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좋아하는 ♣♣/좋은 글, 詩 隨筆

퇴원 - 이청준

hanngill 2008. 8. 12. 20:09

     

황폐한 젊음의 회복을 꿈꾼 〈퇴원〉

내가 데뷔작 〈퇴원〉을 쓴 60년대 중반 무렵은 5·16군사혁명 이후의 억압적인 분위기로 하여 사회 일반, 특히 젊은 층들은 심 한 좌절감과 무력감에 빠져 지내던 시기였다. 게다가 나는 개인적으로도 좀처럼 헤쳐 나가기 힘든 암담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노모를 비롯한 고향집 식구들이 수년째 정처(定處)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 지내는 가운데에 엉터리로 근근히 대학 2학년 과정을 끝낸 나는 헛시늉으로나마 더 이상 학교를 계속해 나갈 방도가 없어 공밥과 시간을 벌기 위한 마지막 자구책으로 군대를 자원해 들어갔다.
 
그러나 63년 여름께 다시 제대를 하고 나와서도 사정은 조금도 달라진 바가 없었다. 복학등록은 물론 끼니나 잠자리를 구할 길 마저 막막했다. 그렇다고 그만 모든 걸 단념하고 돌아갈 고향집도 없었다.
 
나는 한동안 내 복학일을 같은 학과 친구에게 맡겨 두고 그저 하릴없는 떠돌이로 어정어정 학교 주위만 맴돌면서 지냈다. 그런 형편에 무슨 전공과정이나 취업시험 공부 같은 걸 제대로 마음에 두고 지내기가 어려웠음은 불문가지. 어차피 번듯한 세간의 법 속과 절차를 따라서는 별로 도모해 나갈 바가 없다 보니 그 밖에서 혼자라도 제 살길을 열어 나가 보자, 편법을 취하듯 제 속의 원망과 상실감을 그간에 엿보아 온 소설이라는 글의 매력과 형식 속에 우겨 엮어 넣으며, 그것을 제법 고마운 위안거리로 삼으면 서였다.
 
그러나 그렇게 씌어진 것이, 제 치졸한 넋두리나 오기풀이 이상의 글다운 글이 될 수는 없었다. 몇 차례의 신춘문예와 잡지 현 상응모는 번번이 무참스런 패배감만 더해 줄 뿐이었다.
그 끝없는 좌절과 무력감 속에 어떤 생성(生成)의 꿈도 지녀볼 수 없던 시절, 심지어는 그 무렵 갓 문이 열린 남미쪽 이민이나 독일 광부 취업길마저 불가능했던 암담한 64년 가을 무렵, 내게는 한 가지 참담스러운 대로 막다른 변화의 계기가 주어졌다. 마 음을 의지하고 지내던 가까운 친구 하나가 졸지에 불치병으로 입원을 하게 되어 이후부터 매일 대학병원으로 그 친구의 병실을 찾아다니게 된 것이 그런 계기를 가져왔다.
 
나의 병원길은, 물론 친구의 병 위문이 목적이었지만, 거기엔 나대로의 어떤 은밀스런 편의성과 자기위안의 욕구가 함께 하고 있었다. 달리 갈 데도 없고 따로 값진 시간을 보낼 일도 없어 병실이라도 자주 찾게 된 내 헐한 병문안길에 대한 친구와 가족들 의 진심 어린 고마움, 그 속에서 나는 모처럼 내 사람 값뿐만 아니라 얼마 동안이나마 내가 마음놓고 갈 곳과 찾아가 곁에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의 절망스런 고통 앞에 누추하나마 내 육신의 건강이 무척이나 고 맙고 대견스러워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남루한 젊음은 한층 더 무기력한 황폐감과 자기소모의 깊은 늪 속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셈이다. 뿐더러 그처럼 구차한 자위책(自慰策)은 길게 갈 수도 없었다. 오래지 않아 친구의 죽음으로 그의 병실에서마저 다시 쫓겨나게 된 처지 에서 나는 그것을 새삼 뼈저리게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건 정말 사람이 사는 길이 아니다……!
 
친구의 병실엔 그때 한 무수가(無酬價) 장기환자가 함께 입원을 해 있으면서 온갖 질병과 병원 진료제도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체험과 지식을 과시하며 늘 의기양양해하곤 했는데, 그가 이날은 방문 앞까지 따라 나와 나를 거꾸로 위로해 오던 소리도 그런 내 심사를 아프게 일깨웠다. ─ 가신 친구분한테밖엔 마음을 의지할 데가 없어 보이더니……. 하지만 이제는 그 친구몫까지 더 꿋꿋이 잘 살아가셔야지요.
 
아닌게아니라, 그대로는 내 삶에선 어떤 작은 생성도 영영 불가능해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무력감의 깊은 늪에서 벗 어나야 하였다. 그러지 못했다간 내가 그 늪 속으로 그대로 고스란히 가라앉고 말 형세였다.
 
그러나 도대체 그래 볼 만한 무슨 방법이 없었다. 나돌아 본 마실질이라고, 어쭙잖으나마 결국 다시 자기 위안거리 삼아 그런 내 처지와 간절한 자아회복의 꿈을 한번 더 글로 써보는 길뿐이었다.
친구의 병문안길에서 내가 줄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위로와 자기회복의 비방을 얻게 된 것이랄까. 그렇게 해서 씌어진 것 이 이듬해 늦가을 〈사상계〉지 주관의 신인상 문턱을 앞으로 걸고 엎어진 졸작 단편 〈퇴원〉으로, 당시의 내 막막한 처지와 자 기회복의 소망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 이야기인 것이다. 내게도 누군가 나의 좌절을 아파해 주고 그 회복의 안간힘을 안타깝게 지 켜 보아 주는 따스한 눈길이 있었으면, 불안스런 위장 속에 자신을 버리고 떠도는 나를 말없이 기다려 주는 그윽한 마음의 손짓 이 있어 줬으면……. 소설 속의 의사 친구와 간호원 미스 윤은 바로 나의 그런 소망을 대신하고 있는 인물들로, 나는 이를테면 그런 소망의 인물들을 통하여 탈진한 자신의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자기암시 요법을 행했던 셈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 느 정도 효험을 발휘하여 지금까지 내게 이 어쭙잖은 글질의 길을 걷게 한 것이다.
 
