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력 Anti-Gravity의 과학
지은이: 허창욱
출판사: 모색
저자 서문
과학 혁명과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였던 유명한 과학 사학자 토마스 쿤은,
과학은 점진적으로 꾸준히 발전하기보다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마치 양자 도약과 같이 혁명
적으로 자기 탈바꿈을 통해 발전한다가 갈파하였다. 이러한 과학 혁명의 가장 대표적인 예
로서 천동설로부터 지동설의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을 열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곧잘 거
론된다. 지구가 은하계의 중심이며 태양과 모든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것으로 생각
하던 중세에, 갈릴레이 갈릴레오는 정반대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로부터 현재까지 확고부동한 자연 법칙으로서 지동설의 시대가 개막되었던 것이다. 하지
만 갈릴레이의 주장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선뜻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결
코 아니다. 토마스 쿤의 표현처럼, 기존의 과학 패러다임 속에서 아무런 의심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들의 고정 관념을 파격적으로 깨뜨려 버리는 새로운 주장에 대해 호감을 갖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본능적으로 반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갈릴
레오가 자신의 지동설을 과학적인 현상으로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천문 망원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태양계를 실제로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갈릴레이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결코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객관적으로 관찰해볼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실제로 망원경을 들여다 보면서
천동설과 지동설을 객관적으로 논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늘날 새로운 지동설을 주장하는 색다른 갈릴레이들이 대거 출현하고 있다. 이들은 우주
공간이란 텅빈 진공이 아니라 공간 에너지로 가득차 있는 에너지 공간이라 말하기도 하고,
중력 이론에 반하는 반중력 현상을 주장하기도 하며, 상온에서의 물질 변환, 초효율의 신에
너지 기술 등 현재의 과학 이론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대단히 혁신적인 개념과 신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필자는 94년도부터 이들 신과학과 신기술에 대한 정보들을 꾸준히
수집하고 또 검토해오던 가운데, 그 일부분을 '꿈의 신기술을 찾아서-일본 탐방편'이라는
제목으로 98년에 출간 소개한 바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출현하고 있는 신과학
적 개념들과 획기적인 신기술들에 대하여, 필자는 무조건 이를 수긍하거니 혹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치부해버리는 사고 방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갈릴레이들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서 먼저 그들의 망원경을 한 번 들여다보는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그러한 연후에
야, 새로운 갈릴레이들의 색다른 지동설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몇 년 동안 수집된 정보들 중에서, 반중력, 텔레포테이션 그리고 초효율의
신에너지 장치들을 실제로 발견하고 또 개발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소개하였다.
1장부터 3장까지는 반중력 장치를 소개하고 있다. 1장에서 소개되는 허치슨 장치는 비단 반중
력뿐 아니라 상온 원소 변환 현상과 텔레포테이션 현상까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실러
경이로운 장치이다.
이어서 2장과 3장에서는 반중력 장치 개발의 선구자로 유명한 미국의
타운젠트 브라운과 영국의 토마스 셜이라는 발명가들이 소개된다.
3장의 후반부에서 최근에
언급되고 있는 반중력 연구의 대표적 사례들 중에서 몇 가지를 개략적으로 소개하였다.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불현듯 만유 인력의 개념을 발견하였던 유명한 일화 이후로,
중력 현상을 만유 인력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현재의 과학적 이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공식적으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중력에 반대되는 반중력 현상의 가능성을 진지하
게 생각하는 과학자도 아직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계의 상황과는 반대로
대중적 차원에서는 반중력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아마도 최근에 세계 도처에
서 UFO의 출몰이 빈번해지면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필자의 개인적 관점으로는 UFO 자
체보다 이러한 새로운 차원의 비행 물체를 지구인의 손으로 만들고자 하였던 이들 발명가의
이야기가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4장에서는 구체적인 검증 자료는 빈약하지만 많은 사람
들의 흥미를 일으키는 텔레포테이션 현상과 이 현상이 실제로 발생하였다고 추측되는 역사
적 사건인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
텔레포테이션 현상이 객관적으로 발생하였는지 어떤지는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객관
적 증거가 없다. 하지만 이 사건 속에는 유명한 발명가 및 과학자들 즉, 니콜라 테슬라, 타
운젠트 브라운, 빌헬름 라이히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있어서 과학적 입장이라기보다
사건 추적적인 관점에서 그 내용을 요약 소개하는 것으로 그쳤다.
5장에서는 공간 에너지를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기상을 조절하고 또 맑은 날씨에서도 인위적으로 구름과 비를 만들어
내는 소위 인공 기상 조절 기술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였으며,
6장에서는 이러한 기술의 창시
자이자 동양의 기라는 개념과 거의 동일한 오르곤 에너지 개념의 제창자로서 빌헬름 라이히
라는 과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신과학 기술들 중에서도 청정한 신에너지를 목표로 개발되는
신기술들은 현재의 에너지와 환경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
를 가지고 있다. 기존의 환경 파괴적인 에너지 기술과는 달리, 이들 신에너지 기술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초효율의 신에너지 장치 또는 무한 동력 장치들이다. 이;러한 장치
들이 이론적으로 정말 불가능한 것인지 혹은 신과학적 개념에서는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현재까지도 가장 완벽한 무한 동력 장치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스위스의 M-L 변환 장치를 7장에서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현재 새로운 초효율의 신에너지 장치들은 전세계적으로 매우 많은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
다. 이들의 전체적인 현황을 9장과 10장에서 개략적으로 소개하였으면 이들 중에서 N-머신
이라는 초효율 장치를 구체적으로 8장에서 소개하였다. 현재에는 N-머신 보다 훨씬 획기적
이고 성공적인 초효율 장치들이 많이 보고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N-머신 장치를
독립적인 사례로 소개한 이유는 20여 년 전 미국 내에서 초효율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초
효율 에너지 장치를 설명하기 위해 공간 에너지 개념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기 시작한, 대표
적인 초기 신에너지 장치라는 역사적인 측면이 감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발명가들 외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조류를 형성시키고 있
는 주요 인물로서 소개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매혹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미 몇 권의 책으로 국내에도 소개하였다. 현재의 과학 기술은 엔트로피 증가에 따른 파괴
적인 죽음의 기술이라 단언하면서 나선형 소용돌이 형태로 대표될 수 있는 대자연의 참된
운동법칙인 엔트로피 감소의 생명의 기술을 강조하였던 오스트리아의 발명가 빅터 샤우버거
의 일대기는 "아인슈타인은 틀렸다-빅터 샤우버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가장 먼저 번역 출
간되었다. 그 후에 빅터 샤우버거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소개와 미국의 천재적인 대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의 일대기는 가까운 후배들에게 넘겨져 최근에 번역 소개되어졌다. 또 기(氣)
의 과학자라 호칭해도 좋을만한 이색적인 과학자 빌헬름 라이히의 일대기 역시 조만간 번역
소개될 예정이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새로운 갈릴레이들과 그 추종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사실은
현재의 과학이 또 하나의 새로운 과학 혁명기에 들어서고 있는 징후로 파악할 수 있다. 그
러한 상황 속에서 열린 마음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고 동시에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 균
형잡힌 태도가 절실하다.
이 책에 수록된 내용들이 비교적 과학적인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더라도,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정보 차원에서 소개해 본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이 작업
들을 시작하였다. 그러한 도중에 도움 준 이들이 실로 적지 않다. 그 모든 분들게 이 기회를
빌어 감사를 드린다. 또한 자료 열람에 도움을 주었던 방건웅 박사님과 신연호 선배님에게
는 특별히 그간의 고마움을 표해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현재까지도 '한마음과 심성 과학
연구'라는 주제하에 특별한 인연의 도움을 계속 주고 계시는 현대불교신문사의 김광남 사장
님과 에너텍 코리아의 배연수 사장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을 빠뜨리고 싶지 않다.
끝으로 이 책의 편집과 출판을 떠맡았던 도서출판 모색의 권영선 사장님 이하 편집부 식
구들 그리고 새문명아카데미의 송회식 원장님과 연구진들에게 우의의 정과 함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허창욱.
제1장 경이의 허치슨 장치
-반중력, 물질 변화 그리고 텔레포테이션
1980년대 캐나다의 발명가 존 허치슨이 발명한 장치는 중력 제어와 반중력 현상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실례이다. 허치슨 효과로 명명되는 이 현상은 최근
전세계의 진보적인 과학자들에게 충격과 경이의 화제 거리였다. 허치슨의 장치 속에서는 반
중력에 의한 물체의 공중 부양 현상뿐 아니라, 상온 원소 변환 현상을 동반하는 물질 파괴
현상과 물체가 공간 이동하는 텔레포테이션 현상, 그리고 아주 드물게는 기상 조절 현상까
지 발생한다. 기존의 과학 이론으로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이러한 경이로운 현상들이
실제로 발생하였으며, 이중 많은 부분이 공개 시현을 통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제로 확인
되었고 또한 비디오로 쵤영되어져, 사실의 객관성을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소개되
고 있다. 이 허치슨 효과를 가장 먼저 살펴봄으로써 '반중력'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허치슨 효과
허치슨 효과라고 이름 붙혀진 이 현상들은, 1979년 캐나다의 존 허치슨에 의해 처음으로
관찰되고 연구 개발된 것으로서, 전자기장의 특수 교란에 의해 발생하는 어떤 미지의 효과
에 의해서 물체의 공중 부양 및 파괴 현상 등이 발생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1988년 캐나
다에서 열린 제 3차 뉴에너지 테크놀로지 심포지엄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 발표되었고, 또
한 그동안의 성공적인 실험 결과(물체의 공중 부양 및 파괴 현상)를 담은 비디오 자료가 상
영된 이후, 전세계의 진보적 과학 그룹들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기술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개발자인 허치슨 본인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개석상에 나서기를 꺼려하였
는데, 그의 동료이자 심포지엄 빛 비디오 해설을 담당했던 조오지 하타웨이에 의하면, 허치
슨은 자신의 기술이 군사적 용도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뉴에너지 관
련 신기술들이 전세계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호응하여, 허치슨은 1994년 제2
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에서 자신의 장치에 대한 상세한 제작법을 완전 공개하였다. 이
결과로 더 많은 재현 결과들이 얻어질 전망이지만, 아직까지도 공중 부양 및 파괴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이론적 정립은 숙제로 남겨져 있다.
반중력에 의한 물체의 공중 부양이나 원소 변환을 동반하는 물질 파괴 현상을 일으키는
허치슨 효과 장치 시스템은 일반인들에게는, 두 개의 테슬라 코일을 마주 보게 설치한 다음
방전을 일으키면 그 사이의 공간에서 물체의 공중 부양 및 파괴 현상 즉, 허치슨 효과가 발
생하는 것으로 막연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많은 장치들의 특수한 조합과
배열이 요구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장치 시스템의 전원
을 켜고 장시간 장치를 가동시키다 보면 어느 특정 영역에서 허치슨 현상이 발생한다. 이
공간은 장치들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 있다. 비디오 화면을 통해서 보면, 이 공간에 놓아둔
물체들이 저절로 공중 부양하는 현상과 저절로 파괴 절단되는 현상을 또렷이 볼 수 있다.
공중 부양 현상으 경우, 물체의 종류와 무게는 거의 상관이 없어 보인다. 나무나 플라스틱
같은 비금속류나 20kg 정도의 아령과 같이 무거운 금속 물체도 아주 쉽게 공중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공중 부양 현상은 허치슨 연구팀에 의해 직접 제작되어 공개된, 첫 번째 비디
오 자료(88년 캐나다 심포지엄에서 상영)에 가장 잘 드러나 있으며, 또한 미국과 영국 그리
고 일본의 취재팀들이 직접 방문 촬영하여 TV에서 방영한 영상 자료에서도 선명하게 나타
나고 있다.
물질 파괴 현상을 담고 있는 비디오 화면들은 더욱 기막힌 장면들을 보여준다. 마치 염력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가 몰래 숨어있기라도 한 듯, 가만히 놓여있던 구리 숟가락이 저절로
구부러지고 커다란 알루미늄 파이프가 엿가락처럼 비틀어진다. 아주 단단한 강철 막대기조
차 저절로 무처럼 조각조각 부서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조각난 금
속 파편들을 정밀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순수한 강철 막대기를 파괴시켰을 때, 파편 부분에
서 실리콘 원소들이 대량 검출되었으며, 알루미눔 조각을 파고시켰을 때의 파편 부분은 절
반 이상이 구리 원소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는 물체의 단순한 파괴 현상
과 동시에 원소 변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중 부양 현상과 물질 파괴 현상
물체가 공중으로 부상하고 또 한편에서 저절로 파괴되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하여 허치슨
의 동료였던 하타웨이는, 1988년 캐나다의 제3차 뉴에너지 테크놀로지 심포지엄에서 처음으
로 상세한 발표를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을 일부 인용해보기로 하자.
"오늘의 강연에서 나는 허치슨 효과라고 우리가 명명한, 새롭고 경이로운 현상들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이 현상들은 고압 발생용 장치인 테슬라 코일들과 반데그라프 정전기 발생
장치들을 포함한 몇 가지 전기 전자 장치들의 특수한 시스템상에서 관찰되어진 것인데, 이
현상들 속에는 물체가 순식간에 공중 부양해버리고, 또 아무런 접촉이 없는데도 강철 파이
프 등이 저절로 파괴 절단되는 등의 지극히 놀라운 현상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1년에
우리는 이러한 경이로운 허치슨 효과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파로스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의 기술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허치슨이 발견한, 이 이상한 현상은 그 자체가 환상적으
로 보여진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연구의 초창기에 이 현상이 언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조
차 완전히 뜬구름 잡는 격이었습니다. 실제로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기 위해서
는 장치를 가동시켜 놓고, 짧게는 6시간에서 어떤 때는 최고 6일 간을 그 앞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했으니까요. 이러한 점은 우리에게 연구 자금을 지원해줄 스폰서를 구하는 길을 가
로막은 커다란 장애물이었습니다. 제아무리 흥미로운 일이 발생한다 해도 6일 간을 꼼짝않
고 지켜보고 있을 재력가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요..."
이러한 이유때문인지 하타웨이는 허치슨 효과가 발생하는 순간을 비디오 영상으로 담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1980년에서 1986년까지 파로스 테크놀로지 시절의 연구 기간 동안
허치슨 효과에 의한 공중 부양 자연과 금속 물체의 파괴 장면 등을 꾸준히 비디오로 촬영,
총 90분 정도의 필름으로 편집하여 1988년의 캐나다 뉴테크놀로지 심포지엄에서 하타웨이에
의해 상영되었던 것이다. 이 비디오 중의 몇 장면을 해설하는 하타웨이의 말을 계속 들어보
자.
"이 비디오 자료의 앞부분에 소개된 물체의 공중 부양 장면들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의
다양한 물체들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부상하는 현상들을 관찰할 수 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으로서 공중 부양하는 물체들은 모두 한결같이 공중으로 부상할 때에 나선형으로 회전하
는 현상이 주목되어집니다. 마찬가지로 공중 부양 실험을 위해 물체를 실험대 위에 놓아두
는 형태도 영향을 미칩니다. 실험대 위의 똑같은 장소에서도 물체를 옆으로 뉘어놓은 것은
공중 부양하지 않고 수직으로 똑바로 세워놓은 것만 공중으로 부상하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허치슨 효과 장치에 의해 어떤 미지의 에너지장이 발생되고, 이 에너
지장과 물체 사이에 어떤 공명이 일어날 때에 공중 부양 현상이 발현되는 것으로 짐작됩니
다. 대체적으로 물체가 공중 부양하는 패턴들을 정리해보면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
니다. 첫 번째 물체의 부상 형태는 긴 포물선을 그으며 수 초 동안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다
른 장소에 낙하하는 타입입니다. 두 번째로, 아주 순식간에 공중으로 발사되어 마치 탄환처
럼 날라가서 천장에 부딪치거나 꽂혀버리는 패턴인데, 실제로는 이 형태의 공중 부양이 가
장 흔하게 관찰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어떠한 가속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공중으로
부상하는 패턴이 있는데, 이 형태가 진정한 반중력 현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정한 높이의 공중에 잠시 정지해있는 현상도 드물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중 부양
현상에서는, 물체의 종류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이는데 종이 조각이든, 나무 판대기든, 쇠
붙이와 금속 조각 등과 물과 같은 액체도 공중으로 솟구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허치슨의 장치에서는 어떤 형태로 특별한 에너지 공간을 유도하고 있으며 이 에너지 공간
속에서 반중력과 물질 변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확실한 것 같다. 허치슨 효과에 의
한 물체 파괴 현상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이 있는데 즉, 영구 자석을 파괴시키는 실험
을 통해 어느 정도의 단극 자석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영구 자석은 분자 수준
에서 이극성(N극과 S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영구 자석을 반으로 쪼개어도, 그 반 조각은 다
시 N극과 S극을 가지는 또 다른 영구 자석이 된다. 따라서 N극 혹은 S극 만을 가지는 단
극 자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재 과학계의 통설이다. 하지만 허치슨 효과에 의해 파괴된
영구 자석 조각들은 단극 자석의 경향성을 강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자석 전체의 90%가 N
극이고 10%만이 S극으로 존재하는데, 따라서 자석 전체는 N극의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적 증거는 최근 공간 에너지 연구가들이 전자기학-특히 자기장에 대해 전면적
으로 새로운 이론들을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일본의 반중력 연구가인 세이케는
실제로 N+S=N극의 성질을 보여주는 삼극의 특수 자석을 제작하여 실험에 사용하고 있으
며, 1950년대에 이미 무인 비행 접시를 완벽하게 제작 성공하였던 것으로 전해지는 영국의
존 셜이 자신의 장치에 사용하였던 특수 자석에도 단극 자석이 사용되고 있다.) 물체의 공
중 부양 현상과 물질 파괴 현상에 대한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에 대하여 허치슨 본인은 다음
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1. 물질의 변형, 파괴, 절단 등의 현상들은 대부분 금속 샘플들-쇠막대기, 알루미늄 파이
프, 기계 부속품 등에서 발생하였으며 아주 드물게 나무재질의 물체 파괴 현상도 관찰되었
다. 2. 알루미늄이나 구리 등의 금속 샘플들의 파괴 현상에서 파괴된 절단면을 분석한 결과,
원소 변환이 발생하였음을 확인하였다. 3. 공중 부양 현상은 모든 물체에서 발생하였으며 일
반적으로는 보통 20kg의 무게까지 가능하였다. 4. 물체가 공중 부상하는 스타일은, 대부분
미사일처럼 발사되어 순식간에 천장에 부딪치는 패턴이나, 어떤 경우에는 아주 서서히 등속
도로 공중 부상하기도 하였다. 수직 방향의 공중 부양뿐 아니라 수평 방향으로의 이동 현상
도 자주 관찰되었다. 5. 공중 부양과 물체 파괴 현상외에 자주 관찰되었던 현상으로는 물질
투명화 현상이 있다. 장치를 가동시켜 실험을 행하고 있노라면, 실험대 위의 샘플들 중에서
일부분이 순간적으로 가물거리듯이 깜박깜박거리는 현상이 자주 관찰되었는데, 이 장면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 화면을 세밀히 들여다 보면, 이 순간에 샘플의 일부분이 마치 물처럼
순간적으로 투명해져 있느 것을 볼 수 있다.
최초의 발견, 그리고 현재
허치슨이 이러한 공중 부양 현상 등을 발견한 것은 극히 우연적인 일이었다. 1979년 캐나
다 벤쿠버에 위치한 그의 지하 실험실에서 허치슨은 테슬라 코일 등의 고전압 발생 장치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당시 허치슨은 19세기 말 교류 발전기를 최초로 개발함으로써 인류에게
교류 전기를 선사한 그 유명한 니콜라 테슬라가 성공적으로 개발했다고 전해지는 무선 전기
송전 실험을 재현해보려는 희망이 있었다.
테슬라 코일 등의 장치를 작동시키고 있던 중에 허치슨은 갑자기 어깨 등 뒤에 예리한 통
증을 느꼈다. 그의 뒤쪽에서 조그만 금속 조각이 날라와 자신의 어깨를 때린 것이다. 처음에
허치슨은 누군가 숨어서 자신을 놀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하지만 실험실 안에는 자
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허치슨은 이 이상한 현상을 밝혀내기 위해 처음에는 초상 현상과
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가까운 서점에서 초상 현상에 관한 전문 서적을 뒤적거리
다가, 서점 주인이자 초상 현상 연구가이기도 한 멜 윈필드를 만나게 되었다. 허치슨의 이야
기를 듣고난 윈필드는 오히려 허치슨이 경험한 이상한 현상은 전자기장의 교란 및 소용돌이
에 의해 무언가 미지의 새로운 에너지장이 형성되어 발생한 것이 틀림없다고 허치슨을 일깨
워주었다. 허치슨은 윈필드의 창고에 쳐박혀있는 반데그라프 정전기 발생 장치를 발견하였
는데, 이것을 보자마자 자신의 장치 시스템에 도움이 될 것을 직감한다. 이렇게 하여 우연히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가 첨가되었다. 얼마 후, 윈필드는 허치슨을 사이킥 연구 전람회에 데
리고 가서 알렉시스 페자로라는 이름의 사업가를 소개시켜 주었다. 페자로는 다시 자신의
친구인 조오지 하타웨이라는 엔지니어를 허치슨에게 소개시켰다. 이렇게 하여 새로 만난 세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허치슨이 발견한 이 현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기로 작정하고 구체
적인 계획을 세워나갔다. 그들은 1982년에 파로스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의 주식회사를 설립
하였는데 이후, 1986년에 해체될 때까지, 허치슨 효과에 대한 대부분의 중요한 현상들이 이
시기에 개발되었고 또 비디오로 촬영되었다.
일반에게 최초로 공개 데몬스트레이션을 행한 것은 1983년이었는데, 어느날 미국 정부 요
원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사람들이 화서 실험의 참관을 원하였다. 이들은 자세한 소속을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미국 국방성 요원들이었던 것으로 허치슨은 추측했다. 여하간 이들
의 목전에서 최초의 공개 시현이 행해졌다. 실험을 위해 장치 시스템을 작동시키자 여러 가
지 현상들이 임의적인 위치에서 제멋대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허치슨은 이 이
상한 현상들이 발생하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 따라서 어떠한 현상이 언제 어디에서 일
어날 것인지를 전혀 예측할 수도 없었다. 실험실 벽에 걸려있던 유리 거울이 갑자기 박살나
더니 이어서 거울이 걸려있던 못이 저절로 벽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스위치를 켜
지도 않았는데 천장의 백열등이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는, 한쪽 구석에 쳐박
혀있던 커다란 구리 전선 꾸러미가 공중으로 떠올라 5m가량 떨어진 건너편 벽에 가 부딪혔
다. 이러한 장면들을 비디오로 촬영한 후, 그 사람들은 그냥 가버렸고 그들로부터 다시 연락
이 온 일은 없었다고 허치슨은 말한다. 여하간 이 첫 번째 공개 시현 후로 허치슨은 현상들
이 어느 정도 조절될 수 있도록 연구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파로스 테크놀로지의 자금 조달을 담당했던 페자로는 계속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을 실험
실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중에서 1985년에 맥도날 더글라스 항공사에서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조사팀이 허치슨의 연구소를 방문하였는데, 맥도날 더글라스 항공사의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조사팀이 허치슨의 연구소를 방문하였는데, 맥도날 더글라스 항공사의 엔지니어들
앞에서 공개 시현이 이루어졌고 그후, 이들 조사팀은 '벤쿠버 실험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공
식적인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아마도 이것이 허치슨 효과에 대한 최초의 객관적인 공식 자
료일 것이다. 이처럼 대외 교류가 더욱 빈번해지자, 허치슨은 자신이 연구에만 몰두할 시간
이 거의 없어져 있음을 절감하고, 이러한 문제로 파로스 테크놀로지팀들과 마찰이 빚어졌다.
1986년 4월에 허치슨은 일방적으로 파로스팀과 결별을 선언하고 홀로 연구에만 몰두하기로
결심하였다. 한편 허치슨과 함께 4년동안 연구를 도와왔던 하타웨이는 허치슨 효과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 결과들을 집약 정리하여, 1988년 제3차 뉴에너지 테크놀로지 심포지엄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였고, 그와 동시에 비디오 자료를 공개하였다. 이로부터 허치슨 효과는 전
세계의 신기술 연구자들에게 소개되었고 급격히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1988년에 허치슨은
BIRD회사의 그렉 랜드와 알프레드 샤터라는 사람들과 새로운 동업 관계를 시작한다. 이 시
절에 허치슨은 아주 색다른 경이로운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일종의 텔레포테이션
(공간이동) 현상이었다.
어느날의 일이었다. 여전히 실험에 몰두해있던 그는 실험실의 천장에 뭉게구름같은 이상
한 형체가 형성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그 속에서 쇠못들이 실험실 벽을 따라 쏟
아져 내리는 게 아닌가. 함께 실험실에 있었던 당시의 동업자 알프레드가 달려가서 확인해
본 결과, 이 쇠못들은 위층의 창고에 놓여져 있던 것들로 확인되었다. 위층에서 아래층의 실
험실로 나무 바닥을 통과하여 무수한 쇠못들이 이동해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
바닥에는 어떠한 자국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허치슨은, 이와 같은 물체 이동 현상은 초창기
연구 시절인 파로스 테크놀로지의 연구소에서도 가끔씩 관찰되었던 물질 투명화 현상의 연
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파로스 시절의 연구 동안에도 장치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있으면, 이따금씩 실험 샘플들 중에서 어떤 물체가 부분적으로 투명하게 변해버리는 현상이
자주 관찰되었던 것이다.
이 새로운 동업자들과의 관계는 일 년을 넘지 못하고 끝나버린다. 어느날 허치슨이 외출
한 사이에 동업자들의 부주의로 인하여 장치 시스템 중 일부분이 과열되어 파괴되었고, 그
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여 메스꺼운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 화재로 인하여 허치슨
의 실험실은 캐나다 환경 관리국의 조사를 받게 되고, 결국 그 다음해 환경 관리국으로부터
PCB오염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모든 장비를 폐기시킬 것을 통고받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동업자들이 실험실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해, 아예 그들과의 관계는 적대
적으로 변해버렸다. 결국, 재판 결과는 허치슨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일들
은 허치슨을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1989년 초에 허치슨은 자신의 연
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유럽의 몇몇 과학자들의 초청에 응해 서독과 오스트리아를 여
행한다. 이 기간 동안 유럽의 여러 과학자들과 조우하지만, 기존의 과학계에 자신의 연구 결
과를 이해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1990년 10월, 허치슨이 캐나
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벤쿠버의 자신의 실험실은 환경 관리국에 의해 대부분의 주요 장치
들이 이미 폐기되어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장비들 마저 생계비 조달을 위해서 고물상에
팔아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1991년경에 10년간에 걸친 허치슨의 연구는 거의 파
산 상태가 되고 말았다.
텔레포테이션과 기상 조절 현상
1991년에 허치슨은 'Extraordinary Science'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 동안의 연구 상황
과
결과들을 상세하게 밝히면서, 공중 부양 현상과 물질 파괴 현상외에 더욱 경이스러운 물질
공간 이동 현상과 기상 조절 현상이 발생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허치슨의 이야기를 일부
옮겨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라디오나 전축 등의 전자 부품이나 자동차 엔진 등의 기계 부
속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일들을 좋아하였다. 이 중에서도 무선 라디오 장치들을 수집하고
새로 만들어보는 일에 가장 큰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데, 1979년 당시 나의 실험실은 무선
라디오 장치들과 테슬라 코일들 및 잡다한 변압기들, 고주파 전파 발생기 등으로 가득찬 고
물상과 같았다. 어느 날 나는 테슬라 코일과 고주파 발생기 등을 사용하여 모종의 실험을
행하던 중에 전혀 예기치 않았던 기묘한 현상을 목격하였다. 이로부터 10여년간 이 현상들
을 재현시켜왔으며 군관계자, 항공회사 및 TV 방송국 관계자들 그리고 여러 과학자 그룹
등 총 700여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공개 데몬스트레이션을 행하였다. 이러한 시간들은 마치
미지의 신천지를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었으며 그 여행길을 알렉시스 페자로, 조오지 하타웨
이, 탐 비어덴이 함께 동반하였다. 나의 데몬스트레이션들 중 거의 절반 이상이 초창기 몇
년 사이에 행해졌고 비디오 촬영으로 기록되었다. 이 시기에 우리를 계속 당혹시켰던 것은
이러한 현상들-물체의 공중 부양이나 물질 파괴 등-이 한결같이 기존의 과학 법칙들에 위
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 자체는 확실히 발생하였으며 많은 사람들
이 목격하였고 비디오 영상 자료로 보관되어 있다. 초창기에는 하루에 평균 한 번 정도밖에
허치슨 효과를 발생시키지 못하였던 것에 반하여, 1986년에서 1990년 사이에는 거의 80%의
성공률로 하루에 5번 정도 허치슨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게 되었다. 전체 장치 시스템을 많
이 개량하고 보완함으로써 가능해진 일이었다. 훨씬 더 커다란 테슬라 코일을 사용하고 축
전기의 용량을 더 크게 하였으며 광역 주파수대의 고주파 발생기와 레이다 시스템을 구비하
였으며, 이들 장치들을 전체적으로 조절하기 쉽도록 파노라믹 스펙트럼 분석기와 레코더 그
리고 자장 측정 분석기와 다양한 모니터 시스템들이 추가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체 시스
템을 이용하여 나는 허치슨 효과를 보다 치밀하게 발생시킬 수 있었으며 또한 그전에는 보
지 못했던 새롭고 더욱 경이스러운 현상들을 접하게 되었다..."
허치슨이 말하는 새로운 현상이란 물질의 공간 이동 현상과 기상 조절 현상이다. 물질의
공중 부양과 파괴 현상보다 더욱 경이롭게 느껴지는 이들 현상들에 대해서는 허치슨의 연구
가 이내 중단됨으로써, 비디오 영상 자료나 공식적인 데몬스트레이션 보고서는 남겨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될 다른 연구가들의 실험 결과나 보고서 등을 감안한다면, 허치
슨 실험 장치의 효과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허치슨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
자.
"나 자신도 깜짝 놀랐던 새로운 현상의 일례를 말하겠다. 어느날 나는 공개 데몬스트레이
션을 준비하기 위해 장치 시스템을 홀로 점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골목길
옆에 서있는 전신주가 심하게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전신주가 하도 심하게 진동하는
바람에 매달려있는 전기줄이 마치 줄넘기할 때처럼 펄럭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언뜻 어떤
자동차가 전신주를 들이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자동차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나처럼 창문을 열고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다 보는
다른 이웃 사람들의 모습만 눈에 띄였다. 나는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황급히 실험실 안으로
달려가 장치 시스템의 전원을 차단시켰다. 바로 그 즉시 전신주의 움직임은 멈추었다. 또 다
른 놀라운 경험은 1986년의 어느날이었다. 나는 실험실에서 장치를 계속 작동시키다가 친구
와의 약속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치 시스템을 전부 끄고 외출하려고 문 밖을 나서자
마자 숨이 막히는 놀라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험실 바로 위의 높은 하늘에 거대한
먹구름이 형성되어 마치 나선형의 거대한 소용돌이 형상처럼 응집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은 언젠가 탐 비어덴이 언급하였던 기상 조절 공학을 나에게 상기시켰다.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을 것 같아 나는 급히 자전거에 올라타 달리기 시작했다. 500m도 채 못 가 빗방
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자전거 위에서 계속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그 특이한 나선형
형태의 구름 소용돌이는 점점 옅어지면서 일상적인 모양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어
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이젠 구름도 거의 사라져 가면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
것이 허치슨 효과에 기인한 현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강렬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1988년경에는 나의 실험도 상당히 조절 가능한 상황까지 진전되었다. 이 때의 실험 장면
들 중 많은 부분들이 비디오로 촬영되어 있다. 이 중에는 400kg이나 되는 무거운 변압기 장
치 자체가 공중으로 부양하는 기막힌 장면도 촬영되어졌는데 불행히도 이 필름은 내 손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 당시에 촬영되어 현재까지 비디오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경이로운 현
상으로서, 쇠못이 마치 미사일처럼 공중 부상하는 장면이 있다. 이 쇠못은 위로 치솟으면서
나무 판자를 뚫고 지나가고 있다. 이때 쇠못이 통과했던 나무 판자에는 아무런 흠집도 발견
되지 않았다. 마치 쇠못이 통과할 때에 나무 판자 자체가 일 순간 물과 같은 투명한 물질로
변해버린 것처럼... 이 현상은 초창기 실험 때에도 자주 발생하였던 금속 샘플의 투명화 현
상과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금속 물질들 중 일부분이 일순간 투명하게 변했다가 다시 원
래로 되돌아오는 현상이 종종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던 금속 샘플들 중 일부를
지금도 몇몇 과학자 친구들이 분석 검토하고 있다..."
허치슨 장치에서 마지막으로 발생하였던 인공 기상 조절 현상에 대해서는 허치슨 본인도
그다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940년대에 미국에서 빌헬름 라이히에 의해 개발되어
현재까지도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개량 발전되고 있는 인공 기상 조절 공학과 연관시켜 보
면 허치슨 장치를 통하여 기상 조절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한 인공 기상 조
절 공학에 내포되어 있는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해온 시, 공간에 대
한 기존의 관념 자체는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주 공간이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텅빈 진공 상태의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 미지의 근원 에너지로
가득 차있는 에너지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 개념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는 텔레포테이션과 반중력 현상 등을 총체적으로 설
명하기 위해서도 텅빈 진공이라는 기존의 과학적 개념은 새롭게 탈바꿈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제2부에서 상세히 소개될 것이다.
허치슨 효과는 여러 가지 반중력 연구 상황과 현재 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 개발되고 있
는 상온 핵융합, 상온 원소 변환 현상, 그리고 물체의 공간 이동 현상 등을 총망라하고 있으
며, 이들 제 현상들을 통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허치슨은 1990년대에 들
어와서 크리스탈 발전기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그 과
정에서 두 차례 일본 초청을 받아 강연을 했고, 이 방문을 통해서 몇몇 일본 과학자들과 밀
접한 교류를 나누게 되었으며, 현재 일본에서는 "경이의 허치슨 효과"라는 책이 출간되어
있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제2장. 반중력 연구의 선구자들(1)
-타운젠트 브라운의 반중력 연구
반중력 연구의 선구자, 타운젠트 브라운
대규모 텔레포테이션 실험으로 유명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를 담당하였던 실무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타운젠트 브라운은 최초로 전기 장치를 통한 반중력 발생
장치를 만든 과학자로 더욱 유명하며, 미국의 민간 UFO 연구 단체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자
랑하는 NICAP(인터넷 주소 http://www.li.net/rjcohen/nicap.html을 참조)를 1956년에 창립
한 장본인이기도 한다. 반중력 연구와 UFO 연구에서는 반드시 거론되는 브라운의 일대기와
연구를 개략적으로 소개한다.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은 1905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자네스빌에서 태어났다. 1922년에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Cal-Tech)에 입학하기 이전의 고등 학생 시절에 브라운은 이미 고전
압 장치를 통한 중력 조절 현상을 실험적으로 발견하였다. 칼텍의 대학 신입생 시절, 브라운
은 자신이 발견한 '전기력에 의한 중력 제어'라는 이 현상을 교수들에게 문의하고 다녔는데,
아마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전적으로 무시당하고 말았다. 그 당시 칼텍에 재직중이던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로버트 밀칸 박사는 이 당돌한 신입생에게 그것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한
발상이니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점잖게 타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브라운은 자신
의 생각을 이해해주는 교수를 찾아서 아예 대학을 옮겨다니기 시작했는데, 1923년에 인근의
케년 칼리지로 전학했다가 다시 1924년에는 덴니선 대학(Dennison Univ.)으로 옮겨갔다. 그
는 여기에서 마침내 자신을 이해해주는 비펠드 교수를 만나게 된다.
폴 알프레드 비펠드(Paul Alfred Biefeld) 박사는 1867년 독일 태생으로서 스위스의 취리
히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때 8명의 동창생 중 한 사람이 그 유명한 아인
슈타인 박사이다. 비펠드 박사는 독일에서 대학교수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당시의 덴니선
대학에 재직하면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는 한낱 풋내기 대학생인 브라운
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이로부터 비펠드 교수 연구실에서 4년
간 이들의 공동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서 이들은 최소한 1% 이
상의 중량 감소를 객관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었으며 이러한 실험 결과를 1929년에 '과학과
발명(Science and Invention)'이라는 학술 잡지에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중력을 제
어하는 혁신적 방법(How I Control Gravitatio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논문은 그 당시
의 과학계로부터 어떠한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1930년에 브라운은 워싱톤의 해군연구소(Naval Research Lab)에 취직하는데 이때부터
1952년까지 20여년 동안, 그의 실제 관심사였던 반중력 연구보다는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다양한 분야의 전문 기술자로 근무하면서 경력을 쌓게 된다. 해군연구소 근무 시절에
는 레이다 개발 관련 업무에 주로 종사하였는데, 브라운은 이때 해군에서 실시한 세계 중력
지도 작성(International Gravity Expedition) 프로젝트와 존슨-스미스니언 심해 탐험
(Johnson-Smithsonian Deep Sea Expedition)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연구와 탐사활동을 수행
하기도 하였다. 1933년부터 이들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중단됨에 따라 해군 예비
대에 소속되어 여러 가지 잡다한 제반 기술 보조 업무를 맡게 된다. 1939년에 해군연구소를
퇴직하고 메릴랜드로 이사하여 잠시 민간 기업체에 취직하였지만 바로 이내 군복무 징병이
실시되어 해군 장교로 군복무를 다시 하게 된다. 해군 장교로서 브라운에게 맡겨진 연구는
주로 전자기장이나 초음파를 사용하는 기뢰 제거 작업을 연구하는 활동이었는데, 바로 이
시기인 1939년에서 1942녀까지의 기간 동안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관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2년에 브라운은 해군 소령의 지위로서 버지니아 노폴크에 위치한 해군 레이다
스쿨(Navy Atlantic Fleet Radar School)의 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얼마 후인 1943년에 심
한 신경성 질환을 앓게 되어 군의관의 권고로 결국 해군 장교 생활을 퇴임했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영화와 책을 통해 소개된 이래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1940
년경 미 해군에서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알려진 저 유명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실
제로 있었던 일인지, 그리고 이 사건의 증언자들이 주장하듯 타운젠트 브라운이 이 실험에
실제로 깊숙히 관여했는지 어떤지는 아직도 명백하게 규명되고 있지 않다. 필라델피아 익스
페리먼트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브라운에게 이 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브라운 자신은 아주 간략한 몇 마디 말외에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
였다. 그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책이 출간된 이후인 1980년대 초에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레이놀드에게 사적으로 말하기를, 윌리암 무어가 저술한 그 책은 실제보다 훨씬
과장된 부분이 많다고 간략히 언급하였다는데 정작 과장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
혀 언급을 회피하였다.
