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en.wikipedia.org/wiki/The_Renaissance
1. 르네상스란?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일어난 문화 운동으로 학문이나 예술의 부활·재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 중심의 사상과 봉건 제도로 개인의 창조성을 억압하던 중세에서 벗어나, 문화의 절정기였던 고대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 문화·예술 분야뿐 아니라 정치·과학 등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기법의 시도와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인쇄술도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되고, 지식 또한 확산되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독일, 프랑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의 정치·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쳐 '서양 문화의 어머니'로 비유되기도 한다.
2. 르네상스의 시작,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풍부한 문화가 쌓여 있었으며, 지리적으로 이슬람과 동로마의 문화를 접하기 쉬운 위치로 이들의 문화를 서유럽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14세기에는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 강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이들 도시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번영을 이루자, 이와 더불어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 문화가 형성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회화의 마사초, 보티첼리, 조각의 도나텔로, 건축의 브루넬리스키를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예술 분야의 거장들이 나타나 문화의 황금 시대를 맞게 된다. 이러한 역사·문화적인 배경으로 인해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꽃필 수 있었다.
지중해 무역을 기반으로 피렌체, 베네치아와 같은 부유한 도시 국가들이 전성기를 이루자,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3. 르네상스의 근본정신
르네상스 문화의 근본정신은 인문주의, 즉 휴머니즘(humanism)이다. 그리스·로마의 고전에서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뜻하는 후마니오라(humaniora)에서 시작된 말로, 인간이 지니는 가치, 즉 인간의 창조성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약 6백 년 이상 이어진 중세는 신 중심의 세계관이 지배했던 사회로, 인간의 개성과 창의성은 자유롭게 표현될 수 없었다. 그러나 단테를 시작으로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 이탈리아의 문학가들이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화에서 휴머니즘을 발견하여, 다시 인간 본연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이탈리아 사회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미술 분야로, 예술가들은 인간의 얼굴 표정과 육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자연을 연구하여 그 모습을 정확히 묘사했다. 이러한 휴머니즘 사상은 독일과 네덜란드, 영국 및 프랑스로 전파되어 발전하였고, 18세기에는 몽테스키외, 루소, 괴테, 19세기에는 니체, 톨스토이 등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들에 의해 이어졌다. 오늘날 휴머니즘은 국가나 종교,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을 인간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로 거듭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소중한 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4. 르네상스 3대 거장
1)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년~1519년)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인 미술가이자 기술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각·건축·수학·과학·음악·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했다. 열다섯이 되던 해에 피렌체로 가서 부친의 친구인 베로키오에게 미술 수업을 받은 그는, 이곳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법을 배운다.
서른 살에는 더 큰 도시인 밀라노로 떠나 17년을 머물며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익히는데, 이때 만든 작품이 바로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를 둘러싼 열두 명의 제자를 소재로 한 <최후의 만찬>은 1495년~1497년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예수의 머리를 소실점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작품의 구조가 돋보인다. 회화의 법칙과 질서를 학문적으로 접근한 다빈치는 이 작품에서 원근법과 투시법을 활용하여 작품의 완벽한 질서를 표현하였다.
또 사람과 동물의 시체를 해부하는 기이한 행동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가 스케치북에 남긴 인체 해부도는 의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2)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년~1564년)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몰락한 귀족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미켈란젤로가 공부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를 원했지만 그림에만 관심이 있는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였다.
미켈란젤로는 정식으로 그림 수업을 받은 지 일 년여 만에 좀 더 '영웅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 조각으로 눈을 돌리고,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공이 운영하던 조각 학교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조각과 인체 해부에 전념하며 신화와 성서 등 고전을 읽고 교양을 쌓은 미켈란젤로는 <다비드>나 <피에타>와 같은 힘 있고 감정이 살아 있는 걸작들을 남긴다.
이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성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를 의뢰받는다. 그는 '나는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거절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의 생애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시작되었다.
1508년부터 4년 여에 걸친 작업 기간 동안 미켈란젤로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뒤이어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대작을 완성시켰고,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회화, 조각뿐 아니라 시집까지 출간하는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3) 라파엘로 산치오(1483년~1520년)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 중 하나인 라파엘로는 다른 두 사람의 장점을 고루 갖춘 예술가로서 살아 있는 동안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궁정 화가였던 아버지에게 처음 그림을 배운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고향을 떠나 피렌체로 건너 간다. 그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한참 활약하고 있었는데, 라파엘로는 그들의 업적을 연구하며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미켈란젤로의 라이벌로 평가받기도 했다. 4년 뒤에는 로마로 향해 평생을 그곳에서 지내며 그의 생애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감옥에서 구출되는 성 베드로>, <아테나 학당> 등의 대표작들은 그 시절 교황의 거처를 꾸미는 벽화로 그린 것들이다. 한편 그의 초상화는 섬세한 색조와 고요한 분위기가 특징으로 훗날 렘브란트, 티치아노 등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5. 르네상스를 이끈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10세기경부터 동방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이탈리아에서는 지중해를 통해 동서양의 문물을 전달하는 중개 무역으로 부를 쌓는 도시 국가들이 생겨났다. 15세기에 이르자 이런 도시 국가들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는데, 특히 북부의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 밀라노 공국, 중부의 교황령, 남부의 나폴리 왕국 등 다섯 도시 국가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경쟁적으로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해 많은 예술품을 창작하게 하여 특징 있는 건축물과 예술 작품을 남겼다.