그야 당시로선 다른 선택이 전혀 불가능했던 처지고 보면, 그나마도 썩 고맙고 다행스러워해야 할 노릇인지 모른다. 더불어 내 게 이 신산스런 배역을 불가피하게 한 당시의 궁핍한 시대상과 내 개인의 각박스런 환경 여건들에 대해서도 지나친 폄하를 삼가 야 할 일인지 모른다.
 
 
─ 다시 돌아오시겠죠?
 
─ 글쎄요,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이젠 제게로 연락해 주세요.
 
미스 윤의 눈에 뽀얀 물기가 서리기 시작한 것을 보고 나는 머리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정말로 꼭 한 번쯤은 다시 이곳을 들 르게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거리로 천천히 병원 문을 걸어 나갔다.
 
─ 〈퇴원〉의 종말부
 
생성을 정지당한 황량한 젊음의 회복을 위해 내 간절한 꿈을 타고난 미스 윤은 아직도 거기 그 병원 문 앞에 남아 내 마음의 귀 향지로 기다리고 서 있는 듯싶다.
(1992)

 

 

 

 

 

     퇴  원
                         이 청 준


  나는 다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문이 바로 눈앞에 와 닿았다. 막연한 상념이 누워 있을 때나 한가지로 유리창을 흐르고 있었다. 명색이 이층이었으나 무질서하게 솟아오른 건물들로 안계(眼界)는 좁게 차단되고 있었다. 내다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건물들 사이로 훨씬 저쪽 거리 맞은편에 무성 영화의 영사막처럼 길게 남쪽으로 멀어져 가고 있는 D국민학교의 블록 담벼락과, 그 밑으로 뻗어 나간 한 줄기의 보도뿐이었다. 보도에는 언제나 몇 사람의 행인들이 잠시 떠올랐다가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사라졌는가 하면 다시 떠오르곤 했다. 좀더 이쪽으로 종로 거리가 이 보도와 만나고 있었으나 건물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다. 가끔 끽끽거리는 전차의 정적이 날카롭게 귀를 쑤셔 왔다. 그리고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늘과 가옥이 있을 뿐이었다. 무엇 때문에 거기서 생각을 잘라버릴 수 없는지 모르겠다. 내게는 그 비슷한데다 무얼 잊어 놓은 기억조차 없는데 마치 그런 것이라도 찾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착각이다. 착각보다 막연하다. 이 조그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의 이미지는 그만큼도 구체성이 없었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한다면 그 건물둘 사이로
U병원의 탑시계가 건너다보이는 것이었다. 그것도 오래 전에 고장이 나서 항상 같은 점에만 서 있는 두 바늘을 잃어버린 시계, 그리고 가끔 고막을 울려오는 전차의 경적 외에 이 창문으로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 단조로운 풍경이 자아내는 어떤 기묘한 분위기는 집요하게 나를 간섭해 오고 있었다. 눈만 감으면 어떤 상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눔만 뜨면 그것은 벌써 그 시계탑이며 블록의 담벼락 거리로 멀찌막이 나앉아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독실을 쓰고 있을 때는 그쪽으로 트인 창문이 없었으니까 이런 일이 없었다. 내가 이런 상념에 매달리게 된 것은 이 3인용 병실로 방을 옮기던 바로 그날부터 였던 것 같다.
  “선생님은 매일 그 창문만 내다보고 앉아서 무얼 그리 골똘히 생각하고 계세요?”
  마치 어부가 바다를 향해 그물을 던지듯 나에게 던져진 여자의 소리에 나는 비로소 상념에서 풀려 나왔다. 여자가 또 입에서 구린내가 나는 모양이다. 이 병실에는 나 말고도 두 사람의 환자가 들어 있다. 그 한 사람이 지금 이 여자가 지켜 앉아 있는 침대의 주인이다. 그런데 괴상한 일은 이 방으로 옮겨 온 지가 일주일이 되는 오늘까지도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바로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자기 침대에서 잔기침 한 번 하는 법이 없이  벽을 향해 드러누워 있기만 했다. 그것은 마치 애초부터 벽을 향해 만들어진 가구와도 같았다. 간호원이 가끔 혈압을 재거나 주사를 놓으러 왔다가 무슨 물건을 찾듯이 그의 이불을 들출 때까지 나는 그가 이 병실 어느 한 쪽 구석에 누워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적이 많았다. 어쩌다가 그 남자는 목구멍 속에서 한 두마디 말을 웅얼거리는 때도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때  의사나 간호원은 대개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엄청나게 큰 소리로 되물으려 들었기 때문에 그는 아주 입을 다물고 돌아누워 버리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니까 나는 이 사내의 목소리를 한 번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고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조차 확실히 모르고 지내 오는 터였다. 그런데 그 침대 곁에는 제법 깔끔한 차림새에 아랫 입술이 조금 내민 듯한 인상을 주는 그의 아내가 언제나 찰싹 붙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 여자 역시 자기의 환자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여자가 말이 적은 편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여자는 침대 곁에 걸상을 끌어다 놓고 벽을 향해 누운 남자와는 등을 지고 앉아서(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의 풍경으로써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연신 이쪽에다 말을 거는 것이었다. 더욱이 이야기를 하는 여자의 입 끝에는 언제나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이웃집처녀의 바람기라든지 만원 버스, 여학교 시절의 수학 여행, 심지어는 어떤 서커스단의 파산 경의 등속과 같은 일에 관해서는 무한정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정작 자기의 환자에 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내가 여자의 불공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여튼 나는 원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그런 수수께끼 같은 일에는 나대로 상상의 날개를 펴기 좋아하는 성미여서, 그럭저럭 그냥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그런 나의 속셈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작정 말을 걸어 오곤 하였다. 긴 시간을, 더구나 병실에서 입을 다물고 앉아 있으면 구린내가 난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구린내의 입가심으로 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병실에 들어 있는 다른 청년 하나는 장막 밖에 물이 고여서, 하루 건너마다 링거병으로 물을 하나씩 뽑아 내고도, 이야기는커녕 물 한모금 마실 여유도 없이 배가 부풀어 숨을 헐떡이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 따분해. 이러다간 생사람 말라 주겠어.”