레이놀드는 1994년에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던 타운젠트 브라운의 추모 기념 페널 토론
회에서 저명한 물리학자 엘리자베스 라우셔 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이러한 브라운의 이야기
를 재삼 언급하고 있다. 이 토론회에서 라우셔 박사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대해 색
다른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텔레포테이션과
시, 공간 여행이 실제로 발생하였다기보다 이 실험에서 집단 환각 상태가 발생하여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실제로 특수 전자기장
은 인체의 두뇌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으로서 일지적인 기억 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 라
우셔 박사는 이러한 현상과 마찬가지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 군함을 레이다에 포
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강력한 전자기장을 발생시켰다면 이 전자기장의 영향에 의해
전체 승무원들이 일시적인 정신 착란 상태에 빠져서 마치 자신들이 실제로 시, 공간 여행을
겪은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여하간 1940년경에 필
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진행되었다는 바로 그 시기에 타운젠트 브라운은 실제로 해군의
레이다 전문가로서 노폴크에서 근무하던 중이었으며, 1943에는 심한 신경성 질환을 앓았고
이 때문에 군의관의 권고에 따라 해군 복무를 은퇴하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상
황들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와 실제로 어떠한 관계였는가는 브라운 자신 또한 결코 언
급한 적이 없으므로 여전히 미스테리일 뿐이다.
UFO와 같은 새로운 비행체 개발
1943년에 해군에서 은퇴한 이후로 브라운은 몇몇 민간 기업체와 연구소 등에 레이다 기술
자문을 해주는 것으로 생업을 삼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다시 반중력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
했다. 초창기에 그가 발견하였던 고전압에 의해 반중력 발생을 응용하여 새로운 타입의 비
행체를 개발하는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1950년대에 이르자
실제로 소위 반중력 비행 접시를 꿈꿀 수 있는 단계의 가시적인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었다.
1952년 미국에서는 로스웰 사건이라고 명명된 외계인 비행 접시 추락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 사건의 진위 여부와 UFO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사회적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시기에 맞
추어 브라운은 1952년에 오하이주의 클리블랜드에 정착하여 그가 윈터하벤 프로젝트라고 이
름붙힌 공중 부양 비행 접시 제작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이를 위해서 정부 기관 및 여러 단
체들에게 지원 협조를 요청하는 안내문을 송부한다.
힌편, 50cm크기의 소형 원반형 장치를 제작하여 이 장치가 천천히 공중 부양하는 모습을
1953년에 최초로 공개 시현하였다. 50kW의 고전압으로 충전된 이 장치는 초속2m정도의 속
도로 공중으로 수직 상승하는데, 이 당시의 공개 시현 장면은, 당시 세계의 여러 잡지들에서
도 상세히 소개되었다.(스위스에서 발간되니 항공 전문지〈Interavia〉잡지의 1956년 봄 제6
권 제5호에 브라운의 반중력 연구 전모와 최초의 공개 시현 장면이 가장 상세히 수록되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브라운의 시도와 노력들은 실질적으로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정부
기관이나 연구소 등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브라운의 연구 결과에 대해 비교적 냉담한 편이었
던 것이다. 브라운과 관련이 있었던 미 해군연구소는 최초에는 관심을 가지고 브라운이 제
시하는 프로젝트에 대하여 실효성 여부를 조사 검증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미 해군연구
소 자체 조사팀을 구성했지만, 이 조사팀은 오히려 브라운의 장치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
를 제출하였고 이것이 다른 정부 기관 등에서도 브라운의 연구를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1952에 작성된 미 해군연구소(Office of Naval Research)
의 자체 보고서는 현재 공개되어져 있다. 이 보고서에는 그 당시의 브라운의 연구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조사 수록하고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브라운의 윈터하벤 프로젝트가 실효성
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근거를 크게 두가지 점에서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로, 브라운의 연구 결과가 과연 반중력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브라운이 만든 장치가 수직으로 공중 부양하는 것은 반중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일종의 공
기 바람의 힘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뒤에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브라운의 반중력 현상이란,
고전압의 (-)극에서 (+)극쪽으로 미지의 새로운 추진력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미지의
새로운 추진력은 브라운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중력 제어 현상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
라, 고전압으 (-)극과 (+)극 사이에서 공기층이 이온화 되고, 이온화된 공기가 일종의 젯트
형 돌개 바람을 일으키면서 이 바람의 힘에 의해 장치가 위로 들어올려지는 것으로 보인다
는 것이 조사팀의 결론이었다. 브라운의 공중 부상 장치가 공기 바람에 의해서 추진력을 얻
고 있다는 첫 번째의 결론이 사실이라면, 이 장치는 공기층이 희박한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
나 진공 상태와 같은 우주 공간에서는 추진력이 발생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주 여행을 위
한 새로운 비행체 제작의 원리로는 부적당하다는 것이 미 해군연구소 조사팀의 두 번째 결
론이었다. 또한 이 보고서는 당시에 새로운 비행 추진 장치로서 한창 각광받기 시작한 화학
연료 로켓 엔진과 브라운 장치를 서로 비교하면서, 공기층이 존재하는 대기권 내에서 비행
한다 하더라도 브라운 장치는 로켓 엔진에 비해 그 효율성이 매우 뒤떨어진다고 결론짓고
있다. 미 해군연구소의 이러한 결론들은 다른 군 당국이나 정부 관련 기관들이 브라운에게
자금 지원을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짓게 한 가장 커다란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보고
서의 두가지 결론이 모두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53년 이후 브라운은 잠시 미국을 떠나 1956년까지 주로 유럽을 돌아다니며 그의 연구
결과와 장치를 소개하고 또한 이 시기에 더욱 진전된 자신의 연구 실험 결과들을 발표하게
된다. 이때의 실험들은 미 해군연구소의 보고서를 의식하여 주로 공기가 전혀 없는 진공 상
태의 조건 하에서 자신의 장치를 실험한 것인데, 이 실험을 통하여 공기가 전혀 없는 상태
에서도 공중 부양 현상은 여전히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던 것이다. 따라서 미 해군연
구소 조사팀이 주장하는 첫 번째 결론 즉, 브라운 효과가 단순히 이온화된 공기들의 돌개
바람이라는 주장은 전혀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 중력 제어와 같은 미지의 새로운 힘이 발생
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두 번째로 미 해군연구소 보고서에서 지적한 로켓 엔진과
의 효율성 비교 측면 역시 브라운 장치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쪽으로 이 당시의 몇몇 항공
기술 전문 회사들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세계의 항공 기술 개발 동향을 전문
적으로 조사 수집하는 싱크탱크 연구소인 영국의 항공기술연구소(Aviation Studies Ltd.)가
1956년 초에 작성한 보고서가 극히 최근에 와서 세상에 공개되어졌는데, 이 보고서에는 미
래의 가장 유망한 새로운 항공 우주 기술로 브라운 장치를 거론하면서 그 자세한 연구 내용
과 실험 결과들에 대한 정보 수집이 일찍이 추진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영국뿐 아니라, 당시 브라운에게 자금 지원을 거절한 미국 국방성 또한 마찬가지였음이 밝
혀지고 말았다. 미 국방성에서는 1954년도부터 비밀리에 브라운 효과를 이용하는 새로운 비
행체의 제작을 계획하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56년 프랑스의 항공기술연구소 SNCASO(La Societe Nationale de Construction
Aeronautique Sud Duest)에서의 연구와 실험을 계기로 브라운은 세계적인 명성과 관심을
얻긴 했으나 실제적인 자금 지원을 얻지는 못한 채 유럽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 온
다. 미국으로 와서 브라운이 가장 먼저 착수했던 일은 본격적인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스스
로 조성하는 사업의 일환으로서 후원회 성격의 민간 단체를 결성하는 일이었다. 브라운은
자신의 반중력 연구에 많은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외계인 비행 접시 장치, 소위 UFO
를 연구하는 민간 단체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한다. 그러나 NICAP(National
Investigative Committee for Aerial Phenomena)라는 이름의 이 UFO 조사 연구 단체와의
인연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다음 해인 1957년에 브라운은 과격해지는 협회의 성격과 방만
한 재정 관리에 관해 다른 이사진들을 추궁하게 되고 결국은 브라운 자신이 창립한 이 협회
에서 스스로 발을 떼고 만다. 하지만 이 단체를 설립하여 외형상 UFO 연구를 표방하였던
사실 그 자체가 브라운을 정통 과학계에서 결국은 소외당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로서 UFO 연구를 공식적으로 내세운 것은, 과학자로서의 그 자신의 명예를 공동 묘지
에 처박아넣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부터 정통있는 미국
과학 잡지에서는 브라운의 연구 자체를 잡지에 게재하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러한 불행과는 달리 1957년은 브라운에게 행운의 해이기도 하였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꿈과 연구에 완벽히 동의하는 앤그뉴 밴슨이라는 기업가를 만나게 된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밴슨 주식회사의 사장인 앤그뉴 밴슨은 개인적으로 우주 여행을 마지막 소망으로 삼
고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들었을 때, 이 사람의 연구야말로 자
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작업을 실제
로 진행시키기 위해 밴슨 사장은 자기 회사 내에 화이트홀-랜드 프로젝트(Whitehall-Rand
project)라는 반중력 비행체 개발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 과제를 브라운에게 위임한다. 이로
부터 몇 년 간 브라운-밴슨 연구실이 운영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많은 연구 결과가 가시적
으로 진행되었다.
브라운과 밴슨은 초기 2년 동안 자신들이 제작한 장치들과 그 작동 상황을 틈틈이 비디오
로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는데, 이 필르은 아마도 반중력 연구라는 테마를 통틀어
가장 최초의 비디오 영상 자료일 것이다. 총 50여 분 정도의 이 비디오 영상 장면 가운데
1958년 1월 17일자로 기록되어 있는 실험 장면 하나를 살펴보자. 우산 형태로 생긴 전체 무
게가 약 60g의 장치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 164kV, 1mA의 고전압 전기를 흘려
보내자 이 장치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이다. 만약에 바람을 이용하여 이러한 장
치를 똑같이 공중으로 들어올리려면 적어도 초속 10피트의 풍속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장
치가 공중 부상하고 있는 연구실 내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공기 흐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영상 장면은, 브라운 장치에서는 전기력에 의해 반중력과 유사한 새로운 힘이 발
생하고 이 힘이 실제로 중력을 극복하여 공중 부상시킨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활발히 연구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행운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는 못하였
다. 1964년에 밴슨 사장이 비행기 추락 사건으로 갑작스레 사망함으로써 연이어 브라운의
연구도 된서리를 맞았던 것이다. 그 이후 브라운 자신이 직접 진행한 연구 결과는 별로 없
다. 1965년 당시 이미 브라운의 나이는 60세였으며 1985년에 80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기까
지 브라운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다른 과학자들에게 소개하는 일만으로도 힘에 버거웠다.
최근에 와서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이라고 명명되는 브라운의 전기-중력 조절 실
험은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을 뿐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활발한 연구 실험이 전
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혁명적인 과학적 발견과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
이라는 천재적인 과학자의 이름은 그 어떤 과학 교과서에서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비펠드-브라운 효과
1924년경 덴니선 대학에서 브라운과 비펠드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를 진전시켰던 전기-중
력 제어 현상인 비펠드-브라운 효과(Biefeld-Brown Effect)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브라운은 고전압의 전기로 충전되어 있는 두 개의 축전지(Capacitor)사이에는 (-)극
쪽에서(+)극 쪽으로 밀어주는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을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다. 판대기 모양의 두 장의 콘덴서를 사용하여 한 쪽은 음극으로
충전시키고 다른 한 쪽은 양극으로 충전시켜서 실로 매달아두면 음극 쪽으로 밀려가는 현상
이 발생한다. 이것을 수직선 상으로 위치시켜서 천칭 저울로 실험해보면 결과적으로 중량의
증가(가중력 현상)와 감소(반중력 현상)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극이 아래쪽에 위치해 있
을 때는,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중량이 감소하는 반중
력 현상이 나타나고, 이와 반대로 (-)극이 위쪽에 위치해 있을 때는,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가중력 상태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을 브라운은
'비펠드-브라운 효과'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단순하게 보이는 현상들이 의미하는 바는 실
로
엄청난 것이었다.
1860년대에 미카엘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이후, 전기력과 자기력
이라는 두 가지의 힘은 하나의 관계식으로 연결되어졌고, 현재는 전자기력이라는 용어로 통
합된 상태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전자기력과 중력은 서로 관계가 전혀 없는 별개의 힘으
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들을 서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어떤 현상이나 관계식이 발견된 적도
없는 상태이다. 브라운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전기력에 의해 중력이 발생
할 수 있다는 극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이 연구
를 전기-중력학(Electrogravitics)이라고 호칭하였다.
브라운은 이 이론으로 UFO의 비행 원리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나아가 실제로
UFO와 유사한 비행기를 제작하는 데에 평생을 바치게 된다. UFO가 중력에 반하여 서서히
수직 상승할 때는, 원반형의 비행체 아랫 부분은 (-)전기로 충전되고 윗 부분은 (+)전기로
충전된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비펠드-브라운 효과에 의해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는 중력에 반하여 수직 상승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UFO가
공중에서 수평 비행할 때는, 비행체 앞 부분에 (+)전기가 충전되고 뒷부분에 (-)전기가 충전
되는 상태로 변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수평적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를
앞으로 밀어주게 된다. UFO의 비행원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는 이러한 전기-중력 발생 현상
을 이용하여 UFO와 흡사한 형태의 새로운 자동차나 비행기를 실제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
라고 브라운은 생각하였다. 1929년에 '과학과 발명(Science and Invention)'잡지에 게재하
였
던 논문에서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중력 발생 장치는 실제로 대단히 유용한 새로운 형태의 동력 발생 장치이기도 하다.
현재의 대부분 전기 모터 장치들이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장치는
새로운 전기-중력 발생 현상을 이용한다. 단순한 모양의 중력 발생 장치에는 기존의 장치처
럼 회전하는 기계 부분이 전혀 없으며 장치 자체가 전체적으로 움직여 나간다. 따라서 기존
동력 장치에서 필요한 기어나 동력 전달축 그리고 프로펠러 등이 전혀 필요없으며 그러면서
도 아주 효율적인 동력 발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마찰 부분도 전혀 없으므로 열발
생이나 기계적 마모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한 수직 상승 비행이 가능하므로 비행 활주로
도 필요없어진다... 수백 톤 규모의 대형 여객선에서 자그마한 자동차와 비행기 등의 제반
동력 장치들에 이르기까지 이 방법으로 대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환상적인 이야기
인 우주 스페이스 카도 가능할 것이며 이 스페이스 카를 타고 화성으로 날아갈 날이 조만간
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과학계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
1930년대 이후에 브라운은 주로 해군에서 레이다 전문 기술 장교로 복무하였으며, 필라델
피아 익스페리먼트에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1940년대 초를 거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난 뒤에야 다시 자신의 중력 발생 장치 실용화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1952년에
브라운은 승무원을 탑승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공중 부상 비행체를 제작하기 위한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각계에 안내문을 배부한다. 그러나 이 때 과학계에서는 브라운의 연구
에 대한 공식적인 반박이 제기되었는데 이것을 자세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고전압의 (+)극과 (-)극 사이에서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브라운 효과를 객관적으로 인
정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때 발생하는 추진력이 브라운이 주장
하는 것처럼 반중려과 관계된 미지의 새로운 힘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으며, 브라운의 주
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기존의 과학계에서 브라운 현상을 설명하기위해 제기한 이
론이 바로 이온 바람에 의한 추진력 발생 이론이었다. 그림 5의 왼쪽은 브라운이 주장하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 가설의 개략도를 보여준다. 원반형 비행 접시의 아랫쪽에 (-)전
기가 충전되고 윗쪽에 (+)전기가 충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비행 접시가 중력을 거슬러서
수직으로 공중 부양하는 추진력이 발생한다. 이때 발생하는 추진력은 반중력과 같은 또다른
미지의 새로운 힘이라는 것이 브라운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
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찾아내었는데
그것이 오른쪽 그림으로 도식화된 이온 바람(Ionic wind) 개념이다.
고전압의 전기를 띠고 있는 물체 바로 주변의 공기층은 고전압의 전하에 의해 쉽게 이온
화되어진다. 그림에서 비행 접시 형태의 콘덴서 장치 아랫 부분의 (-)전하는 주변 공기층을
(-)이온층으로 이온화시키는데,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윗부분의 공기층은 (+)이온층으로 이
온화된다. 이러한 두 개의 이온화 공기층이 존재하면 자연스럽게 (-)이온화 공기층이 (+)이
온 공기층으로 흘러가게 되며 이것이 이온 바람(Ionic wind)를 발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
라서 이러한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체는 위로 들려올려지게 된다. 이온 바람의 개념을
따르게 되면 비행 물체가 위로 부상하는 추진력은 이온화 공기층의 흐름 즉,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의 대기층이나 우주 공간과 같은 진공 공간에서
는 추진력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과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처음에는 상
당히 설득력있게 보여졌다.(그리고 실제로도 이러한 이온 바람 현상은 유사한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브라운은 실제적인 검증 실험을 통하여 자신의 이론을 관철시켰는
데, 이러저러한 많은 토론보다는 진공 상태에서 직접 실험해보면 모든 것이 명약관화해지는
것이었다. 다른 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브라운 현상이 이온 공기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
이라면,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는 당연히 브라운 현상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1955년경 유럽 여행 중에 프랑스 파리의 항공회사연구소의 협조 하에 이러한 진공 상태에서
의 실험이 정밀하게 실시되었으며, 실험 결과 진공 상태에서 오히려 브라운 현상이 더욱 뚜
렷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1957년과 1958년의 브라운-밴슨 연구소 시절에서도
두 차례 진공 챔버 속에서의 실험이 자체적으로 실시되었으며 1959년에 제너럴 일레트릭사
의 스페이스 센터에서도 진공 상태에서의 브라운 효과 실험이 실시되어,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도 브라운 현상은 확실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검증해주고 있다.
브라운 효과와 B-2 스텔스 폭격기
UFO와 유사한 새로운 형태의 추진 동력을 발생시키는 브라운 효과는 1980년대 후반부터
많은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또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1980년대 말 미 공군에서 직접
작성한 보고서 '21세기 신 비행 기술의 개념(21 Century Propulsion Concept)'에는 21세기
의
유망한 신 추진 동력 장치로서 브라운 효과 장치를 가장 먼저 손꼽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
에는 브라운 장치에서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점은 거의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힘이 실제로 중력과 동일한 계통의 힘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많은 상태이다. 엄밀
한 학술적 의미에서 정의한다면, 브라운 현상이 브라운이 믿었던 것처럼 소위 반중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력장 제어 시스템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브
라운 효과에서 실제로 미지의 힘이 발생하여 공중 부상과 같은 추진력을 보여주는 것은 명
백한 사실이며, 이 미지의 추진력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브라운 효과에 대한 용어로서, 브라운이 주창하였던 전기-중력학
(Electrogravitics)이라는 용어보다는 전기-추진 동력(Electric Propulsion)이라는 용어가 보다
합당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하간, 브라운 효과에 의한 새로운 추진 동력 발생 시스템
은 21세기의 신 비행 기술의 원리로서 일반 과학자들에게도 각광받기 시작한 상태이다. 또
한 이러한 공식적인 활동 이면에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미 공군에서 실제로 브라운 효
과를 이용한 새로운 비행체 개발을 완료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B-2 스텔스(Stealth) 폭격기
라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 중에서 폴 비오렛 박사가
1993년 제1차 뉴에너지 심포지엄과 그 뒤에 다른 학회에서도 계속 게재한 리뷰 아티클 '미
국의 반중력 비행체(The U. S. Antigravity Squadron)'의 일부분을 그대로 소개하기로 한
다.
"오래전부터 미국이 전자 레이다망에도 잡히지 않는 최첨단의 비행체를 극비리에 개발하
여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는데, 이 소문은 1988년 11월 사실로 판명되었
다. 이때에 미 공군은 B-2 스텔스 폭격기라는 최첨단 비행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
으며, 이 비행체의 외형이나 역할 그리고 레이다 탑재 장치 등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매스
컴에 공개했을 뿐, 대부분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 뒤 몇 해가 지난, 1992년
3월에 '스페이스 테크놀로지' 잡지에 이 비행기의 모습과 비행 원리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것은, B-2 스텔스 폭격기는 화살 모양의 날개 앞면과 뒤쪽의 꽁무니 부분에 강력한 전기
장을 생성시켜 이로 인해 추진력이 발생한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타운젠
트 브라운의 브라운 효과 즉, 전기-중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텔스 전투기에 대
한 이 정보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비행기가 반중력에 의한 수직 상승 비행까지 가능하리라
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1952년에 브라운은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정부 기
관에 제안서를 송부하였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미, 새로운 반중력 비행체는 수직 이, 착륙
뿐 아니라 마하3의 초음속 비행까지 가능할 것임을 국방성에 제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러한 제안서를 받고난 그 해, 미 공군의 유력 장군이 브라운을 직접 방문하여 그의 실험실
에서 18인치 크기의 알루미늄 디스크로 제작한 모형 반중력 비행체의 공중 부상 장면을 견
학하였으며, 이듬해인 1953년에는 여러 명의 미 공군 장교들과 항공 기술 회사 기술자들 앞
에서 3피트 직경의 모형 비행 접시 장치의 공중 부상 공개 시현이 행해졌던 것이다. 1956년
에 영국의 항공기술연구소에서 대외비로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1954년 11월 이전에 미
공군 내에서는 브라운이 제시한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응용하여 실제 비행체 제작을 위한 연
구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미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의 개
발 연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B-2 스텔스 전투기의 외형과 비행 원리는 1962년 이전에 브라운이 이미 제시한
바 있는 몇 가지 제안들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림 6은 브라운이 1950년대 말에 제시한 것으
로, 비행체의 추진력을 더욱 강하게 얻어내는 방법으로서 비행체의 외형을 우산 형태로 제
작하여 (+)전하를 앞부분에 넓게 분포시키고 (-)전하를 꽁무니에 좁게 분포시키면 화살 방
향으로 추진력이 더욱 강력하게 발생한다고 밝혀놓고 있다. 그림 7은 1962년에 다시 새롭게
제시한 것으로서 (-)전하를 비행체 꽁무니에 충전시킬 필요없이 제트 엔진을 통하여 (-)전
하를 가스 상태로 분출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비행체의 전체 무게를 더욱 가볍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커다란 추진력을 효율적으로 발생시키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림 8은 B-2 스텔스 전투기의 외형과 비행 원리를 도식화한 것인데 누가 보아도 그림 6과
그림 7의 브라운의 방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운의 연구는 반중력 연구의 첫 출발점이 되기도 하였지만, 실제로 반중력을 발생시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로켓이나 자동차 등에 사용하는 방법처럼 화석 연료나 화학 연료
를 태워서 그 힘을 이용하여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기존의 기술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
운 형태의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러한 새로운 기술
은 육상 교통 수단으로서 나는 자동차를 개발할 수도 있고 또한 우주 공간을 비행하는 우주
선의 추진 동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제3장 반중력 연구의 선구자들(2)-셜의 공중 부상 원반 장치
미국의 타운젠트 브라운이 만들고자 했던 비행 ?는, 그 추진력을 브라운 효과라 하는 전
기-중력 발생 현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고압의 전기를 이용하여 새
로운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방식인데, 이와는 달리 전기가 아닌 자기력을 이용하여 새로운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반중력 비행 기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영구 자석만을 이용하
여 반중력 현상을 발생시키고 이러한 원리로 공중 부상하는 UFO 장치의 제작에 성공했다
고 말하는 몇 사람이 존재한다. 이 중에서도 영국의 존 로이 로버트 셜이라는 연구가의 이
름은 아마도 후세에 반중력에 의한 비행 접시 제작의 실질적인 선구자로서 그 이름이 기록
될 만한 사람이다. 셜의 비행 접시 장치는 브라운의 장치와는 달리 영구 자석을 고속도로
회전시켜서 이 회전 장치에 의해 반중력 현상이 발생하는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셜은 1950년대에 이미 반중력 현상에 의해 공중 부양하는 무인 비행 접시를 완벽하게 제
작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8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달에 비행 접시를 착륙시키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였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대부터 1961년까지 셜은 총 41개의 무
인 비행 접시를 제작하였으며, 이 중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반중력을 발생시켜 공중으로 날
아갔다. 이들 비행 접시 장치들의 실물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동안의 연
구 진행과 결과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와 사진 자료가 공개되어 있어서, 다른 반중력 연구가
들에게 하나의 참고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까지 세계의 몇몇 다른 연구가들이 재현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고는 없다. 셜의 비행 접시 실물 장
치가 남아있지 못한 이유와 아직까지 완벽하게 재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몇 가지 문제
점들은 본론에서 함께 다루어질 것이다. 먼저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기록들과 책들에 소개되
어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셜과 공중 부상 원반 장치의 개요
셜(Searl)은 1932년 영국 윈테이지(Wintage)에서 태어났다. 불우한 어린 시절 동안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련의 꿈들을 반복해서 꾸곤 했었는데, 이 꿈속에 담겨진 메시지들이
훗날 공중을 향하여 부상하는 셜 장치의 원형이 되었다. 1949년에 셜은 모터나 전기 기구에
사용되는 자석 등을 만들어 파는 미드랜드 전기회사에서 전기 조립공으로 취직하여 자석 연
구에 종사하였는데, 어느날 회전하고 있는 금속 원반에서 미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음을 발
견했다. 이 우연한 발견으로부터 셜은, 회전하는 금속 중의 자유 전자는 그 원심력에 의해
방사선 형태로 바깥 쪽으로 쉽게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이 금속
주변부에 함께 회전하는 자석을 배열시키면 금속 원반의 가장자리 쪽으로 이동하는 전자들
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발상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실험해 보기로 결심한다.
이 발상을 기초로 1952년에 최초의 셜 장치(Searl Effect Generator)를 제작하였다. 이 장치
는 금속링 주위에 동일한 간격으로 원통형의 특수 자석을 배열하여, 원반을 회전시킬 때 자
석도 금속링 주위를 자전하면서 회전하게 만든 장치로서 일종의 새로운 발전기 장치였다.
처음 만든 단순한 장치에서도 비교적 높은 전압의 전기가 발생하였다. 이로부터 셜은 장
치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 장치 전체를 여러 겹의 구조로 만들었다.
1952년의 최초 공개 실험에서 직경이 6m 정도였던 이 장치는 회전을 시작하자마자 경이롭
게도 방사선 형태로 고압의 전기를 발생시켰다. 아주 낮은 속도의 회전에서도 십 만 볼트
이상의 기전력이 발생했다. 회전 속도를 더욱 높이면, 오존 발생때의 특이한 냄새가 장치로
부터 퍼져나왔고 경이롭게도 장치 자체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 장치는 잠시 부상을 멈추었고 공중으로 부상하면서 입력 전기줄이 끊어진 상태에
서도 스스로 회전을 가속화시켰다. 회전이 더욱 빨라지면, 공중에서 장치로부터 핑크색의 광
채가 발하면서 얼마 후엔 관찰자의 시야를 벗어나 하늘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셜은
1961년까지 총 41개의 원반을 만들어 실험하였으며 이 셜 장치는 전기력을 발생시킬 뿐 아
니라, 반중력 공중 부상 현상까지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오히려 어쩌면 그가 성공했기 때문에-셜은 여러 가지의
적대 행위에 부딪혔다. 대부분의 초창기 공간 에너지 연구가들이 한결같이 겪어야 했던 이
러한 고난은, 공간 에너지 개발이 본격적으로 공식화된 198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회사
에서는 계속 쫓겨났고, 도전의 누명을 쓰고 투옥까지 되는 등, 거의 20년 동안 박해에 시달
려야 했다. 이러한 역경을 딛고 마침내 셜은 1982년에 개인적으로 DISC 회사를 설립하여
셜 장치(Searl Effect Generator)를 소개하는 책자(SEG Report 제1호)를 발간한다. 아울러
자신이 사용했던 특수 자석을 일반에 공개했다. 1983년 셜의 자택에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
생, SEG 장치와 기록이 모두 불타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은 1985년과 1986년, 1987
년에 계속 'SEG Report' 2호, 3호, 5호를 출간하였고, 1989년 10월 29일 스위스에서 열린
제
1차 '프리 에너지 국제회의'에서 그동안의 SEG 연구를 종합적으로 발표하였다. 1991년 이
후
그는 현재까지 병원에서 투병중이다.
셜 장치(SEG)의 성공은 셜이 사용하였던 특수 자석에 그 비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셜
이 1949년 미드랜드 전기 회사에 있을 때 스스로 제작한 이 특수 영구 자석은, 두 종류의
자화 금속(네오디미움과 티타늄)과 결합제로서 나일론 66을 미국에서 수입하여 이것들을 철,
알루미늄 등과 혼합, 제련하여 만든 것이다. 셜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 성분 중에서 전
자 밀도가 최고로 높은 네오디미움(원자번호 66)이 금속링에서 발생한 전자들을 모으는 역
할을 하고, 이 전자들은 나일론 66(화학 구조 상으로 이중 탄소 결합들이 중첩되어 있다.)에
의해 조절되어지며, 티타늄이 이 전자들을 자석 바깥으로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이 원통형
의 특수 자석들은 금속링 주위에 배열되어 있어, 금속링이 회전할 때 원통 자석이 자전하면
서 금속링의 주위를 돌게 된다. 이 구조를 겹겹으로 다중화시켜 제작된 SEG 장치는 한번
회전을 시작하면 외부로부터의 에너지 입력이 없이도 계속 회전할 수 있었다. 회전 시에 각
금속링에서 발생하는 전자들은 바깥쪽으로 이동하는데, 원통형의 특수 자석에 의해 계속 증
폭되어져서 가장 바깥층에서는 결과적으로 강력한 기전력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셜 효과
(Searl Effect)에 필요한 최저 회전 속도는 분당 3,000회전으로 알려져 있다.
셜의 공중 부상 원반 장치의 이론적 배경
앞에서 소개되어진 내용들은 셜과 그의 장치들을 부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몇 권의 책들
에서 공통적인 것들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사실로는 셜의 장치에 대한
진위 여부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에는 대단히 미흡하다. 비록 작동원리가 일반에게 이
해되지 않더라도 실제적인 현상을 보여줄 수 있는 장치 그 자체가 남아있다면 아마도 가장
확실하게 진실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지만-예를 들어, 신비의 무한 동력 장치인 스위스의
M-L 변환 장치는 현재도 계속 작동되고 있고 그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세
계 어디에서도 발명가인 폴 바우만 외에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고는 없다-불행하게도 셜의
장치는 남아있는 실물이 하나도 없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객관적인 상황을 예로
들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셜의 원반 장치는 일단 작동되어 공중으로 부상하면 다시 인위적
으로 부상을 멈추게 할 수가 없었다. 공중 부상한 원반 장치는 스스로 회전을 가속화하여
결국은 저 아득한 하늘 너머로 날아가 버린다. 이런 이유로 셜은 총 41개의 원반 장치 대부
분을 하늘로 날려버렸던 것이다. 그 자신이 밝히고 있는 바에 따르면, 연구의 후반기에 와서
야 아주 우연적으로 이 원반 장치의 공중 부상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
러한 성공적인 연구의 바로 직후부터 셜은 연속적인 재난을 맞이한다. 결정적으로 1982년의
교도소 수감-영국 전기 공사(Electricity Board)가 30년 동안 전기료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셜을 법정에 고소하였던 것이다-에 이어, 셜 자택의 원인 불명의 화재로 인해 그
는 그나마 남아있던 원반 장치와 실험 일지 대부분을 소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셜의 부상
원반 장치에 대한 진위를 입증하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는 현재 남아있는 사진 자료와 그 당
시 실험에 함께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필자가 참고하였던 책들은 대부분 정확한 출처를 밝히지 않고 셜의 원반 장치 사진을 게
재하고 있었는데, 가장 출처가 확실한 자료로서 일본의 신니치 세이케(Shinichi Seike)가
1982년에 발간한 책자인 '초상대성 이론'과 미국의 존 토마스(John Thomas)가 1993년에 저
술한 '반중력(Antigravity)'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세이케는, 셜과 마찬가지
로
1960년 이후로 반중력 및 공간 에너지 신기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해 오고 있는 사람이, 현재
까지도 중력 감소 현상을 발생시키는 실험 장치의 연구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그가 발간한
책자인 '초상대성 이론'은 셜과 셜의 원반 장치들을 소개하면서 여러 장의 사진 자료를 함
께
수록하고 있는데 이것이 아마도 출처가 확실한 최초의 사진 자료일 것 같다.
1993년에 출간된 토마스의 '반중력' 책자에 똑같은 사진들과 그 외으 다른 사진들이 게
재
되어 있는데, 토마스는 실제로 셜과의 긴 인터뷰를 통하여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검증하고 있
으며 그 대화 기록을 그대로 책에 싣고 있다. (또한 토마스는 셜이 설립한 DISC 회사의 대
표직을 맡아 셜의 업무를 모두 대행하고 있다.) 책에 게재된 사진들 속에는 셜과 함께 연구
를 수행했거나 원반 부상 실험에 참가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타나 있으며 토마스
는 이들을 일일이 셜에게 확인받고 있다. 따라서 세이케의 '초상대성 이론'에 수록된 사진들
과 토마스의 책에 수록되어 있는 사진들은 서로 동일한 것이며 그 출처는 셜 본인인 것으로
파악된다. 토마스는 1994년 제2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에서 셜의 기술 이론을 소개하면
서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셜 개인에 대한 소개를 싣고 있다.
"존 로이 로버트 셜(John Roy Robert Searl)은 1932년에 영국 윈테이지에서 태어나서 영
국의 동부 지역인 수폴크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인생 역정은 어린 시절 동안 계속 반복되었
던 일련의 꿈들에 담겨진 의미를 해석하고 또 그것을 실험적으로 기술화시켜 가는 일련의
작업들로 점철되어 있다. 현재의 상용 과학 기술이 대자연의 근본 법칙들에 역행하는 것에
반대하여, 셜은 나름대로의 직관력에 기초하여 대자연의 운행 법칙에 기반하는 수식적 개념
들을 도출해 내었다. 그는 정규 대학 과정을 거친 사람이 아닌데, 이러한 점이 기존 과학계
가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고 또 선뜻 자금 지원을 약속하지 않는 불리한 점이 되
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적인 실무 작업을 통한 객관적 경험
들을 풍부히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했다. 14세 때부터 셜은 일종의 기기 장치들을 만
들기 시작하였는데 이 장치들을 가동시키는 어떤 미지의 에너지를 우리는 아직까지 해명하
지 못하고 있다. 셜 효과 발전기(Searl Effect Generator;SEG)라고 불리는 기기 장치들은 전
기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발전기 역할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작동 중에는 주위의 공기를 음
이온으로 정화시키는 공기 청정기 작용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이 발전기(SEG) 장치를 조
금 보완하면 비행 접시(Levity Disc) 혹은 반중력차(Inverse-G Vehicle)라고 하는, 기존의
화학 로켓트보다 몇 배 강력한 공중 부양 장치가 된다. 셜은 이러한 성공적인 실험 결과에
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성공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곤경에 처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그의
장치들과 실험 일지 등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는 대재난을 겪는 동시에, 30년 동안 전기 요
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명분 하에 감옥에 수감되기까지 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의 역경에서-감옥에 투옥되는 시점에 그는 이혼을 당하였고 그의 가정은 결국 풍비
박산되었다-자신의 꿈을 포기하기 마련일 터이다. 하지만 셜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서
최근까지 그의 기술 이론의 기본 개념을 소개하는 일련의 책자들을 펴내고 있으며, 충분한
자금이 다시 모이면 실험과 장치의 재건립을 언제든지 바로 시도할 예정에 있다. ...후략..."
이어서 토마스는 셜 장치의 이론적 배경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론적
배경이란 기존의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술 이론을 말한다.