밀라노 공국
이탈리아 북부 도시인 밀라노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도시 국가이다. 15세기 비스콘티가의 지배하에 영토를 확장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주도하였고, 스포르차 가문 때 전성기를 누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브라만테 등의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활동을 장려하며 예술을 꽃피웠다.
로마 교황령
가톨릭의 중앙 통치 기관인 교황청은 로마에 중심을 두고 있다. 로마는 15세기부터 예술가들에게 교회의 건축과 미술, 조각을 맡기며 창작을 장려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역시 여러 차례 로마에 머물며 많은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이다.
나폴리 왕국
나폴리 왕국은 중세부터 남부 이탈리아를 통치한 왕국으로 14세기부터 프랑스 앙주가와 스페인의 아라곤가의 통치를 받았다. 항해 도시로 발전하며 15세기경 르네상스의 번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베네치아 공화국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네치아에 있던 도시 국가, 베네치아 공화국은 15세기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였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베네치아로 건너가 후기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로마와 함께 이탈리아 교회 음악의 중심지로, 르네상스 음악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피렌체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은 르네상스가 처음 시작된 출발점으로, 당시에는 평민 출신 가문인 메디치가가 통치하고 있었다. 상업과 은행업으로 재력을 쌓은 메디치 가문은 정치적으로 평민의 입장을 대변했다. 또한 학문과 예술을 전폭적으로 후원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수많은 작품을 남기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세 명의 교황을 배출하여 피렌체는 물론 로마에까지 지배력을 떨쳤으며, 혼인을 통해 프랑스 및 영국 왕실과 관계를 맺었다.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350년간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 가문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피렌체 곳곳에 남아 있다.
6. 유럽의 근대화를 이끈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16세기에 프랑스와 영국,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간다. 이때 발달된 문화·예술·자연 과학 등은 서양의 역사에서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의 르네상스
프랑스의 르네상스는 1494년, 국왕 샤를 8세가 피렌체를 침공하며 시작되었다. 이탈리아의 발달된 문화에 매료된 그는 막대한 전리품과 함께 이탈리아 기술자들을 데려와 프랑스 문화 발전을 이끌었다. 프랑스의 문화 혁명은 프랑수아 1세 국왕 때 절정을 이루어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을 궁전에 초빙하였고, 학교를 세워 인문학을 전수받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 왕실에 시집온 메디치가 여인들에 의해 이탈리아 문화가 더욱 빠르게 유입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건축물들은 이탈리아 영향을 받아 지어진 것이 많은데 대리석과 조각, 회화 등으로 성 전체를 장식하는 양식은 르네상스 건축의 특징이다.
영국의 르네상스
영국의 르네상스는 헨리 8세의 왕위 계승부터 시작해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때까지 이어진다.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청과 이어진 가톨릭과의 인연을 끊고 독립적인 영국 국교회를 세운 왕이다. 이 시기, 식민지를 개척하며 경제적으로 번영을 이룬 영국은 이탈리아로부터 불어오는 문예 부흥의 물결을 받아들인다. 영국의 르네상스는 미술이나 건축보다는 문학 분야에 집중되었는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시작으로 많은 작가들이 영문학상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어 낸다. 셰익스피어 역시 영국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16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주옥 같은 작품을 창작했으며, 라틴어에 비해 천대받던 영어에 생기와 리듬감을 불어넣었다.
폴란드의 르네상스
15~16세기 이탈리아의 상인과 화가들이 들어오면서 폴란드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왕국의 수도였던 크라쿠프에는 지그문트 예배당, 바벨성 등의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당시 이곳이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음을 알게 해 준다. 신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르네상스의 정신은 근대 과학의 발달을 불러일으켰는데, 폴란드의 성직자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아닌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이라는 지동설을 주장하여 당시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스페인의 르네상스
카스티아 왕국의 이사벨 1세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디난도 2세의 결혼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나라들이 하나로 통합되며 스페인의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통일된 스페인 왕국은 이슬람 교도들을 몰아내고 강력한 왕권을 얻는데, 이 시기에 스페인 왕국의 후원으로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였고, 이는 유럽 근대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르네상스 시기의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퇴화한 중세 시대의 유물인 기사도 정신을 풍자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보물찾기 1, 2, 2011., 아이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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