  여자가 또 입가심을 좀 하잔다.
  종일 목에 가시가 걸려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잠시 기분을 돌려보고 싶기는 하다. 이야기의 머리만 떼어 주면 여자는 장안의 잡동사니를 다 뱉어 놓을 판이다. 대화라는 것이 있을 리는 없다. 그저 상대방의 머리를 빌려 자기 이야기를 지껄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내게 무슨 이야기가 있을 것인가?
  “부인께서 무슨 재밌는 이야기라도 들려주시겠습니까?”
  나는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하고 등을 벽에 기대었다.
  “선생님께서도 가끔 얘기를 좀 해 보세요.”
  살아났다는 듯이 여자는 눈을 반짝이며 짐짓 사양기까지 내보인다. 이 여자가 이야기의 차례를 양보한다는 것은 분명 예의에 속할 일이었다.
  “제게 얘기가 있겠어요? 만날 이러구 누그러져 있는 꼴에.”
  “선생님은 군대까지 갔다 오셨다면서 그러세요? 남자들만 지내는 곳은 여자에게 참 재밌는 얘깃거리가 많을 텐데요.”
 제법 자기를 위해 이야기를 해 달란다.
  “군대야 천 사람 만 사람 하는 이야기가 똑같은 걸요, 뭐.”
  “하여튼  선생님께선 아주 귀중한 얘기를 가지고 계실 거예요.”
  “무얼루요?”
  “평소에 말이 없이 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분은 으레 그런 법이에요.”
 여자는 단정했다. 그러나 그녀의 선명하고 단호한 추리는 나에게 해당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군영 3년간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시시했고, 지금 내가 마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듯이 가장하고 있다고 해도 실상 나는 그 상념의 추상조차 알 수가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야깃거리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복도에서 미스 윤의 날렵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미스 윤은 이 병원에 있는 단 한 사람의 간호원이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녀의 흰 귀에 반해 버렸을 만큼 미스 윤은 사랑스런 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걸음 소리는 이 병원에서 나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미스 윤은 시원스런 발걸음 소리를 내며 걸었다. 나는 언제 그렇게 시원스럽게 걸어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나는 스스로의 발자국 소리를 의식해 본 적이 없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그녀의 발걸음 소리에는 분명 어떤 율동감 같은 것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율동감은 처음에는 바이올린의 고음처럼 아주 가늘게 떨고 있는 듯하다가, 걸음걸이에 조금씩 폭을 얻어 가면서 나중에는 나의 내부를 온통 차지해 버리기 때문에, 나는 한참씩 그 율동감 속에 의식이 마비되어 버리는 수가 많았다.
  나는 그녀의 발소리가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몸을 누이고, 담요를 뒤집어썼다. 어쩐지 요즘은 그녀를 대하기가 여간 면구스럽지 않았다. 아침에 받아 내놨으니까 또 오줌병을 내밀어야 하지는 않겠지만, 체온계를 재갈처럼 입에 물고 멀뚱멀뚱 앉아 있기도 민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녀는 곧잘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지  모르겠다. 나의 비밀을 눈치 채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면서 웃을 때, 그녀는 꼭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웃음은 영락없이 나를 비웃는 것이었다. 네까짓게 무얼....... . 그 때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마음을 도사리지만, 입 표정과는 반대로 조심스럽게 나를 지켜보는 그녀의 눈동자만은 어떻게 해 볼 재간이 없었다. 속까지 환히 들여다보는 듯한, 은근한 핀잔을 담은 그런 눈초리였다. 그 눈과 마주치면, 나는 그녀의 입에서 금방 나의 비밀이 튀어나올 것 같은 조마조마한 기분이 되어 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또박또박 끊어지는 발소리가 천천히 장막 환자 쪽으로 찍혀 갔다.
  “뭘 좀 먹었나요?”
  미스 윤의 말에 청년은 어깻숨만 짧게 몰아쉬고 있었다. 듣고만 있어도 나까지 숨이 차오르는 것 같은 건조하고 세찬 마찰음이었다.
  “어디 가요. 나가는 게 있어야지. 배가 저 모양이 되어 가지고야 어떻게 ...... .”
 연신 졸고 앉아서도 손만은 청년의 배에서 떼는 법이 없는 노인이 말을 받았다.
  “그렇지만 환자가 우선은 좀 먹어야 병을 견디어 내지요.”
 미스윤이 온 바람에 나와의 이야기를 방해 당한 여자가 이번에는 그 쪽을 참견했다. 청년의 얼굴은 똥 먹은 곰의 상이 되었으리라. 청년은 누구든지 먹으라고 하는 말에는 화를 냈다. 병문객이나 옆엣 사람들은 청년의 마른 얼굴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으레 첫마디로 그 소리를 내놓기가 일쑤였다. 더욱이 그 여자의 경우 청년은 더 화를 냈다. 그러나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묘하게 신경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뿐 한번도 불평을 입 밖에 내놓은 적은 없었다.
  “물은 내일 뽑겠어요.”
 한마디를 떨어뜨려 놓고 미스 윤은 바삐 문을 나가 버렸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차츰 멀어지자 나의 가슴속에서도 역시 그 바이올린의 고음 같은 울동감이 긴 선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담요를 박차고 일어나 앉았다. 창문이 눈앞에 와 닿았다. 블록 담벼락 밑으로 흐르는 그 한 줄기의 보도는 조용히 밤으로 가라앉고, 어둠을 빨아들여 빛나기 시작한 U병원의 탑시계의 파란 형광이 곱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었다.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다시 문 밖에 와 멎었다. 미스 윤이 머리만 빼꼼히 디밀고는 나를 점찍었다.
  “잠깐 보세요.”
 한마디를 던져 놓고는 그녀는 다시 문을 닫았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어떻고, 눈에 무슨 질책을 담고 있었다고는 해도 명색이 환자인 나를 그런 식으로 불러내는 일은 없었다. 그런 일은 이 내과 병원의 경영주이자 의사인 준이 엄히 금해 놓은 터였다. 도대체 이 조그만 여자의 속셈은 무엇인가?  나는 결국 슬리퍼를 끌고 병실을 나섰다. 평소의 걸음걸이가 좀 흐느적거린데다가 환자 행새까지 잔뜩 더해서 나는 슬리퍼를 바닥에서 떼지 않고 복도를 지나갔다.
  “어때, 요즘 좀 괜찮은가? ”
 사무실에는 뜻밖에 아직 왕진중인줄 알았던 준이 돌아와 있었다. 그러고보니 나를 부른 것이 미스 윤이 아니라 준이였던 모양이다. 준의 얼굴에는 어딘지 장난기가 배어 있는 것 같았다.
  “환자를 이렇게 함부로 불러내는 법이 어디 있어!”
 나는 화가 난 듯이 그렇게 말하면서 미스 윤을 보았다. 그녀는 무엇이 우스웠는지 고개를 돌렸다.
  “몰라 봐서 미안하군. 모처럼 좋은 게 있어서 불렀지.”
 빙글빙글 웃으면서 준은 가방을 열고 포장이 요란한 병을 하나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놀라기는 미스 윤이 오히려 더한 모양이었다. 펜을 쥔  손을 엉거주춤 쳐들고 다가와서 레테르를 들여다 보았다.