셜은 기존 과학 기술의 개념 하에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고유한 기술 이론 체계에 따라 그
의 부상 원반 장치를 설계 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스퀘어의 법칙(Laws of
Squares)'으로 명명되어, 셜 자신에 의해 여러 권의 책으로 이미 출간되어 있다. 따라서 셜
장치를 이해하고 재현하기 위해서라도 이 개념들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많은 선구적 연구가들에게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특징은, 이들이
한결같이 기존의 과학적 지식은 그 틀 자체가 매우 불완전하며, 또 대단히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과학 기술이 간과하고 있는 아주 중요
하고 근본적인 대자연의 실체와 법칙들은 미지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선구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독특한 통찰력과 개성적인 이론 체계를 가지고 이 미지의 세계를 풀어 온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연구 결과와 장치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재현 실험을 위해서는 발
명품뿐 아니라 발명가 자신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셜이 자신의 장치와
이론을 정립해 나간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셜의 계시적 꿈들과 스퀘어의 법칙
셜이 자신의 장치를 고안하였던 기술적 이론의 밑바탕에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수식적 개
념이 깔려 있는데, 이것들은 어린 시절의 일련의 꿈들에 담긴 의미를 해석해 나가는 과정에
서 자연스럽게 정립된 것이다. 셜은 이것을 스퀘어의 법칙이라고 명명하였으며 그 의미를
자세히 소개하는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셜 자신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장치들은 그 부속품뿐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와 외형까지
도 스퀘어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자신의 장치를 완벽히 재현해내려면 스퀘어
법칙을 이해하고 이에 맞추어 만들어야만 장치가 작동되어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SEG 장치의 기본 부속품인 원통형 자석은 네오디미움, 나일론66, 알루미늄, 철, 티타늄
의 5가지 성분을 배합하여 만드는데, 그 배합 비율은 스퀘어의 법칙에 맞추어야 하며, 또한
원통형 자석과 링 자석들의 숫자와 상대적인 크기들까지 스퀘어의 법칙에 맞추어 제작되어
져야 한다. 이렇게 조립 제작되어진 장치만이 마치 거대한 공명 장치처럼 일사불란하게 서
로 조화되어 궁극적으로 셜 효과(영구 발전, 공중 부양 등)를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셜
장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셜이 겪었던 일련의 꿈들과 스퀘어의 법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셜이 밝힌 바에 따르면, 첫 번째의 꿈은 네 살 반이었을 때 나타났다. 그는 꿈 속에서 또
래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에 등교하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그들은 소위 '토끼뜀
놀
이' 또는 '천국과 지옥'이라 불리우는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 아이들 놀이 즉, 뜀뛰기 놀이
를
하기로 했다. 이 놀이는 1부터 8까지의 정해진 사각형(square)이 있고, 하나의 사각형에서
다른 사각형으로 계속해서 깡충깡충 뛰어가는 것이다. 셜의 차례가 되자, 그는 2번 사각형에
서 3번 사각형으로 뛰어가기 위해 한쪽 발을 들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주위 풍경이 바뀌
면서 홀연히 다른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는 혼자 남아있게 된다. 그러더니 놀이판 위쪽
의 언덕으로부터 거대한 스팀 롤러가 굴러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그는 얼어붙
은 듯이 2번 사각형에서 한쪽 발을 든 채 꼼짝할 수가 없었다. 꿈은 마치 영화 속의 정지
화면처럼 이 장면에서 끝나면서 어디선가 속삭임이 들렸다. "멈추어라, 생각하라, 그리고 행
동하라.(Stop, Think, and Act)"
후에 셜 자신이 해석한 바에 따르면, 이 숫자판의 사각형들은 어떤 형태들의 에너지 레벨
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꿈속의 상황은 두 번째의 에너지 레벨에서 세 번째의 에너지 레
벨로 옮겨가려는 것을 의미한 것이며 또한 어떤 형태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너지와 관련된
-이 닥쳐오는 것을 의미한다. 셜은 이 첫 번째 꿈을 꾼 14일 후에 두 번째 메시지의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온 주위가 화염에 휩싸
이기 시작했다. 자신 주위의 모든 것이 불에 타버리는 것이 보였다.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홀연히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걱정말아라, 구원의 길은 있다." 동시에 그는 땅과 하늘을
잇는 기다란 사다리를 보았다.
이런 식으로 셜은 모두 12가지 유형의 꿈을 네 살 때부터 6년 후인 열 살 때까지 겪게된
다. 하나의 동일한 꿈을 정확하게 두 번씩 꾸었으며 일 년에 두 가지 유형의 꿈을 겪었으므
로 모두 24번의 꿈을 겪었던 것인데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고 한다. 셜은
이 일련의 꿈들 속에서 공통적인 것들을 발견하였는데 예를 들어, 보여진 꿈에는 언제나 8
개의 사각형이 있었다는 것, 또한 자신은 언제나 2번 사각형에 속해 있었으며 3번 사각형
쪽으로 발을 옮기려고 한다는 것 등이다. 셜은 14세 되는 해부터 이전의 꿈들의 의미를 조
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수식 법칙에 대한 개념
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스퀘어의 법칙'이라 명명된 이 개념들의 예를 하나 들어본다.
다음의 그림과 같은 9개의 사각형 속에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채워 넣는 방법을 생각해보
자. 첫 번째 방법은 획일적으로 1부터 9까지 순서대로 사각형에 채워 넣는 것이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보면 질서가 잡혀 있는 듯 보이지만, 가로줄의 합이나 세로줄 또는 대각선줄에
놓인 숫자들의 합은 전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두 번째 방법은 이와 반대로 가로줄과 세
로줄 그리고 대각선줄의 숫자들의 합이 모두 동일하도록 숫자를 배열하는 것이다. 이 두 번
째 방법은 전체적으로는 숫자들이 아무런 질서없이 혼돈스럽게 배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
지만 실제로는 아주 내밀한 질서와 조화속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셜이 보기에는 현재의 기존 과학 지식들은 첫 번째 방법을 선호하고 있는 데 비하여, 대
자연이 실제로 적용하는 법칙들은 두 번째 방법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이 사각형들에서 가
로줄의 합이나 세로줄의 합 그리고 양 대각선줄의 합은 그 고유의 역할이 있다. 그림9에서
보여진 사각형 조합은 가로줄 3개와 세로줄 3개로 구성된 총합 9개의 사각형인데, 이 형태
는 계속 확장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로줄 5개와 세로줄 5개의 총합 25개의 사각형에 숫자
를 채워 넣는다. 이때에는 가로줄, 세로줄 그리고 대각선줄의 숫자들의 합이 서로 동일하도
록 배열하는 방법도 몇 가지가 가능한데, 이 경우에는 가장 효율적인 것부터 우선 배려한다.
이러한 방식-스퀘어의 법칙-으로 셜은 겉으로는 혼돈스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벽한
조화와 질서 속에 운행되는 대자연의 실제 법칙을 이해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개념 하에 그
가 만든 장치는-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대자연과 똑같이 완벽하게 작동하였던 것이다.
인류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동력 장치들은 소위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들을 태우는 방식
과 같이 외부적으로 에너지를 가해주어야만 작동한다.(이 때문에 오늘날의 환경 위기를 맞
고 있다.) 이에 반해서 대자연은 스스로 에너지를 창출하면서 영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러한 영구 운동(Perpectual Motion)은 대자연의 근본 모습이며 따라서 실제적인 자연 법칙
을 찾아 따라가면 기술적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 신기술 연구가들의 생각이었고, 그들
의 발상은 또한 현실화되고 있다. 50년 전의 셜의 장치는-그것이 정말로 객관적인 사실이라
면-이미 완벽한 영구 운동뿐 아니라 반중력 작용까지 보여준 대표적인 실례가 될 것이다.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셜의 장치를 살펴보자.
셜 효과(Searl Effect)와 셜 장치들의 개요
셜이 1949년에 미드랜드 전기회사에 종사하면서, 회전하고 있는 금속 원반의 가장자리 쪽
에서 미약한 전기력이 발생하는 것을 발견하여, 이에 기초한 자신의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
다고 앞부분에서 언급하였지만, 어쩌면 이 표현은 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추측일 가
능성도 있다. 실제로 이 현상은 셜 장치의 실제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셜 장치의 가장 단순
한 형태는 금속 링(또는 금속 원반)과 링 주위에 부착 배열되는 원통형 자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때 금속 링 부분도 당연히 영구 자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실제로는 커다란 링
모양의 자석과 작은 원통형 자석의 조합이 기본 구조이다.
셜이 미드랜드 전기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동안 그는 일상적인 자기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나의 이상한 자석 행동을 발견하였으며, 이것이 실제 셜 장치의 시발점이 되었다. 아
래의 그림10과 같이, 두 개의 기다란 막대자석(N극이 위로, S극이 아래로 향해 있다)에 원
통형 자석(S극이 위로, N극이 아래로 향해 있다) 두 개를 양 측면에 부착시킨다. 막대자석
과 원통형 자석은 서로 반대극의 인력에 의해 달라붙게 된다. 이런 형태에서 한쪽의 A라는
원통형 자석을 손으로 움직이면 이 원통형 자석은 막대 자석을 따라 굴러가서 막대 자석의
맨 끝에 네모난 부분을 돌아가게 되는데, 이 때에 갑자기 B 원통형 자석이 움직이기 시작하
여 스스로 반대편 쪽으로 굴러간다. 원래 위치에서 서로 자리를 바꾼 두 개의 원통형 자석
은 막대 자석을 따라 진동 운동을 하다가 2, 3분 후쯤 원래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 셜은 당
시, 자신이 직접 만든 특수한 소재의 원통형 자석을 사용하였지만, 이러한 현상은 일상적인
페라이트 자석으로도 확인될 수 있다.
셜은 그 다음으로 두 개의 막대 자석 대신에 고리형 자석을 사용하였다. 링 모양의 고리
형 자석 측면에 원통형 자석을 부착시키면 훨씬 부드러운 회전을 보여줄 것이다. 그림11처
럼 고리형 자석에 적당한 크기와 숫자의 원통형 자석을 부착시킴으로써, 원통형 자석에 한
번 힘을 가하면 고리형 자석 주위를 거의 영구적으로 회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셜은 말한
다. 셜이 경험했던 원통형 자석들의 움직임이나 강력한 정전기장의 발생 등은 기존 전자기
이론으로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이며, 셜은 이 발견을 기초로 하여 연구의 실마리를 풀
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현재에는 이러한 현상을 셜 효과(Searl Effect)로 부르고 있다. 셜 효
과를 보다 효율적으로 발생하도록 고안되어진 장치가 바로 셜 장치이며, 이 장치는 크게 두
가지 현상으로 나누어 생각될 수 있다. 첫 번째로 고압의 전기력 발생과 두 번째로 반중력
현상이다. 고압의 전기력 발생을 이용하여 일종의 발전기 장치로 고안된 것이 셜 효과 발전
기(Searl Effect Generator;SEG)이며, 반중력에 의한 공중 부양 장치로서 고안된 것이 공중
부상 원반(Levity Disc, Inverse-G vehicle)인데 실제적으로 두 장치의 세부 구조는 거의 동
일하다.
셜 효과 발전기(SEG)의 가장 기본 구조는 그림11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고리형 자석과 그
주위에 부착되어 자전하는 원통형 자석의 단순한 조합이다. 이때 발생하는 기전력을 집전하
기 위해서 셜은 원통형 자석 바로 측면에 빗살 모양의 전극을 위치시켜서 전압을 뽑아내었
다. 이 단순한 구조를 좀더 확장하여 고리형 자석 주위에 12개의 원통형 자석을 부착시키고,
그 바깥으로 다시 고리형 자석이 연결되는 삼중 구조의 장치를 만들었다. 맨 바깥의 원통형
자석 바로 측면으로 빙둘러서 빗살 모양의 집전 전극이 설치되어진다. 이 삼중의 장치를 가
장 안쪽의 고리형 자석(또는 원반 자석)에 연결된 전기 모터를 통해 회전시키는 것이다. 전
기 모터의 회전 동력은 가장 가운데 고리형 자석(또는 원반 자석, 가장 가운데는 모터에 연
결하기 쉽도록 고리형이 아니라 원반을 사용한다.)을 회전시킬 뿐이지만, 부착되어진 원통형
자석은 맞물린 기어처럼 함께 자전하면서 회전하고 이 첫 번줄의 원통형 자석의 자전과 공
전은 그 바깥의 고리형 자석을 다시 회전시킨다. 이런 식으로 전체 삼중 구조의 장치는 겹
겹이 회전하게 되고 이때 각 원통형 자석과 고리형 자석 사이에서 발생하는 고전압의 전자
흐름은 방사선 형태로 맨 가장자리쪽으로 퍼져나와 빗살 모양 전극에 의해 집전되어진다.
이러한 방사선 형태의 전자 흐름을 효율적으로 증폭시키기 위해 셜은 원통형 자석을 몇 가
지 소재들의 배합으로 특별히 제조하였다.(이때 각 소재들의 배합 비율은 셜의 고유 이론인
스퀘어의 법칙에 따른다.) 따라서 셜 장치의 재현 실험을 위해서는 특별한 자석 제조 기술
이 전제된다.
이 삼중 구조의 장치를 가지고 셜은 1952년의 첫 번째 공개 실험을 행하였다. 이때의 결
과는 서두에서도 간략하게 언급하였지만 보다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자. 당시 19세의 셜과
그의 친구들은 이 첫 번째 장치를 들고 야외로 나가 실험을 행한다. 장치의 한가운데 원반
이 연결되어 있는 전기 모터의 스위치를 켜자 서서히 장치는 회전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고압의 전기가 가장자리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전압은 생각보다 훨씬 고
압인 105V 정도나 되었으며 이 강력한 고압의 전기에 의해 주위 물체들이 정전기를 띠기
시작했다.(셜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이 강력한 정전기장에 의해 영구 정전 물체처럼 그 뒤
로도 오랫동안 계속 정전기를 띠게 되었다고 말한다.)
회전 속도를 좀 더 높이자 장치로부터 오존 발생과 같은 냄새가 발생했다.(오존은 고전압
조건속에서 산소로부터 발생된다.) 이어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나타났다. 장치가 서
서히 부상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장치의 한가운데 연결되어있던 모터와의 연결
축이 끊어져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외부 입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장치는 스스로 계
속 회전을 가속화시키면서 점점 더 높이 부상하고 있었다. 50피트 상공에 도달했을 때쯤 장
치로부터 핑크색의 광채가 퍼져나갔다.(이때 주위의 라디오 등의 전파 기기들이 모두 간섭
되었다.) 드디어 장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가속화되어 순간적으로 저 먼 하늘 너머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바로 이어서 셜과 그의 친구들은 열 개 이상의 똑같은 장치를 만들었으며 똑같은 현상에
의해 그 대부분을 하늘 너머로 날려버렸다. 초창기의 실험 기간 동안 셜은 이러한 현상을
조절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장치가 어느 정도의 회전 속도에 도달해
버리면 자동적으로 영구 회전 운동-외부 입력이 필요없이 스스로 운동을 행하는-상태로 들
어가면서 이어서 공중 부양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셜이 공중 부상 원반 장치를 어느 정도 조
절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은 거의 우연적인 사건이었다. 셜은 그의 장치와 공중 부상
현상을 TV 카메라로 생중계 할 계획을 세우고 예비 작업을 시작한다. 이 작업중 처음으로
공중 부상 원반이 땅으로 다시 착륙하는 현상을 겪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마도 TV 카메라 장치에서 발생하는 어떤 대역의 주파수의 전파에
의해 부상 원반이 조절되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셜은 그 이후 무선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어느 정도 공중 부상 원반을 조절하기에 이르렀다. 앞에서 소개된 공중에 정지해있는 부상
원반 장치(셜은 P11이라고 부른다.)의 비행 장면 사진이다. 여하간 셜은 현재에는 자신의 장
치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를 공개하였다. 가장 핵심적인 실마리를 담고 있는 특수 영구 자석
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정보까지도 최근에 공개하여 몇몇 연구가들이 현재 제작하고 있는
중이라는 소문도 들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처럼 셜이 진실로 반중력 공중 부상 장치
를 제작 성공하였는가에 대한 확실한 진위 여부는, 오로지 재현 검증이 또 다른 연구가에
의해 이루어질 때를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셜의 방법과 극히 유사하게, 영구 자석들을 회전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반중력 현상을 발생시키는데 성공하였다고 보고한 사람이 또 존재한다. 캐나다의 데이비드
해멀과 피어 싱클레어라는 사람들이 발명한 반중력 비행 접시 장치가 그것이다. 이들이 제
작한 반중력 장치는 작동 원리와 장치 외형 상으로 보더라도 셜의 장치와 거의 일맥상통하
고 있으며 외부 전기 입력이 전혀 필요없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셜 장치보다 진일보한 측면
까지 있다. 셜 장치는 최초에는 전기 모터를 작동시켜 장치를 회전시켜 주어야 했지만, 데이
비드의 장치는 장치 속의 영구 자석들의 위치를 바로 잡아주기만 하면 스스로 회전하기 시
작한다. 회전이 시작되면, 이후에 발생하는 현상은 셜의 장치와 거의 동일하다. 회전이 점점
가속화되면서 플라즈마 형태의 발광 현상이 나타나고 그 색깔이 오렌지색에서 푸른색으로,
마지막에는 흰색으로 변해감에 따라 장치는 서서히 반중력 현상을 나타내어 궁극적으로 공
중 부상을 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점들은 셜의 장치가 보여주었던 것과 거의 흡
사하다. 데이비드의 장치를 간략히 소개하자.
데이비드 해멀의 반중력 장치
데이비드 해멀은 캐나다에서 목수일을 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예기치 않았
던 특별한 경험이 발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여 년 전이다. 어느날 저녁, 응접실에서 TV
를 보고 있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TV 화면에서 전개되던 영상들이 하얗게 사라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이때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는데 잠시후 깨어나보
니 생전 처음 보는 UFO 내에 자신이 와 있었으며 두 명의 우주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
다. 이들은 데이비드에게 자신들의 우주선 내부를 관람시켜주면서 특히 우주선 추진 장치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데이비드에게 똑같이 만들어보라고 권고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진실인지 환각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이후로 그는 반중력 비행 접시
장치를 실제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난 14년 간 데이비드는 4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실
제로 제작하였으며 어설프게 만든 이 프로토 타입 장치들을 작동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
다.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는 말 그대로 석유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아주 조악한 것이었
다. 이 드럼통 안에 그가 UFO 내부에서 목격하였던 것과 유사한 형태로 특수 영구 자석들
을 조립 배치시켜 놓았다. 조립을 마치고 난 후에 식사를 하면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실험
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놀라서 달려가보니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장치가
공중으로 치솟아 천장에 부딪치고 있었다. 잠시 후 얇은 슬라브 천장을 뚫고 이 드럼통은
하늘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이를 통해 이 장치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데
이비드는, 그 이후로 현재까지 조금씩 더욱 세련된 형태로 세 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더
제작하였다.
80년대 말경부터는 피어 싱클레어라는 젊은 조력자가 생겼으며 최근까지 대부분의 작업은
이 싱클레어가 행하고 있다. 사진9는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이며
사진10은 좀 더 세련된 타입의 프로토 타입 장치의 외형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가운데 원
추형 콘모양의 새까만 부분들이 영구 자석이 위치한 엔진 부분에 해당된다. 데이비드와 싱
클레어는 1996년의 제3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ISNE; International New
Energy
Symposium)에서 자신들의 장치(Gravito Magnetic Device)에 대해 공식적으로 소개하고 있
는데, 여기에서 이 장치의 작동 원리와 세부 구조를 다음고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장치 윗 덮
개 부분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영구 자석 엔진 부분을 손으로 밀어내리면 이 장치는 작동
을 시작한다. 장치 윗 덮개 가운데에 위치하는 영구 자석은 커다란 고리형 자석으로서 모두
14개의 자석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것을 밑으로 끌어내리면 아래에 위치한 작은 고리
형 자석에 영향을 미치고 자석간의 반발력에 의해 이 고리형 자석들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고리형의 영구 자석이 한번 회전하기 시작하면 아무런 외부 동력이 없이도 회전이 계속
지속되며 이것은 전체 장치 속에서 특별한 에너지 상태를 유도한다. 이로부터 플라즈마 형
태의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점차적으로 그 색깔이 바뀌면서 동시에 중력 감소 현상이 발생하
여 결국은 공중 부상하게 된다고 소개도어 있다. 발명자들과 몇 사람의 관계자들의 증언 외
에는 아직까지 이 장치가 정말 작동되어 공중 부상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이 부족한
상태이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싱클레어가 현재 제작 중인 프로토 타입 장치가 완성되는 대
로 공식적으로 공개 시현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므로 이 장치에 대한 진위 여부도 조만간
확실해질 것이다.
핀란드에서의 반중력 소식
존 셜의 반중력 장치나 데이비드의 장치는 모두 특수 영구 자석과 고속 회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수 영구 자석의 고속 회전이 어떻게 반중
력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이러한 이론적인 면과 관련되어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
공해줄 지도 모를 특별한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어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전문
적인 과학자가 행한 실험 도중에 초전도체의 영구 자석을 고속 회전시키면 반중력 효과가
실제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세간에 흘러나온 것이다. 이 사실은 일반 잡지에서 먼저 기
사회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996년 9월 1일자의 '선데이 텔레그래프' 잡지와 9월 21일
자의 '뉴사이언티스트' 잡지에서 처음 기사가 게재되어졌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
음과 같다.
"핀란드의 탬피어 대학(Tampere Univ.)의 유진 포드크레트노프(Eugene Podkletnov)박사
연구팀은 아주 우연히 물체의 중량이 현저히 줄어드는 반중력 현상을 발견하였다. 원래 이
들은 초전도체 세라믹으로 만든 고리형의 영구 자석을 솔레노이드 전자석 위에 띄워서 고속
회전시키는 실험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70K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세 개의 솔레노이드
코일 전자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장치 시스템 위에다가 초전도성의 고리형 영구 자석을 띄워
놓고 고속 회전을 시키고 있을 때였다. 이때 연구팀의 누군가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
는데 이 담배 연기들이 장치 시스템 위에서 일직선으로 천장으로 솟구치는 것을 우연히 발
견하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구팀은 이 장치 위부분에 모래 주머니를 놓고 중량
측정을 시도해보았는데 그 결과 모래 주머니의 중량이 현저하게 감소한다는 것이 측정되었
다.
최초의 측정때 0.3%의 중량 감소를 발견하였으며 이에 장치의 회전 속도를 5000 r.p.m 이
상 높인 2차 실험에서는 최대 2%의 중량 감소 현상을 측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측정을 확
대하여 이 반중력 현상이 어느 범위에까지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장치 시스템 위로
직선적인 거리를 점점 멀게 하여 측정한 결과, 연구실 위층에서까지 어느 정도 유사한 중량
감소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놀라운 반중력 실험 결과가 전문 학술지에 먼저 게
재되지 않고 일반 잡지에서 최초로 기사화된 경위는 이러하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세계적으로 저명한 물리학 학술지인 '피지칼
리뷰(Physical Review)' 잡지에 연구 논문 원고로서 송부하였다. 피지칼 리뷰의 세 명의 편
집자들은 이 획기적인 연구 논문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결국 학술지에 게재하
기로 결정을 보게된다. 하지만 논문이 연재되기 직전에 포드크레트노프 박사팀은 연구 결과
를 공개하지 않기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논문 원고 자체를 회수하였다. 그 이후에 이러한
획기적인 결과가 감추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어떤 사람(학술지 편집자 중의 한 명
이거나 연구팀 중의 한 명)에 의하여 이 사실이 대중 매체에 전달되었던 것이다.
대중 잡지에 소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템피어 대학측에 문의하였으나 이미 포드크레트
노프 박사팀은 자취를 감춘 후였으며, 템피어 대학측에서 말하기로는 포드크레트노프 박사
팀은 1992년도부터 템피어 대학에서 모종의 연구 프로젝트를 위임받아 수행하던 중이었으며
반중력에 대한 현상이 보도되던 무렵에는 더 이상 템피어 대학의 연구원이 아닌 상태였으므
로 이러한 실험 결과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앞서의 셜 장치와 데이비드의 공중 부상 장치와 마찬가지로 이 실험의 진위 여부
에 대한 확증은 아직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여러 전문가
들이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의 연구가 진짜라면 더욱 더 앞으로의 실제 연구는 극비리
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당분간 이들을 공개적으로 접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
각된다. 핀란드에서 전해진 반중력 현상에 대한 소식은 세계의 여러 초전도체 연구가들과
반중력 연구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나아가 존 셜의 장치나 데이비드의 반중력 장
치에 대한 이론적 실마리도 제공하고 있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의 실험 결과는 장치 자체
가 공중 부상하는 타입이 아니라 일종의 반중력 공간이 생성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
하다. 이 장치 위로 생성되는 반중력 공간 속에서는 물질의 종류에 관계없이 어떠한 것이라
도 중량 감소 현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반중력 효과를 의심할 여지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제4장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대규모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1979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제목으로 텔레포테이션 실험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
야기를 담고 있는 책자 하나가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
으며 이 책에 담긴 내용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사실 여부
를 떠나서 일반 대중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였던, 공간 이동과 시간 여행에 대한 책자의
내용들은 그 자체로 영화화되어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을 정도이다. 영화 '필라델피아
익
스페리먼트' 이전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 공간 이동을 다룬 오락 영화 '백 투더 퓨처
'
역시 그 주된 테마는 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얻어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먼저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의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기지에서는 일련의
극비 비밀 실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 실험의 최종 목적은 전함의 일종인 구축함을
일종의 전자기 차폐막으로 에워싸서 적의 레이더망에 전혀 포착되지 않도록 만드는 특수 군
사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현재 이 기술은 스텔스 전투기로서 기술적으로 성공리에
개발되어 있다.) 이 실험을 위하여 '엘드리지'라는 이름의 구축함이 건조되었고, 이 배 안
에
는 발전기와 변압기 및 전자기 장치들이 가득 설치되었다. 1943년 7월 20일 오전 9시에 최
초의 역사적인 실험이 행해졌다. 엘드리지호는 승무원들과 기술자들을 탑승시킨 상태로 필
라델피아 앞바다로 나아갔으며 배 안에 설치된 장치들을 가동시켰다. 메인 스위치를 올리고
장치들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드디어 엘드리지호는 레이더망에서 완전히 그 흔적을 감추었
다. 20여 분 동안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그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그 실험은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배가 기지로 돌아왔을 때, 배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
대다수가 일종의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인명 사고가 예상되는 이러한 상태에서도 전쟁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절정에 달하고 있던
당시의 전황으로 인해 생명체에 미칠 부작용을 염려할 틈이 없었던 탓인지, 한 달도 채 안
된 8월 12일 본격적인 두 번째의 실험이 실시되었다. 거의 100여 명의 군인들과 수십 여 명
의 기술자들이 탑승한 상태로 엘드리지호는 바다로 나아갔으며 예정된 시간에 실험을 실시
하기 위해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실험 장치들이 작동되어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발생
하면서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엘드리지호는 이윽고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 여기까지
는 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바로 잠시 후에 엘드리지호 전체가 녹색의 후광으
로 덮이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서 배 자체가 그 모습을 완전히 시야에서 감추어버린 것이다.
레이더 상에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실제의 공간상에서도 사라져버렸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엘드리지호는 다시 필라델피아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필라델피아 해군
기지에서 배를 인양하였을 때, 당초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실종되
었으며 남아있는 사람들도 아주 격심한 정신 착란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실험이 되어버린 10월 27일의 세 번째 실험에서는 승무원을 한 명도 태우
지 않은 채 원격 조종으로 배 안의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장치를 가동시키자 이번에도
엘드리지호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10여 분 후, 필라델피아 항구에서 442km 떨어져있
는 대서양 연안의 버지니아의 노폴크 항구에서 홀연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노폴크 항구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다시 텔레포테이션하여 원래의 필라델피아 항구로 되돌아온 엘드
리지호는 심한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고, 배 안의 장치들은 모두 과열되어 심하게 손상
되어져 있었다. 현재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레인보우 프로젝트의
당시 수뇌부는, 결국 이 프로젝트를 마감하기로 하고 프로젝트의 총괄 진행자였던 폰 노이
만 박사를 맨하탄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전격 소환하였으며, 바로 얼마 후에 원자 폭탄이 개
발 성공된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진행 과정과 실험 결과들은 철저히 극비 사항으로
감추어졌으며, 실험에 사용된 엘드리지호는 완전 개조되어 전쟁이 끝난 후에 그리이스 해군
으로 양도됨으로써 이 실험에 대한 모든 흔적이 지워져 버린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50년대 중반에 천문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UFO 연구가로서
도 잘 알려진 모리스 제섭(Morris K. Jessup)박사에게 일련의 편지들이 배달되었다. 카를로
스 알렌디(Carlos Allende)라는 이름의 한 선원이 보낸 그 편지들은 그동안 은폐되어온 필
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숨겨진 사건을 다시 거론하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앤드류(Andrew Furuseth)라는 이름의 화물선에서 일하고 있던 뱃사람인데,
1943년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 연안을 항해하던 도중에 어느 거대한 군함 한 척이 바다 위
에서 홀연히 사라졌다가 몇 시간 후에 다시 홀연히 나타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직접 목격하
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추적해 본 결과, 그 선원은 이것
이 바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극비 군사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알게된 이 놀라운 사건을 혼자만 간직하다가 이제야 모리스 박사에게 털어놓는다는 내용이
었다.
모리스 박사는 이에 흥미를 가지고 전설적인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비밀을 파헤치는
민간 모임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59년에 모리스 박사 자신이 공원
한 구석,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의문의 자살을 한 상태로 발견되어 더욱 커다란 의혹만을
남긴 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는 다시 전설 속으로 묻혀지고 만다. 다시 어언 20여 년이
지난 1979년 윌리암 무어(William Moore)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행하여졌던 엘드리
지호의 실제 항해 일지를 추적하여, 그 당시 실험이 행해진 당시의 엘드리지호의 공식적인
항해 기록이 많은 의문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화제
의
책을 출간했고, 이것이 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다. 1979년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인지 아니면 단지 픽션에 불
과한 것인지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날로 고조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사 보안적인 기
밀 사항이 그렇듯이, 이 또한 사건의 진위를 입증할 객관적인 물증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
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집중시키는 상황들이 연속
으로 일어났는데, 그것은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여 사건 전모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잇달아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필라델
피아 익스페리먼트 사건의 내용은 더욱 확장되어, 단지 우연히 발생한 대규모의 텔레포테이
션 실험이었다기 보다는 차라리 마치 SF소설에나 등장하는 일들이 현실에서 실제 상황으로
발생하였다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들이 밝혀졌다. 즉, 엘드리지호가 공간 이동을 보여주었던
당시, 그 속에 탑승해있던 승무원 자신들은 소위 시간 여행을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증인들
가장 최근인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엔드류 드루(Andrew Storm. Drue)박사는 20여 년 간
미 해병대에서 근무하다가 1993년에 제대한 이후,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UFO 분야에
대한 연구와 소개 활등을 주로 해온 사람이다. 그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그 자신이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기술자 중 한 사람으로서, 당
시 살아남은 생존자 중의 하나로 스스로를 밝히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를 방문하여 당시의 체험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고, 이를 계기로 그는 아예 대중 강연을 나
서게 된다. 1996년 캐나다에서 개최된 '96 지구촌 과학 회의(Global Science Congress)'에서
행한 초청 강연에서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의 일부분을 인용하자.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였다고 이야기하
는데 그렇다면 그때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를 말해달라고 자꾸 요청해 옵니다. 그때의 상황
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죠. 얼마 전 '인터컨넥팅' 잡지에서 인터뷰하여 실렸던 글이 여기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읽어드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실험 장치들의 메인
스위치를 켜고 최대의 전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일말의 공포심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스위치를 켜서 강력한 전자기장이 형성되자마자
곧바로 짙은 안개 같은 것에 휩싸였고 우리가 타고 있던 엘드리지호는 공간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나는 내 뒤에 위치해 있던 발전기 장치로부터 일종의 강력한 에너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의 여파로 몸이 산산조각나는 것 같았으며 눈앞에서는 섬광이 작열하여 장
님이 되는 것 같았다. ...기나긴 시간 여행 끝에 우리는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고 이때의 주
위 현장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해군 구조 대원들이 만신창이가 된 엘드리지호로 올라왔을
때에 그들은 이러한 광경에 질겁을 하고 말았다. 나는 들것에 실려서 작은 구조선으로 옮겨
졌다. 전체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21명 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아예 120여 명은 그 자
취를 찾을 수조차 없었다. 이들은 엘드리지호가 다시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을 때 배 안에
남아있지 못했던 것이다...
자, 상상해보십시오. 자그만치 15백억 볼트의 전기가 흘렀다면 말입니다. 그때는 새벽이었
습니다. 우리는 실험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삼엄한 보안 유지 이
야기를 자꾸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항구에서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댈러웨어로 향하는 도중이었지요.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5명이 전문 과학자였는데 나는 민간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 계획
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는 엘드리지호가 막 건조되고 있는 중이었지요. 니콜라 테슬라가
제시한 설계도에 따라서 배는 건조되었고 다양한 장비들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테
슬라가 이 실험을 끝까지 지휘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생물을 대상으로 실험할 경우에 발생
할 위험성을 깨닫고 테슬라는 이 계획을 철회하고자 하였죠. 그는 스스로 발을 뺐죠. 그러고
는 바로 뒤인 194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되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죽었다고는 절
대 믿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부가 그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였거나 그의 측근이 그의 죽음을
위장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틀림없는 시간 여행자인데 그가 그
렇게 세상을 떠난단 말인가요. ...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이제는 지금까지 배워온 것과는
사뭇 다르게 시간을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개념은 하나의 연속된 일
직선 상에 놓여있는 시간적 개념입니다. ...시간은 오히려 병렬식입니다. 시간이란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시간 여
행이 가능한 것이죠. 모든 시간은 현재입니다. 모든 사건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중
략...
자, 이제 여러분들에게 텔레포테이션이라는 기술이 이제는 실증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
고 있다는 실례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잡지를 보고 계시는 분이 계시나요? 1996년 2월호에 실려있는 이 IBM 광고를
보신 분 계십니까? 유럽에 있는 노부인이 일본의 노신사 분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가 뭔가 좋은 것을 금방 공간 이동시켜 보내 드릴테니까'라고 말하는
광고 밑에 이런 코멘트가 달려 있군요. '한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구조를 완전하게 유지
하
면서도 공간 상의 다른 곳에 전송시키는 기술이 이미 현실화되었다. 마술 같은 이야기이지
만 미래에는 모든 컴퓨터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IBM 광고입니다. 그 내
면을 본다면 이미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테슬라는 이 기술을 이미 백 년 전에
개발하였던 사람이죠.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훨씬 이전에 말입니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실제로 실시되었던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실험이 수행될 수 있었던 기술적 기반이 이미 1943년 이전에 확보되어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여기에는 당대의 기라성같은 과학자들이 상당수 출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핵
심적으로 거론되는 사람이 바로 니콜라 테슬라(Nichola Tesla) 박사이다.
1910년경에 교류 발전기 장치라는 획기적인 전기 발생 장치를 최초로 발명함으로써 현재
의 전기 전자 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문명을 역사상에 개막시켰던 테슬라의 방대한
과학적 업적은,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가져다 주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적인 위대성에 비
견될 만큼 현재에 다시 되살아나 급격하게 재조명을 받고 있다. 라디오 장치로부터 시작된
무선 통신 기술의 경우도 실제로 이것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마르코니가 아니라 바로 니
콜라 테슬라였으며, 테슬라의 친구였던 마르코니가 그의 발명을 도용하여 단지 먼저 발표한
것일 뿐임은 미국 법정에서도 현재 공인된 사실이다. 20세기 초의 당시 상황에서는 전혀 생
각해볼 수도 없었던 수많은 발명들을 내놓았던 대천재 니콜라 테슬라의 업적들은 거의 사장
되어 버렸고, 그 중 몇 가지만이 현재까지 실용화되고 있는데, 이것들만으로도 테슬라의 과
학적 업적은 가히 신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외의 묻혀져버린 테슬라의 수많은 발명들
가운데 몇 가지는 최근에 와서 다시 재현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1장에서 소개된 캐나다
의 존 허치슨의 반중력 장치도 니콜라 테슬라의 무선 송전 실험을 재현해보려는 시도 중에
서 발견된 것이었듯이, 일반에게 미공개된 테슬라의 후반기 발명 중에는 공간 이동에 대한
실험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전반부로서 인용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실제 기원은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1
년부터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행하여진 1943년까지의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31년 시카고에서 니콜라 테슬라를 중심으로 물체 투명화와 불가시화 현
상
(Invisibility)에 대한 기초 연구를 토의하는 소수의 과학자팀이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시카고 대학의 학장이었던 존 허치슨 경을 위시하여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물리학자 에밀 쿠
르티나우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1933년 테슬라와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던 프
랭클린 루즈벨트의 조언에 따라 공식적으로 소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전위적인 연구
팀이 결성되었으며, 1934년 이후 연구 센타는 시카고 대학에서 프린스톤 대학으로 옮겨져,
폰 노이만 박사(John Von Neumann)와 타운젠트 브라운(Tomas. Townsend Brown) 등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다수 합류하는 실제적인 연구팀으로 발전되었으며, 아울러 이론적인 수
학적 공식의 정립을 위하여 아인슈타인에게도 조언을 구하게 된다.
이 연구 결과로서, 1940년 브룩클린 미 해군 기지에서 레인보우 프로젝트라 명명된 최초
의 물체 불가시화 실험이 테슬라의 총지휘 하에 실시된다. 테슬라가 발명하였던 교류 발전
기 장치와 라디오 트랜스미터 그리고 테슬라 코일이라는 변압기 장치 등으로 구성된 장치
시스템으로 최초의 물체 불가시화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고, 1942년 이 실험을 실제적 군사
기술로서 확장시키기 위하여 구축함 한 척이 건조되었고 테슬라는 전시 상황의 요구로 이
기술을 군사 기술로서 조속히 개발하기를 종용받기에 이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테슬라는 생
명체를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였는데, 그를 제외한 다른 과
학자들이나 해군 수뇌부들은 이 기술이 생명체에게 미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심각한 고려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고민에 빠졌다. 결국 생체를 대상으로 실험하
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예비 실험과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제안이 거절당하자 테
슬라는 실험 전체를 거부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그가 이 프로젝트에서 강제로 축
출당하는 결과를 빚었다. 1942년 프로젝트와 결별한 니콜라 테슬라는 그로부터 열 달 후인
1943년 그의 자택에서 조용히 운명을 마감한 것으로 대외에 발표됨으로써 그 위대한 신화와
함께 역사의 의문 속으로 사라졌다.
