨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 분의 이야기를 귀 기우려 잠시 진지하게 들어보았다. "직장에선 물러났지, 아이들은 모두 성장하여 독립해 나가서 살고 있지, 안방할매는 매일같이 눈만 뜨면 잔소리하지, 찾아오고 찾아 갈 마음 맞는 친구가 있나, 말벗이 있나, 시간은 살같이 흐르고, 외로움은 산더미처럼 쌓이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위축되고 우울해지며 삶에 대한 회의감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 같더라니, 그래서 그동안 홀로서 살아가는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사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네. 먼저 유료 양로원에 살고 있는 친구를 방문해 며칠 간 동숙하면서 겪어보니 자유스럽지가 못해. 듣기와는 다르더군, 다음엔 실버타운을 찾아갔는데 3년째 접어든다는 친구는 무척 소외감을 느끼며 아파트를 얻어서 다시 나가고 싶다더군, 여주에서 특용작물과 화초를 가꾸며 사는 친구 집에서 한달 넘게 보내었는데, 그 친구는 이젠 혼자 사는 데에 낙을 붙였는지 50년 전으 로 되돌아간다면 절대로 결혼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겠다 고 하더군, 지난봄엔 자네도 잘 아는 서산 H씨의 별장을 찾아갔더니 그 친군 아예 부처님 모셔놓고 참선을 하며 여생을 한가로이 보내고 있더 라고, 그 친군 승복도 입지 않고, 머리도 깎지 않고, 소위 재가거 사격(在家居士格)의 삶을 사는 셈인데 "이것이 뭐야? 本來 無一物인데." 이 화두를 놓고 부처님 전에 꿇어 앉아 수행(修行)을 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반득도(半得道)는 한 것 같이 보이던디,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네, 혼자 사는 진미를 만끽하며, 진짜 모든 것 을 방하착(放下着)하고,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삶이 무엇인지? 그것에 전심전력 정념(定念)하며 살기로 말일세. 이처럼 좋은 삶을 희수의 나이에 겨우 알게 되다니 내가 스스로 생각해 봐도 나라는 사람은 참 한심스런 사람이야. 허허허" K형의 이야기를 조목조목 듣고 있으려니 이 ‘녹진’이란 인간은 너무 나도 세속적이면서 평생을 반미치광이(아내 자랑하는 자의 별칭)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며 세상물정 모르고 살았으니, 어지간히 바보 천치였나 본다. 그렇지만 바보는 바보인 그대로 삶을 누리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내 나름대로의 생활신조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
    출처 : 아름다운 60대
    글쓴이 : 녹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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