  “영어라서 전 잘 모르지만 아마 이건 위궤양에 특효약이라 적힌 모양이죠? ?
 그녀는 정말 그것이 술인 줄 모르는 양 어리둥절한 얼굴로 준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난처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작자들은 도대체 나를 위궤양 환자로 믿어 주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다 알고도 시치미를 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워낙 자네 병은 술에 조상을 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외면을 해 버려도 위장의 비위를 건드려서 오히려 좋지 않을 거야. 더욱이 자넨 요즘 많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
 준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변명거리를 찾아 주었다. 그는 테이블 위를 치우고 간략한 주석을 만들었다. 그리고 둘은 마주 앉아서 병마개를 땄다.
  “선생님들께 좋은 약이라면 ....... 저도 배가 좀 이상해요.”
 호기심이 움직였는지 미스 윤은 나까지 껴서 ‘선생님’으로 응대하더니 딱 한 잔을 얻어 마시고는 병실로 나가 버렸다. 준은 병이 바닥날 때까지도 별반 취한 기색이 없었다. 놈이 의사가 되더니 제법 독종이 된 모양이었다. 이쯤 되었으면 오늘은 무슨 시원한 소리가 있으려니 하고 나는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으나, 준은 나의 병에 대해서는 끝내 무관심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된 이상 네놈의 위궤양은 술로나 고쳐 보라는 듯 서슴없이 술잔을 내밀곤 했다. 알 수가 없었다. 준이 드디어 퇴근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 방을 나왔다. 복도를 지나 올 때 나는 아까보다 더 요란스럽게 슬리퍼를 끌었다. 병실 문 앞까지 와서 막 손잡이에 손을 대었을 때 뒤에서 미스 윤의 소리가 들려 왔다.
  “선생님 이거!”
 그녀는 손에 각성제를 들고 있었다.
  “술 마셨으니까 좋을 거예요 ”
 표정을 묘하게 지으며 그녀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겁이 나서 저도 두 알 먹었어요. ”
 약을 건네 주고 나서 그녀는 정색을 한 눈으로 나를 말끔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내가 말이 없으니까 그녀는,
  “눈빛이 형편없이 탁해졌군요. 내일 거울을 가져다 드릴 테니 좀 보세요.”
 나는 문득 이 여자의 유방을 만져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팽팽한 탄력과 부드러운 촉감을 적당히 섞어 놓은 유방을 여인들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갖고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미스 윤은 벌써 저쪽 끝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병실에서는 예의 그 여자가 입가심을 시작하려는 눈치를 보였다. 나는 모른 척 담요를 뒤집어 써 버렸다. 도대체 이 병원 사람들의 말을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기는 내가 병원에 들어 온 것부터가 어이없는 장난이었을는지 모른다. 제대를 하고 나서 저고리와 신발은 그럭저럭 바꿔 꿰고, 바지는 아직 그 푸르딩딩한 제대복 채로 기어든데가 이 준의 병원이었다. 준은 나의 학교 동창이자 옛날 선생님이었다. 내가 아직 집에 있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나와 같은 고3배지를 단 준을 꼭꼭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러는데는 한 두가지 곡절이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청으로 담임 선생님이 진학시험 친구로 준을 집으로 데리고 오던 날, 아버지는 몹시 화를 내고 있었다.
  “너는 제 구실도 한 번 못 해볼 게다. 날마다 네 친구 발바닥이나 핥아!”
 담임선생님과 준의 앞에서 아버지는 선언했다. 담임 선생님의 긴 설득 끝에도 아버지는 가볍게 하품을 하고는,
  “가정 교사를 두는 건 상관 안 하지만...... 안 될 겝니다. 이틀을 굶겨 놔도 배고픈 줄을 모르는 놈입니다, 저놈은.”
 하고 태연한 나를 못마땅해 하는 눈으로 건너다볼 뿐이었다. 나는 그 말에 처음으로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 방으로 건너오자 준은,
  “미안해. 내가 오지 않는 게 좋았을 뻔 했어.”
 하고 나에게 신경을 썼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말은 누구나 듣는 거지.”
 준이 덧붙였다.
 ‘이틀을 굶겨 놔도 배고픈 줄을 모르는 놈입니다, 저 놈은 .’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나의 얼굴이 굳어지는 내력을 알았다면, 준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광에다 가두고 이틀을 굶긴 적이 있었다.
  소학교 3학년 때 가을. 나는 그 즈음 남 몰래 즐기고 있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다. 광에 가득 쌓아 올린 볏섬 사이에 내 몸이 들어가면 꼭 맞는 틈이 하나 있었다. 나는 거기다 몰래 어머니와 누이들의 속옷을 한 가지씩 가져다 깔아 놓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곳으로 기어들어 생쥐처럼 낮잠을 자는 것이었다. 속옷은 하나같이 부드럽고 기분 좋은 향수 냄새가 났다. 장에는 늘 그런 옷이 얼마든지 쌓여 있어 내가 한 두 가지씩 덜어내도 어머니와 누이들은 알아차리지를 못했다. 어두컴컴한 그 광 속 굴에 들어앉아 이것저것 부드러운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거기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그보다 기분 좋은 일은 없었다. 그러다 나는 스르르 잠이 들고 잠이 깨면 다시 생쥐처럼 몰래 그 곳을 빠져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은 거기서 너무 오래 잠이 들어 있다가 아버지가 비춘 전짓불 빛을 받고서야 눈을 떴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광을 나가더니 나를 남겨 둔 채 문에다 자물쇠를 채워 버렸다. 그 문은 이틀 뒷날 저녁 때 열렸다. 나는 광에다 나를 가두어 놓은 동안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나 문이 열렸을 때 거기 있던 옷가지는 한 오라기도 성한 것이 없이 백 갈래 천 갈래로 찢기어 있었다.
  ‘이틀을 굶겨 놔도 배고픈 줄을 모르는 놈입니다, 저 놈은.’
  ‘하지만 그런 말은 누구나 듣는 거지.’
 나는 준에게 나중까지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나보다 어른이었다. 아버지는 준을 선생님이라 부르라고 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간섭하는 것은 그 한 가지뿐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준이 오고 한 달쯤 되던 어느날 저녁상을 받은 자리에서였다.
  “넌 우리 선생님에게 시집가도 좋을 꺼야.”