몬톡 프로젝트: 타임머신을 제조하다
1979년에 출간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자에 이어서, 또다른 필라델피아 익스페리
먼트의 체험자라고 밝힌 프레스톤 니콜스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후반부를 서술한 '몬톡 프로젝트'라는 책이 1992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의 내용에 의하면, 필
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 엘드리지호가 텔레포테이션하는 동안, 배 안에 생존해있던 사람
들은 시간 여행을 동시에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증언자가 경험한 시간 여행에 대한 상세한 체험담과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이
후에 시작되어 1983년까지 극비리에 진행되어진 시, 공간 이동에 대한 구체적인 실험으로서
의 몬톡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쉽게 믿기지 않는 너무나 황당한 내용
들이 객관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주관적인 관점에서 서술된 에세이 형태에 가까운 것들
이 대부분이어서 이것을 그대로 소개하는 것은, 필자가 텔레포테이션이라는 현상과 관련, 실
제의 대규모 형태로 발생하였을지도 모르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를 소개하려는 본래의
취지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흥미 차원에서, 프레스톤 니콜스(Priston
Nichols)가 그의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또다른
증언자인 알프레드 비렉(Alfred Bielek)의 이야기와 유사한 부분들만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1942년 니콜라 테슬라가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를 탄생시켰던 소위 레인보우 프로젝트
에서 축출됨에 따라 바로 얼마 후에 원자 폭탄 발명을 성공시킨 것으로 알려진 폰 노이만
박사가 레인보우 프로젝트의 총지휘를 맡게 된다. 일년 후 1943년에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
트가 실시되었고 이때의 상황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 승무원을 탑승시킨 채 실행되었
던 8월의 제2차 실험에서는 상당수의 승무원들이 죽거나 실종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이
때에 실종된 승무원 중에 에드워드 카메론과 던칸 카메론이라는 형제 승무원이 포함되어 있
었다. 10월의 제3차 실험을 진행하고 있던 폰 노이만 박사는 어느 날 느닷없이 실종되었던
이 두 형제의 방문을 받게 된다. 이들은 폰 노이만 박사에게 선뜻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털
어놓았다. 이들은 엘드리지호에서 실험이 실시된 당시, 배 전체가 공간 이동을 시작할 때에
자신들은 배 갑판 위에서 미끄러져 바다 쪽으로 떨어졌는데, 실제로 그들이 떨어진 장소는
시, 공간 이동을 통하여 40년 후의 미래였다.
텔레포테이션 현상이 발생하였던 1943년 8월 12일의 엘드리지호 갑판 위에서 시, 공간 이
동되어 정확히 40년 후인 1983년 8월 12일의 몬톡 미공군 기지 내 헬기 착륙장에 떨어졌다
는 것이다. 더욱 놀랍게도 그곳에서는 40년 후의 폰 노이만 박사가 그들이 올 것을 미리 알
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1983년 미래의 폰 노이만 박사는 카메론 형제에게, 자신이 40년 전에
이미 당신들을 만났으며, 그 당시에 당신들이 나에게 이야기해준 그대로 다시 행동해왔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1983년까지 몬톡 비밀 기지에서 극비로 행해진 타임머신의 개발 연구와
실제로 완성된 타임머신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이 타임머신을 통해서 카메론 형제들을 다시
1943년의 폰 노이만 박사에게로 되돌려 보냈다는 것이다. 자신이 40년 전, 당신들로부터 그
렇게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역사상의 공식 기록에는 폰 노이만 박사가 1957년에 사
망한 것으로 되어있다.)
1943년의 폰 노이만 박사는 느닷없이 방문하여 이러한 황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카메론
형제들을 당혹스럽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여하간 바로 얼마 후에 노이만 박사는 로스 알라
모스로 옮겨가 원자 폭탄을 제조하는 맨하탄 프로젝트를 지휘했고 전쟁이 종료된 이후에 다
시 극비리에 진행되어진 시, 공간 이동 실험 프로젝트, 일명 훼닉스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게
된다. 최초, 뉴욕 주의 브룩하벤연구소에서 진행된 이 비밀 프로젝트에는 실제로 카메론 형
제 중에 에드워드 카메론이 참여하여 그의 자문 하에 타임머신 개발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었
다.
1947년 로스웰 사건으로 유명해진 외계인 비행 접시 추락 사건이 뉴멕시코에서 발생한다.
이후 1952년까지 여러 건의 외계인 비행 접시 추락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들의 잔해는 고
스란히 폰 노이만 박사팀에게로 인계되어졌으며 이러한 잔해들 속의 부속 장치들과 기술들
을 분석하여 얼마 후 폰 노이만 박사는 시, 공간 이동 장치 타임머신을 개발 성공하기에 이
른다. 이러한 시, 공간 이동 장치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점은
1943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 발생하였던 것처럼 생체에 대한 부작용을 해소시키는
것이었다. 1952년 폰 노이만 박사에 의해 역사적으로 최초의 전자 컴퓨터 장치가 발명되었
는데 이러한 컴퓨터 장치 시스템의 도입에 의해 시, 공간 이동 장치 시스템 속에서 생체 부
작용을 해소시키는 적정한 조건이 발견되었다. 또한 생체 부작용을 해소시키는 연구의 부수
적인 산물로서 오히려 또 다른 획기적인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특수한 전자기파 교란
장치에 의해 생명체의 의식 상태를 어느 정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른바 마인드 콘트롤 현상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면 엄청난 결과를 빚어낼 수도 있게 된다. 이
때부터 훼닉스 프로젝트는 군사적 용도의 집단 마인드 콘트롤 기술의 개발이라는 제2단계
전략으로 돌입했다.
제2단계에서는 빌헬름 라이히의 에테르 인공 기상 조절 기술이 훼닉스 프로젝트에 적용되
어진다. 당시에 빌헬름 라이히는, 공간 속에는 공간 에너지로서 오르곤 에너지라는 것이 존
재하며 이 공간 에너지에 의해 공간과 생명체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독창적인 이론을 주창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인공적으로 기상을 조절할 수 있는 획기
적인 기술을 개발하였는데, 클라우드 버스터(Cloudbuster)라는 공간 에너지 집전 장치를 발
명하여 이 장치를 통해 공간 상의 오르곤 에너지를 조절해줌으로써 기상을 인위적으로 변화
시켜 비가 내리도록 하는 시범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훼닉스 프로젝트팀에서 이러한 라이히의 기상 조절 실험에 주목했던 것은 단순히 인공 기
상 조절 현상이라는 기상천외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현상의 내면에 있는 라이히의 이론
적 설명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라이히는 공간 상의 오르곤 에너지의 밀도나 성향에 따라 그
공간 상의 생명체의 의식 활동이 현저하게 영향을 받고있다는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공간
상의 오르곤 에너지가 데드(Dead) 오르곤 에너지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을 때는 생명체
의 질병이나 범죄 행위가 현저히 증가한다. 따라서 라이히는 이 데드 오르곤 에너지가 공간
상에 강하게 응집되어있을 때, 자신이 발명한 공간 에너지 조절 장치를 이용하여 이 에너지
를 분해시켜 생명체에 도움을 줄 목적으로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를 개발하였다. 그런데 이
장치를 실제로 가동시키면서 부수적으로 인공 기상 조절 현상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훼닉스 프로젝트팀들은 라이히의 물대포 장치 형태의 클라우드 버스터 대신에 훼
닉스 프로젝트팀에서 개발하고 있었던 마인드 콘트롤용 특수 전자기파 교란 장치를 사용하
여 레이다 시스템을 통해 전 공간 상에서 공간 에너지를 조절할 경우, 집단적인 마인드 콘
트롤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였다. 이로부터 1969년에서
1979년의 10년 동안 훼닉스 프로젝트는 스칼라 전자파를 이용한 마인드 콘트롤 장치 개발에
거의 전념하였으며, 1979년 이후 제3단계 훼닉스 프로젝트에서는 마인드 콘트롤을 통하여
생체의 사이킥 파워를 증폭시킬 수 있을 정도의 장치가 실제로 제작되어, 시, 공간 이동 시
에 전혀 영향을 받지않는 타임머신 장치가 드디어 완성된다.
1983년 8월 12일, 마지막 단계의 훼닉스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중이던 몬톡 비밀 기지에서
프로젝트팀 내의 누군가가 더 이상 훼닉스 프로젝트가 구체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타임머신 장치와 연결되어있는 마인드 콘트롤 장치를 이용하여 사이킥 파워를 최대로 끌어
올려놓고 기지 전체가 붕괴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이윽고 엄청난 파괴적 에너지가 창출되
어 몬톡 비밀 기지는 쑥대밭처럼 파괴되기 시작하였다.
프로젝트의 부책임자였던 잭 프레웨터(Jack Prewett)가 긴급히 사이킥 파워 장치를 파괴
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지 전체를 휘몰아치는 거세한 격랑은 멈추지 않았다. 궁극적
으로 이들은 이 거센 파괴적 에너지가 타임머신 장치를 통해 타임터널이 형성되어 바로 40
년 전인 1943년의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 엘드리지호에 탑재되어있는 거대한 제너레
이터 장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된다. 바로 이 순간에 40년 전의 엘드리지호로부터 카메
론 형제가 시, 공간 이동되어 몬톡 공군 기지로 떨어져내린 것이다. 폰 노이만 박사는 이들
을 맞이하여 전후 사정을 대충 설명한 뒤에 타임터널을 통하여 그들을 40년 전의 엘드리지
호로 다시 되돌려보내는 것이다. 엘드리지호 내의 전자기 장치를 완전히 파괴시킬 것을 당
부하면서... 카메론 형제가 되돌아간 직후, 몬톡 비밀 기지는 거의 황폐화될 정도로 파괴되었
으며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도 그 이후의 종적이 전혀 묘연해지고 만다. 마치 40년 전의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그러하였듯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처럼 몬톡 프로젝트도 비밀 속에 파묻혀 있다가 십 년이 지나지
않아 그때의 상황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몬톡 프로젝트'의 저자
프레스톤 니콜스와 알프레드 비렉이 바로 그 증언자들이다. 알프레드 비렉은 1956년의 어린
시절부터 훼닉스 프로젝트의 부책임자인 프레웨터에 의해 선발되어 1983년 몬톡 기지가 파
괴되어버릴 때까지 이 프로젝트를 직접 목격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앞서 필라델피아 익스
페리먼트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고 있는 앤드류 드루 박사와 함께, 이 세 사람은 국내에서도
최근에 방영된 '충격대예언-제3부'에서 직접 인터뷰를 통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와 시,
공간 여행에 대해 증언하고 있으므로 관심있는 독자들은 참고하면 될 것이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의 텔레포테이션 실험과 몬톡 프로젝트에서의 시간 여행, 마
인드 콘트롤 실험의 진위는 아직도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사건의 진위를 판
단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자칫 과장된 유머가 조장될 소지도 많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 이
야기 속에 등장하는 텔레포테이션 현상과 타임 트러블 그리고 마인드 콘트롤 현상은 실제로
가능하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이러한 연구 결과들에 대해서는 다
른 지면을 통해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제5장 인공 기상 조절 공학-인공적으로 비를 만들다
콘스타블의 에테르 기상 조절
1995년 4월 (사)한국정신과학학회 제4차 학술 대회 개최를 준비하던 필자는 아주 묘한 비
디오 한 편을 보게 되었다. 필자는 당초에 이 학술 대회에서 이미 수집해두고 있던 스위스
M-L 변환 장치의 실제 작동 상황을 담은 비디오 및 허치슨 반중력 장치에 의한 물체의 공
중 부양 장면 등, 몇 가지 혁신적 신과학 기술의 소개와 비디오 상영을 기획하고 있었다. 준
비 도중에 미내사(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를 주관하고 있는 취산 박영철 선생께서
'에테르 기상 조절 공학'이란 타이틀이 붙은 비디오 자료를 건네주었다. 총 80분 간의 이 비
디오 자료는 트레버 제임스 콘스타블(Trevor James Constable)이라는 이색적인 과학자가
마우이(SS Maui)라는 이름의 화물선에 자신의 장치를 탑재하여 북태평양 바다를 항해하면
서, 장장 13년 간에 걸쳐 인공 강우 실험을 행한 장면들이 촬영 편집되어 있었다.
이 장면들은 허치슨 반중력 장치에 의해 물체들이 공중 부양하는 실제의 모습을 처음 영
상으로 보던 때와 흡사한 이색적인 감동을 안겨주었다. 제임스 콘스타블은 에테르 투사 장
치라고 불리우는 몇 가지의 조그마한 장치들을 회전시키는 것만으로, 단 30여 분만에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장대비가 퍼붓는 장면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이 실험에 사용된 장치들은 어떠한 화학 물질이나 전자기파도 사용하지 않
는다. 외견상으로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방사하지 않은 채 천천히 회전할 따름인데도 불과
반 시간 정도면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면서 비가 퍼붓는 것이다. 콘스타블이 비디오 상에서
해설하고 있듯이, 이 현상은 실제로 공간 상에 미지의 에너지-여기에서 그는 공간 에너지에
대한 고전적 용어인 에테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 비디오자료는 최근의 혁신적 과학 기술들을 전문적으로 소개하
는 미국의 '보더랜드 사이언스 리서치 파운데이션(Borderland Science Research
Foundation)'에서 출시된 것으로, 보더랜드 측에서 비디오 자료에 대한 해설을 간략히 첨부
해둔 것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기상조절-Weather Control'은 오래 전부터 인류의 원초적인 소망 중의 하나이다. 이러
한 기상조절은 수천 년 동안 고대의 샤만이나 마법사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현대에 이르
러선 물리학자, 화학자 그리고 기상학자들에 의해 화학 물질이나 전자기장을 이용하여 비를
내리게 하려는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대자연이 비를 내리는 근
원적인 자연 법칙과는 거리가 멀다.
이 비디오에서는 미래 과학의 위대한 개척자 중 한 사람인 트레버 제임스 콘스타블이 미
래의 기상 조절 방법의 가능성을 화려한 영상으로 펼쳐보여준다. 콘스타블은 대자연의 일부
분인 북태평양 바다라는 광활한 그의 연구실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그는 어떠한 화학 물
질이나 전자기장을 사용하지도 않고 단순히 기하학적으로 특이한 형태의 조그마한 물체들을
사용할 뿐이다. 이 간단한 실험 장치를 사용하여 콘스타블은, 아인슈타인 이후로 현재의 과
학계에서 사라져버린 에테르라는 개념의 공간 에너지가 실재하며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의 원천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에테르란 이제 더 이상 과학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간 이론
적인 가설이 아니다. 이 미묘한 에테르라는 존재는 대기층 전체를 관통하면서 대기층에 실
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즉, 물리적인 힘의 근원으로서의 에테르는 또
한 물리적인 특수한 방법들-특이한 형태의 모양과 회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것이
바로 에테르 기상 조절 공학의 원리를 제공한다.
비디오에 수록된 그대로, 콘스타블은 에테르의 법칙을 정확히 포착하여 어떠한 상황에서
도 인위적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고기압과 저습도라는 아
주 맑은 날씨 속에서도 발생한다. 콘스타블은 실험의 객관성과 엄밀성을 보증하는 부차적인
자료로서 미국 정부의 기상 예보와 레이다 시스템에 의한 기상 관측 상황을 함께 보여줌으
로써, 이 인공 강우 현상이 자신의 장치로 인해 에테르의 소용돌이 흐름이 유도되면서 발생
한 것임을 보다 확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인공 기상 조절 공학을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독자들의 호기심에 부응하는 의미에
서 콘스타블의 실험 장면들을 수록한 비디오 영상 중에서 일부분을 소개하기로 한다. 80여
분 정도의 비디오 자료에는 콘스타블이 마우이(Maui)라는 화물선에 그의 실험 장치를 싣고
22노트 속도로 북태평양 바다를 항해하면서 인공적으로 비를 만들어내는 십여 건의 실험 장
면들이 담겨있다. 참고로 밝힌다면, 콘스타블은 북태평양 바다가 아닌 내륙 지역에서도 여러
건의 인공 강우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여기서는 비디오 자료에 나오는 두어
건의 실험 장면을 그대로 소개한다. 마우이 화물선에 장착된 인공 강우 실험 장치는 모두 8
가지 종류인데, 이들을 독립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조합하여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이 8가
지 실험 장치들을 형태로 구분하면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대별할 수 있다. 하나는 바주카라
는 이름이 묘사하듯이 대포 모양의 파이프 형태의 장치들이고 다른 하나는 메타혼이라는 이
름을 가진 고깔 모양의 장치들이다. 하지만 이 장치들은 결코 전자기 장치들이 아니며, 어떠
한 물리적 에너지 발생 장치 또한 아니다. 그 구조와 재질 자체에 의해서 에테르를 투사시
키는 장치이므로 외형상으로는 어떠한 물리적인 변화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이 장치들을 단순히 회전시키거나 방향을 잡아주는 것만으로 넓은 바다 위에서 맑은 하
늘이 순식간에 일변하여 비가 퍼붓게 된다.
장면1: 1985년 3월 22일. 마우이는 정서 방향으로 22노트 속도로 항해 중이다. 해설: 여기
에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면서 지구를 감싸고 있는 미묘한 에테르의 흐름이 존재하며 마우이
는 지금 그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항해하고 있는 중이다. 블랙위도우 장치(가장 간단한 대
포 형태의 에테르 투사 장치)에서 투사되는 에테르 흐름이 이 대기권의 에테르 흐름에 부딪
쳐 그 흐름의 방향을 바꾸면서 에테르 소용돌이를 형성시킨다. 에테르의 포텐셜이 상대적으
로 높아지면 그 부분으로 대기 중의 수증기가 모여들고 일부분에서는 물이 되어 비가 내리
는 것이다... 우리는 저멀리 서쪽 지평선 부근에 에테르의 소용돌이를 형성시킬 것이며 이것
이 바로 이 부근의 기상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실험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미 뱃
머리 깃대 왼쪽에서는 소나기를 뿌릴 먹구름이 형성되고 있다. 마우이의 서쪽 바다 위에서
기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1시간 가량 항해하는 사이에 구름이 빗방우로 변해 바다 위
로 떨어지고 있다.)
1988년 이후 콘스타블은 고기압 상태가 아니면 실험을 하지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러한
인공 강우 현상이 도저히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행해져야만 사람들에게 더욱 설득
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장면2: 1989년 3월 31일. 마우이는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항해하고 있다. 해
설: 마우이가 항해하고 있는 태평양 동서쪽의 기상 상황을 보자. 4, 5시간 전의 기상 지도와
현재 레이더 상으로 보여지는 기상도는 북쪽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두 개의 고기압의 영향권
안에 들어있으며, 현재 기압은 1021 헥토파스칼이고 습구 68F, 건구 72F로서 건구 온도와
습구 온도의 차이는 4도로서 비가 올 확률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스키머 장치를 작
동시킨 지 한 시간이 지나자 이 지역의 기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서쪽에서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이것은 고기압 상태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의 모습은 전혀 아니다. 스키머
장치는 나팔 모양의 고깔 두 개가 비닐 슬리브로 연결되어 있으며 가운데 작은 에테르 집적
장치가 붙어있는 단순한 모양의 에테르 투사 장치이다. 이것을 모터 장치에 연결하여 천천
히 회전시키는 것만으로 이러한 기상 변화를 유도시켰다. 이 스키머 장치와 같은 유형의 것
으로 가장 간단한 장치인 터마이트 장치가 있다. 이는 고깔 모양의 두 개의 관을 꼭대기 부
분을 맞붙여 PVC 파이프로 고정시킨 것이다. 가장 작은 터마이트 컵 크기에 지나지 않지만
이 장치만으로도 기상 변화를 유도시킬 수 있다.
1989년 5월 13일. 마우이는 1035 헥토파스칼의 고기압 한 가운데에 있다. 이 부군의 수백
만 평방미터의 바다 전역이 고기압 권에 들어가 있으며 비가 올 확률은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약 2 r.p.m의 느린 속도로 회전하는 터마이트 장치가 에테르 소용돌이를 만들
어 비를 내리게 한다. 지금 기압계의 눈금은 1025 헥토파스칼, 여전히 비가 내릴 수 없는 고
기압 상태를 표시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배의 앞쪽에 비가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기압계에 의하면 비가 내릴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점점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
비는 우리가 만들어낸 에테르 소용돌이에 의한 것이다. 이 에테르 소용돌이가 바다의 기상
상태를 바꾸어버린 것이다.(비가 더욱 세차게 퍼붓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화학 약품이나 전자기 방사능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진 일
이다. 따라서 이것은 에테르라는 공간 에너지가 모든 생물의 근원적인 실체로서 인정받게
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실험이다. 에테르가 과학적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아마도
새로운 시대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북태평양 바다 위에서 실제로 행하여진 콘스타블의 인
공 강우 실험에 대한 자료를 접한 뒤에 이 기술의 객관성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필자는 놀
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콘스타블의 실험이 갑자기 드러난 한 천재의 기상천외한 작
품이 아니라, 이미 50여 년 전의 과학적 시원 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
해 기술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혁신적 개념의 과학적 기술이라는 것이었다. 콘스타블의 인
공 강우 실험은 그의 스승이었던 빌헬름 라이히에 의해 1950년대에 이미 시작된 것이었으
며, 라이히의 다른 후계자들에 의해서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실시되고 있었다.
라이히의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
따라서 인공 기상 조절 연구를 최초로 실시하고 또 성공시켰던 빌헬름 라이히로부터 이야
기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라이히의 연구 결과를 구체적으로 수집하면서 라이히
라는 사람의 방대한 연구 결과를 접하며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못하였다. 그의 연구 결과는
필자의 표현으로는, 가히 기과학이라 불리울 만한 새로운 학문 분야를 이미 실험적으로 방
대하게 정립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히 자신은 오르고노미(Orgonomy)-이것은 동양적 표
현으로 기과학이란 표현이 오히려 더욱 적합하다-라고 명명했던 새로운 연구 분야의 마지
막 부분에 인공 강우 실험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르고노미의 의학적 응용 분야는 이미 서구
대체 의학의 가장 커다란 주류로서 형성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필자와 더불어 1994년 10월 대전에서 '한국정신과학학회'를 창립한 주역이자 신과학 기술의
세계적 동향을 가장 먼저 수집해온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방건웅 박사가 부산의 부경대 해
양학과 강용균 교수의 초청으로 인공 기상 조절 공학의 역사를 소개한 내용 중 기사화된 부
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기를 모아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을까? 지난 11일 부경대 해양공동연구소 세미나실에서
현재의 과학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날씨를 조절하려는 연구를
소개하는 세미나가 개최되어 관심을 끌었다. '에테르를 이용한 기상 제어 기술'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방건웅 박사는,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
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겨왔지만 기와 염력 등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국내외에서 활발
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기의 실체에 대해서 수천 년 동안 한의학 등의 임상을 통해 증명되
어 왔고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만큼 비과학적이라고 무조건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였
다. 특히 서양 의학은 암이나 고혈압 등 만성병 치료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제
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자연 현상도 많다는 것. 예를 들면 소리는 공기 입자의 진동에 의해
전달되지만 전자기파의 전달 방법은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
방박사에 따르면, 에테르를 이용한 기상 제어 연구는 1930년대 프로이트의 마지막 제자인
빌헬름 라이히 박사가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라이히 박사는 대기는 기와 비슷한 개념인 오
르곤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오르곤 에너지와 친화력이 강한 물을 이
용하여 대기 중의 오르곤 에너지 흐름을 ??자기 TV 화면에서 전개되던 영상들이 하얗게 사라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이때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는데 잠시후 깨어나보
니 생전 처음 보는 UFO 내에 자신이 와 있었으며 두 명의 우주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
다. 이들은 데이비드에게 자신들의 우주선 내부를 관람시켜주면서 특히 우주선 추진 장치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데이비드에게 똑같이 만들어보라고 권고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진실인지 환각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이후로 그는 반중력 비행 접시
장치를 실제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난 14년 간 데이비드는 4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실
제로 제작하였으며 어설프게 만든 이 프로토 타입 장치들을 작동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
다.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는 말 그대로 석유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아주 조악한 것이었
다. 이 드럼통 안에 그가 UFO 내부에서 목격하였던 것과 유사한 형태로 특수 영구 자석들
을 조립 배치시켜 놓았다. 조립을 마치고 난 후에 식사를 하면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실험
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놀라서 달려가보니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장치가
공중으로 치솟아 천장에 부딪치고 있었다. 잠시 후 얇은 슬라브 천장을 뚫고 이 드럼통은
하늘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이를 통해 이 장치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데
이비드는, 그 이후로 현재까지 조금씩 더욱 세련된 형태로 세 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더
제작하였다.
80년대 말경부터는 피어 싱클레어라는 젊은 조력자가 생겼으며 최근까지 대부분의 작업은
이 싱클레어가 행하고 있다. 사진9는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이며
사진10은 좀 더 세련된 타입의 프로토 타입 장치의 외형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가운데 원
추형 콘모양의 새까만 부분들이 영구 자석이 위치한 엔진 부분에 해당된다. 데이비드와 싱
클레어는 1996년의 제3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ISNE; International New
Energy
Symposium)에서 자신들의 장치(Gravito Magnetic Device)에 대해 공식적으로 소개하고 있
는데, 여기에서 이 장치의 작동 원리와 세부 구조를 다음고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장치 윗 덮
개 부분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영구 자석 엔진 부분을 손으로 밀어내리면 이 장치는 작동
을 시작한다. 장치 윗 덮개 가운데에 위치하는 영구 자석은 커다란 고리형 자석으로서 모두
14개의 자석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것을 밑으로 끌어내리면 아래에 위치한 작은 고리
형 자석에 영향을 미치고 자석간의 반발력에 의해 이 고리형 자석들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고리형의 영구 자석이 한번 회전하기 시작하면 아무런 외부 동력이 없이도 회전이 계속
지속되며 이것은 전체 장치 속에서 특별한 에너지 상태를 유도한다. 이로부터 플라즈마 형
태의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점차적으로 그 색깔이 바뀌면서 동시에 중력 감소 현상이 발생하
여 결국은 공중 부상하게 된다고 소개도어 있다. 발명자들과 몇 사람의 관계자들의 증언 외
에는 아직까지 이 장치가 정말 작동되어 공중 부상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이 부족한
상태이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싱클레어가 현재 제작 중인 프로토 타입 장치가 완성되는 대
로 공식적으로 공개 시현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므로 이 장치에 대한 진위 여부도 조만간
확실해질 것이다.
핀란드에서의 반중력 소식
존 셜의 반중력 장치나 데이비드의 장치는 모두 특수 영구 자석과 고속 회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수 영구 자석의 고속 회전이 어떻게 반중
력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이러한 이론적인 면과 관련되어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
공해줄 지도 모를 특별한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어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전문
적인 과학자가 행한 실험 도중에 초전도체의 영구 자석을 고속 회전시키면 반중력 효과가
실제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세간에 흘러나온 것이다. 이 사실은 일반 잡지에서 먼저 기
사회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996년 9월 1일자의 '선데이 텔레그래프' 잡지와 9월 21일
자의 '뉴사이언티스트' 잡지에서 처음 기사가 게재되어졌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
음과 같다.
"핀란드의 탬피어 대학(Tampere Univ.)의 유진 포드크레트노프(Eugene Podkletnov)박사
연구팀은 아주 우연히 물체의 중량이 현저히 줄어드는 반중력 현상을 발견하였다. 원래 이
들은 초전도체 세라믹으로 만든 고리형의 영구 자석을 솔레노이드 전자석 위에 띄워서 고속
회전시키는 실험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70K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세 개의 솔레노이드
코일 전자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장치 시스템 위에다가 초전도성의 고리형 영구 자석을 띄워
놓고 고속 회전을 시키고 있을 때였다. 이때 연구팀의 누군가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
는데 이 담배 연기들이 장치 시스템 위에서 일직선으로 천장으로 솟구치는 것을 우연히 발
견하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구팀은 이 장치 위부분에 모래 주머니를 놓고 중량
측정을 시도해보았는데 그 결과 모래 주머니의 중량이 현저하게 감소한다는 것이 측정되었
다.
최초의 측정때 0.3%의 중량 감소를 발견하였으며 이에 장치의 회전 속도를 5000 r.p.m 이
상 높인 2차 실험에서는 최대 2%의 중량 감소 현상을 측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측정을 확
대하여 이 반중력 현상이 어느 범위에까지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장치 시스템 위로
직선적인 거리를 점점 멀게 하여 측정한 결과, 연구실 위층에서까지 어느 정도 유사한 중량
감소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놀라운 반중력 실험 결과가 전문 학술지에 먼저 게
재되지 않고 일반 잡지에서 최초로 기사화된 경위는 이러하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세계적으로 저명한 물리학 학술지인 '피지칼
리뷰(Physical Review)' 잡지에 연구 논문 원고로서 송부하였다. 피지칼 리뷰의 세 명의 편
집자들은 이 획기적인 연구 논문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결국 학술지에 게재하
기로 결정을 보게된다. 하지만 논문이 연재되기 직전에 포드크레트노프 박사팀은 연구 결과
를 공개하지 않기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논문 원고 자체를 회수하였다. 그 이후에 이러한
획기적인 결과가 감추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어떤 사람(학술지 편집자 중의 한 명
이거나 연구팀 중의 한 명)에 의하여 이 사실이 대중 매체에 전달되었던 것이다.
대중 잡지에 소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템피어 대학측에 문의하였으나 이미 포드크레트
노프 박사팀은 자취를 감춘 후였으며, 템피어 대학측에서 말하기로는 포드크레트노프 박사
팀은 1992년도부터 템피어 대학에서 모종의 연구 프로젝트를 위임받아 수행하던 중이었으며
반중력에 대한 현상이 보도되던 무렵에는 더 이상 템피어 대학의 연구원이 아닌 상태였으므
로 이러한 실험 결과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앞서의 셜 장치와 데이비드의 공중 부상 장치와 마찬가지로 이 실험의 진위 여부
에 대한 확증은 아직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여러 전문가
들이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의 연구가 진짜라면 더욱 더 앞으로의 실제 연구는 극비리
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당분간 이들을 공개적으로 접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
각된다. 핀란드에서 전해진 반중력 현상에 대한 소식은 세계의 여러 초전도체 연구가들과
반중력 연구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나아가 존 셜의 장치나 데이비드의 반중력 장
치에 대한 이론적 실마리도 제공하고 있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의 실험 결과는 장치 자체
가 공중 부상하는 타입이 아니라 일종의 반중력 공간이 생성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
하다. 이 장치 위로 생성되는 반중력 공간 속에서는 물질의 종류에 관계없이 어떠한 것이라
도 중량 감소 현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반중력 효과를 의심할 여지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제4장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대규모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1979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제목으로 텔레포테이션 실험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
야기를 담고 있는 책자 하나가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
으며 이 책에 담긴 내용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사실 여부
를 떠나서 일반 대중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였던, 공간 이동과 시간 여행에 대한 책자의
내용들은 그 자체로 영화화되어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을 정도이다. 영화 '필라델피아
익
스페리먼트' 이전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 공간 이동을 다룬 오락 영화 '백 투더 퓨처
'
역시 그 주된 테마는 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얻어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먼저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의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기지에서는 일련의
극비 비밀 실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 실험의 최종 목적은 전함의 일종인 구축함을
일종의 전자기 차폐막으로 에워싸서 적의 레이더망에 전혀 포착되지 않도록 만드는 특수 군
사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현재 이 기술은 스텔스 전투기로서 기술적으로 성공리에
개발되어 있다.) 이 실험을 위하여 '엘드리지'라는 이름의 구축함이 건조되었고, 이 배 안
에
는 발전기와 변압기 및 전자기 장치들이 가득 설치되었다. 1943년 7월 20일 오전 9시에 최
초의 역사적인 실험이 행해졌다. 엘드리지호는 승무원들과 기술자들을 탑승시킨 상태로 필
라델피아 앞바다로 나아갔으며 배 안에 설치된 장치들을 가동시켰다. 메인 스위치를 올리고
장치들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드디어 엘드리지호는 레이더망에서 완전히 그 흔적을 감추었
다. 20여 분 동안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그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그 실험은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배가 기지로 돌아왔을 때, 배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
대다수가 일종의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인명 사고가 예상되는 이러한 상태에서도 전쟁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절정에 달하고 있던
당시의 전황으로 인해 생명체에 미칠 부작용을 염려할 틈이 없었던 탓인지, 한 달도 채 안
된 8월 12일 본격적인 두 번째의 실험이 실시되었다. 거의 100여 명의 군인들과 수십 여 명
의 기술자들이 탑승한 상태로 엘드리지호는 바다로 나아갔으며 예정된 시간에 실험을 실시
하기 위해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실험 장치들이 작동되어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발생
하면서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엘드리지호는 이윽고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 여기까지
는 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바로 잠시 후에 엘드리지호 전체가 녹색의 후광으
로 덮이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서 배 자체가 그 모습을 완전히 시야에서 감추어버린 것이다.
레이더 상에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실제의 공간상에서도 사라져버렸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엘드리지호는 다시 필라델피아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필라델피아 해군
기지에서 배를 인양하였을 때, 당초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실종되
었으며 남아있는 사람들도 아주 격심한 정신 착란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실험이 되어버린 10월 27일의 세 번째 실험에서는 승무원을 한 명도 태우
지 않은 채 원격 조종으로 배 안의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장치를 가동시키자 이번에도
엘드리지호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10여 분 후, 필라델피아 항구에서 442km 떨어져있
는 대서양 연안의 버지니아의 노폴크 항구에서 홀연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노폴크 항구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다시 텔레포테이션하여 원래의 필라델피아 항구로 되돌아온 엘드
리지호는 심한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고, 배 안의 장치들은 모두 과열되어 심하게 손상
되어져 있었다. 현재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레인보우 프로젝트의
당시 수뇌부는, 결국 이 프로젝트를 마감하기로 하고 프로젝트의 총괄 진행자였던 폰 노이
만 박사를 맨하탄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전격 소환하였으며, 바로 얼마 후에 원자 폭탄이 개
발 성공된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진행 과정과 실험 결과들은 철저히 극비 사항으로
감추어졌으며, 실험에 사용된 엘드리지호는 완전 개조되어 전쟁이 끝난 후에 그리이스 해군
으로 양도됨으로써 이 실험에 대한 모든 흔적이 지워져 버린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50년대 중반에 천문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UFO 연구가로서
도 잘 알려진 모리스 제섭(Morris K. Jessup)박사에게 일련의 편지들이 배달되었다. 카를로
스 알렌디(Carlos Allende)라는 이름의 한 선원이 보낸 그 편지들은 그동안 은폐되어온 필
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숨겨진 사건을 다시 거론하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앤드류(Andrew Furuseth)라는 이름의 화물선에서 일하고 있던 뱃사람인데,
1943년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 연안을 항해하던 도중에 어느 거대한 군함 한 척이 바다 위
에서 홀연히 사라졌다가 몇 시간 후에 다시 홀연히 나타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직접 목격하
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추적해 본 결과, 그 선원은 이것
이 바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극비 군사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알게된 이 놀라운 사건을 혼자만 간직하다가 이제야 모리스 박사에게 털어놓는다는 내용이
었다.
모리스 박사는 이에 흥미를 가지고 전설적인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비밀을 파헤치는
민간 모임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59년에 모리스 박사 자신이 공원
한 구석,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의문의 자살을 한 상태로 발견되어 더욱 커다란 의혹만을
남긴 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는 다시 전설 속으로 묻혀지고 만다. 다시 어언 20여 년이
지난 1979년 윌리암 무어(William Moore)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행하여졌던 엘드리
지호의 실제 항해 일지를 추적하여, 그 당시 실험이 행해진 당시의 엘드리지호의 공식적인
항해 기록이 많은 의문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화제
의
책을 출간했고, 이것이 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다. 1979년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인지 아니면 단지 픽션에 불
과한 것인지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날로 고조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사 보안적인 기
밀 사항이 그렇듯이, 이 또한 사건의 진위를 입증할 객관적인 물증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
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집중시키는 상황들이 연속
으로 일어났는데, 그것은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여 사건 전모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잇달아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필라델
피아 익스페리먼트 사건의 내용은 더욱 확장되어, 단지 우연히 발생한 대규모의 텔레포테이
션 실험이었다기 보다는 차라리 마치 SF소설에나 등장하는 일들이 현실에서 실제 상황으로
발생하였다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들이 밝혀졌다. 즉, 엘드리지호가 공간 이동을 보여주었던
당시, 그 속에 탑승해있던 승무원 자신들은 소위 시간 여행을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증인들
가장 최근인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엔드류 드루(Andrew Storm. Drue)박사는 20여 년 간
미 해병대에서 근무하다가 1993년에 제대한 이후,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UFO 분야에
대한 연구와 소개 활등을 주로 해온 사람이다. 그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그 자신이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기술자 중 한 사람으로서, 당
시 살아남은 생존자 중의 하나로 스스로를 밝히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를 방문하여 당시의 체험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고, 이를 계기로 그는 아예 대중 강연을 나
서게 된다. 1996년 캐나다에서 개최된 '96 지구촌 과학 회의(Global Science Congress)'에서
행한 초청 강연에서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의 일부분을 인용하자.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였다고 이야기하
는데 그렇다면 그때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를 말해달라고 자꾸 요청해 옵니다. 그때의 상황
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죠. 얼마 전 '인터컨넥팅' 잡지에서 인터뷰하여 실렸던 글이 여기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읽어드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실험 장치들의 메인
스위치를 켜고 최대의 전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일말의 공포심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스위치를 켜서 강력한 전자기장이 형성되자마자
곧바로 짙은 안개 같은 것에 휩싸였고 우리가 타고 있던 엘드리지호는 공간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나는 내 뒤에 위치해 있던 발전기 장치로부터 일종의 강력한 에너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의 여파로 몸이 산산조각나는 것 같았으며 눈앞에서는 섬광이 작열하여 장
님이 되는 것 같았다. ...기나긴 시간 여행 끝에 우리는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고 이때의 주
위 현장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해군 구조 대원들이 만신창이가 된 엘드리지호로 올라왔을
때에 그들은 이러한 광경에 질겁을 하고 말았다. 나는 들것에 실려서 작은 구조선으로 옮겨
졌다. 전체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21명 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아예 120여 명은 그 자
취를 찾을 수조차 없었다. 이들은 엘드리지호가 다시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을 때 배 안에
남아있지 못했던 것이다...
자, 상상해보십시오. 자그만치 15백억 볼트의 전기가 흘렀다면 말입니다. 그때는 새벽이었
습니다. 우리는 실험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삼엄한 보안 유지 이
야기를 자꾸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항구에서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댈러웨어로 향하는 도중이었지요.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5명이 전문 과학자였는데 나는 민간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 계획
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는 엘드리지호가 막 건조되고 있는 중이었지요. 니콜라 테슬라가
제시한 설계도에 따라서 배는 건조되었고 다양한 장비들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테
슬라가 이 실험을 끝까지 지휘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생물을 대상으로 실험할 경우에 발생
할 위험성을 깨닫고 테슬라는 이 계획을 철회하고자 하였죠. 그는 스스로 발을 뺐죠. 그러고
는 바로 뒤인 194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되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죽었다고는 절
대 믿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부가 그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였거나 그의 측근이 그의 죽음을
위장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틀림없는 시간 여행자인데 그가 그
렇게 세상을 떠난단 말인가요. ...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이제는 지금까지 배워온 것과는
사뭇 다르게 시간을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개념은 하나의 연속된 일
직선 상에 놓여있는 시간적 개념입니다. ...시간은 오히려 병렬식입니다. 시간이란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시간 여
행이 가능한 것이죠. 모든 시간은 현재입니다. 모든 사건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중
략...
