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가 종교인가?
유교가 종교인가. 분명히 우문(遇問)이긴 한데 이러한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자꾸 고개를 드는 것은 아무래도 종교라는 용어가 지니는 개념자체에 책임이 있는 것 같다.
유교의 처지에서 보면 이건 달갑지 않은 공연한 시비(是非)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사회는 적어도 2천여 년 동안 유교적 문화현상, 철학체계,도덕기준, 가치관에 의해 전승되어 왔고 그것이 시대에 따라 포폄(褒貶)이 엇갈리고 부침이 거듭되기는 했지만 '종교'라는 기준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은 없다.
이를 보면 종교라는 용어 자체가 문제인데 서구의 'Religion'에서 유래된 이 종교란 무엇인가.1
분석과 분류 그리고 명료한 개념 설정을 중시하는서구의 학문 방법에서도 이 종교에 대해서만은 그 정의가 일정하지 않고 학자에 따라 제설(諸設)이 분분하다.
종교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서구학자들은 종교학자이자 신학자(神學者)이고 그들의 입론(立論)도 기독교를 염두에 두거나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 지구상에 명멸(明滅)한 종교의 수는 헤아릴 길도 없겠지만 지금 현재 떠받들어지고 있는 세계적 종교만 해도 꼽기에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 수많은 종교들이 제 각기 독특한 신(神)과 성인(聖人)과 교의(敎義)와 상징체계를 지니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기독교적 표준으로 죵교를 정의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미리 잣대를 마련해 놓고 다른 수많은 종교들을 그 속에 집어 넣으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유교를 실천 도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불교를 철학일 따름이라고 가벼이 말해 버리는 것이 모두가 이러한 발상과 논법에서 유래하는데 거기에는 암암리에 유일신 종교에 대한 우월감도 곁들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선 유교가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의 논거는 천편일률적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유교는 ① 초월적 존재, 즉 신이 없고 ② 자연의 운행이나 인사백반(人事百般)을 주재 명령하는 초인간적인 힘을 인정하지 않으며 ③ 따라서 성물(聖物)이나 예배(禮拜)가 없고 ④ 사후 세계 곧 내세관(來世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대개 위에 든 정의의 ①과 ③을 내세우는 학설이 뒷받침되는데 요즘 와서는 점차로 퇴색되고 있는 것 같다. 보수적 해석이라 지칭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유교에서 '종교'라는 틀에 관심이 있다면 그건 위에 든 정의 중 ②와 ④에 국한해서 이다.
유교의 정의는 인간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의 구극적인 문제와 맞붙고 있는 것이다. 인간 이상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 이하도 생각하지 않으며, 사람이 사는 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
혹자는 인간 이상으로 '천(天)'을 들고 있지 않느냐 항변(抗辯)하겠지만, 실은 사정이 다르다.
유교 경전에 '천(天)'이 언급되는 수가 있지만 대개는 인간과 수평관계를 이루고 있다. 인간 이상으로 생각될 수 있는 천재(天宰),상재(上宰)의 표현도 따지고 보면 인간 세계의 안녕질서(安寧秩序)를 위한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유교 경전에서의 '천(天)'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자연현상(自然現象)으로서의 천이다. 우리 눈으로 보는 푸른 하늘 그것이다.
둘째는 일견 서양에서 말하는 God에 해당하는 천이다. 천신(天神),천재(天宰),상재(上宰),상천(上天)으로 일컬어진다. 만물의 주재자로 보이기도 하고 인격신(人格神)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운명이라든가 숙명의 뜻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천신(天神), 천재(天宰)는 인간이 일상적으로 당면하는 두 갈래 길, 즉 선과 악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고 그 상징일 뿐이다. 절대자로서 명령하는 권능(權能)도 없을 뿐 아니라 주재자로서 굴종시키는 위력도 없다. 인간 속에, 자연 속에서 하나의 원리이거나 상징으로 인용될 뿐이다. 그야말로 "상천(上天)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이다. 서양의 God처럼 수직 관계로 인간을 주재하고 복종시키지 않는다.
유교에서는 절대자도 없고 초월자도 없고 인간 혼자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굴종(屈從)도 예배(禮拜)도 없다. 오직 인간 혼자 인간의 구극적 문제와 맞붙고 있을 뿐이다.
셋째는 형이상학적 이(理)의 근원으로서의 천이다. 성리학의 발달은 이 천에 힘입는다.