 대학교 2학년을 다니고 있던 누이에게 나는 문득 그렇게 지껄였다. 숟가락을 가만히 놓고 방을 나간 준이 그날 밤중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학교로 가는 대신 금고에 손을 대어 꾸러미를 만들어 가지고 준의 집을 찾아 갔다. 영문도 모르는 준의 어머니에게 나는 별 뜻도 없이 그 꾸러미를 절반쯤 풀어놓고 그 길로 서울을 떠났다. 그 돈을 준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 후로 내게는 그것을 알 필요도 권리도 없었다. 하여튼 내가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조그만 개인 병원을 내고 있는 의사였다. 남해를 밤길로만 달리는 배를 타기 전날, 우연히 신문에서 어머니의 부고를 보고 딱 한 번만 들르리라고 집을 찾아갔더니 준이 와 있었다.
 준도 나처럼 옛날 일을 회상하기 좋아하는 성미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미적미적 서울에 남아 있는 동안 나는 두어 번 준의 병원을 들렀다. 그러다가 나는 옛날에 벌써 정집년이 지나가 버린 나이로 군대를 지원했다. 어떻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생각이 났던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나보다 어른이었다. 그곳밖에는 준에게서 멀리 가 버릴 쉬운 곳이 없었다. 군대에서 나는 아버지가 요령 없는 부정 관리로 붉은 벽돌집에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까 내가 제대를 하고 준을 다시 찾아간 것은 애초부터 무엇을 돌려받자는 생각에서였던 것은 아니였다. 생각난 것이 준 한 사람뿐이었다는 것이 가장 적당한 이유일 것이다. 준은 나의 내방을 퍽 반겨 주었다. 그리고 옛 주인의 근황을 알고 있던 그는 나의 고충을 자상히 이해해 주었다. 그때부터 준은 나의 편리한 금고가 되었다. 추호도 빚을 받는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 역시 그러는 나를 별로 불편하게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준은 내가 혹시 간호원(미스 윤 말이다)나부랭이에게 이상히 보이지나 않을까 염려를 해 줄 정도였다.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돈을 꺼내 갔다. 처음엔 무엇을 좀 해 보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을 끼지 않고는 해본다는 일이 만판 허탕으로만 끝났다. 나중에는 숫제 내 목구멍으로 먹어 삼키고나 말자는 심사가 되었다. 꼭 술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제대를 하고 일년이 지났다.
 2개월 전 일이었다. 공복이 되면 배가 쓰려 오기 시작했다. 회충인가 했더니 약을 먹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일까고 준에게 물었다.
  “밥을 먹으면 통증이 가시지?”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투로 물었다. 나는 좀 치사한 느낌이었으나 그렇다고 했더니, 위궤양이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사진을 찍어 보자고 했다. 물론 나는 반대했다. 그럴리도 없으려니와, 만약 그런 병을 배에 담았다면 나는 살만큼 살겠노라고 결연히 선언했다. 지난 일년 동안 주릴 만큼 주리고 술에 절어 들었다고는 해도 나의 위장이 그렇게 쉽사리 요절이 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준은,
  “하지만 알아둬. 위궤양이 발병할 조건은 첫째 정신적 긴장감, 둘째가 불규칙적인 생활, 셋째는 술이거든. 부정할 테지만 그런 점에서 자넨 영락없이 합격이야. 더욱이 공복 시에 통증이 오고 식사로  그 통증이 가신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어. 잘 생각해서 하란 말이야. ”
 하고 못을 박았다. 나의 처지에다 일부러 연관을 시켰는지 준의 말은 그럴 듯하기도 했다.
 그런 뒤로 증세는 정말 완연해졌다. 무엇보다도 공복에 통증이 온다는 말이 끼니가 불규칙한 나에게는 금방 공포로 변해 버렸다. 끼니 생각만 하면 멀쩡하던 배가 때도 되기 전부터 쓰려 오기 시작했다. 정작 한 끼라도 밥을 거르는 경우가 생기면 통증은 절망적일 정도로 심했다. 하루 종일 위를 채울 궁리만 해야 했다. 그래도 금방 통증이 오고 위가 패어 들어가는 정도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발작이 심할 때가 있었다. 할 수없이 준을 다시 찾아갔다.
  “더 살겠다는 욕심보다 우선 견딜 수가 없어. ”
 입원을 하라고 했다. 복도 끝에 있는 입원실을 독방으로 썼다.
 일단 입원을 한 뒤로 준은 일체 개인적인 면담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특별한 배려가 있었는지 간호원은 나의 병명이 위궤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매일 아침과 저녁 두 차례씩 링거병에다 오줌을 받아 갔다. 그러면서도 내가 가끔 화장실로 가서 오줌을 배설해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괘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특정한 일과를 치러 가느라니 내가 환자라는 느낌이 주머니 속의 알밤처럼 또렷또렷 실감되었다. 창문은 건물로 완전히 차단되고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있는 것은 체온을 재거나 무슨 이름도 알 수 없는 주사약을 놓으러 왔다가 돌아가는 간호원의 발자국 소리와, 거리의 식당에서 자극성 없는 음식으로 배달해 오도록 준이 조치해 준 세 끼의 식사 배달을 받을 때 뿐이었다. 준은 하루에 한 번 쯤 나타나서 지극히 사무적인 거동만 취하다가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은 이제 배의 통증을 쫓기 위해서 꼭 마련해야 할 세 끼의 식사에 대한 공포를 갖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통증이 깨끗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나는 오히려 당황했다. 처음부터 나는 병에 확증이 없이 입원을 했던 터이고, 증세라는 것은 그 통증이 유일한 것이었으므로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간호원은 여전히 오줌을 받아 갔다. 그것이 마치 내 병세 판별에 중요한 자료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창문도 없는 병실에서 하루 종일 몸을 뉘었다 일으켰다 하는 단순한 동작을 되풀이하면서도 그 간호원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있었다. 견디다 못해 하루는 준에게 방을 옮겨 달라고 했다. 준은 그러마고 했다. 다음날로 나는 지금 이 방으로 몸 이사를 해왔다. 그리고는 창문을 향한 그 기이한 상념이 사작되었다.
 여기서도 오줌은 받아 내야 했다.
 미스윤의 발걸음 소리도 나의 내부에서 일정한 진폭을 유지했다.
 준이고 미스 윤이고 나의 병을 취급하는 엄숙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튿날.
  침대의 한 부분같은 그 남자는 이제 숨을 쉬는 기색조차 없이 이불 자락에 묻혀서 지냈고, 장막고장의 청년은 앙상하게 마른 팔과는 반대로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호흡음이 한층 건조해지고 노인의 손은 그의 배 위에서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여자가 두어 번 입가심을 하려고 덤벼들었으나 나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창문에만 계속 붙어 앉아 있었다.
 저녁에 미스 윤은 오줌병을 내간 뒤에 다시 병실로 들어와서,
  “거울을 부탁하셨지요?”
