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는 인생/Histrory

** 한국전쟁의 원인과 우리의 나아갈 길

hanngill 2016. 11. 19. 05:49


 한국 전쟁의 주 원인이 소련 스탈린의 치밀한 음계에 있었음을 모르고 오직 북한의 김일성의 야욕에 전가시키고 있어 여기 글을 올린다. 모택동과 김일성은 스탈린의 동구 발칸반도의 공산화 음모에 속아 넘어간 얼간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었고 남북분단의 슬픔을 지금까지 안고 있는 것은 소련 미국 일본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 대립의 희생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  국제정세의 야릇한 변화가 없다면 북한은 단독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우리는 중국 소련 일본 미국이라는 열강세력 사이에서 중립적 균형외교를 해야 한다. 이 틈에서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지켜가면서 오히려  큰 발전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독립적 자중의 정신 배양을 교육해야 할 때이다. 가까운 미래에 통일은 온다. 남북이 서로 적대시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가지고 남한을 위협하더라도 우리의 국방력을 이스라엘 처럼 막강하게 키워서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가만히 두면 자멸할 것이다. 교통 통신 인터넷의 발달, 제4차산업혁명은 이념과 국경이 불필요한 시대로 접어들게 하고 있다. 급속도로 뇌과학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지배할 시대가 오고 있다. 모든 기성종교의 허구성이 밝혀지고 새로운 이성종교로 발전할 것이다. 세계가 하나인데 조그마한 나라에서 남북이 적대시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깨닫게 될 때가 곧 올것이다.  미국은 이미 무력에 의한 전쟁을 포기했다. 미래는 무한에너지의 세상이 온다. 경제 전쟁과 화폐전쟁이 있을 뿐이다. 침략에 의한  약탈적 이익을 챙기는 시대는 끝났다. 북한을 자극하지 말고 가만히 놔두어라. 공산주의 국가는 결국 망한다. 남한이라도 부하고 강한 나라로 묵묵히 발전한다면 자연 통일은 온다.



1950년 8월 27일  Stalin 이 Czechoslovakia 대통령 Klement Gottwald 에 보낸 비밀 편지1에서 

우리는 한국전쟁이 Stalin 의 씨나리오에 의해서 이루어 젔음을 알 수 있다.  

http://blog.daum.net/hanngil/12409628


스탈린은 동유럽과 발칸반도의 공산화를 이루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 동유럽에서 극동아시아로 관심을 돌리고 여기에 에너지 소모를  시킬 필요가 있었다. 
김일성이 남한을 치고,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미국이 참전하고, 이어서 중국 모택동이 전쟁에 개입하게 하는 것을 영리한 스탈린은 이런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1950년 4월 10일 스탈린과 김일성 박헌영 밀담하여 남침 허락을 받았고, 이어서 5월 13일 모택동과 밀회하여 도움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아직 어린 김일성은 제 꾀에 의해 이 함정에 빠진 것이다.2 

결국 우리나라는 열강의 전략에 따라 가물 거히는 촛불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만일에 쏘련이 유엔에서 Veto 를 행사했더라면 우리나라는 완전히 공산화 통일이 이루어젔을 것이고 중국은 이를 환영했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은 이를 처음 계획한대로 비토을 행사하지 않았다. 미국을 극동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였다. 미국은 이를 모르고 이 함정에 빠졌다.3
중국이 전쟁에 참여한 것은 모택동이 1949년에 중공을 세우고 나서 미국이 한국을 통일한다면 몹시 불안하므로 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을 도와 준 것이 아니라 중공을 위한 지원이었다. 중공이 미국과 대립하여 극동을 방위할 것을 스탈린은 이미 계산에 넣고 있었다.
이 후로 미국은 한국 전쟁과 극동아시아 방위에 집중하게 되었고, 소련은 동유럽과 발칸 공산화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소련이 우려하였던 발칸반도에서의 제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스탈린의 예상대로 진행 되었다.

( 1차, 2차. 3차 대전이 모두 발칸반도에서 시작될 번 했던 것이다. See, NATO vs Warsaw Pact)


우리나라는 어떤 외교 노선을 밟아야 할 것인가?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나라가 통일 되는 것을 싫어 한다. 우리나라가 통일된 후에는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 뻔하고 미국은 극동아시에서 중요한 발판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언제나 한국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감추고 있는 나라다. 미국은 언제나 한국보다 일본편에 선다. 지정학상 일본은 우리의 영원한 적이고 임시적 우방에 불과하다. 우리 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통일하는 것이 우선 첫번째 과제이다. 통일 후에는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다. 중국은 우리나라가 자기들의 우방으로서 통일 되는 것을 바란다.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제, 정치, 문화, 군사, 외교 전 문야에서 그렇다.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우리는 중국을 멀리 해서는 안되는 상황에 와 있다. 북한은 중국의 어깨아래 있다.  북한의 핵 저지를 위해서도 우리는 중국을 멀리할 수가 없다.열강은 언제 어떻게 우리 민족간의 전쟁을 부추길란지 모른다.  우리의 앞날을 계획하려면 과거의 역사를 바로보고 변화하는 국제정황을 예리하게 분석파악하고 이에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리에 위치해 있다. 열강의 사이에서 살아 날려면 무엇보다 국방력을 강화하고 국제정치와 외교에 밝은 국제적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독일의 메테르니히나 비스마르크 같은 외교관, 처칠같은 카리스마 있는 정치가가 나와야 한다. 맨날 눈만 뜨면 정파싸움질만 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정치나 존립의 장래가 우려된다.  통일은 반드시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체제라야 한다.  공산사회주의는 절대로 안된다.


2016/11/19
hanng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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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O vs Warsaw Pact

In 1949, the prospect of further Communist expansion prompted the United States and 11 other Western nations to form the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The Soviet Union and its affiliated Communist nations in Eastern Europe founded a rival alliance, the Warsaw Pact, in 1955. 

The alignment of nearly every European nation into one of the two opposing camps formalized the political division of the European continent that had taken place since World War II (1939-45). 

This alignment provided the framework for the military standoff that continued throughout the Cold War (1945-91).



http://www.alternativeinsight.com/Korean_War.html

https://www.wilsoncenter.org/publication/did-stalin-lure-the-united-states-the-korean-war-new-evidence-the-origins-the-korean-war



  1. 공산권 동유럽 지도자들이 스탈린의 유엔 안보리 회의 비토 포기에 대하여 비난이 일자 이에 대한 해명으로 보낸 밀서. [본문으로]
  2. 스탈린은 처음에 김일성의 남침 야욕에 반대하였고 오히려 북침을 우려했다 한다. 그러나 동유럽과 발칸공산화를 위해 극동아시아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미국의 힘빼기 전략을 새우고 김일성을 부추긴 것이다. [본문으로]
  3. 미해군 7함대가 대만에 파견되어 중국을 견제하고 있고, 설립 1년 정도가 된 중화인민공화국은 국내 정세가 불안하여 체제에 위협을 느낀 모택동은 한국에서 전쟁이 일직 끝나기를 바랐다. 미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면 안되기 때문이다.그래서 북한을 지원하고자 하였으나 이해할 수 없는 소련과 북한의 미온적 태도로 지체하다가 맥아더 인천상륙과 유엔군 압록강까지 북진에 다급해진 김일성이 모택동에게 지원을 요청하니 바로 중공군 31만을 투입한 것이다. 그래서 38선까지 후퇴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스탈린의 시나리오 임을 늦게 안 모택동은 이를 후회하였다고 하나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은 스탈린의 승리로만 끝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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