자, 이제 여러분들에게 텔레포테이션이라는 기술이 이제는 실증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
고 있다는 실례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잡지를 보고 계시는 분이 계시나요? 1996년 2월호에 실려있는 이 IBM 광고를
보신 분 계십니까? 유럽에 있는 노부인이 일본의 노신사 분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가 뭔가 좋은 것을 금방 공간 이동시켜 보내 드릴테니까'라고 말하는
광고 밑에 이런 코멘트가 달려 있군요. '한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구조를 완전하게 유지
하
면서도 공간 상의 다른 곳에 전송시키는 기술이 이미 현실화되었다. 마술 같은 이야기이지
만 미래에는 모든 컴퓨터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IBM 광고입니다. 그 내
면을 본다면 이미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테슬라는 이 기술을 이미 백 년 전에
개발하였던 사람이죠.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훨씬 이전에 말입니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실제로 실시되었던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실험이 수행될 수 있었던 기술적 기반이 이미 1943년 이전에 확보되어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여기에는 당대의 기라성같은 과학자들이 상당수 출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핵
심적으로 거론되는 사람이 바로 니콜라 테슬라(Nichola Tesla) 박사이다.
1910년경에 교류 발전기 장치라는 획기적인 전기 발생 장치를 최초로 발명함으로써 현재
의 전기 전자 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문명을 역사상에 개막시켰던 테슬라의 방대한
과학적 업적은,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가져다 주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적인 위대성에 비
견될 만큼 현재에 다시 되살아나 급격하게 재조명을 받고 있다. 라디오 장치로부터 시작된
무선 통신 기술의 경우도 실제로 이것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마르코니가 아니라 바로 니
콜라 테슬라였으며, 테슬라의 친구였던 마르코니가 그의 발명을 도용하여 단지 먼저 발표한
것일 뿐임은 미국 법정에서도 현재 공인된 사실이다. 20세기 초의 당시 상황에서는 전혀 생
각해볼 수도 없었던 수많은 발명들을 내놓았던 대천재 니콜라 테슬라의 업적들은 거의 사장
되어 버렸고, 그 중 몇 가지만이 현재까지 실용화되고 있는데, 이것들만으로도 테슬라의 과
학적 업적은 가히 신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외의 묻혀져버린 테슬라의 수많은 발명들
가운데 몇 가지는 최근에 와서 다시 재현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1장에서 소개된 캐나다
의 존 허치슨의 반중력 장치도 니콜라 테슬라의 무선 송전 실험을 재현해보려는 시도 중에
서 발견된 것이었듯이, 일반에게 미공개된 테슬라의 후반기 발명 중에는 공간 이동에 대한
실험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전반부로서 인용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실제 기원은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1
년부터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행하여진 1943년까지의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31년 시카고에서 니콜라 테슬라를 중심으로 물체 투명화와 불가시화 현
상
(Invisibility)에 대한 기초 연구를 토의하는 소수의 과학자팀이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시카고 대학의 학장이었던 존 허치슨 경을 위시하여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물리학자 에밀 쿠
르티나우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1933년 테슬라와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던 프
랭클린 루즈벨트의 조언에 따라 공식적으로 소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전위적인 연구
팀이 결성되었으며, 1934년 이후 연구 센타는 시카고 대학에서 프린스톤 대학으로 옮겨져,
폰 노이만 박사(John Von Neumann)와 타운젠트 브라운(Tomas. Townsend Brown) 등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다수 합류하는 실제적인 연구팀으로 발전되었으며, 아울러 이론적인 수
학적 공식의 정립을 위하여 아인슈타인에게도 조언을 구하게 된다.
이 연구 결과로서, 1940년 브룩클린 미 해군 기지에서 레인보우 프로젝트라 명명된 최초
의 물체 불가시화 실험이 테슬라의 총지휘 하에 실시된다. 테슬라가 발명하였던 교류 발전
기 장치와 라디오 트랜스미터 그리고 테슬라 코일이라는 변압기 장치 등으로 구성된 장치
시스템으로 최초의 물체 불가시화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고, 1942년 이 실험을 실제적 군사
기술로서 확장시키기 위하여 구축함 한 척이 건조되었고 테슬라는 전시 상황의 요구로 이
기술을 군사 기술로서 조속히 개발하기를 종용받기에 이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테슬라는 생
명체를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였는데, 그를 제외한 다른 과
학자들이나 해군 수뇌부들은 이 기술이 생명체에게 미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심각한 고려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고민에 빠졌다. 결국 생체를 대상으로 실험하
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예비 실험과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제안이 거절당하자 테
슬라는 실험 전체를 거부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그가 이 프로젝트에서 강제로 축
출당하는 결과를 빚었다. 1942년 프로젝트와 결별한 니콜라 테슬라는 그로부터 열 달 후인
1943년 그의 자택에서 조용히 운명을 마감한 것으로 대외에 발표됨으로써 그 위대한 신화와
함께 역사의 의문 속으로 사라졌다.
Phenomena)라는 이름의 이 UFO 조사 연구 단체와의
인연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다음 해인 1957년에 브라운은 과격해지는 협회의 성격과 방만
한 재정 관리에 관해 다른 이사진들을 추궁하게 되고 결국은 브라운 자신이 창립한 이 협회
에서 스스로 발을 떼고 만다. 하지만 이 단체를 설립하여 외형상 UFO 연구를 표방하였던
사실 그 자체가 브라운을 정통 과학계에서 결국은 소외당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로서 UFO 연구를 공식적으로 내세운 것은, 과학자로서의 그 자신의 명예를 공동 묘지
에 처박아넣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부터 정통있는 미국
과학 잡지에서는 브라운의 연구 자체를 잡지에 게재하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러한 불행과는 달리 1957년은 브라운에게 행운의 해이기도 하였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꿈과 연구에 완벽히 동의하는 앤그뉴 밴슨이라는 기업가를 만나게 된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밴슨 주식회사의 사장인 앤그뉴 밴슨은 개인적으로 우주 여행을 마지막 소망으로 삼
고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들었을 때, 이 사람의 연구야말로 자
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작업을 실제
로 진행시키기 위해 밴슨 사장은 자기 회사 내에 화이트홀-랜드 프로젝트(Whitehall-Rand
project)라는 반중력 비행체 개발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 과제를 브라운에게 위임한다. 이로
부터 몇 년 간 브라운-밴슨 연구실이 운영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많은 연구 결과가 가시적
으로 진행되었다.
브라운과 밴슨은 초기 2년 동안 자신들이 제작한 장치들과 그 작동 상황을 틈틈이 비디오
로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는데, 이 필르은 아마도 반중력 연구라는 테마를 통틀어
가장 최초의 비디오 영상 자료일 것이다. 총 50여 분 정도의 이 비디오 영상 장면 가운데
1958년 1월 17일자로 기록되어 있는 실험 장면 하나를 살펴보자. 우산 형태로 생긴 전체 무
게가 약 60g의 장치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 164kV, 1mA의 고전압 전기를 흘려
보내자 이 장치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이다. 만약에 바람을 이용하여 이러한 장
치를 똑같이 공중으로 들어올리려면 적어도 초속 10피트의 풍속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장
치가 공중 부상하고 있는 연구실 내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공기 흐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영상 장면은, 브라운 장치에서는 전기력에 의해 반중력과 유사한 새로운 힘이 발
생하고 이 힘이 실제로 중력을 극복하여 공중 부상시킨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활발히 연구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행운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는 못하였
다. 1964년에 밴슨 사장이 비행기 추락 사건으로 갑작스레 사망함으로써 연이어 브라운의
연구도 된서리를 맞았던 것이다. 그 이후 브라운 자신이 직접 진행한 연구 결과는 별로 없
다. 1965년 당시 이미 브라운의 나이는 60세였으며 1985년에 80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기까
지 브라운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다른 과학자들에게 소개하는 일만으로도 힘에 버거웠다.
최근에 와서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이라고 명명되는 브라운의 전기-중력 조절 실
험은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을 뿐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활발한 연구 실험이 전
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혁명적인 과학적 발견과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
이라는 천재적인 과학자의 이름은 그 어떤 과학 교과서에서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비펠드-브라운 효과
1924년경 덴니선 대학에서 브라운과 비펠드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를 진전시켰던 전기-중
력 제어 현상인 비펠드-브라운 효과(Biefeld-Brown Effect)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브라운은 고전압의 전기로 충전되어 있는 두 개의 축전지(Capacitor)사이에는 (-)극
쪽에서(+)극 쪽으로 밀어주는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을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다. 판대기 모양의 두 장의 콘덴서를 사용하여 한 쪽은 음극으로
충전시키고 다른 한 쪽은 양극으로 충전시켜서 실로 매달아두면 음극 쪽으로 밀려가는 현상
이 발생한다. 이것을 수직선 상으로 위치시켜서 천칭 저울로 실험해보면 결과적으로 중량의
증가(가중력 현상)와 감소(반중력 현상)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극이 아래쪽에 위치해 있
을 때는,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중량이 감소하는 반중
력 현상이 나타나고, 이와 반대로 (-)극이 위쪽에 위치해 있을 때는,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가중력 상태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을 브라운은
'비펠드-브라운 효과'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단순하게 보이는 현상들이 의미하는 바는 실
로
엄청난 것이었다.
1860년대에 미카엘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이후, 전기력과 자기력
이라는 두 가지의 힘은 하나의 관계식으로 연결되어졌고, 현재는 전자기력이라는 용어로 통
합된 상태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전자기력과 중력은 서로 관계가 전혀 없는 별개의 힘으
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들을 서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어떤 현상이나 관계식이 발견된 적도
없는 상태이다. 브라운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전기력에 의해 중력이 발생
할 수 있다는 극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이 연구
를 전기-중력학(Electrogravitics)이라고 호칭하였다.
브라운은 이 이론으로 UFO의 비행 원리도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나아가 실제로
UFO와 유사한 비행기를 제작하는 데에 평생을 바치게 된다. UFO가 중력에 반하여 서서히
수직 상승할 때는, 원반형의 비행체 아랫 부분은 (-)전기로 충전되고 윗 부분은 (+)전기로
충전된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비펠드-브라운 효과에 의해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는 중력에 반하여 수직 상승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UFO가
공중에서 수평 비행할 때는, 비행체 앞 부분에 (+)전기가 충전되고 뒷부분에 (-)전기가 충전
되는 상태로 변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수평적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를
앞으로 밀어주게 된다. UFO의 비행원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는 이러한 전기-중력 발생 현상
을 이용하여 UFO와 흡사한 형태의 새로운 자동차나 비행기를 실제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
라고 브라운은 생각하였다. 1929년에 '과학과 발명(Science and Invention)'잡지에 게재하
였
던 논문에서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중력 발생 장치는 실제로 대단히 유용한 새로운 형태의 동력 발생 장치이기도 하다.
현재의 대부분 전기 모터 장치들이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장치는
새로운 전기-중력 발생 현상을 이용한다. 단순한 모양의 중력 발생 장치에는 기존의 장치처
럼 회전하는 기계 부분이 전혀 없으며 장치 자체가 전체적으로 움직여 나간다. 따라서 기존
동력 장치에서 필요한 기어나 동력 전달축 그리고 프로펠러 등이 전혀 필요없으며 그러면서
도 아주 효율적인 동력 발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마찰 부분도 전혀 없으므로 열발
생이나 기계적 마모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한 수직 상승 비행이 가능하므로 비행 활주로
도 필요없어진다... 수백 톤 규모의 대형 여객선에서 자그마한 자동차와 비행기 등의 제반
동력 장치들에 이르기까지 이 방법으로 대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환상적인 이야기
인 우주 스페이스 카도 가능할 것이며 이 스페이스 카를 타고 화성으로 날아갈 날이 조만간
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과학계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
1930년대 이후에 브라운은 주로 해군에서 레이다 전문 기술 장교로 복무하였으며, 필라델
피아 익스페리먼트에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1940년대 초를 거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난 뒤에야 다시 자신의 중력 발생 장치 실용화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1952년에
브라운은 승무원을 탑승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공중 부상 비행체를 제작하기 위한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각계에 안내문을 배부한다. 그러나 이 때 과학계에서는 브라운의 연구
에 대한 공식적인 반박이 제기되었는데 이것을 자세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고전압의 (+)극과 (-)극 사이에서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브라운 효과를 객관적으로 인
정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때 발생하는 추진력이 브라운이 주장
하는 것처럼 반중려과 관계된 미지의 새로운 힘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으며, 브라운의 주
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기존의 과학계에서 브라운 현상을 설명하기위해 제기한 이
론이 바로 이온 바람에 의한 추진력 발생 이론이었다. 그림 5의 왼쪽은 브라운이 주장하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 가설의 개략도를 보여준다. 원반형 비행 접시의 아랫쪽에 (-)전
기가 충전되고 윗쪽에 (+)전기가 충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비행 접시가 중력을 거슬러서
수직으로 공중 부양하는 추진력이 발생한다. 이때 발생하는 추진력은 반중력과 같은 또다른
미지의 새로운 힘이라는 것이 브라운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
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찾아내었는데
그것이 오른쪽 그림으로 도식화된 이온 바람(Ionic wind) 개념이다.
고전압의 전기를 띠고 있는 물체 바로 주변의 공기층은 고전압의 전하에 의해 쉽게 이온
화되어진다. 그림에서 비행 접시 형태의 콘덴서 장치 아랫 부분의 (-)전하는 주변 공기층을
(-)이온층으로 이온화시키는데,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윗부분의 공기층은 (+)이온층으로 이
온화된다. 이러한 두 개의 이온화 공기층이 존재하면 자연스럽게 (-)이온화 공기층이 (+)이
온 공기층으로 흘러가게 되며 이것이 이온 바람(Ionic wind)를 발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
라서 이러한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체는 위로 들려올려지게 된다. 이온 바람의 개념을
따르게 되면 비행 물체가 위로 부상하는 추진력은 이온화 공기층의 흐름 즉,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의 대기층이나 우주 공간과 같은 진공 공간에서
는 추진력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과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처음에는 상
당히 설득력있게 보여졌다.(그리고 실제로도 이러한 이온 바람 현상은 유사한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브라운은 실제적인 검증 실험을 통하여 자신의 이론을 관철시켰는
데, 이러저러한 많은 토론보다는 진공 상태에서 직접 실험해보면 모든 것이 명약관화해지는
것이었다. 다른 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브라운 현상이 이온 공기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
이라면,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는 당연히 브라운 현상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1955년경 유럽 여행 중에 프랑스 파리의 항공회사연구소의 협조 하에 이러한 진공 상태에서
의 실험이 정밀하게 실시되었으며, 실험 결과 진공 상태에서 오히려 브라운 현상이 더욱 뚜
렷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1957년과 1958년의 브라운-밴슨 연구소 시절에서도
두 차례 진공 챔버 속에서의 실험이 자체적으로 실시되었으며 1959년에 제너럴 일레트릭사
의 스페이스 센터에서도 진공 상태에서의 브라운 효과 실험이 실시되어,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도 브라운 현상은 확실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검증해주고 있다.
브라운 효과와 B-2 스텔스 폭격기
UFO와 유사한 새로운 형태의 추진 동력을 발생시키는 브라운 효과는 1980년대 후반부터
많은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또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1980년대 말 미 공군에서 직접
작성한 보고서 '21세기 신 비행 기술의 개념(21 Century Propulsion Concept)'에는 21세기
의
유망한 신 추진 동력 장치로서 브라운 효과 장치를 가장 먼저 손꼽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
에는 브라운 장치에서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점은 거의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힘이 실제로 중력과 동일한 계통의 힘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많은 상태이다. 엄밀
한 학술적 의미에서 정의한다면, 브라운 현상이 브라운이 믿었던 것처럼 소위 반중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력장 제어 시스템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브
라운 효과에서 실제로 미지의 힘이 발생하여 공중 부상과 같은 추진력을 보여주는 것은 명
백한 사실이며, 이 미지의 추진력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브라운 효과에 대한 용어로서, 브라운이 주창하였던 전기-중력학
(Electrogravitics)이라는 용어보다는 전기-추진 동력(Electric Propulsion)이라는 용어가 보다
합당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하간, 브라운 효과에 의한 새로운 추진 동력 발생 시스템
은 21세기의 신 비행 기술의 원리로서 일반 과학자들에게도 각광받기 시작한 상태이다. 또
한 이러한 공식적인 활동 이면에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미 공군에서 실제로 브라운 효
과를 이용한 새로운 비행체 개발을 완료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B-2 스텔스(Stealth) 폭격기
라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 중에서 폴 비오렛 박사가
1993년 제1차 뉴에너지 심포지엄과 그 뒤에 다른 학회에서도 계속 게재한 리뷰 아티클 '미
국의 반중력 비행체(The U. S. Antigravity Squadron)'의 일부분을 그대로 소개하기로 한
다.
"오래전부터 미국이 전자 레이다망에도 잡히지 않는 최첨단의 비행체를 극비리에 개발하
여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는데, 이 소문은 1988년 11월 사실로 판명되었
다. 이때에 미 공군은 B-2 스텔스 폭격기라는 최첨단 비행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
으며, 이 비행체의 외형이나 역할 그리고 레이다 탑재 장치 등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매스
컴에 공개했을 뿐, 대부분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 뒤 몇 해가 지난, 1992년
3월에 '스페이스 테크놀로지' 잡지에 이 비행기의 모습과 비행 원리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것은, B-2 스텔스 폭격기는 화살 모양의 날개 앞면과 뒤쪽의 꽁무니 부분에 강력한 전기
장을 생성시켜 이로 인해 추진력이 발생한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타운젠
트 브라운의 브라운 효과 즉, 전기-중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텔스 전투기에 대
한 이 정보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비행기가 반중력에 의한 수직 상승 비행까지 가능하리라
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1952년에 브라운은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정부 기
관에 제안서를 송부하였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미, 새로운 반중력 비행체는 수직 이, 착륙
뿐 아니라 마하3의 초음속 비행까지 가능할 것임을 국방성에 제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러한 제안서를 받고난 그 해, 미 공군의 유력 장군이 브라운을 직접 방문하여 그의 실험실
에서 18인치 크기의 알루미늄 디스크로 제작한 모형 반중력 비행체의 공중 부상 장면을 견
학하였으며, 이듬해인 1953년에는 여러 명의 미 공군 장교들과 항공 기술 회사 기술자들 앞
에서 3피트 직경의 모형 비행 접시 장치의 공중 부상 공개 시현이 행해졌던 것이다. 1956년
에 영국의 항공기술연구소에서 대외비로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1954년 11월 이전에 미
공군 내에서는 브라운이 제시한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응용하여 실제 비행체 제작을 위한 연
구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미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의 개
발 연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B-2 스텔스 전투기의 외형과 비행 원리는 1962년 이전에 브라운이 이미 제시한
바 있는 몇 가지 제안들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림 6은 브라운이 1950년대 말에 제시한 것으
로, 비행체의 추진력을 더욱 강하게 얻어내는 방법으로서 비행체의 외형을 우산 형태로 제
작하여 (+)전하를 앞부분에 넓게 분포시키고 (-)전하를 꽁무니에 좁게 분포시키면 화살 방
향으로 추진력이 더욱 강력하게 발생한다고 밝혀놓고 있다. 그림 7은 1962년에 다시 새롭게
제시한 것으로서 (-)전하를 비행체 꽁무니에 충전시킬 필요없이 제트 엔진을 통하여 (-)전
하를 가스 상태로 분출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비행체의 전체 무게를 더욱 가볍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커다란 추진력을 효율적으로 발생시키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림 8은 B-2 스텔스 전투기의 외형과 비행 원리를 도식화한 것인데 누가 보아도 그림 6과
그림 7의 브라운의 방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운의 연구는 반중력 연구의 첫 출발점이 되기도 하였지만, 실제로 반중력을 발생시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로켓이나 자동차 등에 사용하는 방법처럼 화석 연료나 화학 연료
를 태워서 그 힘을 이용하여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기존의 기술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
운 형태의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러한 새로운 기술
은 육상 교통 수단으로서 나는 자동차를 개발할 수도 있고 또한 우주 공간을 비행하는 우주
선의 추진 동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제3장 반중력 연구의 선구자들(2)-셜의 공중 부상 원반 장치
미국의 타운젠트 브라운이 만들고자 했던 비행 ?는, 그 추진력을 브라운 효과라 하는 전
기-중력 발생 현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고압의 전기를 이용하여 새
로운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방식인데, 이와는 달리 전기가 아닌 자기력을 이용하여 새로운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반중력 비행 기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영구 자석만을 이용하
여 반중력 현상을 발생시키고 이러한 원리로 공중 부상하는 UFO 장치의 제작에 성공했다
고 말하는 몇 사람이 존재한다. 이 중에서도 영국의 존 로이 로버트 셜이라는 연구가의 이
름은 아마도 후세에 반중력에 의한 비행 접시 제작의 실질적인 선구자로서 그 이름이 기록
될 만한 사람이다. 셜의 비행 접시 장치는 브라운의 장치와는 달리 영구 자석을 고속도로
회전시켜서 이 회전 장치에 의해 반중력 현상이 발생하는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셜은 1950년대에 이미 반중력 현상에 의해 공중 부양하는 무인 비행 접시를 완벽하게 제
작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8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달에 비행 접시를 착륙시키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였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대부터 1961년까지 셜은 총 41개의 무
인 비행 접시를 제작하였으며, 이 중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반중력을 발생시켜 공중으로 날
아갔다. 이들 비행 접시 장치들의 실물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동안의 연
구 진행과 결과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와 사진 자료가 공개되어 있어서, 다른 반중력 연구가
들에게 하나의 참고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까지 세계의 몇몇 다른 연구가들이 재현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고는 없다. 셜의 비행 접시 실물 장
치가 남아있지 못한 이유와 아직까지 완벽하게 재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몇 가지 문제
점들은 본론에서 함께 다루어질 것이다. 먼저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기록들과 책들에 소개되
어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셜과 공중 부상 원반 장치의 개요
셜(Searl)은 1932년 영국 윈테이지(Wintage)에서 태어났다. 불우한 어린 시절 동안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련의 꿈들을 반복해서 꾸곤 했었는데, 이 꿈속에 담겨진 메시지들이
훗날 공중을 향하여 부상하는 셜 장치의 원형이 되었다. 1949년에 셜은 모터나 전기 기구에
사용되는 자석 등을 만들어 파는 미드랜드 전기회사에서 전기 조립공으로 취직하여 자석 연
구에 종사하였는데, 어느날 회전하고 있는 금속 원반에서 미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음을 발
견했다. 이 우연한 발견으로부터 셜은, 회전하는 금속 중의 자유 전자는 그 원심력에 의해
방사선 형태로 바깥 쪽으로 쉽게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이 금속
주변부에 함께 회전하는 자석을 배열시키면 금속 원반의 가장자리 쪽으로 이동하는 전자들
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발상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실험해 보기로 결심한다.
이 발상을 기초로 1952년에 최초의 셜 장치(Searl Effect Generator)를 제작하였다. 이 장치
는 금속링 주위에 동일한 간격으로 원통형의 특수 자석을 배열하여, 원반을 회전시킬 때 자
석도 금속링 주위를 자전하면서 회전하게 만든 장치로서 일종의 새로운 발전기 장치였다.
처음 만든 단순한 장치에서도 비교적 높은 전압의 전기가 발생하였다. 이로부터 셜은 장
치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 장치 전체를 여러 겹의 구조로 만들었다.
1952년의 최초 공개 실험에서 직경이 6m 정도였던 이 장치는 회전을 시작하자마자 경이롭
게도 방사선 형태로 고압의 전기를 발생시켰다. 아주 낮은 속도의 회전에서도 십 만 볼트
이상의 기전력이 발생했다. 회전 속도를 더욱 높이면, 오존 발생때의 특이한 냄새가 장치로
부터 퍼져나왔고 경이롭게도 장치 자체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 장치는 잠시 부상을 멈추었고 공중으로 부상하면서 입력 전기줄이 끊어진 상태에
서도 스스로 회전을 가속화시켰다. 회전이 더욱 빨라지면, 공중에서 장치로부터 핑크색의 광
채가 발하면서 얼마 후엔 관찰자의 시야를 벗어나 하늘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셜은
1961년까지 총 41개의 원반을 만들어 실험하였으며 이 셜 장치는 전기력을 발생시킬 뿐 아
니라, 반중력 공중 부상 현상까지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오히려 어쩌면 그가 성공했기 때문에-셜은 여러 가지의
적대 행위에 부딪혔다. 대부분의 초창기 공간 에너지 연구가들이 한결같이 겪어야 했던 이
러한 고난은, 공간 에너지 개발이 본격적으로 공식화된 198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회사
에서는 계속 쫓겨났고, 도전의 누명을 쓰고 투옥까지 되는 등, 거의 20년 동안 박해에 시달
려야 했다. 이러한 역경을 딛고 마침내 셜은 1982년에 개인적으로 DISC 회사를 설립하여
셜 장치(Searl Effect Generator)를 소개하는 책자(SEG Report 제1호)를 발간한다. 아울러
자신이 사용했던 특수 자석을 일반에 공개했다. 1983년 셜의 자택에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
생, SEG 장치와 기록이 모두 불타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은 1985년과 1986년, 1987
년에 계속 'SEG Report' 2호, 3호, 5호를 출간하였고, 1989년 10월 29일 스위스에서 열린
제
1차 '프리 에너지 국제회의'에서 그동안의 SEG 연구를 종합적으로 발표하였다. 1991년 이
후
그는 현재까지 병원에서 투병중이다.
셜 장치(SEG)의 성공은 셜이 사용하였던 특수 자석에 그 비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셜
이 1949년 미드랜드 전기 회사에 있을 때 스스로 제작한 이 특수 영구 자석은, 두 종류의
자화 금속(네오디미움과 티타늄)과 결합제로서 나일론 66을 미국에서 수입하여 이것들을 철,
알루미늄 등과 혼합, 제련하여 만든 것이다. 셜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 성분 중에서 전
자 밀도가 최고로 높은로 올라가는 소위 대류 현상
에 의거한 일반적인 사실에 불과한 것 같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였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더 이상 라이히를 신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일컬어진다. 또는 애당초 아인슈타인은 열역학
제2법칙이 무너지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라이히의 주장을 그다
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도 전해진다. 여하간 그 이후로 라이히는 아인슈타인에게
수 차례의 편지를 보내었지만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다.
이후 라이히는 미국 내에서 후원자를 구하는 것을 아예 단념하고 스스로 자신의 연구를
홍보해나가기로 결심한다. 다음해에 그는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메인 주에 토지를 구입하여
독자적인 연구 센타의 건립을 추진해나간다.
오라누르 실험(Oranur Experiment): 방사능 소멸에 도전하다
미국으로 이주한 지 3년 뒤인 1942년에 라이히는 메인(maine) 주 레인제리(Rangeley)에
오르곤 연구소(Orgone Institute)라는 자그마한 연구 센타를 건립하고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또한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그 자신이 발간하는 오르곤 저널(The International
Journal of Sex Economy and Orgone Research)을 통하여 널리 홍보하기 시작했다. 1940년
대 말까지 오르곤 연구소에서의 주 연구 활동은 오르곤 에너지와 생명체의 상호 관련 연구
및 생체 치료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투자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난 후부터 인류는
새로운 원자력 에너지와 그 가공할 파괴력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때부터 라이히
는 핵 방사능이 생체에 미치는 끔찍한 결과들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방사능 물질을 오르
곤 에너지로 중화시킬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핵 방사능이 생물체의 세포나 혈액에
엄청난 부정적 작용을 미친다면, 거꾸로 암세포까지 치료하는 효과를 보이는 오르곤 에너지
로서 이 방사능을 중화 또는 상쇄시킬 수 있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1950년 12월에 라이히는 원자력에너지위원회로부터 몇 종류의 방사성 동위 원소를 구입하
여 오르곤 연구소 내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오르곤 집적 상자 안에 넣어두는 실험을 실제
로 실행한다. 이 실험을 위하여 특별히 제작된 20겹으로 구성된 강력한 오르곤 집적 상자
안에 1mg의 방사성 물질을 넣어두고 상태를 지켜보았다. 이것을 오라누르
(Oranur:Orgone-Anti-Nuclear) 실험이라 부른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라이히는 명백히 방
사능이 감소하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더욱 커다란 부작용이
발생하고 말았다. 2개월 뒤에 오르곤 집적 상자에서 방사성 동위 원소 라듐을 꺼내어 조사
해본 결과 현저하게 방사능이 감소되었음이 검증되었고, 이 라듐 물질은 바로 두터운 납 상
자에 밀봉되어 멀리 매립 처분되었다. 그러나 이 오라누르 실험에 참가하였던 거의 전원이
실험 기간 내내 원인 불명의 강한 두통과 어지럼증에 시달렸으며 절망스런 부정적 감정에
휘말리곤 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 실험은 2개월 만에 중지외었는데도 불구하고 그후로 일 년 이상이나 동일한 현상이 지
속되었으며 게다가 연구소 주변의 넓은 영역에까지 똑같은 영향력이 발휘되었다. 연구소 일
대의 하늘에는 항상 기분 나쁜 먹구름이 떠있었고 호수에는 파도조차 일렁거리지 않았다.
무언가 사악한 기운이 연구소와 그 주변을 계속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대부분의 사람들
이 느끼고 있었다. 이 당시 레인제리 연구소 주변의 풍경을 '오르곤 에너지 회보'(1952년 10
월호)에서 인상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마치 살아있는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렸다고 표현할 수 있다. 새들조차 지저귀는 것을
멈추었다. 개구리는 개굴개굴 우는 것을 멈추었다. 그 어디에도 살아있는 소리가 없다. 새들
은 낮게 날아다니며 나무에 몸을 감추었다. 동물들은 숨죽이며 움직이고 낮게 기어다녔다.
나뭇잎과 상록수가 무척이나 슬퍼보인다. 잎은 축 처지고 탄력과 직립성을 잃어버렸다. 나무
와 풀은 마치 죽어가듯 거무칙칙해져갔다. 그 모습이 너무도 검어 오히려 청백색이라는 인
상을 준다.(라이크로푸트 '라이히')"
이것을 라이히는 DOR(Dangerous Orgone)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생명 에너지인 오르곤 에
너지(생기)가 핵 방사능과 결합하여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파괴적인 DOR 에너지(사기)로
변환되었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해석을 깊이 연구할 여유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며 오히려 라이히에게 시급히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이 무겁고 기분 나쁜 기운을 속
히 제거해버릴 수 있느냐하는 실질적인 것이었다. 이로부터 인공 기상 조절 기술이 탄생되
어졌다.
인공 기상 조절 공학의 탄생
라이히의 연구에 의하면 오르곤 에너지는 물과 대단히 강력한 친화성을 갖는다. 마찬가지
로 DOR도 물과 친화성을 가지는데 이 DOR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먹구름이 대기 중에 존
재하면 넓은 범위에 걸쳐서 생체에 부정적인 영향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오르나르 실험을
통해 연구소에 발생한 DOR이 연구소 공중의 먹구름을 형성시켰다고 파악한 라이히는 우선
적으로 이 먹구름을 소멸시켜야만 하였다. 1952년 4월, 황폐해진 레인제리 연구소로 혼자 돌
아온 라이히는 좁은 금속제 파이프를 먹구름을 향해 설치해보기로 생각했다. 파이프가 먹구
름을 향한 순간 금방 효과가 나타났다. DOR 먹구름은 눈에 띄게 작아졌다.
이 성과에 고무된 라이히는 비구름의 발생과 소멸에서 회오리, 벼락, 태풍과 기타 기상 현
상이 오르곤 혹은 오르곤이 전화된 DOR의 집중적인 흐르는 기능에 수증기가 흐르는 기능
에 수증기가 결합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대포 모양의 좁은 금속 파이프를 수도
관과 결합시켜 먹구름을 향하도록 설치하였다. 수도관은 깊은 우물에 연결시켜 담그어 놓았
다. 물이 오르곤 에너지 혹은 DOR 에너지와의 강한 친화성을 가지고 있는 성질을 이용하여
공중에 떠있는 먹구름 속의 DOR을 우물로 끌어내리려는 발상이었다. 파이프를 먹구름 쪽으
로 향하여 설치하자 실제로 경이로운 효과가 발생하였다. 먹구름이 눈에 띄게 작아지기 시
작하더니 결국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로부터 레인제리 연구소 주변의 분위기는 다시
옛날의 평화를 되찾게 된다.
이 실험을 통해 라이히는 대기 중의 오르곤 혹은 DOR을 조절함으로써 먹구름을 소멸시
키거나 역으로 비구름을 발생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연히 알아내게 되었다. 이후로
더욱 정밀한 물대포 파이프 장치-그는 이것을 클라우드 버스터(Cloudbuster)라고 명명하였
다-가 고안되어 만들어졌으며 본격적인 인공 기상 조절 실험들이 실시된다. 이 실험들에 사
용되어진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는 몇 개의 금속 파이프가 평행으로 묶여져 있어 마치 다연
발 고사포 같은 외형을 하고 있다. 금속 파이프는 길이가 약 4m 정도로 망원경처럼 길이를
조절할 수 있게 제작되었으며 파이프 하단은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어서 수도관 끝을 물 속
이나 젖은 땅속으로 이어지도록 연결한다.
이러한 장치가 어떻게 대기나 구름 속의 오르곤 에너지를 흡수하는 지에 대해서 라이히는
피뢰침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번개는 구름 속의 정전기가 한 순간에 방출되는 방전 현상이
다. 이 번개를 피하기 위해 설치하는 피뢰침은 방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전기를 대지로 끌
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는 대기나 구름 속의 오르곤
에너지를 천천히 흡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게 하여 대기나 구름 속의 오르곤 에너지
밀도가 달라지면 구름이 없어지기도 하고 생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먹구름을 없애기 위해서
는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의 금속 파이프를 구름 한 가운데로 조준한다. 그러면 구름 속의
오르곤 에너지가 서서히 파이프로 흡수되어 구름 속의 오르곤 에너지 밀도가 옅어지고 따라
서 수증기의 결합력이 약해져서 구름은 결국 소멸되고 만다. 이와 반대로 구름을 만들어 비
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름이 없는 빈 대기 공간에 파이프의 끝이 향하도록 조준한
다. 그러면 그 공간 상의 오르곤 에너지의 밀도가 희박해지고 이것은 전체 대기 속의 오르
곤 에너지 분포에 심한 불균형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대기 속에서 오르곤 에너지의 소용돌
이 흐름이 형성되고 이것이 공기 속에 수증기들을 형성시키며 결국 구름을 만들게 되는 것
이다.
라이히는 1953년 7월 6일에 최초의 인공 강우 실험에 성공한다. 이 실험에는 노르웨이 시
절부터 라이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정신분석학자 오라 레크네스가 함께 동반하였다. 이후
에 라이히는 이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를 이용하여 사막을 녹지화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1954년 10월, 라이히와 그의 연구팀들은 두 대의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를 트럭에 싣고 메인
주에 위치해있던 오르곤 연구소를 떠나 저 멀리 아리조나 주의 카슨 사막 지대를 향하여 출
발하였다. 10월 29일에 카슨 사막에 도착한 일행은 1955년 1월 초에 처음으로 이 황량한 사
막에 비가 내리게 하는 데 성공한다.
라이히는 사막이 생성된 이유를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단순히 강우량이 부족한 탓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 이전에 DOR이 과도하게 생성되어 생명력이 상실되고 이것 때문에 사
막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로 보았던 것이다. 때문에 사막 지대에서 클라우드 버
스터 장치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인공 강우뿐 아니라 DOR을 제거하여 다시 생명이 가득
찬 녹지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1954년 10월에 카슨 사막 지대에서
행한 인공 강우 실험 때문에 장구한 시간 동안 생명체라고는 풀 한 포기 없던 이 황량한 땅
에서 실제로 목초가 싹을 틔우기 시작하여 30cm 정도의 크기로까지 자라났다고 라이히는
기록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하였다. 1954년에 미국
FDA(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식품위생국)에서 라이히의 오르곤 에너지 집적 장
치를 불법 의료 장치로 법정에 기소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라이히의 죽음과 불타버린 저서들
미국으로 건너온 뒤인 1940년대에 라이히의 주된 연구와 작업은 오르곤 집적 장치의 개발
과 이를 구체적으로 응용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결과물 중의 하나로서 오
르곤 집적 상자를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사례를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러한 행위는 그 성공만큼이나 라이히를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빚기도 하였다. 특히 기존의 의료계와 의사 협회의 비난이 갈수록 심해졌으며 이들의 압력
에 의해 미국에서 불법 의료 행위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미국 식품 위생관리국
(FDA)에서 라이히에 대한 조사에 나서게 된다. FDA 조사 요원들의 태도는 지극히 불공정
한 것이었음이 명백하다. 라이히는 처음에 오르곤 에너지에 대한 과학적인 실험 조사를 함
께 실시해볼 것을 FDA측에 제안하였으나, 이것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르곤의 존
재 여부나 오르곤 집적 상자에 대한 실제적인 실험과 조사를 자체적으로 전혀 실행하지 않
으면서 FDA측은 일반적인 소문과 루머 그리고 라이히에 대해 비난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만
을 모아서 라이히의 연구 행위를 불법 의료 행위로 단정짓는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들은 인류 역사와 과학사 속에서 종종 행해졌던 사회적
병폐에 다름 아니다. 천동설로부터 지동설로의 과학 혁명을 야기시켰던 갈릴레이 갈릴레오
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고 있다는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을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하여 확인하였고 이 결과를 발표
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던 교회와 그를 추종하는 학자들은 교리에
위배된다는 지극히 관념적인 견해에 입각하여 갈릴레이를 죄인으로 취급하였다. 이러한 상
황에서 갈릴레이는 자신이 발견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망원경을 통해서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을 들여다보아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갈릴레이를 단죄한 사람들 중에 망원경을 통해서
그의 주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이히의 오르곤 에너지와 오르곤 집적 상자의 경우도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다. 1950년
대의 미국이나 지금에 이르러서도 암에 대한 특별한 치료약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또한
현재에 와서는 전체 사망 원인 중, 암에 의한 사망률이 제1위를 차지할 정도로 암 발생이
빈번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아직도 항암제 치료와 방사
선 치료 이외의 자연 요법이나 기타 민간 요법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성은
1950년대 당시의 미국 사회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라이히 자신은 오르곤 치
료 요법이 암 치료에 특효를 가지고 있다고 상업적으로 선전한 적이 결코 없었음에도 불구
하고, 오르곤 집적 상자를 이용해본 많은 환자들은 이 단순한 건강 회복 방법으로 암까지
치료되곤 했다. 이러한 이유와 그 가능성에 대해서 라이히는 객관적인 자세로 계속 탐구했
으며 그 결과를 자신이 발간하는 학술 잡지에 게재해나갔던 것이다.