 말을 뒤집어서 하고는 자기 것인 듯한 손거울을 내주었다. 무엇 때문에 미스 윤이 일부러 거울을 가져다 주는지 알 수는 없다. 이제사 거울을 주는 것을 보면 어젯밤 미스 윤의 말에는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하기가 싫었다.
  “지금 몇 시쯤 되었습니까?”
 종일 바늘 없는 탑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문득 나는 필요도 없는 시간을 묻고 있었다.
  “제 시계......고장인걸요.”
 미스 윤은 팔을 들어 시계를 보였다.
  “시계가 모조리 고장이군.”
  “모조리라뇨?”
 나는 대답 대신 창 밖을 내다보았다. 탑시계에 파란 형광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렇군요.”
 미스 윤이 등 뒤에 다가와 있었다.
  “왜 수선하지 않을까.”
  “왜 수선해야 하나요?”
 미스 윤은 짓궂게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오늘밤은 좀 이상하다 생각했다.
  “시계니까.”
 나는 미스 윤이 갑자기 오랜 친구나 된 것처럼 쉬운 말을 썼다.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전 그대로가 좋아요. 저 시계가 꼭 선생님을 닮았거든요.”
 이 여자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역시 나는 이 집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서투르다. 나는 미스 윤의 장난기가 서린듯한 눈을 바라보았다. 속눈썹이 길다. 그것은 마치 가시처럼 나의 몸 어느 부분을 찔러 왔다.
  “이유는 선생님이 더 잘 아실 거예요.”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고 나서 갑자기 어젯밤 각성제를 건네 줄 때처럼 빤히 나를 쳐다보다가는 후다닥 방을 나가 버렸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엎드리고 냄새를 맡았다. 크레졸 비슷한 냄새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수수께끼의 남자는 죽어 있었다. 늘 하던대로 벽을 향해 찰싹 붙어 있으니까 우리는 아직 으레 그가 자고 있으려니만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했다기보다 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건드려 보고는 죽었다고 했다.
 병실의 변화라고는 여자가 한 사람 방을 나가 버린 것 뿐이다.
  “선생님의 얘기를 한 번도 듣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어 섭섭하네요.”
 집으로 남자를 옮겨가면서도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아쉬운 듯이 병원을 나갔다.
 나는 여전히 창문에 기대어 앉아서 통행인들이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하는 보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막연한 상념들이 엉켜들 뿐이었다.
  “시계를 고치고 있군요.”
 돌아다보니 미스 윤이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체온계도 혈압계도 또 주사침을 들고 있지 않았다.
  “시계를 고치고 있다고 말했잖아요? 무얼 저만 그렇게 보세요?”
 나는 그제서야 창문으로 시계탑을 내다보았다. 좀 멀기는 하지만 사람이 하나 그 탑시계에 매달려 바늘을 끼워 넣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군요. 바늘을 끼워 넣는군요.”
  “그럼, 제 거울을 돌려주세요.”
 나는 침상 귀에 팽개쳐 둔 거울을 집어 미스 윤에게 내밀었다.
  “용도를 몰라서 그냥 두어 둔 것 뿐입니다. ”
  “용도라뇨?”
  “시계 바늘을 수선하기 때문에 그걸 돌려 줘야 한다는 이유는 더더욱 모르겠구요.”
 그녀는 한참 눈을 껌벅이고만 있었다.
  “선생님은 아마 적적하실 때 거울을 들여다보신 적이 없으신가 봐요. 거울을 들여다 보느라면 잃어진 자기가 망각 속에서 살아날 때가 있거든요.”
  “괴상한 취미로군요.”
  “그렇게 생각되실 지도 모르죠. 제가 틀리지 않다면 선생님은 분명 내력 깊은 이야기가 있으실 분인데 그 이야기가 너무 깊이 숨어 버린 것 같거든요.”
 나는 미스 윤이 왜 이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탑시계에 매달려 있던 사람이 바늘을 두 개 얌전히 꽂아 놓고 내려갔다. 미스 윤은 거기다 시선을 둔 채 전에 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 마음에도 이제 바늘을 꽂아 보세요 그럴 힘이 있을 거예요. 선생님에게는 뭣하면 거울을 하루 더 빌려 드리지요.”
 그녀는 거울을 다시 침대에 놓아두고 방을 나갔다. 이상하다. 이 여자는 틀림없이 나의 병세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거울을 봐라? 그러면 제가 어쩌겠다는 것일까? 나는 침상 위에 벌렁 드러누워 한동안 미스 윤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조금이라도 미스 윤의 화연을 나의 내부에 들여보내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장 눈앞에서 미스 윤을 쫓기 위하여 그녀가 침상 끝에 놓고 간 거울을 집어 들었다. 거울 속에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나의 얼굴을 보았다. 전체의 윤곽은 가운데가 조금 들어가고 이마와 턱이 둥그럼한 것이 내 얼굴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스 윤이 흐러졌다고 하던 나의 눈은 흰자위가 조금 아래로 까리고 검은자위가 약간 노르께했다. 천장에 매어 달린 형광등의 동그라미가 마침 그 눈동자에 들어앉아 있어서 나는 꼭 하얀 불을 두 눈에 달고 있는 것 같았다.
 뱀잡이.
 무심히 지껄이다가 나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이야기가 하나 비수처럼 가슴을 후비고 들어 왔다. 그렇지. 그 여자도 미스 윤도 나에게는 틀림없이 귀한 이야기가 있으리라고 했었지.
 살모사. 이놈에 대해서는 나도 이야기가 있다. 나는 거울을 내려놓고 문 쪽을 바라다보았다. 이야기가 생각났을 때 미스 윤이 냉큼 나타나 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뱀잡이.
 그게 군대에서의 나의 별명이었다. 어느 봄날, 작업장에서 돌아오다가 볕을 쬐러 나와 바위 위에 몸을 사리고 있는 꽃뱀을 한 마리 만났었다. 나는 그놈의 가죽을 벗기어 고운 나무토막에다 입혔다. 그것을 소대장에게 지휘봉으로 바친 것이 내가 정말 뱀잡이가 되어 버린 인연이었다. 중대장이 그 지휘봉에 눈독을 들였다. 중대장에게도 하날 새로 만들어 선물했다. 그랬더니 온 대대 안의 장교와 고급 하사관들이 그 뱀가죽 지휘봉을 갖고 싶어했다. 나는 매일 틈만 나면 회초리를 저으며 뱀을 찾아 다녔다. 만나는 놈마다 가죽을 벗겼다 .특히 빛깔이 좋은 놈을 만나는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서 뱀을 더 찾지도 않고 놀았다. 그 중에서도 살모사의 가죽은 일품에 속했다. 이놈의 가죽은 대대 안에서도 꼭 대대장 같은 한 사람의 지휘봉에밖에 입혀 주지 못했었다. 다른 장교들이 얼마나 그것을 갖고 싶어 했을 것인지 나는 지금 상상할 수도 없다. 살모사를 찾기 위해서 나는 동삼을 찾는 제약사처럼 산이란 산 숲이란 숲은 모조리 뒤지고 돌아 다녔다. 이 살모사가 특히 환영을 받는 데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었다. 나는 뱀을 잡으러 나갈 땐 반드시 항고를 휴대했다. 가죽을 벗긴 뱀의 고기를 항고에 담아 오면 사병들에게 큰 선심을 쓸 수 있었다. 살모사라는 놈은 고기 또한 진미였다. 쇠고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이놈의 고기는 사병에게까지 차례가 가지 않았다. 