'중용'에서 "하늘이 명한 것이 성"이라고 했다. 이 때의 천은 인위적이 아니라는 뜻이고 조작이 아니라는 뜻이다. 태어난 그대로를 성(性)이라 한다는 뜻이다. '생득적(生得的)인 본유(本有)의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면 천(天)이 명한 '태어난 그대로의 성(性)'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착하고 순수하고 순선(純善)한 것이다. 인간은 착하게 태어난다.
유교가 인간을 비롯한 이 세상의 전반에 대해 긍정하고 낙관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은 원죄(原罪)나 업(業)을 안고 태어나는 비극적(悲劇的)인 존재가 아니라 착하고 밝게 태어나는 도덕의 주체이다.
인간은 인생 동안 원죄의 사(赦)함을 받기 위해, 업인(業因)의 소멸(消滅)을 위해 읍소(泣訴)하고 기도하고 고행해야 하는 그런 인고(忍苦)의 존재가 아니라. 인욕(人欲)의 때가 묻는 것을 부단히 씻어내며서 본래 타고난 순선(純善)한 성(性)을 고도로 발휘하여 드디어는 성현의 경지에 까지 이르는 '위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또 다른 주장이 있다. 일부 유림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들 주장의 근거는 '종교=미신'에 있다. 종교와 미신을 혼동하는 데서 생긴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유교는 미신을 철저하게 배격한다. 경험적이 아니거나 실증될 수 없는 것은 미신으로 몰아 붙인다. 미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교는 삼대(夏.殷.周)의 문화현상. 문화제도가 공자에 의해 정리되고 체계화된 종교요, 도덕이요, 철학이며, 이 유교의 형성 과정에는 동북아의 여러 민족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우리 선인들의 유리 의식, 도덕 감각, 생활 감정이 그 속에 용해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겠지만, 어쨌거나 유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후 샤머니즘을 기조(基調)로 한 토속신앙은 많은 부분이 미신으로 지목되어 해소 내지 변형되었으며 뒤늦게 수용된 불교는 공이나 허무사상, 극락 지옥설(極樂 地獄說), 그리고 특유의 예불의식(禮佛儀式) 때문에 곧 허무적멸지도(虛無寂滅之道), 또는 허황된 미신으로 배척받기에 이르렀고 근세에 와서 밀려든 서구의 종교역시 그 교리나 의식이 강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 사실이고 혹세무민하는 맹랑한 미신으로 단정되었음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단배척론자의 안목으로는 '종교'라고 하면 곧 허무맹랑한 교설이 연상되고 신물(神物)과 의식(儀式)이 연상되며 경배기복(敬拜祈福)이 연상된 나머지 유교의 종교론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유교가 현실에 바탕을 둔 인간 중심의 종교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거해 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종교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유교의 종교성을 부정하기도 하고 혹은 유교의 종교성에 대한 강력한 뒷받침을 하고 있지만 그런 것에 힘입지 않더라도 유교는 엄연한 종교이다.
유교는 인류의 '마로(宗)가 되는 가르침(敎)'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교는 ①만세의 스승인 성인(聖人)을 모시고 있고 ② 시공을 초월하는 대경대법(大經大法)으로 인간의 구극적 문제에 대해 해결점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③개인과 사회의 이상 현실을 위해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신앙 체계가 있고 ④사례(四禮:관혼상제(冠婚喪祭))등 의식이 있으며 ⑤이단배척(異端排斥)의 위엄도 지니고 있다.
성선은 인으로 이어지고 인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밝혀 주는데 이 길이 곧 도(道)다. 인이 대경대법이라면 대경대법의 구체적궤도가 '도'인 것이다. 그런뜻에서 "도는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이치"이고 "잠시도 인간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의 구극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지침이고 열쇠이다.
공자왈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셨을 때, 이 도야말로 길이요 진리이며 지선(至善), 지상(至上)의 이상 목표이다. '문(聞)'은 듣고 깨닫는다'도 되고 '보고 안다'도 되고 '애써 이룩한다'도 된다.
공자왈 "돈독하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음을 걸고 도를 구현한다"
죽음을 걸고 지키는 도(道), 그것이 유교이다. 종교일 수밖에 없다.
(출처:儒學講義-成均館)
- '종교'라는 말은 으뜸이 되는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교가 종교임은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유교가 'RELIGION' 이냐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올만 하다. 유교에서도 초월적 하늘을 믿고 하늘을 두려워하면서 선을 행하도록 가르치고 있으며 소원을 빌고 있으니 분명 ' RELIGION'임이 틀림없다. 제사를 지내느냐 안지내느냐가 조건일 수는 없다. 두려워하고 믿는 대상이 있고 소원을 빌고 믿는 신앙이 있으면 리리젼이다. hanngil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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