1950년대에 들어와서 라이히는 오라누르 실험 이후로 인공 강우 실험에 거의 전적으로 매
달리게 되었고 1953년도에는 아리조나의 카슨 사막에서 한창 인공 강우 실험을 실행하고 있
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이미 FDA와의 법정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라이히가
사막에서 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FDA측에서는 라이히의 오르곤 집적
장치가 불법 의료 행위라는 많은 법적 근거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근거에 의거하
여 FDA는 라이히에게 의료적인 활동을 일체 금지할 것을 명령한다. 라이히는 FDA의 이러
한 소환 명령에 불응하였고 따라서 더욱 무거운 강제 집행 결과를 초래한다. 1954년 3월에
메인 주의 미국 지방 법정은 오르곤에 관련된 라이히의 모든 연구 활동을 금지하고 게다가
오르곤에 관련된 서적물 자체를 출간 금지시키는 내용의 판결을 내린다. 이에 대하여 라이
히는 미국 법정이 자신의 전 생애에 걸친 과학적인 연구 활동을 강제적으로 금지시킬 수 있
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연구실로 되돌아와서 계속 연구 활동을 재
개하였다.
결국 라이히는 금지 명령에 불응한 죄목으로 1956년에 법정에서 3년 간의 실형을 선고받
고 감옥에 수감되기에 이른다. 더불어 FDA에 의해 강제적으로 모든 서적물과 연구 자료들
이 압수되어 소각 처리된다. 그리고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7년 9월에 펜실바니아 주의
루이스파크 연방 형무소에서 심장 발작을 일으킨 라이히는 60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그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라이히가 강제 구속되던 시점에 메인 주의 오르곤 연구소에 머물고
있던 라이히의 조수 미첼 실버트 박사(Dr. Michael Silvert)와 빅터 소베이 박사(Dr. Victor
Sobey)는 커다란 트럭을 몰고온 FDA 직원들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연구소 내를
샅샅이 뒤져서 모든 서적물과 연구 자료들을 압수해 트럭에 싣고서는 곧장 맨하탄 소각장으
로 달려가 명령대로 이행하였다. FDA의 이러한 행위는 언론 출판으 자유를 가장 중요시하
는 미국 헌법과는 전면으로 상치되는 것이다. 왜 FDA는 실제적인 불법 의료 행위의 단속이
라는 임무를 벗어나 굳이 라이히의 연구 결과조차 세상에서 지워버리려고 했을까.
라이히가 죽고난 뒤 3년 후에 라이히의 추종 계승자들에 의해 그가 남긴 방대한 저작물의
대부분은 다시 재출간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에 의해 전문적인 교육 과정
으로서 미국 오르고노미 칼리지(The American College of Orgonomy)가 설립 운영되기 시
작했다. 이후로 라이히의 연구와 발명들은 조금씩 세상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현재에는 미
국 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그리고 일본 등에서도 라이히의 연구를
이어받아 탐구를 계속하고 있는 의사와 과학자 그룹이 늘어나는 상황에 있다. 하지만 라이
히의 연구 결과가 지니는 그 중요성과 실용성에 비한다면 아직도 기존 학계의 반응은 여전
히 무관심과 냉담함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라이히 생애 연보: 1987년 3월 24일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니안(Ukrainian) 지역? 부농 $집
걷?? ? 綜?s ? C!?CS ??I 우이
는 지금 그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항해하고 있는 중이다. 블랙위도우 장치(가장 간단한 대
포 형태의 에테르 투사 장치)에서 투사되는 에테르 흐름이 이 대기권의 에테르 흐름에 부딪
쳐 그 흐름의 방향을 바꾸면서 에테르 소용돌이를 형성시킨다. 에테르의 포텐셜이 상대적으
로 높아지면 그 부분으로 대기 중의 수증기가 모여들고 일부분에서는 물이 되어 비가 내리
는 것이다... 우리는 저멀리 서쪽 지평선 부근에 에테르의 소용돌이를 형성시킬 것이며 이것
이 바로 이 부근의 기상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실험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미 뱃
머리 깃대 왼쪽에서는 소나기를 뿌릴 먹구름이 형성되고 있다. 마우이의 서쪽 바다 위에서
기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1시간 가량 항해하는 사이에 구름이 빗방우로 변해 바다 위
로 떨어지고 있다.)
1988년 이후 콘스타블은 고기압 상태가 아니면 실험을 하지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러한
인공 강우 현상이 도저히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행해져야만 사람들에게 더욱 설득
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장면2: 1989년 3월 31일. 마우이는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항해하고 있다. 해
설: 마우이가 항해하고 있는 태평양 동서쪽의 기상 상황을 보자. 4, 5시간 전의 기상 지도와
현재 레이더 상으로 보여지는 기상도는 북쪽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두 개의 고기압의 영향권
안에 들어있으며, 현재 기압은 1021 헥토파스칼이고 습구 68F, 건구 72F로서 건구 온도와
습구 온도의 차이는 4도로서 비가 올 확률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스키머 장치를 작
동시킨 지 한 시간이 지나자 이 지역의 기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서쪽에서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이것은 고기압 상태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의 모습은 전혀 아니다. 스키머
장치는 나팔 모양의 고깔 두 개가 비닐 슬리브로 연결되어 있으며 가운데 작은 에테르 집적
장치가 붙어있는 단순한 모양의 에테르 투사 장치이다. 이것을 모터 장치에 연결하여 천천
히 회전시키는 것만으로 이러한 기상 변화를 유도시켰다. 이 스키머 장치와 같은 유형의 것
으로 가장 간단한 장치인 터마이트 장치가 있다. 이는 고깔 모양의 두 개의 관을 꼭대기 부
분을 맞붙여 PVC 파이프로 고정시킨 것이다. 가장 작은 터마이트 컵 크기에 지나지 않지만
이 장치만으로도 기상 변화를 유도시킬 수 있다.
1989년 5월 13일. 마우이는 1035 헥토파스칼의 고기압 한 가운데에 있다. 이 부군의 수백
만 평방미터의 바다 전역이 고기압 권에 들어가 있으며 비가 올 확률은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약 2 r.p.m의 느린 속도로 회전하는 터마이트 장치가 에테르 소용돌이를 만들
어 비를 내리게 한다. 지금 기압계의 눈금은 1025 헥토파스칼, 여전히 비가 내릴 수 없는 고
기압 상태를 표시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배의 앞쪽에 비가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기압계에 의하면 비가 내릴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점점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
비는 우리가 만들어낸 에테르 소용돌이에 의한 것이다. 이 에테르 소용돌이가 바다의 기상
상태를 바꾸어버린 것이다.(비가 더욱 세차게 퍼붓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화학 약품이나 전자기 방사능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진 일
이다. 따라서 이것은 에테르라는 공간 에너지가 모든 생물의 근원적인 실체로서 인정받게
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실험이다. 에테르가 과학적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아마도
새로운 시대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북태평양 바다 위에서 실제로 행하여진 콘스타블의 인
공 강우 실험에 대한 자료를 접한 뒤에 이 기술의 객관성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필자는 놀
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콘스타블의 실험이 갑자기 드러난 한 천재의 기상천외한 작
품이 아니라, 이미 50여 년 전의 과학적 시원 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
해 기술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혁신적 개념의 과학적 기술이라는 것이었다. 콘스타블의 인
공 강우 실험은 그의 스승이었던 빌헬름 라이히에 의해 1950년대에 이미 시작된 것이었으
며, 라이히의 다른 후계자들에 의해서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실시되고 있었다.
라이히의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
따라서 인공 기상 조절 연구를 최초로 실시하고 또 성공시켰던 빌헬름 라이히로부터 이야
기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라이히의 연구 결과를 구체적으로 수집하면서 라이히
라는 사람의 방대한 연구 결과를 접하며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못하였다. 그의 연구 결과는
필자의 표현으로는, 가히 기과학이라 불리울 만한 새로운 학문 분야를 이미 실험적으로 방
대하게 정립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히 자신은 오르고노미(Orgonomy)-이것은 동양적 표
현으로 기과학이란 표현이 오히려 더욱 적합하다-라고 명명했던 새로운 연구 분야의 마지
막 부분에 인공 강우 실험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르고노미의 의학적 응용 분야는 이미 서구
대체 의학의 가장 커다란 주류로서 형성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필자와 더불어 1994년 10월 대전에서 '한국정신과학학회'를 창립한 주역이자 신과학 기술의
세계적 동향을 가장 먼저 수집해온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방건웅 박사가 부산의 부경대 해
양학과 강용균 교수의 초청으로 인공 기상 조절 공학의 역사를 소개한 내용 중 기사화된 부
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기를 모아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을까? 지난 11일 부경대 해양공동연구소 세미나실에서
현재의 과학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날씨를 조절하려는 연구를
소개하는 세미나가 개최되어 관심을 끌었다. '에테르를 이용한 기상 제어 기술'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방건웅 박사는,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
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겨왔지만 기와 염력 등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국내외에서 활발
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기의 실체에 대해서 수천 년 동안 한의학 등의 임상을 통해 증명되
어 왔고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만큼 비과학적이라고 무조건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였
다. 특히 서양 의학은 암이나 고혈압 등 만성병 치료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제
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자연 현상도 많다는 것. 예를 들면 소리는 공기 입자의 진동에 의해
전달되지만 전자기파의 전달 방법은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
방박사에 따르면, 에테르를 이용한 기상 제어 연구는 1930년대 프로이트의 마지막 제자인
빌헬름 라이히 박사가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라이히 박사는 대기는 기와 비슷한 개념인 오
르곤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오르곤 에너지와 친화력이 강한 물을 이
용하여 대기 중의 오르곤 에너지 흐름을 ??자기 TV 화면에서 전개되던 영상들이 하얗게 사라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이때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는데 잠시후 깨어나보
니 생전 처음 보는 UFO 내에 자신이 와 있었으며 두 명의 우주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
다. 이들은 데이비드에게 자신들의 우주선 내부를 관람시켜주면서 특히 우주선 추진 장치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데이비드에게 똑같이 만들어보라고 권고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진실인지 환각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이후로 그는 반중력 비행 접시
장치를 실제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난 14년 간 데이비드는 4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실
제로 제작하였으며 어설프게 만든 이 프로토 타입 장치들을 작동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
다.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는 말 그대로 석유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아주 조악한 것이었
다. 이 드럼통 안에 그가 UFO 내부에서 목격하였던 것과 유사한 형태로 특수 영구 자석들
을 조립 배치시켜 놓았다. 조립을 마치고 난 후에 식사를 하면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실험
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놀라서 달려가보니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장치가
공중으로 치솟아 천장에 부딪치고 있었다. 잠시 후 얇은 슬라브 천장을 뚫고 이 드럼통은
하늘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이를 통해 이 장치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데
이비드는, 그 이후로 현재까지 조금씩 더욱 세련된 형태로 세 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더
제작하였다.
80년대 말경부터는 피어 싱클레어라는 젊은 조력자가 생겼으며 최근까지 대부분의 작업은
이 싱클레어가 행하고 있다. 사진9는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이며
사진10은 좀 더 세련된 타입의 프로토 타입 장치의 외형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가운데 원
추형 콘모양의 새까만 부분들이 영구 자석이 위치한 엔진 부분에 해당된다. 데이비드와 싱
클레어는 1996년의 제3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ISNE; International New
Energy
Symposium)에서 자신들의 장치(Gravito Magnetic Device)에 대해 공식적으로 소개하고 있
는데, 여기에서 이 장치의 작동 원리와 세부 구조를 다음고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장치 윗 덮
개 부분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영구 자석 엔진 부분을 손으로 밀어내리면 이 장치는 작동
을 시작한다. 장치 윗 덮개 가운데에 위치하는 영구 자석은 커다란 고리형 자석으로서 모두
14개의 자석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것을 밑으로 끌어내리면 아래에 위치한 작은 고리
형 자석에 영향을 미치고 자석간의 반발력에 의해 이 고리형 자석들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고리형의 영구 자석이 한번 회전하기 시작하면 아무런 외부 동력이 없이도 회전이 계속
지속되며 이것은 전체 장치 속에서 특별한 에너지 상태를 유도한다. 이로부터 플라즈마 형
태의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점차적으로 그 색깔이 바뀌면서 동시에 중력 감소 현상이 발생하
여 결국은 공중 부상하게 된다고 소개도어 있다. 발명자들과 몇 사람의 관계자들의 증언 외
에는 아직까지 이 장치가 정말 작동되어 공중 부상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이 부족한
상태이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싱클레어가 현재 제작 중인 프로토 타입 장치가 완성되는 대
로 공식적으로 공개 시현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므로 이 장치에 대한 진위 여부도 조만간
확실해질 것이다.
핀란드에서의 반중력 소식
존 셜의 반중력 장치나 데이비드의 장치는 모두 특수 영구 자석과 고속 회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수 영구 자석의 고속 회전이 어떻게 반중
력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이러한 이론적인 면과 관련되어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
공해줄 지도 모를 특별한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어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전문
적인 과학자가 행한 실험 도중에 초전도체의 영구 자석을 고속 회전시키면 반중력 효과가
실제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세간에 흘러나온 것이다. 이 사실은 일반 잡지에서 먼저 기
사회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996년 9월 1일자의 '선데이 텔레그래프' 잡지와 9월 21일
자의 '뉴사이언티스트' 잡지에서 처음 기사가 게재되어졌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
음과 같다.
"핀란드의 탬피어 대학(Tampere Univ.)의 유진 포드크레트노프(Eugene Podkletnov)박사
연구팀은 아주 우연히 물체의 중량이 현저히 줄어드는 반중력 현상을 발견하였다. 원래 이
들은 초전도체 세라믹으로 만든 고리형의 영구 자석을 솔레노이드 전자석 위에 띄워서 고속
회전시키는 실험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70K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세 개의 솔레노이드
코일 전자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장치 시스템 위에다가 초전도성의 고리형 영구 자석을 띄워
놓고 고속 회전을 시키고 있을 때였다. 이때 연구팀의 누군가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
는데 이 담배 연기들이 장치 시스템 위에서 일직선으로 천장으로 솟구치는 것을 우연히 발
견하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구팀은 이 장치 위부분에 모래 주머니를 놓고 중량
측정을 시도해보았는데 그 결과 모래 주머니의 중량이 현저하게 감소한다는 것이 측정되었
다.
최초의 측정때 0.3%의 중량 감소를 발견하였으며 이에 장치의 회전 속도를 5000 r.p.m 이
상 높인 2차 실험에서는 최대 2%의 중량 감소 현상을 측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측정을 확
대하여 이 반중력 현상이 어느 범위에까지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장치 시스템 위로
직선적인 거리를 점점 멀게 하여 측정한 결과, 연구실 위층에서까지 어느 정도 유사한 중량
감소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놀라운 반중력 실험 결과가 전문 학술지에 먼저 게
재되지 않고 일반 잡지에서 최초로 기사화된 경위는 이러하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세계적으로 저명한 물리학 학술지인 '피지칼
리뷰(Physical Review)' 잡지에 연구 논문 원고로서 송부하였다. 피지칼 리뷰의 세 명의 편
집자들은 이 획기적인 연구 논문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결국 학술지에 게재하
기로 결정을 보게된다. 하지만 논문이 연재되기 직전에 포드크레트노프 박사팀은 연구 결과
를 공개하지 않기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논문 원고 자체를 회수하였다. 그 이후에 이러한
획기적인 결과가 감추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어떤 사람(학술지 편집자 중의 한 명
이거나 연구팀 중의 한 명)에 의하여 이 사실이 대중 매체에 전달되었던 것이다.
대중 잡지에 소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템피어 대학측에 문의하였으나 이미 포드크레트
노프 박사팀은 자취를 감춘 후였으며, 템피어 대학측에서 말하기로는 포드크레트노프 박사
팀은 1992년도부터 템피어 대학에서 모종의 연구 프로젝트를 위임받아 수행하던 중이었으며
반중력에 대한 현상이 보도되던 무렵에는 더 이상 템피어 대학의 연구원이 아닌 상태였으므
로 이러한 실험 결과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앞서의 셜 장치와 데이비드의 공중 부상 장치와 마찬가지로 이 실험의 진위 여부
에 대한 확증은 아직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여러 전문가
들이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의 연구가 진짜라면 더욱 더 앞으로의 실제 연구는 극비리
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당분간 이들을 공개적으로 접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
각된다. 핀란드에서 전해진 반중력 현상에 대한 소식은 세계의 여러 초전도체 연구가들과
반중력 연구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나아가 존 셜의 장치나 데이비드의 반중력 장
치에 대한 이론적 실마리도 제공하고 있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의 실험 결과는 장치 자체
가 공중 부상하는 타입이 아니라 일종의 반중력 공간이 생성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
하다. 이 장치 위로 생성되는 반중력 공간 속에서는 물질의 종류에 관계없이 어떠한 것이라
도 중량 감소 현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반중력 효과를 의심할 여지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제4장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대규모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1979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제목으로 텔레포테이션 실험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
야기를 담고 있는 책자 하나가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
으며 이 책에 담긴 내용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사실 여부
를 떠나서 일반 대중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였던, 공간 이동과 시간 여행에 대한 책자의
내용들은 그 자체로 영화화되어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을 정도이다. 영화 '필라델피아
익
스페리먼트' 이전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 공간 이동을 다룬 오락 영화 '백 투더 퓨처
'
역시 그 주된 테마는 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얻어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먼저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의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기지에서는 일련의
극비 비밀 실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 실험의 최종 목적은 전함의 일종인 구축함을
일종의 전자기 차폐막으로 에워싸서 적의 레이더망에 전혀 포착되지 않도록 만드는 특수 군
사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현재 이 기술은 스텔스 전투기로서 기술적으로 성공리에
개발되어 있다.) 이 실험을 위하여 '엘드리지'라는 이름의 구축함이 건조되었고, 이 배 안
에
는 발전기와 변압기 및 전자기 장치들이 가득 설치되었다. 1943년 7월 20일 오전 9시에 최
초의 역사적인 실험이 행해졌다. 엘드리지호는 승무원들과 기술자들을 탑승시킨 상태로 필
라델피아 앞바다로 나아갔으며 배 안에 설치된 장치들을 가동시켰다. 메인 스위치를 올리고
장치들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드디어 엘드리지호는 레이더망에서 완전히 그 흔적을 감추었
다. 20여 분 동안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그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그 실험은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배가 기지로 돌아왔을 때, 배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
대다수가 일종의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인명 사고가 예상되는 이러한 상태에서도 전쟁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절정에 달하고 있던
당시의 전황으로 인해 생명체에 미칠 부작용을 염려할 틈이 없었던 탓인지, 한 달도 채 안
된 8월 12일 본격적인 두 번째의 실험이 실시되었다. 거의 100여 명의 군인들과 수십 여 명
의 기술자들이 탑승한 상태로 엘드리지호는 바다로 나아갔으며 예정된 시간에 실험을 실시
하기 위해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실험 장치들이 작동되어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발생
하면서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엘드리지호는 이윽고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 여기까지
는 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바로 잠시 후에 엘드리지호 전체가 녹색의 후광으
로 덮이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서 배 자체가 그 모습을 완전히 시야에서 감추어버린 것이다.
레이더 상에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실제의 공간상에서도 사라져버렸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엘드리지호는 다시 필라델피아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필라델피아 해군
기지에서 배를 인양하였을 때, 당초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실종되
었으며 남아있는 사람들도 아주 격심한 정신 착란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실험이 되어버린 10월 27일의 세 번째 실험에서는 승무원을 한 명도 태우
지 않은 채 원격 조종으로 배 안의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장치를 가동시키자 이번에도
엘드리지호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10여 분 후, 필라델피아 항구에서 442km 떨어져있
는 대서양 연안의 버지니아의 노폴크 항구에서 홀연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노폴크 항구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다시 텔레포테이션하여 원래의 필라델피아 항구로 되돌아온 엘드
리지호는 심한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고, 배 안의 장치들은 모두 과열되어 심하게 손상
되어져 있었다. 현재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레인보우 프로젝트의
당시 수뇌부는, 결국 이 프로젝트를 마감하기로 하고 프로젝트의 총괄 진행자였던 폰 노이
만 박사를 맨하탄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전격 소환하였으며, 바로 얼마 후에 원자 폭탄이 개
발 성공된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진행 과정과 실험 결과들은 철저히 극비 사항으로
감추어졌으며, 실험에 사용된 엘드리지호는 완전 개조되어 전쟁이 끝난 후에 그리이스 해군
으로 양도됨으로써 이 실험에 대한 모든 흔적이 지워져 버린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50년대 중반에 천문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UFO 연구가로서
도 잘 알려진 모리스 제섭(Morris K. Jessup)박사에게 일련의 편지들이 배달되었다. 카를로
스 알렌디(Carlos Allende)라는 이름의 한 선원이 보낸 그 편지들은 그동안 은폐되어온 필
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숨겨진 사건을 다시 거론하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앤드류(Andrew Furuseth)라는 이름의 화물선에서 일하고 있던 뱃사람인데,
1943년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 연안을 항해하던 도중에 어느 거대한 군함 한 척이 바다 위
에서 홀연히 사라졌다가 몇 시간 후에 다시 홀연히 나타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직접 목격하
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추적해 본 결과, 그 선원은 이것
이 바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극비 군사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알게된 이 놀라운 사건을 혼자만 간직하다가 이제야 모리스 박사에게 털어놓는다는 내용이
었다.
모리스 박사는 이에 흥미를 가지고 전설적인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비밀을 파헤치는
민간 모임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59년에 모리스 박사 자신이 공원
한 구석,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의문의 자살을 한 상태로 발견되어 더욱 커다란 의혹만을
남긴 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는 다시 전설 속으로 묻혀지고 만다. 다시 어언 20여 년이
지난 1979년 윌리암 무어(William Moore)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행하여졌던 엘드리
지호의 실제 항해 일지를 추적하여, 그 당시 실험이 행해진 당시의 엘드리지호의 공식적인
항해 기록이 많은 의문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화제
의
책을 출간했고, 이것이 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다. 1979년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인지 아니면 단지 픽션에 불
과한 것인지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날로 고조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사 보안적인 기
밀 사항이 그렇듯이, 이 또한 사건의 진위를 입증할 객관적인 물증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
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집중시키는 상황들이 연속
으로 일어났는데, 그것은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여 사건 전모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잇달아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필라델
피아 익스페리먼트 사건의 내용은 더욱 확장되어, 단지 우연히 발생한 대규모의 텔레포테이
션 실험이었다기 보다는 차라리 마치 SF소설에나 등장하는 일들이 현실에서 실제 상황으로
발생하였다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들이 밝혀졌다. 즉, 엘드리지호가 공간 이동을 보여주었던
당시, 그 속에 탑승해있던 승무원 자신들은 소위 시간 여행을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증인들
가장 최근인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엔드류 드루(Andrew Storm. Drue)박사는 20여 년 간
미 해병대에서 근무하다가 1993년에 제대한 이후,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UFO 분야에
대한 연구와 소개 활등을 주로 해온 사람이다. 그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그 자신이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기술자 중 한 사람으로서, 당
시 살아남은 생존자 중의 하나로 스스로를 밝히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를 방문하여 당시의 체험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고, 이를 계기로 그는 아예 대중 강연을 나
서게 된다. 1996년 캐나다에서 개최된 '96 지구촌 과학 회의(Global Science Congress)'에서
행한 초청 강연에서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의 일부분을 인용하자.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였다고 이야기하
는데 그렇다면 그때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를 말해달라고 자꾸 요청해 옵니다. 그때의 상황
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죠. 얼마 전 '인터컨넥팅' 잡지에서 인터뷰하여 실렸던 글이 여기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읽어드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실험 장치들의 메인
스위치를 켜고 최대의 전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일말의 공포심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스위치를 켜서 강력한 전자기장이 형성되자마자
곧바로 짙은 안개 같은 것에 휩싸였고 우리가 타고 있던 엘드리지호는 공간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나는 내 뒤에 위치해 있던 발전기 장치로부터 일종의 강력한 에너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의 여파로 몸이 산산조각나는 것 같았으며 눈앞에서는 섬광이 작열하여 장
님이 되는 것 같았다. ...기나긴 시간 여행 끝에 우리는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고 이때의 주
위 현장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해군 구조 대원들이 만신창이가 된 엘드리지호로 올라왔을
때에 그들은 이러한 광경에 질겁을 하고 말았다. 나는 들것에 실려서 작은 구조선으로 옮겨
졌다. 전체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21명 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아예 120여 명은 그 자
취를 찾을 수조차 없었다. 이들은 엘드리지호가 다시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을 때 배 안에
남아있지 못했던 것이다...
자, 상상해보십시오. 자그만치 15백억 볼트의 전기가 흘렀다면 말입니다. 그때는 새벽이었
습니다. 우리는 실험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삼엄한 보안 유지 이
야기를 자꾸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항구에서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댈러웨어로 향하는 도중이었지요.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5명이 전문 과학자였는데 나는 민간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 계획
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는 엘드리지호가 막 건조되고 있는 중이었지요. 니콜라 테슬라가
제시한 설계도에 따라서 배는 건조되었고 다양한 장비들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테
슬라가 이 실험을 끝까지 지휘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생물을 대상으로 실험할 경우에 발생
할 위험성을 깨닫고 테슬라는 이 계획을 철회하고자 하였죠. 그는 스스로 발을 뺐죠. 그러고
는 바로 뒤인 194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되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죽었다고는 절
대 믿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부가 그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였거나 그의 측근이 그의 죽음을
위장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틀림없는 시간 여행자인데 그가 그
렇게 세상을 떠난단 말인가요. ...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이제는 지금까지 배워온 것과는
사뭇 다르게 시간을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개념은 하나의 연속된 일
직선 상에 놓여있는 시간적 개념입니다. ...시간은 오히려 병렬식입니다. 시간이란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시간 여
행이 가능한 것이죠. 모든 시간은 현재입니다. 모든 사건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중
략...
자, 이제 여러분들에게 텔레포테이션이라는 기술이 이제는 실증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
고 있다는 실례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잡지를 보고 계시는 분이 계시나요? 1996년 2월호에 실려있는 이 IBM 광고를
보신 분 계십니까? 유럽에 있는 노부인이 일본의 노신사 분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가 뭔가 좋은 것을 금방 공간 이동시켜 보내 드릴테니까'라고 말하는
광고 밑에 이런 코멘트가 달려 있군요. '한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구조를 완전하게 유지
하
면서도 공간 상의 다른 곳에 전송시키는 기술이 이미 현실화되었다. 마술 같은 이야기이지
만 미래에는 모든 컴퓨터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IBM 광고입니다. 그 내
면을 본다면 이미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테슬라는 이 기술을 이미 백 년 전에
개발하였던 사람이죠.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훨씬 이전에 말입니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실제로 실시되었던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실험이 수행될 수 있었던 기술적 기반이 이미 1943년 이전에 확보되어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여기에는 당대의 기라성같은 과학자들이 상당수 출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핵
심적으로 거론되는 사람이 바로 니콜라 테슬라(Nichola Tesla) 박사이다.
1910년경에 교류 발전기 장치라는 획기적인 전기 발생 장치를 최초로 발명함으로써 현재
의 전기 전자 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문명을 역사상에 개막시켰던 테슬라의 방대한
과학적 업적은,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가져다 주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적인 위대성에 비
견될 만큼 현재에 다시 되살아나 급격하게 재조명을 받고 있다. 라디오 장치로부터 시작된
무선 통신 기술의 경우도 실제로 이것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마르코니가 아니라 바로 니
콜라 테슬라였으며, 테슬라의 친구였던 마르코니가 그의 발명을 도용하여 단지 먼저 발표한
것일 뿐임은 미국 법정에서도 현재 공인된 사실이다. 20세기 초의 당시 상황에서는 전혀 생
각해볼 수도 없었던 수많은 발명들을 내놓았던 대천재 니콜라 테슬라의 업적들은 거의 사장
되어 버렸고, 그 중 몇 가지만이 현재까지 실용화되고 있는데, 이것들만으로도 테슬라의 과
학적 업적은 가히 신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외의 묻혀져버린 테슬라의 수많은 발명들
가운데 몇 가지는 최근에 와서 다시 재현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1장에서 소개된 캐나다
의 존 허치슨의 반중력 장치도 니콜라 테슬라의 무선 송전 실험을 재현해보려는 시도 중에
서 발견된 것이었듯이, 일반에게 미공개된 테슬라의 후반기 발명 중에는 공간 이동에 대한
실험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전반부로서 인용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실제 기원은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1
년부터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행하여진 1943년까지의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31년 시카고에서 니콜라 테슬라를 중심으로 물체 투명화와 불가시화 현
상
(Invisibility)에 대한 기초 연구를 토의하는 소수의 과학자팀이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시카고 대학의 학장이었던 존 허치슨 경을 위시하여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물리학자 에밀 쿠
르티나우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1933년 테슬라와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던 프
랭클린 루즈벨트의 조언에 따라 공식적으로 소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전위적인 연구
팀이 결성되었으며, 1934년 이후 연구 센타는 시카고 대학에서 프린스톤 대학으로 옮겨져,
폰 노이만 박사(John Von Neumann)와 타운젠트 브라운(Tomas. Townsend Brown) 등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다수 합류하는 실제적인 연구팀으로 발전되었으며, 아울러 이론적인 수
학적 공식의 정립을 위하여 아인슈타인에게도 조언을 구하게 된다.
이 연구 결과로서, 1940년 브룩클린 미 해군 기지에서 레인보우 프로젝트라 명명된 최초
의 물체 불가시화 실험이 테슬라의 총지휘 하에 실시된다. 테슬라가 발명하였던 교류 발전
기 장치와 라디오 트랜스미터 그리고 테슬라 코일이라는 변압기 장치 등으로 구성된 장치
시스템으로 최초의 물체 불가시화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고, 1942년 이 실험을 실제적 군사
기술로서 확장시키기 위하여 구축함 한 척이 건조되었고 테슬라는 전시 상황의 요구로 이
기술을 군사 기술로서 조속히 개발하기를 종용받기에 이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테슬라는 생
명체를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였는데, 그를 제외한 다른 과
학자들이나 해군 수뇌부들은 이 기술이 생명체에게 미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심각한 고려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고민에 빠졌다. 결국 생체를 대상으로 실험하
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예비 실험과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제안이 거절당하자 테
슬라는 실험 전체를 거부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그가 이 프로젝트에서 강제로 축
출당하는 결과를 빚었다. 1942년 프로젝트와 결별한 니콜라 테슬라는 그로부터 열 달 후인
1943년 그의 자택에서 조용히 운명을 마감한 것으로 대외에 발표됨으로써 그 위대한 신화와
함께 역사의 의문 속으로 사라졌다.
Phenomena)라는 이름의 이 UFO 조사 연구 단체와의
인연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다음 해인 1957년에 브라운은 과격해지는 협회의 성격과 방만
한 재정 관리에 관해 다른 이사진들을 추궁하게 되고 결국은 브라운 자신이 창립한 이 협회
에서 스스로 발을 떼고 만다. 하지만 이 단체를 설립하여 외형상 UFO 연구를 표방하였던
사실 그 자체가 브라운을 정통 과학계에서 결국은 소외당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로서 UFO 연구를 공식적으로 내세운 것은, 과학자로서의 그 자신의 명예를 공동 묘지
에 처박아넣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부터 정통있는 미국
과학 잡지에서는 브라운의 연구 자체를 잡지에 게재하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러한 불행과는 달리 1957년은 브라운에게 행운의 해이기도 하였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꿈과 연구에 완벽히 동의하는 앤그뉴 밴슨이라는 기업가를 만나게 된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밴슨 주식회사의 사장인 앤그뉴 밴슨은 개인적으로 우주 여행을 마지막 소망으로 삼
고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들었을 때, 이 사람의 연구야말로 자
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작업을 실제
로 진행시키기 위해 밴슨 사장은 자기 회사 내에 화이트홀-랜드 프로젝트(Whitehall-Rand
project)라는 반중력 비행체 개발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 과제를 브라운에게 위임한다. 이로
부터 몇 년 간 브라운-밴슨 연구실이 운영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많은 연구 결과가 가시적
으로 진행되었다.
브라운과 밴슨은 초기 2년 동안 자신들이 제작한 장치들과 그 작동 상황을 틈틈이 비디오
로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는데, 이 필르은 아마도 반중력 연구라는 테마를 통틀어
가장 최초의 비디오 영상 자료일 것이다. 총 50여 분 정도의 이 비디오 영상 장면 가운데
1958년 1월 17일자로 기록되어 있는 실험 장면 하나를 살펴보자. 우산 형태로 생긴 전체 무
게가 약 60g의 장치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 164kV, 1mA의 고전압 전기를 흘려
보내자 이 장치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이다. 만약에 바람을 이용하여 이러한 장
치를 똑같이 공중으로 들어올리려면 적어도 초속 10피트의 풍속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장
치가 공중 부상하고 있는 연구실 내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공기 흐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영상 장면은, 브라운 장치에서는 전기력에 의해 반중력과 유사한 새로운 힘이 발
생하고 이 힘이 실제로 중력을 극복하여 공중 부상시킨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활발히 연구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행운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는 못하였
다. 1964년에 밴슨 사장이 비행기 추락 사건으로 갑작스레 사망함으로써 연이어 브라운의
연구도 된서리를 맞았던 것이다. 그 이후 브라운 자신이 직접 진행한 연구 결과는 별로 없
다. 1965년 당시 이미 브라운의 나이는 60세였으며 1985년에 80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기까
지 브라운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다른 과학자들에게 소개하는 일만으로도 힘에 버거웠다.
최근에 와서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이라고 명명되는 브라운의 전기-중력 조절 실
험은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을 뿐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활발한 연구 실험이 전
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혁명적인 과학적 발견과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
이라는 천재적인 과학자의 이름은 그 어떤 과학 교과서에서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비펠드-브라운 효과
1924년경 덴니선 대학에서 브라운과 비펠드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를 진전시켰던 전기-중
력 제어 현상인 비펠드-브라운 효과(Biefeld-Brown Effect)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브라운은 고전압의 전기로 충전되어 있는 두 개의 축전지(Capacitor)사이에는 (-)극
쪽에서(+)극 쪽으로 밀어주는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을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다. 판대기 모양의 두 장의 콘덴서를 사용하여 한 쪽은 음극으로
충전시키고 다른 한 쪽은 양극으로 충전시켜서 실로 매달아두면 음극 쪽으로 밀려가는 현상
이 발생한다. 이것을 수직선 상으로 위치시켜서 천칭 저울로 실험해보면 결과적으로 중량의
증가(가중력 현상)와 감소(반중력 현상)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극이 아래쪽에 위치해 있
을 때는,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중량이 감소하는 반중
력 현상이 나타나고, 이와 반대로 (-)극이 위쪽에 위치해 있을 때는,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가중력 상태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을 브라운은
'비펠드-브라운 효과'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단순하게 보이는 현상들이 의미하는 바는 실
로
엄청난 것이었다.
1860년대에 미카엘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이후, 전기력과 자기력
이라는 두 가지의 힘은 하나의 관계식으로 연결되어졌고, 현재는 전자기력이라는 용어로 통
합된 상태이다. 하지만 아?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그의 말에 의
하면 M-L 변환 장치의 외형이 기존의 윔스르스트 정전기 발전 장치와 유사해보이긴 하지
만 실제 장치의 작동 원리는 판이하게 다르며 또 그 내용면에서도 윔스르스트 장치처럼 그
렇게 단순하지 않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 장치의 전체 시스템 속에는 현재 조금씩 성공 사
례가 밝혀지고 있는 다양한 다른 공간 에너지 장치들의 원리와 기술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점들은 다른 공간 에너지 장치들이 세간에 점차 소개되는 것과 병행하여
조금씩 밝혀질 것이다.
새로운 전자기학 이론과 모델의 연구
현재까지 스위스 M-L 변환 장치는 정전기 유도 장치의 원리를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
다는 것과 장치 중앙에 커다란 두 개의 아크릴 원반이 정전기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 두
가지는 거의 의심이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정전기 현상
과 기존의 정전기 유도 장치들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밟다보면
단순한 정전기 유도 현상에 대해서조차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바가 거의 없으며, 현재의
과학 지식이 탐구해야 할 부분이 실제로 광대하게 묻혀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
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기존의 전기 장치들은 발전기나 밧데리 등에서 발생된 전기(교
류 또는 직류)를 이용하고 있는데, 현재의 일반적인 이 전기는 정전기와 구별하여 동전기
(Dynamic electricity)라 부른다.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동전기 또는 일반 전기의
발생 원리는 1831년 패러데이(M. Faraday)가 발견한 전자기 유도 현상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1830년대에 패러데이는 전기에 관계된 다양한 기초 실험을 연구하였는데, 이 때에 가
느다란 구리 도선을 둥글게 감은 솔레노이드(Solenoid) 코일 속에 막대 자석을 넣었다 빼는
동작을 계속하던 중에 솔레노이드의 구리 도선에 전기가 발생하여 전류가 흘러간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반대 현상도 일어나는데, 솔레노이드 코일에 전기를 통과시키면 코일에
서 자기장이 발생하는 것이다. 패러데이는 이를 전기-자기 유도 현상이라 명칭하였다.