대대장의 지휘봉을 장식한 놈의 살집은 중대장이 먹었다. 나의 선임하사는 다음부터 살모사의 고기는 아무 말 말고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는 뱀잡이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쯤 되었으니 뱀에 대해서라면 나는 일견식을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썩 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스 윤이 나타나질 않는다. 나는 좀이 쑤셔서 그냥 누워 있지를 못하고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시계의 두 바늘이 세 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역력히 보였다. D국민학교의 블록 담벼락 밑을 흘러가고 있는 보도에는 웬일인지 어느 때보다 통행인이 훨씬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눈에 뛸 만큼 사람 수가 금방금방 늘어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손에 몇 가지 유리 기재를 든 미스 윤이 들어오더니 준이 다짜고짜 장막 고장의 청년에게 덤벼들어 물을 뽑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창으로 눈을 보냈다. 안계에 떠오른 보도의 한쪽이 어느새 인파로 가득차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위로 올라가지도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손에는 저마다 깃대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비어있는 저 한쪽길을 지나갈 모양인가? 길의 이쪽은 안계가 차단되어 볼 수 없고 거기선 들려 오는 소리마저 없으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준이들은 퍽 여러 번 방을 들락이며 장막 고장의 청년에게만 매달려 있더니 드디어 기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거리엔 무슨 사람들이?”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으나 준은 그 말을 흘려 버리고 ,
  “영양 주살 놓기는 했습니다만 뭘 좀 먹게 하십시요.”
 하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시체를 내보내고 난 준이니까 기분이 좋아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미스 윤은 방을 나가지도 않고 이번에는 나한테로 혈압계를 들고 왔다. 그러나 나는 미스 윤에게 그걸 묻지 않았다. 나의 팔에다 고무줄을 잡아매고 있는 그녀의 머리 냄새가 갑자기 가슴 깊숙이 빨려 들어 왔다. 그 냄새는 옛날 어느 때 아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맡아 본 경험이 있었던 것처럼 그립게 가슴속으로 젖어 들어 왔다. 지금까지 나는 분명히 미스 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머리가 몽롱해져서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는 될수록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역시 미스 윤은 밉지 않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혈압은 왜 재는 거지요?”
 나는 이제 다시는 혈압을 재게 하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투로 물었다.
 미스 윤이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조금 어리둥절한 것 같았으나 곧
  “선생님은 환자니까요.”
 하면서 방울을 눌러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바보들이로군...... .”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누가 말이예요?”
  “이제 내게 위궤양은 없어진 것 같소. 아니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소. 그걸 몰랐으니 당신네들    은 바보지 뭐요..”
 말하고 나자 나는 아직 이런 소리하기에는 준비가 너무 덜 된 채인 것 같아서 농담인 듯 웃었다.
  “위궤양이 싫으시담 더 멋진 병명을 붙여 드릴 수도 있을 거예요. 가령 자아 망실증 환자라든지...... .”
 미스 윤은 더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내가 혈압계를 팔에 낀 채 엉거주춤 일어나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살모사의 이야기 말이다.
  “천만에요. 자아 망실 무엇이라구요? 미스 윤은 또 그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신 모양인데 나도 노력에 따라서는 후륭히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
 나는 대뜸 이야기를 꺼낼 태세를 보였다. 미스 윤은 이야기 땜에 혈압 측정이 틀렸는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방울을 눌러 댔다.
 나는 잠시 아야기의 머리를 어떻게 시작해서 이 여자를 놀라게 해 줄 것인가 생각했다.
  “미스 윤은 뱀의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있습니까?”
 나의 첫 마디는 생각한 보람이 있어 썩 적절한 서두가 된 듯 했다. 그녀는 나의 팔에서 혈압계를 풀고 나서 겁을 집어먹은 듯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았다.
  “뱀 말입니다. 뱀! 물론 없으실 겁니다.”
 나는 의기 양양해서 일어나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스 윤도 표정을 고치고 종이에다 혈압을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귀를 기울이고 있으리라고 믿고 한참 동안 그 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미스 윤은 여전히 선 채로 기록지에다 연필을 움직이고만 있었다.
  “앉아서 듣구려, 모처럼 이야기니.”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힐끗 미스 윤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참으로 이상한 것을 보았다. 미스 윤의 눈에는 웬일인지 안개같이 뽀얀 것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이 엉켜 떨어지려는 것을 참으려는 듯이 기록지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무얼 끄적이고 있었다. 내가 종이를 넘겨다 보자 미스 윤은 그 이상한 눈으로 나를 잠시 내려 보다가는 잽싸게 방을 나와 버렸다. 발걸음 소리 가 유난히 크게, 그리고 오래 나의 가슴을 울렸다. 소리의 긴 여운이 사라지자 나는 창으로 머리를 돌렸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했다. 몇가지 의문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미스 윤이 가지고 간 나의 혈압 기록지에는 내 혈압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미스 윤은 그 종이에다 ‘뱀’이라는 글자를, 그것이 무슨 원망스런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득 채워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미스 윤은 나를 속인 것인가? 혈압을 재는 척만 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녀는 나의 병에 대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자아 망실증 어쩌고 한 그녀의 말에는 좀더 특별한 뜻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준은? 틀림없이 공모일게다. 놈은 매일 그녀로부터 내 병세의 진단 자료를 보고 받는 대신 나를 속이는 그녀의 연기에 관한 보고를 받을 테지. 기가 막히게 친절한 배려다.
