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는 인생/Histrory

The French and Indian War

hanngill 2016. 3. 13. 08:21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전쟁, 프렌치·인디언 전쟁 (1755년~1763년)

개척 초기 신대륙에는 영국만이 아니고 프랑스도 식민지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국이 뉴잉글랜드 남쪽, 프랑스는 그 위쪽으로 땅을 나누어 사이좋게 진출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으나 양국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활동을 시도하면서 이 둘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싸움의 발단은 버지니아 오하이오 주식회사라고 한 식민회사가 영국정부로부터 오하이오 계곡 식민 특허장을 받아들고 이주 희망자들을 모집한 데서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이를 ‘부당한 영토침해’로 간주, 군대를 보내 곳곳에 요새를 쌓고 이주민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

이에 맞서 버지니아 정부도 소규모 원정대를 파견했으나 도착 즉시 프랑스 군대에 쫓겨나고 말았다. 훗날 독립전쟁의 영웅이 된 조지 워싱턴이 바로 원정대의 대장이었다.

이런 사정이 알려지면서 프랑스의 진출에 불안해 하던 영국정부는 대규모 원정대를 파견하여 프랑스와의 일전을 시도했다. 소위 프렌치·인디언 전쟁(1755~1763)은 이렇게 시작된 것인데 프랑스가 영국과 식민지 연합군에 맞서 평소 관계가 좋던 인디언들을 대규모 동원한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개전 초에는 프랑스 군의 연전연승이었다. 최초의 대규모 충돌은 1755년 6월 19일 뒤케슨 요새(오늘날 피츠버그) 부근에서 벌어졌는데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맞아 대승을 거뒀다.

당시 영국은 7년전쟁(1756~1763)이라고 하는 유럽의 분쟁에 휘말려 신대륙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1758년 대재상 윌리엄 피트가 영국 수상이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이 전쟁이 앞으로 영국의 신대륙 경영에 사활적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을 깨닫고 불리한 전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최정예의 원정대를 신대륙에 추가로 파견했다.

이들의 활약에 영국군은 1759년부터 프랑스군을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양국군은 1759년 9월 퀘벡에서 사활을 건 최후의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결국 이 싸움에서 영국군이 승리하면서 프렌치·인디언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났다. 영불간 식민지 문제가 최종 타결된 것은 유럽에서 7년전쟁이 끝나고 열린 파리강화회의(1763)에서 였다.

전쟁이 끝나고 영국은 식민지에 보상을 요구하면서 간섭을 강화하게 되었고 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독립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출처: 미국사 100장면(유종선 著·가람기획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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