이 현상은 패러데이 이후의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더욱 세밀하게 연구되고 발전되어 현재
의 전자기학의 토대를 형성하였으며, 지금의 전자 전기 기술 문명을 이룩하는 계기가 되었
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전기라고 하면 도선을 따라 흘러가는 이 동전기만을 생각하기 쉽
다. 그러나 패러데이 시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전기 개념이 없었고 도리어 정전기에 대한
연구가 보편적이었다. 실제로 대자연에서 발생하는 전기 현상은 모두 정전기에 기인한 것이
었다. 가장 흔한 예로 번개를 들 수 있는데, 번개가 치는 원인 또한 정전기 때문이며 18세기
에 프랭클린이 빗 속에서 연을 날려 번개가 전기임을 증명한 일화는 유명하다. 프랭클린은
정전기를 연구, 이용하기 시작한 초기의 대표적 과학자였던 것이다.
프랭클린 이후로 1910년대까지 전기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정전기에 대한 것이었으나, 패러
데이의 전자기 유도 현상에 의한 동전기의 발견과 그 뒤의 교류 전기 모타 및 발전기 장치
등 성공적인 연구 성과에 힘입어 결국 1910년대 이후로 오면 정전기 연구는 거의 사라져 버
리게 된다. 따라서 현재 알려져 있는 정전기에 대한 개념과 연구는 80년 이전보다 진보한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정전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어이없게도 정전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고 놀라워할 것이다.
건조한 유리 막대기를 마른 명주 헝겊으로 문지르면 유리 막대기는 작은 종이 조각이나
비닐 조각을 끌어당기는 성질을 띤다. 이것은 유리 막대기에 전기가 발생한 때문이다. 이처
럼 두 개의 물체를 서로 마찰시킬 때 발생하는 전기가 바로 정전기(staticelectricity)이다. 화
학 섬유로 만든 옷을 갈아입을 때 자주 일어나는 작은 섬광과 소리는 바로 정전기가 방전되
는 현상이다. 마찰에 의한 정전기 발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마찰에 의해 생긴 전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즉, 물체와 물체를 문지르면 한쪽은 양(+)
전기를 띠고 다른 한쪽은 음(-)전기를 띤다. 이렇게 분리된 전기는 같은 것끼리는 서로 반
발하고, 다른 극끼리는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을 보인다. 두 개의 물체를 서로 마찰시켰을 때
어느 쪽이 양(+)전기를 띠고 어느 쪽이 음(-)전기를 띠는지는 19세기 초 패러데이의 실험
결과말고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패러데이는 여러 가지 물질을 실제로 마찰시켜
서 그 물체에 나타나는 전기를 조사하여 패러데이의 정전 서열을 작성한 바 있다. 두 개의
물체를 선택하여 서로 마찰시키면 두 개 중에서 양전기(+)에 가까운 물체는 양전기를 띠고
음전기(-)에 가까운 물체는 음전기를 띠게 된다.
예를 들어 유리 막대기와 고무로 만든 천조각을 서로 마찰시키면 유리가 (+)쪽에 가까우
므로 유리 막대기는 (+)전기를 띄고 고무천은 (-)전기를 띠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
도에서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왜 마찰을 통해 전기가 발생하는가의 의문이 자연스럽게 일
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필자가 찾아본 바로는 전혀 만족스러운 설명이 없었다.
대부분의 전자기학 개론서에는 다음과 같은 추상적인 설명만이 간략히 붙는데, 그 설명 자
체도 실제로는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물체를 마찰하면 전기가 일어나는데 이 정전기는 어
떻게 긋생G풔?것일??$갛j@宴竪풔?방전 현상이
다. 이 번개를 피하기 위해 설치하는 피뢰침은 방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전기를 대지로 끌
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는 대기나 구름 속의 오르곤
에너지를 천천히 흡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게 하여 대기나 구름 속의 오르곤 에너지
밀도가 달라지면 구름이 없어지기도 하고 생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먹구름을 없애기 위해서
는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의 금속 파이프를 구름 한 가운데로 조준한다. 그러면 구름 속의
오르곤 에너지가 서서히 파이프로 흡수되어 구름 속의 오르곤 에너지 밀도가 옅어지고 따라
서 수증기의 결합력이 약해져서 구름은 결국 소멸되고 만다. 이와 반대로 구름을 만들어 비
를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름이 없는 빈 대기 공간에 파이프의 끝이 향하도록 조준한
다. 그러면 그 공간 상의 오르곤 에너지의 밀도가 희박해지고 이것은 전체 대기 속의 오르
곤 에너지 분포에 심한 불균형을 만들게 된다. 따라서 대기 속에서 오르곤 에너지의 소용돌
이 흐름이 형성되고 이것이 공기 속에 수증기들을 형성시키며 결국 구름을 만들게 되는 것
이다.
라이히는 1953년 7월 6일에 최초의 인공 강우 실험에 성공한다. 이 실험에는 노르웨이 시
절부터 라이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정신분석학자 오라 레크네스가 함께 동반하였다. 이후
에 라이히는 이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를 이용하여 사막을 녹지화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1954년 10월, 라이히와 그의 연구팀들은 두 대의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를 트럭에 싣고 메인
주에 위치해있던 오르곤 연구소를 떠나 저 멀리 아리조나 주의 카슨 사막 지대를 향하여 출
발하였다. 10월 29일에 카슨 사막에 도착한 일행은 1955년 1월 초에 처음으로 이 황량한 사
막에 비가 내리게 하는 데 성공한다.
라이히는 사막이 생성된 이유를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단순히 강우량이 부족한 탓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 이전에 DOR이 과도하게 생성되어 생명력이 상실되고 이것 때문에 사
막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로 보았던 것이다. 때문에 사막 지대에서 클라우드 버
스터 장치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인공 강우뿐 아니라 DOR을 제거하여 다시 생명이 가득
찬 녹지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1954년 10월에 카슨 사막 지대에서
행한 인공 강우 실험 때문에 장구한 시간 동안 생명체라고는 풀 한 포기 없던 이 황량한 땅
에서 실제로 목초가 싹을 틔우기 시작하여 30cm 정도의 크기로까지 자라났다고 라이히는
기록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하였다. 1954년에 미국
FDA(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식품위생국)에서 라이히의 오르곤 에너지 집적 장
치를 불법 의료 장치로 법정에 기소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라이히의 죽음과 불타버린 저서들
미국으로 건너온 뒤인 1940년대에 라이히의 주된 연구와 작업은 오르곤 집적 장치의 개발
과 이를 구체적으로 응용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결과물 중의 하나로서 오
르곤 집적 상자를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사례를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러한 행위는 그 성공만큼이나 라이히를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빚기도 하였다. 특히 기존의 의료계와 의사 협회의 비난이 갈수록 심해졌으며 이들의 압력
에 의해 미국에서 불법 의료 행위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미국 식품 위생관리국
(FDA)에서 라이히에 대한 조사에 나서게 된다. FDA 조사 요원들의 태도는 지극히 불공정
한 것이었음이 명백하다. 라이히는 처음에 오르곤 에너지에 대한 과학적인 실험 조사를 함
께 실시해볼 것을 FDA측에 제안하였으나, 이것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르곤의 존
재 여부나 오르곤 집적 상자에 대한 실제적인 실험과 조사를 자체적으로 전혀 실행하지 않
으면서 FDA측은 일반적인 소문과 루머 그리고 라이히에 대해 비난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만
을 모아서 라이히의 연구 행위를 불법 의료 행위로 단정짓는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들은 인류 역사와 과학사 속에서 종종 행해졌던 사회적
병폐에 다름 아니다. 천동설로부터 지동설로의 과학 혁명을 야기시켰던 갈릴레이 갈릴레오
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고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
고 있다는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을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하여 확인하였고 이 결과를 발표
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던 교회와 그를 추종하는 학자들은 교리에
위배된다는 지극히 관념적인 견해에 입각하여 갈릴레이를 죄인으로 취급하였다. 이러한 상
황에서 갈릴레이는 자신이 발견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망원경을 통해서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을 들여다보아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갈릴레이를 단죄한 사람들 중에 망원경을 통해서
그의 주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이히의 오르곤 에너지와 오르곤 집적 상자의 경우도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다. 1950년
대의 미국이나 지금에 이르러서도 암에 대한 특별한 치료약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또한
현재에 와서는 전체 사망 원인 중, 암에 의한 사망률이 제1위를 차지할 정도로 암 발생이
빈번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 의학적인 관점에서는 아직도 항암제 치료와 방사
선 치료 이외의 자연 요법이나 기타 민간 요법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성은
1950년대 당시의 미국 사회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라이히 자신은 오르곤 치
료 요법이 암 치료에 특효를 가지고 있다고 상업적으로 선전한 적이 결코 없었음에도 불구
하고, 오르곤 집적 상자를 이용해본 많은 환자들은 이 단순한 건강 회복 방법으로 암까지
치료되곤 했다. 이러한 이유와 그 가능성에 대해서 라이히는 객관적인 자세로 계속 탐구했
으며 그 결과를 자신이 발간하는 학술 잡지에 게재해나갔던 것이다.
1950년대에 들어와서 라이히는 오라누르 실험 이후로 인공 강우 실험에 거의 전적으로 매
달리게 되었고 1953년도에는 아리조나의 카슨 사막에서 한창 인공 강우 실험을 실행하고 있
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이미 FDA와의 법정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라이히가
사막에서 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FDA측에서는 라이히의 오르곤 집적
장치가 불법 의료 행위라는 많은 법적 근거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근거에 의거하
여 FDA는 라이히에게 의료적인 활동을 일체 금지할 것을 명령한다. 라이히는 FDA의 이러
한 소환 명령에 불응하였고 따라서 더욱 무거운 강제 집행 결과를 초래한다. 1954년 3월에
메인 주의 미국 지방 법정은 오르곤에 관련된 라이히의 모든 연구 활동을 금지하고 게다가
오르곤에 관련된 서적물 자체를 출간 금지시키는 내용의 판결을 내린다. 이에 대하여 라이
히는 미국 법정이 자신의 전 생애에 걸친 과학적인 연구 활동을 강제적으로 금지시킬 수 있
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연구실로 되돌아와서 계속 연구 활동을 재
개하였다.
결국 라이히는 금지 명령에 불응한 죄목으로 1956년에 법정에서 3년 간의 실형을 선고받
고 감옥에 수감되기에 이른다. 더불어 FDA에 의해 강제적으로 모든 서적물과 연구 자료들
이 압수되어 소각 처리된다. 그리고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7년 9월에 펜실바니아 주의
루이스파크 연방 형무소에서 심장 발작을 일으킨 라이히는 60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그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라이히가 강제 구속되던 시점에 메인 주의 오르곤 연구소에 머물고
있던 라이히의 조수 미첼 실버트 박사(Dr. Michael Silvert)와 빅터 소베이 박사(Dr. Victor
Sobey)는 커다란 트럭을 몰고온 FDA 직원들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연구소 내를
샅샅이 뒤져서 모든 서적물과 연구 자료들을 압수해 트럭에 싣고서는 곧장 맨하탄 소각장으
로 달려가 명령대로 이행하였다. FDA의 이러한 행위는 언론 출판으 자유를 가장 중요시하
는 미국 헌법과는 전면으로 상치되는 것이다. 왜 FDA는 실제적인 불법 의료 행위의 단속이
라는 임무를 벗어나 굳이 라이히의 연구 결과조차 세상에서 지워버리려고 했을까.
라이히가 죽고난 뒤 3년 후에 라이히의 추종 계승자들에 의해 그가 남긴 방대한 저작물의
대부분은 다시 재출간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에 의해 전문적인 교육 과정
으로서 미국 오르고노미 칼리지(The American College of Orgonomy)가 설립 운영되기 시
작했다. 이후로 라이히의 연구와 발명들은 조금씩 세상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현재에는 미
국 뿐 아니라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그리고 일본 등에서도 라이히의 연구를
이어받아 탐구를 계속하고 있는 의사와 과학자 그룹이 늘어나는 상황에 있다. 하지만 라이
히의 연구 결과가 지니는 그 중요성과 실용성에 비한다면 아직도 기존 학계의 반응은 여전
히 무관심과 냉담함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라이히 생애 연보: 1987년 3월 24일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니안(Ukrainian) 지역? 부농 $집
걷?? ? 綜?s ? C!?CS ??I 우이
는 지금 그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항해하고 있는 중이다. 블랙위도우 장치(가장 간단한 대
포 형태의 에테르 투사 장치)에서 투사되는 에테르 흐름이 이 대기권의 에테르 흐름에 부딪
쳐 그 흐름의 방향을 바꾸면서 에테르 소용돌이를 형성시킨다. 에테르의 포텐셜이 상대적으
로 높아지면 그 부분으로 대기 중의 수증기가 모여들고 일부분에서는 물이 되어 비가 내리
는 것이다... 우리는 저멀리 서쪽 지평선 부근에 에테르의 소용돌이를 형성시킬 것이며 이것
이 바로 이 부근의 기상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실험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미 뱃
머리 깃대 왼쪽에서는 소나기를 뿌릴 먹구름이 형성되고 있다. 마우이의 서쪽 바다 위에서
기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1시간 가량 항해하는 사이에 구름이 빗방우로 변해 바다 위
로 떨어지고 있다.)
1988년 이후 콘스타블은 고기압 상태가 아니면 실험을 하지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러한
인공 강우 현상이 도저히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행해져야만 사람들에게 더욱 설득
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장면2: 1989년 3월 31일. 마우이는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항해하고 있다. 해
설: 마우이가 항해하고 있는 태평양 동서쪽의 기상 상황을 보자. 4, 5시간 전의 기상 지도와
현재 레이더 상으로 보여지는 기상도는 북쪽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두 개의 고기압의 영향권
안에 들어있으며, 현재 기압은 1021 헥토파스칼이고 습구 68F, 건구 72F로서 건구 온도와
습구 온도의 차이는 4도로서 비가 올 확률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스키머 장치를 작
동시킨 지 한 시간이 지나자 이 지역의 기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서쪽에서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이것은 고기압 상태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의 모습은 전혀 아니다. 스키머
장치는 나팔 모양의 고깔 두 개가 비닐 슬리브로 연결되어 있으며 가운데 작은 에테르 집적
장치가 붙어있는 단순한 모양의 에테르 투사 장치이다. 이것을 모터 장치에 연결하여 천천
히 회전시키는 것만으로 이러한 기상 변화를 유도시켰다. 이 스키머 장치와 같은 유형의 것
으로 가장 간단한 장치인 터마이트 장치가 있다. 이는 고깔 모양의 두 개의 관을 꼭대기 부
분을 맞붙여 PVC 파이프로 고정시킨 것이다. 가장 작은 터마이트 컵 크기에 지나지 않지만
이 장치만으로도 기상 변화를 유도시킬 수 있다.
1989년 5월 13일. 마우이는 1035 헥토파스칼의 고기압 한 가운데에 있다. 이 부군의 수백
만 평방미터의 바다 전역이 고기압 권에 들어가 있으며 비가 올 확률은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약 2 r.p.m의 느린 속도로 회전하는 터마이트 장치가 에테르 소용돌이를 만들
어 비를 내리게 한다. 지금 기압계의 눈금은 1025 헥토파스칼, 여전히 비가 내릴 수 없는 고
기압 상태를 표시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배의 앞쪽에 비가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기압계에 의하면 비가 내릴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점점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
비는 우리가 만들어낸 에테르 소용돌이에 의한 것이다. 이 에테르 소용돌이가 바다의 기상
상태를 바꾸어버린 것이다.(비가 더욱 세차게 퍼붓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화학 약품이나 전자기 방사능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진 일
이다. 따라서 이것은 에테르라는 공간 에너지가 모든 생물의 근원적인 실체로서 인정받게
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실험이다. 에테르가 과학적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는 아마도
새로운 시대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북태평양 바다 위에서 실제로 행하여진 콘스타블의 인
공 강우 실험에 대한 자료를 접한 뒤에 이 기술의 객관성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필자는 놀
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콘스타블의 실험이 갑자기 드러난 한 천재의 기상천외한 작
품이 아니라, 이미 50여 년 전의 과학적 시원 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
해 기술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혁신적 개념의 과학적 기술이라는 것이었다. 콘스타블의 인
공 강우 실험은 그의 스승이었던 빌헬름 라이히에 의해 1950년대에 이미 시작된 것이었으
며, 라이히의 다른 후계자들에 의해서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실시되고 있었다.
라이히의 클라우드 버스터 장치
따라서 인공 기상 조절 연구를 최초로 실시하고 또 성공시켰던 빌헬름 라이히로부터 이야
기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라이히의 연구 결과를 구체적으로 수집하면서 라이히
라는 사람의 방대한 연구 결과를 접하며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못하였다. 그의 연구 결과는
필자의 표현으로는, 가히 기과학이라 불리울 만한 새로운 학문 분야를 이미 실험적으로 방
대하게 정립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히 자신은 오르고노미(Orgonomy)-이것은 동양적 표
현으로 기과학이란 표현이 오히려 더욱 적합하다-라고 명명했던 새로운 연구 분야의 마지
막 부분에 인공 강우 실험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르고노미의 의학적 응용 분야는 이미 서구
대체 의학의 가장 커다란 주류로서 형성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필자와 더불어 1994년 10월 대전에서 '한국정신과학학회'를 창립한 주역이자 신과학 기술의
세계적 동향을 가장 먼저 수집해온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방건웅 박사가 부산의 부경대 해
양학과 강용균 교수의 초청으로 인공 기상 조절 공학의 역사를 소개한 내용 중 기사화된 부
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기를 모아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을까? 지난 11일 부경대 해양공동연구소 세미나실에서
현재의 과학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날씨를 조절하려는 연구를
소개하는 세미나가 개최되어 관심을 끌었다. '에테르를 이용한 기상 제어 기술'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방건웅 박사는,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
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겨왔지만 기와 염력 등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국내외에서 활발
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기의 실체에 대해서 수천 년 동안 한의학 등의 임상을 통해 증명되
어 왔고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만큼 비과학적이라고 무조건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였
다. 특히 서양 의학은 암이나 고혈압 등 만성병 치료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제
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자연 현상도 많다는 것. 예를 들면 소리는 공기 입자의 진동에 의해
전달되지만 전자기파의 전달 방법은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
방박사에 따르면, 에테르를 이용한 기상 제어 연구는 1930년대 프로이트의 마지막 제자인
빌헬름 라이히 박사가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라이히 박사는 대기는 기와 비슷한 개념인 오
르곤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오르곤 에너지와 친화력이 강한 물을 이
용하여 대기 중의 오르곤 에너지 흐름을 ??자기 TV 화면에서 전개되던 영상들이 하얗게 사라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이때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는데 잠시후 깨어나보
니 생전 처음 보는 UFO 내에 자신이 와 있었으며 두 명의 우주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
다. 이들은 데이비드에게 자신들의 우주선 내부를 관람시켜주면서 특히 우주선 추진 장치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데이비드에게 똑같이 만들어보라고 권고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진실인지 환각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이후로 그는 반중력 비행 접시
장치를 실제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난 14년 간 데이비드는 4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실
제로 제작하였으며 어설프게 만든 이 프로토 타입 장치들을 작동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
다.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는 말 그대로 석유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아주 조악한 것이었
다. 이 드럼통 안에 그가 UFO 내부에서 목격하였던 것과 유사한 형태로 특수 영구 자석들
을 조립 배치시켜 놓았다. 조립을 마치고 난 후에 식사를 하면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실험
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놀라서 달려가보니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장치가
공중으로 치솟아 천장에 부딪치고 있었다. 잠시 후 얇은 슬라브 천장을 뚫고 이 드럼통은
하늘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이를 통해 이 장치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데
이비드는, 그 이후로 현재까지 조금씩 더욱 세련된 형태로 세 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더
제작하였다.
80년대 말경부터는 피어 싱클레어라는 젊은 조력자가 생겼으며 최근까지 대부분의 작업은
이 싱클레어가 행하고 있다. 사진9는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이며
사진10은 좀 더 세련된 타입의 프로토 타입 장치의 외형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가운데 원
추형 콘모양의 새까만 부분들이 영구 자석이 위치한 엔진 부분에 해당된다. 데이비드와 싱
클레어는 1996년의 제3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ISNE; International New
Energy
Symposium)에서 자신들의 장치(Gravito Magnetic Device)에 대해 공식적으로 소개하고 있
는데, 여기에서 이 장치의 작동 원리와 세부 구조를 다음고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장치 윗 덮
개 부분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영구 자석 엔진 부분을 손으로 밀어내리면 이 장치는 작동
을 시작한다. 장치 윗 덮개 가운데에 위치하는 영구 자석은 커다란 고리형 자석으로서 모두
14개의 자석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것을 밑으로 끌어내리면 아래에 위치한 작은 고리
형 자석에 영향을 미치고 자석간의 반발력에 의해 이 고리형 자석들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고리형의 영구 자석이 한번 회전하기 시작하면 아무런 외부 동력이 없이도 회전이 계속
지속되며 이것은 전체 장치 속에서 특별한 에너지 상태를 유도한다. 이로부터 플라즈마 형
태의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점차적으로 그 색깔이 바뀌면서 동시에 중력 감소 현상이 발생하
여 결국은 공중 부상하게 된다고 소개도어 있다. 발명자들과 몇 사람의 관계자들의 증언 외
에는 아직까지 이 장치가 정말 작동되어 공중 부상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이 부족한
상태이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싱클레어가 현재 제작 중인 프로토 타입 장치가 완성되는 대
로 공식적으로 공개 시현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므로 이 장치에 대한 진위 여부도 조만간
확실해질 것이다.
핀란드에서의 반중력 소식
존 셜의 반중력 장치나 데이비드의 장치는 모두 특수 영구 자석과 고속 회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수 영구 자석의 고속 회전이 어떻게 반중
력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이러한 이론적인 면과 관련되어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
공해줄 지도 모를 특별한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어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전문
적인 과학자가 행한 실험 도중에 초전도체의 영구 자석을 고속 회전시키면 반중력 효과가
실제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세간에 흘러나온 것이다. 이 사실은 일반 잡지에서 먼저 기
사회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996년 9월 1일자의 '선데이 텔레그래프' 잡지와 9월 21일
자의 '뉴사이언티스트' 잡지에서 처음 기사가 게재되어졌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
음과 같다.
"핀란드의 탬피어 대학(Tampere Univ.)의 유진 포드크레트노프(Eugene Podkletnov)박사
연구팀은 아주 우연히 물체의 중량이 현저히 줄어드는 반중력 현상을 발견하였다. 원래 이
들은 초전도체 세라믹으로 만든 고리형의 영구 자석을 솔레노이드 전자석 위에 띄워서 고속
회전시키는 실험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70K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세 개의 솔레노이드
코일 전자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장치 시스템 위에다가 초전도성의 고리형 영구 자석을 띄워
놓고 고속 회전을 시키고 있을 때였다. 이때 연구팀의 누군가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
는데 이 담배 연기들이 장치 시스템 위에서 일직선으로 천장으로 솟구치는 것을 우연히 발
견하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구팀은 이 장치 위부분에 모래 주머니를 놓고 중량
측정을 시도해보았는데 그 결과 모래 주머니의 중량이 현저하게 감소한다는 것이 측정되었
다.
최초의 측정때 0.3%의 중량 감소를 발견하였으며 이에 장치의 회전 속도를 5000 r.p.m 이
상 높인 2차 실험에서는 최대 2%의 중량 감소 현상을 측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측정을 확
대하여 이 반중력 현상이 어느 범위에까지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장치 시스템 위로
직선적인 거리를 점점 멀게 하여 측정한 결과, 연구실 위층에서까지 어느 정도 유사한 중량
감소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놀라운 반중력 실험 결과가 전문 학술지에 먼저 게
재되지 않고 일반 잡지에서 최초로 기사화된 경위는 이러하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세계적으로 저명한 물리학 학술지인 '피지칼
리뷰(Physical Review)' 잡지에 연구 논문 원고로서 송부하였다. 피지칼 리뷰의 세 명의 편
집자들은 이 획기적인 연구 논문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결국 학술지에 게재하
기로 결정을 보게된다. 하지만 논문이 연재되기 직전에 포드크레트노프 박사팀은 연구 결과
를 공개하지 않기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논문 원고 자체를 회수하였다. 그 이후에 이러한
획기적인 결과가 감추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어떤 사람(학술지 편집자 중의 한 명
이거나 연구팀 중의 한 명)에 의하여 이 사실이 대중 매체에 전달되었던 것이다.
대중 잡지에 소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템피어 대학측에 문의하였으나 이미 포드크레트
노프 박사팀은 자취를 감춘 후였으며, 템피어 대학측에서 말하기로는 포드크레트노프 박사
팀은 1992년도부터 템피어 대학에서 모종의 연구 프로젝트를 위임받아 수행하던 중이었으며
반중력에 대한 현상이 보도되던 무렵에는 더 이상 템피어 대학의 연구원이 아닌 상태였으므
로 이러한 실험 결과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앞서의 셜 장치와 데이비드의 공중 부상 장치와 마찬가지로 이 실험의 진위 여부
에 대한 확증은 아직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여러 전문가
들이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의 연구가 진짜라면 더욱 더 앞으로의 실제 연구는 극비리
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당분간 이들을 공개적으로 접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
각된다. 핀란드에서 전해진 반중력 현상에 대한 소식은 세계의 여러 초전도체 연구가들과
반중력 연구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나아가 존 셜의 장치나 데이비드의 반중력 장
치에 대한 이론적 실마리도 제공하고 있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의 실험 결과는 장치 자체
가 공중 부상하는 타입이 아니라 일종의 반중력 공간이 생성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
하다. 이 장치 위로 생성되는 반중력 공간 속에서는 물질의 종류에 관계없이 어떠한 것이라
도 중량 감소 현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반중력 효과를 의심할 여지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제4장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대규모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1979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제목으로 텔레포테이션 실험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
야기를 담고 있는 책자 하나가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
으며 이 책에 담긴 내용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사실 여부
를 떠나서 일반 대중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였던, 공간 이동과 시간 여행에 대한 책자의
내용들은 그 자체로 영화화되어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을 정도이다. 영화 '필라델피아
익
스페리먼트' 이전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 공간 이동을 다룬 오락 영화 '백 투더 퓨처
'
역시 그 주된 테마는 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얻어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먼저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의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기지에서는 일련의
극비 비밀 실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 실험의 최종 목적은 전함의 일종인 구축함을
일종의 전자기 차폐막으로 에워싸서 적의 레이더망에 전혀 포착되지 않도록 만드는 특수 군
사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현재 이 기술은 스텔스 전투기로서 기술적으로 성공리에
개발되어 있다.) 이 실험을 위하여 '엘드리지'라는 이름의 구축함이 건조되었고, 이 배 안
에
는 발전기와 변압기 및 전자기 장치들이 가득 설치되었다. 1943년 7월 20일 오전 9시에 최
초의 역사적인 실험이 행해졌다. 엘드리지호는 승무원들과 기술자들을 탑승시킨 상태로 필
라델피아 앞바다로 나아갔으며 배 안에 설치된 장치들을 가동시켰다. 메인 스위치를 올리고
장치들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드디어 엘드리지호는 레이더망에서 완전히 그 흔적을 감추었
다. 20여 분 동안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그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그 실험은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배가 기지로 돌아왔을 때, 배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
대다수가 일종의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인명 사고가 예상되는 이러한 상태에서도 전쟁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절정에 달하고 있던
당시의 전황으로 인해 생명체에 미칠 부작용을 염려할 틈이 없었던 탓인지, 한 달도 채 안
된 8월 12일 본격적인 두 번째의 실험이 실시되었다. 거의 100여 명의 군인들과 수십 여 명
의 기술자들이 탑승한 상태로 엘드리지호는 바다로 나아갔으며 예정된 시간에 실험을 실시
하기 위해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실험 장치들이 작동되어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발생
하면서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엘드리지호는 이윽고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 여기까지
는 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바로 잠시 후에 엘드리지호 전체가 녹색의 후광으
로 덮이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서 배 자체가 그 모습을 완전히 시야에서 감추어버린 것이다.
레이더 상에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실제의 공간상에서도 사라져버렸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엘드리지호는 다시 필라델피아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필라델피아 해군
기지에서 배를 인양하였을 때, 당초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실종되
었으며 남아있는 사람들도 아주 격심한 정신 착란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실험이 되어버린 10월 27일의 세 번째 실험에서는 승무원을 한 명도 태우
지 않은 채 원격 조종으로 배 안의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장치를 가동시키자 이번에도
엘드리지호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10여 분 후, 필라델피아 항구에서 442km 떨어져있
는 대서양 연안의 버지니아의 노폴크 항구에서 홀연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노폴크 항구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다시 텔레포테이션하여 원래의 필라델피아 항구로 되돌아온 엘드
리지호는 심한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고, 배 안의 장치들은 모두 과열되어 심하게 손상
되어져 있었다. 현재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레인보우 프로젝트의
당시 수뇌부는, 결국 이 프로젝트를 마감하기로 하고 프로젝트의 총괄 진행자였던 폰 노이
만 박사를 맨하탄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전격 소환하였으며, 바로 얼마 후에 원자 폭탄이 개
발 성공된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진행 과정과 실험 결과들은 철저히 극비 사항으로
감추어졌으며, 실험에 사용된 엘드리지호는 완전 개조되어 전쟁이 끝난 후에 그리이스 해군
으로 양도됨으로써 이 실험에 대한 모든 흔적이 지워져 버린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50년대 중반에 천문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UFO 연구가로서
도 잘 알려진 모리스 제섭(Morris K. Jessup)박사에게 일련의 편지들이 배달되었다. 카를로
스 알렌디(Carlos Allende)라는 이름의 한 선원이 보낸 그 편지들은 그동안 은폐되어온 필
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숨겨진 사건을 다시 거론하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앤드류(Andrew Furuseth)라는 이름의 화물선에서 일하고 있던 뱃사람인데,
1943년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 연안을 항해하던 도중에 어느 거대한 군함 한 척이 바다 위
에서 홀연히 사라졌다가 몇 시간 후에 다시 홀연히 나타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직접 목격하
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추적해 본 결과, 그 선원은 이것
이 바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극비 군사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알게된 이 놀라운 사건을 혼자만 간직하다가 이제야 모리스 박사에게 털어놓는다는 내용이
었다.
모리스 박사는 이에 흥미를 가지고 전설적인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비밀을 파헤치는
민간 모임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59년에 모리스 박사 자신이 공원
한 구석,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의문의 자살을 한 상태로 발견되어 더욱 커다란 의혹만을
남긴 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는 다시 전설 속으로 묻혀지고 만다. 다시 어언 20여 년이
지난 1979년 윌리암 무어(William Moore)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행하여졌던 엘드리
지호의 실제 항해 일지를 추적하여, 그 당시 실험이 행해진 당시의 엘드리지호의 공식적인
항해 기록이 많은 의문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화제
의
책을 출간했고, 이것이 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다. 1979년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인지 아니면 단지 픽션에 불
과한 것인지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날로 고조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사 보안적인 기
밀 사항이 그렇듯이, 이 또한 사건의 진위를 입증할 객관적인 물증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
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집중시키는 상황들이 연속
으로 일어났는데, 그것은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여 사건 전모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잇달아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필라델
피아 익스페리먼트 사건의 내용은 더욱 확장되어, 단지 우연히 발생한 대규모의 텔레포테이
션 실험이었다기 보다는 차라리 마치 SF소설에나 등장하는 일들이 현실에서 실제 상황으로
발생하였다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들이 밝혀졌다. 즉, 엘드리지호가 공간 이동을 보여주었던
당시, 그 속에 탑승해있던 승무원 자신들은 소위 시간 여행을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증인들
가장 최근인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엔드류 드루(Andrew Storm. Drue)박사는 20여 년 간
미 해병대에서 근무하다가 1993년에 제대한 이후,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UFO 분야에
대한 연구와 소개 활등을 주로 해온 사람이다. 그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그 자신이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기술자 중 한 사람으로서, 당
시 살아남은 생존자 중의 하나로 스스로를 밝히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를 방문하여 당시의 체험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고, 이를 계기로 그는 아예 대중 강연을 나
서게 된다. 1996년 캐나다에서 개최된 '96 지구촌 과학 회의(Global Science Congress)'에서
행한 초청 강연에서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의 일부분을 인용하자.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였다고 이야기하
는데 그렇다면 그때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를 말해달라고 자꾸 요청해 옵니다. 그때의 상황
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죠. 얼마 전 '인터컨넥팅' 잡지에서 인터뷰하여 실렸던 글이 여기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읽어드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실험 장치들의 메인
스위치를 켜고 최대의 전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일말의 공포심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스위치를 켜서 강력한 전자기장이 형성되자마자
곧바로 짙은 안개 같은 것에 휩싸였고 우리가 타고 있던 엘드리지호는 공간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나는 내 뒤에 위치해 있던 발전기 장치로부터 일종의 강력한 에너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의 여파로 몸이 산산조각나는 것 같았으며 눈앞에서는 섬광이 작열하여 장
님이 되는 것 같았다. ...기나긴 시간 여행 끝에 우리는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고 이때의 주
위 현장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해군 구조 대원들이 만신창이가 된 엘드리지호로 올라왔을
때에 그들은 이러한 광경에 질겁을 하고 말았다. 나는 들것에 실려서 작은 구조선으로 옮겨
졌다. 전체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21명 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아예 120여 명은 그 자
취를 찾을 수조차 없었다. 이들은 엘드리지호가 다시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을 때 배 안에
남아있지 못했던 것이다...
자, 상상해보십시오. 자그만치 15백억 볼트의 전기가 흘렀다면 말입니다. 그때는 새벽이었
습니다. 우리는 실험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삼엄한 보안 유지 이
야기를 자꾸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항구에서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댈러웨어로 향하는 도중이었지요.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5명이 전문 과학자였는데 나는 민간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 계획
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는 엘드리지호가 막 건조되고 있는 중이었지요. 니콜라 테슬라가
제시한 설계도에 따라서 배는 건조되었고 다양한 장비들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테
슬라가 이 실험을 끝까지 지휘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생물을 대상으로 실험할 경우에 발생
할 위험성을 깨닫고 테슬라는 이 계획을 철회하고자 하였죠. 그는 스스로 발을 뺐죠. 그러고
는 바로 뒤인 194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되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죽었다고는 절
대 믿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부가 그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였거나 그의 측근이 그의 죽음을
위장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틀림없는 시간 여행자인데 그가 그
렇게 세상을 떠난단 말인가요. ...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이제는 지금까지 배워온 것과는
사뭇 다르게 시간을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개념은 하나의 연속된 일
직선 상에 놓여있는 시간적 개념입니다. ...시간은 오히려 병렬식입니다. 시간이란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시간 여
행이 가능한 것이죠. 모든 시간은 현재입니다. 모든 사건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중
략...
자, 이제 여러분들에게 텔레포테이션이라는 기술이 이제는 실증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
고 있다는 실례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잡지를 보고 계시는 분이 계시나요? 1996년 2월호에 실려있는 이 IBM 광고를
보신 분 계십니까? 유럽에 있는 노부인이 일본의 노신사 분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가 뭔가 좋은 것을 금방 공간 이동시켜 보내 드릴테니까'라고 말하는
광고 밑에 이런 코멘트가 달려 있군요. '한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구조를 완전하게 유지
하
면서도 공간 상의 다른 곳에 전송시키는 기술이 이미 현실화되었다. 마술 같은 이야기이지
만 미래에는 모든 컴퓨터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IBM 광고입니다. 그 내
면을 본다면 이미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테슬라는 이 기술을 이미 백 년 전에
개발하였던 사람이죠.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훨씬 이전에 말입니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실제로 실시되었던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실험이 수행될 수 있었던 기술적 기반이 이미 1943년 이전에 확보되어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여기에는 당대의 기라성같은 과학자들이 상당수 출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핵
심적으로 거론되는 사람이 바로 니콜라 테슬라(Nichola Tesla) 박사이다.
1910년경에 교류 발전기 장치라는 획기적인 전기 발생 장치를 최초로 발명함으로써 현재
의 전기 전자 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문명을 역사상에 개막시켰던 테슬라의 방대한
과학적 업적은,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가져다 주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적인 위대성에 비
견될 만큼 현재에 다시 되살아나 급격하게 재조명을 받고 있다. 라디오 장치로부터 시작된
무선 통신 기술의 경우도 실제로 이것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마르코니가 아니라 바로 니
콜라 테슬라였으며, 테슬라의 친구였던 마르코니가 그의 발명을 도용하여 단지 먼저 발표한
것일 뿐임은 미국 법정에서도 현재 공인된 사실이다. 20세기 초의 당시 상황에서는 전혀 생
각해볼 수도 없었던 수많은 발명들을 내놓았던 대천재 니콜라 테슬라의 업적들은 거의 사장
되어 버렸고, 그 중 몇 가지만이 현재까지 실용화되고 있는데, 이것들만으로도 테슬라의 과
학적 업적은 가히 신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외의 묻혀져버린 테슬라의 수많은 발명들
가운데 몇 가지는 최근에 와서 다시 재현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1장에서 소개된 캐나다
의 존 허치슨의 반중력 장치도 니콜라 테슬라의 무선 송전 실험을 재현해보려는 시도 중에
서 발견된 것이었듯이, 일반에게 미공개된 테슬라의 후반기 발명 중에는 공간 이동에 대한
실험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전반부로서 인용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실제 기원은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1
년부터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행하여진 1943년까지의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31년 시카고에서 니콜라 테슬라를 중심으로 물체 투명화와 불가시화 현
상
(Invisibility)에 대한 기초 연구를 토의하는 소수의 과학자팀이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시카고 대학의 학장이었던 존 허치슨 경을 위시하여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물리학자 에밀 쿠
르티나우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1933년 테슬라와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던 프
랭클린 루즈벨트의 조언에 따라 공식적으로 소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전위적인 연구
팀이 결성되었으며, 1934년 이후 연구 센타는 시카고 대학에서 프린스톤 대학으로 옮겨져,
폰 노이만 박사(John Von Neumann)와 타운젠트 브라운(Tomas. Townsend Brown) 등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다수 합류하는 실제적인 연구팀으로 발전되었으며, 아울러 이론적인 수
학적 공식의 정립을 위하여 아인슈타인에게도 조언을 구하게 된다.