 탑시계가 네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창문의 이미지가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한층 무겁게 밀착해 왔다. 그러나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그것은 오래 잊고 있던 어떤 기억들을 되살려 내려고 할 때처럼 마음을 안타깝게 할 뿐이었다. 이제는 미스 윤을 기다릴 일도 없어졌다. 모처럼 내 이야기에 그녀는 감격을 했단 말인가? 연민을 가득 담은 눈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끄러!”
 갑자기 천정을 찌렁 울리는 소리에 나는 다시 병실 안으로 눈을 돌렸다. 청년이 몸을 세우고 흉하게 무은 눈꺼풀 밑으로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테니 제발 그 먹으라는 소리 집어 치란 말이에요. 의사도 먹어라, 어머니도 먹어라, 나를 보는 놈이면 어떤 놈이든 먹어라뿐이야. 다 아프질 않으니까 그러지!”
 청년은 그러다가 금방 누그러지면서,
  “가장 먹고 싶은 건 접니다.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에요. 하지만 먹을 수가 없는 걸요. 아픈 사람은 저예요 저 혼자뿐이란 말이에요.”
 거의 애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숨이 막힐 듯이 긴장해 있다가 결국은 눈길을 다시 창문으로 돌렸다. 멀리 담벼락 밑을 채운 군중들 한 쪽에 여태까지 비어 있던 거리를, 배낭 진 무장군인들의 행렬이 지금 막 지나가고 있었다. 태극기가 낙엽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청년에게는 권유가 처음부터 소용없는 것이었다. 자기요구라는 것. 그것을 청년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요구라는 것이 자기에게는 용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는 그 요구대로 될 수 없었다.
 노인이 훌쩍이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 요구를 알고 있는 자에게  권유가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권유란 일종의 자기 대화 --그리고 그 대화는 죽어 나간 그 사내의 여자에게서처럼 스스로를 향한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모든 요구는 언어가 허용될 수 있는 한계이전의 것이었다.
 팬터마임...... .
 그렇게도 나의 머리를 매돌기만 하던 창문의 이미지가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게 안타까워했던 것은 어떤 경험의 회상이 아니라 강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진 이 단어의 개념에 불과했다. 팬터 마임 --‘무언극’이라는 번역어로는 도시 실감이 나지 않는 말이다. 그것은 이 단어에 세 번이나 겹친 순음의 작용도 있겠지만, 마지막 ‘ㅁ’받침이 단어의 뜻과 잘 부합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받침 자체가 이미 그 내용이 지니는 무거운 침묵을 강요하고 있었다. 마지막 음절에서 자동적으로 입을 폐쇄당하고 나서, 나는 몇 번이고 이 단어의 이미지를 실감했고 한 번도 본일이 없는 그 연극의 본질까지도 어떤 예감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언어가 완전히 소멸된 거기에는 슬프도록 강한 행동의 욕망과 향수만이 꿈틀거렸다. 하나 나에게는 이미 그 욕망마저도 죽어 버리고 없는 것 같았다. 완전한 자기 망각. 그렇게 나는 시체처럼 여기 병실에 누워 있는 것이다.
 어디서 발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먼 거리의 행렬에서 오는 것인지, 목도에서 미스 윤이 울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착각인지 실제의 소리인지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조그맣던 것이 차츰 폭을 넓혀 나중에는 나의 전체를 가득 채워 버렸다.
 미스 윤은 오지 않았다. 탑시계가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을 마치고 나는 옷가지를 주워 입고 준의 방으로 갔다. 준은 벌써 나가고 없었다. 미스 윤이 신문을 보고 앉아 있다가 나의 차림새에 놀라 일어났다. 나는 그러는 미스 윤이 아직도 손에 들고 있는 신문에다 눈을 두었다. ‘한국군 월남 파병 환송식’ 이라는 톱제호가 유난히 크게 들어 왔다. 그럼 오늘 낮 창문에 비친 것은 이 파월군의 행렬이었구나.
  “한국 군대가 월남에 가는 군요 .”
 나는 이상한 흥분기를 느끼면서 말했다. 미스 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준은 나갔습니까?”
 미스 윤이 비로소 신문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역시 그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보니 그녀의 눈동자는 상당히 까만 것이었다. 한동안 미스 윤은 그렇게 나의 표정을 읽고 나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아마 놀라시진 않을 거예요.하지만......  그 분도 선생님에 대해서만은 절 속이고 있었어요.”
  “공모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하긴 준은 언제나 나보다 어른이니까.”
  “결국 셋이서 따로따로 속이고 있던 셈이죠.”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신세진 일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요?”
  “거울을 빌려 주신 거라든지...... .”
 복도를 자나가는 나의 발걸음 소리가 나 자신에게도 선명했다. 병원현관에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괜찮을까요, 갑자기?”
 미스 윤이 내 쪽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글쎄요, 바늘을 끼워 놓은 시계니까 이제 돌아가 봐야죠.”
  “다시 돌아오시겠죠?”
 미스 윤은 갑자기 지금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었다.
  “글쎄요, 지금은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나는 거푸 두 번이나 ‘글쎄요’를 쓰면서 그 말로 좀 더 강하게 자기를 주장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이젠 제게로 연락 주세요.”
 이 말도 나는 사양하려고 했다. 그러나 입을 떼려다 미스 윤의 눈에 아까 낮에와 같은 뽀얀 것이 서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머리를 끄덕여 주었다. 정말로 꼭 한 번은 다시 이 곳을 들를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막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거리로 나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