이 연구 결과로서, 1940년 브룩클린 미 해군 기지에서 레인보우 프로젝트라 명명된 최초
의 물체 불가시화 실험이 테슬라의 총지휘 하에 실시된다. 테슬라가 발명하였던 교류 발전
기 장치와 라디오 트랜스미터 그리고 테슬라 코일이라는 변압기 장치 등으로 구성된 장치
시스템으로 최초의 물체 불가시화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고, 1942년 이 실험을 실제적 군사
기술로서 확장시키기 위하여 구축함 한 척이 건조되었고 테슬라는 전시 상황의 요구로 이
기술을 군사 기술로서 조속히 개발하기를 종용받기에 이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테슬라는 생
명체를 대상으로 이 기술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완강히 거부하였는데, 그를 제외한 다른 과
학자들이나 해군 수뇌부들은 이 기술이 생명체에게 미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심각한 고려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고민에 빠졌다. 결국 생체를 대상으로 실험하
기 위해서는 더욱 더 많은 예비 실험과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제안이 거절당하자 테
슬라는 실험 전체를 거부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그가 이 프로젝트에서 강제로 축
출당하는 결과를 빚었다. 1942년 프로젝트와 결별한 니콜라 테슬라는 그로부터 열 달 후인
1943년 그의 자택에서 조용히 운명을 마감한 것으로 대외에 발표됨으로써 그 위대한 신화와
함께 역사의 의문 속으로 사라졌다.
Phenomena)라는 이름의 이 UFO 조사 연구 단체와의
인연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다음 해인 1957년에 브라운은 과격해지는 협회의 성격과 방만
한 재정 관리에 관해 다른 이사진들을 추궁하게 되고 결국은 브라운 자신이 창립한 이 협회
에서 스스로 발을 떼고 만다. 하지만 이 단체를 설립하여 외형상 UFO 연구를 표방하였던
사실 그 자체가 브라운을 정통 과학계에서 결국은 소외당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로서 UFO 연구를 공식적으로 내세운 것은, 과학자로서의 그 자신의 명예를 공동 묘지
에 처박아넣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부터 정통있는 미국
과학 잡지에서는 브라운의 연구 자체를 잡지에 게재하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이러한 불행과는 달리 1957년은 브라운에게 행운의 해이기도 하였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꿈과 연구에 완벽히 동의하는 앤그뉴 밴슨이라는 기업가를 만나게 된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밴슨 주식회사의 사장인 앤그뉴 밴슨은 개인적으로 우주 여행을 마지막 소망으로 삼
고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들었을 때, 이 사람의 연구야말로 자
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작업을 실제
로 진행시키기 위해 밴슨 사장은 자기 회사 내에 화이트홀-랜드 프로젝트(Whitehall-Rand
project)라는 반중력 비행체 개발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 과제를 브라운에게 위임한다. 이로
부터 몇 년 간 브라운-밴슨 연구실이 운영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많은 연구 결과가 가시적
으로 진행되었다.
브라운과 밴슨은 초기 2년 동안 자신들이 제작한 장치들과 그 작동 상황을 틈틈이 비디오
로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는데, 이 필르은 아마도 반중력 연구라는 테마를 통틀어
가장 최초의 비디오 영상 자료일 것이다. 총 50여 분 정도의 이 비디오 영상 장면 가운데
1958년 1월 17일자로 기록되어 있는 실험 장면 하나를 살펴보자. 우산 형태로 생긴 전체 무
게가 약 60g의 장치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 164kV, 1mA의 고전압 전기를 흘려
보내자 이 장치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이다. 만약에 바람을 이용하여 이러한 장
치를 똑같이 공중으로 들어올리려면 적어도 초속 10피트의 풍속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장
치가 공중 부상하고 있는 연구실 내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공기 흐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영상 장면은, 브라운 장치에서는 전기력에 의해 반중력과 유사한 새로운 힘이 발
생하고 이 힘이 실제로 중력을 극복하여 공중 부상시킨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활발히 연구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행운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는 못하였
다. 1964년에 밴슨 사장이 비행기 추락 사건으로 갑작스레 사망함으로써 연이어 브라운의
연구도 된서리를 맞았던 것이다. 그 이후 브라운 자신이 직접 진행한 연구 결과는 별로 없
다. 1965년 당시 이미 브라운의 나이는 60세였으며 1985년에 80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기까
지 브라운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다른 과학자들에게 소개하는 일만으로도 힘에 버거웠다.
최근에 와서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이라고 명명되는 브라운의 전기-중력 조절 실
험은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을 뿐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활발한 연구 실험이 전
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혁명적인 과학적 발견과 토마스 타운젠트 브라운
이라는 천재적인 과학자의 이름은 그 어떤 과학 교과서에서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비펠드-브라운 효과
1924년경 덴니선 대학에서 브라운과 비펠드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를 진전시켰던 전기-중
력 제어 현상인 비펠드-브라운 효과(Biefeld-Brown Effect)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브라운은 고전압의 전기로 충전되어 있는 두 개의 축전지(Capacitor)사이에는 (-)극
쪽에서(+)극 쪽으로 밀어주는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것을 다음과
같은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다. 판대기 모양의 두 장의 콘덴서를 사용하여 한 쪽은 음극으로
충전시키고 다른 한 쪽은 양극으로 충전시켜서 실로 매달아두면 음극 쪽으로 밀려가는 현상
이 발생한다. 이것을 수직선 상으로 위치시켜서 천칭 저울로 실험해보면 결과적으로 중량의
증가(가중력 현상)와 감소(반중력 현상)라는 결과가 나타난다. (-)극이 아래쪽에 위치해 있
을 때는,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중량이 감소하는 반중
력 현상이 나타나고, 이와 반대로 (-)극이 위쪽에 위치해 있을 때는,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밀어주는 힘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가중력 상태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을 브라운은
'비펠드-브라운 효과'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단순하게 보이는 현상들이 의미하는 바는 실
로
엄청난 것이었다.
1860년대에 미카엘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이후, 전기력과 자기력
이라는 두 가지의 힘은 하나의 관계식으로 연결되어졌고, 현재는 전자기력이라는 용어로 통
합된 상태이다. 하지만 아?누누히 강조하고 있다. 그의 말에 의
하면 M-L 변환 장치의 외형이 기존의 윔스르스트 정전기 발전 장치와 유사해보이긴 하지
만 실제 장치의 작동 원리는 판이하게 다르며 또 그 내용면에서도 윔스르스트 장치처럼 그
렇게 단순하지 않다. 필자의 견해로는, 이 장치의 전체 시스템 속에는 현재 조금씩 성공 사
례가 밝혀지고 있는 다양한 다른 공간 에너지 장치들의 원리와 기술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점들은 다른 공간 에너지 장치들이 세간에 점차 소개되는 것과 병행하여
조금씩 밝혀질 것이다.
??평생을 바치게 된다. UFO가 중력에 반하여 서서히
수직 상승할 때는, 원반형의 비행체 아랫 부분은 (-)전기로 충전되고 윗 부분은 (+)전기로
충전된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비펠드-브라운 효과에 의해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는 중력에 반하여 수직 상승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UFO가
공중에서 수평 비행할 때는, 비행체 앞 부분에 (+)전기가 충전되고 뒷부분에 (-)전기가 충전
되는 상태로 변화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수평적 추진력이 발생하여 비행체를
앞으로 밀어주게 된다. UFO의 비행원리라고 추측할 수도 있는 이러한 전기-중력 발생 현상
을 이용하여 UFO와 흡사한 형태의 새로운 자동차나 비행기를 실제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
라고 브라운은 생각하였다. 1929년에 '과학과 발명(Science and Invention)'잡지에 게재하
였
던 논문에서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중력 발생 장치는 실제로 대단히 유용한 새로운 형태의 동력 발생 장치이기도 하다.
현재의 대부분 전기 모터 장치들이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장치는
새로운 전기-중력 발생 현상을 이용한다. 단순한 모양의 중력 발생 장치에는 기존의 장치처
럼 회전하는 기계 부분이 전혀 없으며 장치 자체가 전체적으로 움직여 나간다. 따라서 기존
동력 장치에서 필요한 기어나 동력 전달축 그리고 프로펠러 등이 전혀 필요없으며 그러면서
도 아주 효율적인 동력 발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마찰 부분도 전혀 없으므로 열발
생이나 기계적 마모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또한 수직 상승 비행이 가능하므로 비행 활주로
도 필요없어진다... 수백 톤 규모의 대형 여객선에서 자그마한 자동차와 비행기 등의 제반
동력 장치들에 이르기까지 이 방법으로 대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환상적인 이야기
인 우주 스페이스 카도 가능할 것이며 이 스페이스 카를 타고 화성으로 날아갈 날이 조만간
오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과학계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
1930년대 이후에 브라운은 주로 해군에서 레이다 전문 기술 장교로 복무하였으며, 필라델
피아 익스페리먼트에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1940년대 초를 거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난 뒤에야 다시 자신의 중력 발생 장치 실용화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1952년에
브라운은 승무원을 탑승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공중 부상 비행체를 제작하기 위한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각계에 안내문을 배부한다. 그러나 이 때 과학계에서는 브라운의 연구
에 대한 공식적인 반박이 제기되었는데 이것을 자세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고전압의 (+)극과 (-)극 사이에서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브라운 효과를 객관적으로 인
정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때 발생하는 추진력이 브라운이 주장
하는 것처럼 반중려과 관계된 미지의 새로운 힘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으며, 브라운의 주
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기존의 과학계에서 브라운 현상을 설명하기위해 제기한 이
론이 바로 이온 바람에 의한 추진력 발생 이론이었다. 그림 5의 왼쪽은 브라운이 주장하는
전기-중력(Electrogravitics) 가설의 개략도를 보여준다. 원반형 비행 접시의 아랫쪽에 (-)전
기가 충전되고 윗쪽에 (+)전기가 충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비행 접시가 중력을 거슬러서
수직으로 공중 부양하는 추진력이 발생한다. 이때 발생하는 추진력은 반중력과 같은 또다른
미지의 새로운 힘이라는 것이 브라운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
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찾아내었는데
그것이 오른쪽 그림으로 도식화된 이온 바람(Ionic wind) 개념이다.
고전압의 전기를 띠고 있는 물체 바로 주변의 공기층은 고전압의 전하에 의해 쉽게 이온
화되어진다. 그림에서 비행 접시 형태의 콘덴서 장치 아랫 부분의 (-)전하는 주변 공기층을
(-)이온층으로 이온화시키는데,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윗부분의 공기층은 (+)이온층으로 이
온화된다. 이러한 두 개의 이온화 공기층이 존재하면 자연스럽게 (-)이온화 공기층이 (+)이
온 공기층으로 흘러가게 되며 이것이 이온 바람(Ionic wind)를 발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따
라서 이러한 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체는 위로 들려올려지게 된다. 이온 바람의 개념을
따르게 되면 비행 물체가 위로 부상하는 추진력은 이온화 공기층의 흐름 즉,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고도의 대기층이나 우주 공간과 같은 진공 공간에서
는 추진력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과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처음에는 상
당히 설득력있게 보여졌다.(그리고 실제로도 이러한 이온 바람 현상은 유사한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브라운은 실제적인 검증 실험을 통하여 자신의 이론을 관철시켰는
데, 이러저러한 많은 토론보다는 진공 상태에서 직접 실험해보면 모든 것이 명약관화해지는
것이었다. 다른 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브라운 현상이 이온 공기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것
이라면,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는 당연히 브라운 현상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1955년경 유럽 여행 중에 프랑스 파리의 항공회사연구소의 협조 하에 이러한 진공 상태에서
의 실험이 정밀하게 실시되었으며, 실험 결과 진공 상태에서 오히려 브라운 현상이 더욱 뚜
렷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1957년과 1958년의 브라운-밴슨 연구소 시절에서도
두 차례 진공 챔버 속에서의 실험이 자체적으로 실시되었으며 1959년에 제너럴 일레트릭사
의 스페이스 센터에서도 진공 상태에서의 브라운 효과 실험이 실시되어,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에서도 브라운 현상은 확실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검증해주고 있다.
브라운 효과와 B-2 스텔스 폭격기
UFO와 유사한 새로운 형태의 추진 동력을 발생시키는 브라운 효과는 1980년대 후반부터
많은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또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1980년대 말 미 공군에서 직접
작성한 보고서 '21세기 신 비행 기술의 개념(21 Century Propulsion Concept)'에는 21세기
의
유망한 신 추진 동력 장치로서 브라운 효과 장치를 가장 먼저 손꼽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
에는 브라운 장치에서 미지의 힘이 발생한다는 점은 거의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힘이 실제로 중력과 동일한 계통의 힘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많은 상태이다. 엄밀
한 학술적 의미에서 정의한다면, 브라운 현상이 브라운이 믿었던 것처럼 소위 반중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력장 제어 시스템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그러나 브
라운 효과에서 실제로 미지의 힘이 발생하여 공중 부상과 같은 추진력을 보여주는 것은 명
백한 사실이며, 이 미지의 추진력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브라운 효과에 대한 용어로서, 브라운이 주창하였던 전기-중력학
(Electrogravitics)이라는 용어보다는 전기-추진 동력(Electric Propulsion)이라는 용어가 보다
합당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하간, 브라운 효과에 의한 새로운 추진 동력 발생 시스템
은 21세기의 신 비행 기술의 원리로서 일반 과학자들에게도 각광받기 시작한 상태이다. 또
한 이러한 공식적인 활동 이면에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미 공군에서 실제로 브라운 효
과를 이용한 새로운 비행체 개발을 완료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B-2 스텔스(Stealth) 폭격기
라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 중에서 폴 비오렛 박사가
1993년 제1차 뉴에너지 심포지엄과 그 뒤에 다른 학회에서도 계속 게재한 리뷰 아티클 '미
국의 반중력 비행체(The U. S. Antigravity Squadron)'의 일부분을 그대로 소개하기로 한
다.
"오래전부터 미국이 전자 레이다망에도 잡히지 않는 최첨단의 비행체를 극비리에 개발하
여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는데, 이 소문은 1988년 11월 사실로 판명되었
다. 이때에 미 공군은 B-2 스텔스 폭격기라는 최첨단 비행체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였
으며, 이 비행체의 외형이나 역할 그리고 레이다 탑재 장치 등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매스
컴에 공개했을 뿐, 대부분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 뒤 몇 해가 지난, 1992년
3월에 '스페이스 테크놀로지' 잡지에 이 비행기의 모습과 비행 원리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그것은, B-2 스텔스 폭격기는 화살 모양의 날개 앞면과 뒤쪽의 꽁무니 부분에 강력한 전기
장을 생성시켜 이로 인해 추진력이 발생한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타운젠
트 브라운의 브라운 효과 즉, 전기-중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텔스 전투기에 대
한 이 정보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 비행기가 반중력에 의한 수직 상승 비행까지 가능하리라
는 것은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1952년에 브라운은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정부 기
관에 제안서를 송부하였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미, 새로운 반중력 비행체는 수직 이, 착륙
뿐 아니라 마하3의 초음속 비행까지 가능할 것임을 국방성에 제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러한 제안서를 받고난 그 해, 미 공군의 유력 장군이 브라운을 직접 방문하여 그의 실험실
에서 18인치 크기의 알루미늄 디스크로 제작한 모형 반중력 비행체의 공중 부상 장면을 견
학하였으며, 이듬해인 1953년에는 여러 명의 미 공군 장교들과 항공 기술 회사 기술자들 앞
에서 3피트 직경의 모형 비행 접시 장치의 공중 부상 공개 시현이 행해졌던 것이다. 1956년
에 영국의 항공기술연구소에서 대외비로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1954년 11월 이전에 미
공군 내에서는 브라운이 제시한 윈터하벤 프로젝트를 응용하여 실제 비행체 제작을 위한 연
구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미 공군의 스텔스 전투기의 개
발 연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B-2 스텔스 전투기의 외형과 비행 원리는 1962년 이전에 브라운이 이미 제시한
바 있는 몇 가지 제안들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림 6은 브라운이 1950년대 말에 제시한 것으
로, 비행체의 추진력을 더욱 강하게 얻어내는 방법으로서 비행체의 외형을 우산 형태로 제
작하여 (+)전하를 앞부분에 넓게 분포시키고 (-)전하를 꽁무니에 좁게 분포시키면 화살 방
향으로 추진력이 더욱 강력하게 발생한다고 밝혀놓고 있다. 그림 7은 1962년에 다시 새롭게
제시한 것으로서 (-)전하를 비행체 꽁무니에 충전시킬 필요없이 제트 엔진을 통하여 (-)전
하를 가스 상태로 분출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비행체의 전체 무게를 더욱 가볍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커다란 추진력을 효율적으로 발생시키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림 8은 B-2 스텔스 전투기의 외형과 비행 원리를 도식화한 것인데 누가 보아도 그림 6과
그림 7의 브라운의 방법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운의 연구는 반중력 연구의 첫 출발점이 되기도 하였지만, 실제로 반중력을 발생시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로켓이나 자동차 등에 사용하는 방법처럼 화석 연료나 화학 연료
를 태워서 그 힘을 이용하여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기존의 기술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
운 형태의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러한 새로운 기술
은 육상 교통 수단으로서 나는 자동차를 개발할 수도 있고 또한 우주 공간을 비행하는 우주
선의 추진 동력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제3장 반중력 연구의 선구자들(2)-셜의 공중 부상 원반 장치
미국의 타운젠트 브라운이 만들고자 했던 비행 ?는, 그 추진력을 브라운 효과라 하는 전
기-중력 발생 현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고압의 전기를 이용하여 새
로운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방식인데, 이와는 달리 전기가 아닌 자기력을 이용하여 새로운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반중력 비행 기술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영구 자석만을 이용하
여 반중력 현상을 발생시키고 이러한 원리로 공중 부상하는 UFO 장치의 제작에 성공했다
고 말하는 몇 사람이 존재한다. 이 중에서도 영국의 존 로이 로버트 셜이라는 연구가의 이
름은 아마도 후세에 반중력에 의한 비행 접시 제작의 실질적인 선구자로서 그 이름이 기록
될 만한 사람이다. 셜의 비행 접시 장치는 브라운의 장치와는 달리 영구 자석을 고속도로
회전시켜서 이 회전 장치에 의해 반중력 현상이 발생하는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셜은 1950년대에 이미 반중력 현상에 의해 공중 부양하는 무인 비행 접시를 완벽하게 제
작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8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달에 비행 접시를 착륙시키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추진하였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대부터 1961년까지 셜은 총 41개의 무
인 비행 접시를 제작하였으며, 이 중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반중력을 발생시켜 공중으로 날
아갔다. 이들 비행 접시 장치들의 실물은 현재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그동안의 연
구 진행과 결과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와 사진 자료가 공개되어 있어서, 다른 반중력 연구가
들에게 하나의 참고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까지 세계의 몇몇 다른 연구가들이 재현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고는 없다. 셜의 비행 접시 실물 장
치가 남아있지 못한 이유와 아직까지 완벽하게 재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몇 가지 문제
점들은 본론에서 함께 다루어질 것이다. 먼저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기록들과 책들에 소개되
어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본다.
셜과 공중 부상 원반 장치의 개요
셜(Searl)은 1932년 영국 윈테이지(Wintage)에서 태어났다. 불우한 어린 시절 동안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련의 꿈들을 반복해서 꾸곤 했었는데, 이 꿈속에 담겨진 메시지들이
훗날 공중을 향하여 부상하는 셜 장치의 원형이 되었다. 1949년에 셜은 모터나 전기 기구에
사용되는 자석 등을 만들어 파는 미드랜드 전기회사에서 전기 조립공으로 취직하여 자석 연
구에 종사하였는데, 어느날 회전하고 있는 금속 원반에서 미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음을 발
견했다. 이 우연한 발견으로부터 셜은, 회전하는 금속 중의 자유 전자는 그 원심력에 의해
방사선 형태로 바깥 쪽으로 쉽게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이 금속
주변부에 함께 회전하는 자석을 배열시키면 금속 원반의 가장자리 쪽으로 이동하는 전자들
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발상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실험해 보기로 결심한다.
이 발상을 기초로 1952년에 최초의 셜 장치(Searl Effect Generator)를 제작하였다. 이 장치
는 금속링 주위에 동일한 간격으로 원통형의 특수 자석을 배열하여, 원반을 회전시킬 때 자
석도 금속링 주위를 자전하면서 회전하게 만든 장치로서 일종의 새로운 발전기 장치였다.
처음 만든 단순한 장치에서도 비교적 높은 전압의 전기가 발생하였다. 이로부터 셜은 장
치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 장치 전체를 여러 겹의 구조로 만들었다.
1952년의 최초 공개 실험에서 직경이 6m 정도였던 이 장치는 회전을 시작하자마자 경이롭
게도 방사선 형태로 고압의 전기를 발생시켰다. 아주 낮은 속도의 회전에서도 십 만 볼트
이상의 기전력이 발생했다. 회전 속도를 더욱 높이면, 오존 발생때의 특이한 냄새가 장치로
부터 퍼져나왔고 경이롭게도 장치 자체가 서서히 공중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 장치는 잠시 부상을 멈추었고 공중으로 부상하면서 입력 전기줄이 끊어진 상태에
서도 스스로 회전을 가속화시켰다. 회전이 더욱 빨라지면, 공중에서 장치로부터 핑크색의 광
채가 발하면서 얼마 후엔 관찰자의 시야를 벗어나 하늘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셜은
1961년까지 총 41개의 원반을 만들어 실험하였으며 이 셜 장치는 전기력을 발생시킬 뿐 아
니라, 반중력 공중 부상 현상까지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오히려 어쩌면 그가 성공했기 때문에-셜은 여러 가지의
적대 행위에 부딪혔다. 대부분의 초창기 공간 에너지 연구가들이 한결같이 겪어야 했던 이
러한 고난은, 공간 에너지 개발이 본격적으로 공식화된 198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회사
에서는 계속 쫓겨났고, 도전의 누명을 쓰고 투옥까지 되는 등, 거의 20년 동안 박해에 시달
려야 했다. 이러한 역경을 딛고 마침내 셜은 1982년에 개인적으로 DISC 회사를 설립하여
셜 장치(Searl Effect Generator)를 소개하는 책자(SEG Report 제1호)를 발간한다. 아울러
자신이 사용했던 특수 자석을 일반에 공개했다. 1983년 셜의 자택에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
생, SEG 장치와 기록이 모두 불타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은 1985년과 1986년, 1987
년에 계속 'SEG Report' 2호, 3호, 5호를 출간하였고, 1989년 10월 29일 스위스에서 열린
제
1차 '프리 에너지 국제회의'에서 그동안의 SEG 연구를 종합적으로 발표하였다. 1991년 이
후
그는 현재까지 병원에서 투병중이다.
셜 장치(SEG)의 성공은 셜이 사용하였던 특수 자석에 그 비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셜
이 1949년 미드랜드 전기 회사에 있을 때 스스로 제작한 이 특수 영구 자석은, 두 종류의
자화 금속(네오디미움과 티타늄)과 결합제로서 나일론 66을 미국에서 수입하여 이것들을 철,
알루미늄 등과 혼합, 제련하여 만든 것이다. 셜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 성분 중에서 전
자 밀도가 최고로 높은
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어디에서도 만족할 만한 대안이 현실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곳은 없
는 실정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기는 하지만 상황의 시급함에 비하면
청정 대체 에너지 기술의 개발 속도는 너무나 더딘 실정이다.
1. 20세기 과학사의 최대의 실패작: 원자력 발전
인류는 한때 이러한 청정 대체 에너지로서 원자력에 희망을 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은 이미 원자력은 대체 에너지라는 개념보다 오히려 그 반대로 더우 공포스러운 환경 오염
의 상징으로서 각인되어져 가고 있다.
체르노빌 핵 발전소의 사고는 핵 발전소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전세계에 경고한 한 가지
실례에 불과하다. 소련 정부는 사고가 난 직후 체르노빌 반경 30km 이내에 살고 있는 주민
모두를 철수시켰다. 원전 당국과 정부 측은 체르노빌과 같은 원전 참사가 또 다시 벌어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며 원전의 안전성 홍보를 계속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말을 액면 그
대로 수긍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참사 이전에도 1957년에 영국 윈스케
일에서 엄청난 방사능 유출 사고가 있었고, 1978년 미국의 트리마일 섬에서도 핵 발전소 콘
크리트 바닥이 녹아내리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로부터 8년도 되지 않아 다시 체르노
빌에서 대참사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얼마 전 대만의 핵 폐기물을 북한으로 이전한다는 사실이 매스컴에 떠들썩하게 소개된 적
이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 등에서 배출되는 핵 폐기물은 현재의 과학 기술로서는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두꺼운 납 상자 속에 밀봉하여 깊은 땅 속에 매립한 뒤에 방사능이
자연히 감소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외에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방사능
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거의 수십 만 년이 걸리는 핵폐기물들-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
하는 것 외에도 핵무기라는 상태로 보관되어있는 양도 엄청나다-을 인류는 과연 어떻게 감
당해나갈 것인가?
2. 수력, 풍력, 조력, 지열, 태양열 개발 프로젝트
화석 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원을 어디에서 구해 쓸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미 옛날부터 인류가 사용해왔던 자연계의 여러 가지 에너지들이다. 현재
상용되고 있는 전기 발전의 형태 중에서 비교적 수력 발전이 이 범주에 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수력 발전 양식은 거대한 댐의 건설로 인하여 생태계 파괴와 기후 변동의 문
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거대한 댐을 건설하지 않고 자연계의 물길의 형태를 크게 훼손시
키지 않으면서도 전기 발전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수력 발전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바람을 이용하는 풍력 발전은 아무 곳에서나 하기 힘들고 또한 바람의 세기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힘들고 발전량이 많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바닷물
이 들고 나가는 조수 간만의 차이를 이용하는 조력 발전은 대량 발전이 가능하지만, 간만의
차이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하므로 아무 곳에나 설치할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아직 미지수이다. 태양열을 이용하는 방법은 그나마 지역적인 제한성이
덜 하고 또 자연 에너지 중에서는 가장 주목받는 방법이다. 현재 태양열을 이용하여 온수를
이용하는 소규모 난방 시스템으로서의 태양열 온수기는 이미 상용화되어 보급되고 있다. 이
에 비해 태양광을 이용하여 전기 발전을 하는 태양 전지 시스템은 아직도 실용화 차원에는
이르지 못했고, 연구 개발 중에 있는 이 태양 발전이 성공적으로 실용화되려면 대단히 효율
이 뛰어난 태양 집전판 개발이 선행되어야 한다. 태양빛을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태양광 집
전 장치가 개발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실용적인 전기 에너지 발생과는 거리가
먼 실정이다.
현재 인류가 소모하고 있는 에너지의 양은 1인당 1년 평균 1000kW 정도이다. 지구 지표
면의 평방미터당 해마다 약 1000W에 해당하는 양의 에너지가 태양으로부터 내려쪼이고 있
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본다면 인류가 필요로 하는 모든 에너지는 태양 에너지를 성공적으
로 활용하는 것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얘기가 된다. 현재 독일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의 일부 지역을 200년 간 임대하는 협상을 추진 중에 있다. 그 이유는 사하라 사막에 특별
한 무엇이 매장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사하라 사막에 내려쪼이고 있는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보려는 생각 때문이다.
3. 수소 에너지 프로젝트
석유와 천연 가스를 대신할 수 있는 청정 에너지원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표적
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수소 가스이다. 수소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현재의 석
유와 천연 가스를 사용하는 기존의 장치들을 개조하지 않고도 거의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는 커다란 장점이 있으며, 또 수소를 태워서 나오는 배기 가스는 수증기(물)밖에 없으므로
그야말로 청정한 에너지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수소 가스로 달리는 자동차는 독일을
선두로 미국과 일본 등에서 개발된 지 오래이며, 단지 수소가 석유에 비해 제조 비용이 비
싸게 들기 때문에 상용화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수소 가스가 널리 상용화된다면 기존의
화력 발전의 연료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전기 에너지의 생산도 그대로 가능하며 가정
용 보일러에서 난방 연료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현재 연료로 사용되는
석유 자원을 고스란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청정 에너지원으로서 수소 가스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수소 가스를 대량으로 싼
값에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요구된다. 따라서 현재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기술 개발에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은 대대적인 국책 연구 과제로서 수소 에너지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일본은 21세기의 새로운 대체 에너지원으로서 수소 가스
의 생산과 운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이른바 '수소 에너지 프로젝트'에 1993년부터 매년 4
천억원이라는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수소를 대량으로 그리고 값싸게 구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기술은
물을 전기 분해하는 것이다. 물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결합되어있는 화합
물이다.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 물을 화학적으로 전기 분해하면 수소 가스와 산
소 가스가 발생한다. 이것을 태우면 다시 물이 되면서 열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는 현재 환경 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는 이산화탄소나 유독 가스 등과 같은 어떠한 공
해 물질도 배출되지 않는다. 현재 이러한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실용화를 위해
서 손쉽고 저렴한 비용으로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여러 가지 기술들을 개발하고 있
는 중이다. 수소 가스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메탄 가스를 화학적으로 분해하는 것
이다. 이러한 방법에 의해 수소 가스와 탄소 고체가 얻어질 수 있다. 그 이외에도 수소 가스
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얻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연구되는 과정에 있다.
태양 에너지 개발과 수소 가스 개발이 기존의 과학 기술의 연장선 상에서 청정 대체 에너
지 개발의 대표 주자들이라 한다면, 이 책에서는 현재의 과학적인 패러다임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현상에 바탕한 청정 대체 에너지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서 상온 핵융합 현상이나 공간 에너지 현상은 현재의 과학 기술 패러다임 내에서는
아직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현상들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설명되지 않
는다고 해서 현상이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두 가지 현상들은
획기적인 청정 에너지 개발 장르에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비전을 줄 수도 있다.
4. 신 수소 에너지 프로젝트(상온 핵융합)
수소 에너지 프로젝트에서 수소 가스를 대량으로 값싸게 얻는 방법 중의 하나로, 물을 전
기 분해하는 기술이 연구 개발되고 있는데, 상온 핵융합 기술도 시작은 이와 똑같다. 그 매
개체로서 물을 사용한다. 수소 에너지 기술에서는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시켜 이들을 기
체 상태로 모은 뒤에 다시 태워야 열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 열 에너지를 이용하여 난방용
장치를 돌리거나 혹은 전기 에너지 그리고 동력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런데 물로부터 수소와 산소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전기 분해 방법이 사용된다. 음극과
양극을 가진 전기 분해 장치에 전기를 통과시켜 주어서 물을 분해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초
기 과정 즉,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할 필요도 없이 물에다가 약간의 전기만 가해주어도
엄청난 열 에너지가 발생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수소 가스를 태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더 큰 열 에너지가 발생한다면 말이다. 이런 꿈 같은 이야기가 상온 핵융합 기술에
의해 서서히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본 궤도에 오른 공간 에너지 신기술 개발 경쟁
스위스의 M-L 변환 장치, 데 팔머의 N-머신과 같은 신에너지 장치들에 대한 연구와 개
발은 정통 과학계에서 전혀 소외된 상태로 개인 또는 소모임으로 몇 십 년간 연구가 진행되
어 왔으나, 연구의 질과 양이 증대함에 따라 사회적 인식도 점차 달라졌다. 또한 전지구적
규모로 진행되는 환경 파괴와 대체 에너지의 필요성이 고조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신에너지
장치들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정식 국제 학술 대회가 1989년 10월 28일 스위스에서 '프리에
너지 국제회의(Free Energy International Symposium)'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으며 약 50건
정도의 연구 발표가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졌다. 이로부터 2년 후인 1991년에는 정통 과학계
에서 주최하는 대규모 학술 대회에서도 이러한 개념들이 논의되기에 이른다.
1991년 8월 4일부터 9일까지 미국 보스톤에서 개최되었던 '제26차 에너지변환공학회의
(IECEC)'에서 '에너지 실용화를 위한 신기술'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혁신적 개념들
(Innovative Concepts)'분과에서 공식적으로 공간 에너지 신기술들이 보고 발표되었다. 미국
의 '원자력 학회', '미국화학회', '전기공학회' 등의 에너지 관련 7개 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하
는 미국 최대 규모의 학술 대회 중 하나가 '에너지변환공학회의(IECEC)'인데 1992년의 제27
차 IECEC, 1993년의 제28차 IECEC, 1994년의 제29차 IECEC에서도 계속해서 공간 에너지
관련 신기술 개발이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1993년 4월에는 '신과학국제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New Science)'의 지원 하에 공간 에너지 신기술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
제 학술 대회로서 제1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The 1st International Symposium on
New Energy)이 개최되기에 이른다.
이 회의와 다음해인 1994년 4월의 제2차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전세계의 공간 에너지 연
구가들의 연구와 그 성과들이 집약되어 보고되었다.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ISNE)은 1995
년의 제3차 학술 대회와 1997년의 제4차 학술 대회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걸쳐서 거의 100
여 건이 넘는 공간 에너지 신기술 장치들을 전반적으로 소개한 이후에 현재는 발전적인 해
체를 한 상태이다. 이를 통하여 소개되어진 수많은 새로운 과학적 개념과 발명들 중에서 상
온 핵융합의 경우는 완전히 정통 과학계에서 인정하고 제도권으로 거의 흡수되고 있으며,
기타 여러 공간 에너지 신기술들이 과학적 검증과 객관적 확인 과정을 거쳐 실용화에 박차
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동향에 대해서, 미국 뉴에너지연구소의 연구소장인 토비 박
사(Dr. Toby Grotz)는 1994년의 제2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ISNE) 서두에서 다음과 같
이 말하고 있다.
"1994년의 제2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 학술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세계 각국
에 흩어져있는 공간 에너지 연구자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연구 결과와 발명품들을 대중들에
게 널리 알리고 또한 증명받기 위해서라도, ISNE 학술 대회에 참석해달라는 유치 활동을
목적으로 세계를 여행하였습니다. 이 학술 대회의 최종 목표가 바로 공간 에너지 장치 연구
개발의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두루 돌아다녀본 결과, 실제로 공간 에
너지 장치는 실현되고 있었으며, 몇 가지 주목할만한 발명들은 이미 실용화를 준비하고 있
거나 상품화를 위한 기금 조성 혹은 자금 스폰서를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개인 연구가뿐
아니라, 실제로 일본과 인도처럼 국가 정부 자체가 공간 에너지 개발을 지원하고 자금을 대
주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중략... 신기술의 공간 에너지 장치는 조만간 실용화될 것입니다.
정확히 언제 그것이 실용화될 것이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상기해 보십시오.
벨 연구소(Bell Lab)에서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후, 그것이 실용화되기까지 어느 정도 시
일이 소요되었는지 또는 최초의 컴퓨터가 만들어진 후 실제로 각 개인이 사용하고 있는 지
금에 이르기까지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를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간 에너지 장치가
실용화되기까지는 적어도 20-30년의 기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만, 실제로 콤팩
트 디스크(CD)가 최초로 소개된 이후 여러분이 가게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까? 아마도 5년 남짓일 것입니다."
무한 동력의 영구 발전기들의 개발
거듭 강조하지만, 어떤 형태의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과학 기술 문명의 골
격이 좌우될 정도로 에너지 문제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이다. 현재의 기술 문명이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열 기술(Fire technology)이란 본질적으로 엔트로피 증가를 불러일으키는 직
선적 파괴성(Explosion)의 에너지 기술이며, 또 한편으로는 그 자체적으로 자연과 생명체에
부정적인 파괴적 파장(destructive vibration)을 방출한다는 새로운 인식론적 견해들도 제기
되고 있다. 자연계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에너지원으로서 풍력, 수력, 태양열,
지열 등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만으로 현재 인류가 소비하고
있는 에너지양을 감당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현재의 에너지 위기와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
한 대체 에너지 개발 방향으로 공간 에너지 관련 연구가 거의 집중되어있는 것은 당연한 상
황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간 에너지 신기술에서 이야기하는 초효율의 신에너지 장치
(Overunity machine) 혹은 프리 에너지 장치(Free Energy machine)란 어떤 것인가를 간략
하게 예를 들어보자.
현재의 과학적 상식에 따른다면 어떠한 장치라도 효율이 100%를 초과할 수 없다. 현재의
모든 동력 장치나 발전기 장치들은 이러한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구속되어 있다. 전기 모터
의 경우, 전기 에너지를 가해주면 회전력이라는 기계적 에너지로 전환되며, 이때 출력되어지
는 기계적 에너지는 입력되는 전기 에너지의 양보다 절대로 클 수 없다. 모터가 가동될 때
의 소음이나 마찰력 등으로 약간의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출력되는 모터의 기계적 에너
지는 입력된 전기 에너지의 70-80% 정도이다. 발전기의 경우에도 출력 전기 에너지는 입력
기계적 에너지의 양을 능가할 수 없으며, 효율성을 따지면 화력 발전의 경우 40% 정도이다.
여하한 경우라도 100% 이상의 효율성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러한 개념이 에너지 보
존의 법칙이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장치들의 실제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효율이 100%를 넘는 모터와 발전기 등이 제작되어 소개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효율이 200% 또는 300% 이상이라고 보고되기도 한다. 이 장치들을 초효율 에너
지 장치(Overunity Machine)라고 부르며, 이 장치들에서 나오는 잉여 출력의 일부분을 다시
입력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를 실제의 일에 사용하면, 그야말로 에너지 보존 법칙에 위배되는
무한 동력 장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만약 기술적으로 가능하
다면, 이러한 초효율 현상을 현재의 이론적 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열 역학 법칙을
위배하지 않으면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들 초효율 시스템들이 현재
의 과학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미지의 에너지를 유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미지의 새로운 에너지 개념은 바로 공간에 존재하는 근원 에너지를 전제하지 않으면 이론
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 신기술에서의 해석이며, 이러한 개념이 새로운 패러다
임으로서 공간 에너지 이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공간 에너지 관련 신기술 분야 중에서도,
초효율의 동력 장치와 발전기 개발 분야는 현재의 시급한 에너지 위기와 환경 위기를 극복
하기 위한 대체 에너지 개발이라는 절실한 과제를 놓고 볼 때, 가장 많은 관심과 연구 결과
들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이미 몇 종류는 거의 완벽한 형태로 개발이 완료되었고, 이어서
다른 형태의 완성품들이 조만간 선보일 것이라고 보도되고 있는데 이러한 장치들 중 대표적
인 것들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미국 뉴에너지 연구소(INE)의 신기술 DB
미국의 뉴에너지 연구소(Institute for New Energy)는 1993년 4월에 창설되어 공간 에너
지 관련 제반 신기술들의 개발 상황을 취합하여 소개하고 또 나름대로 검증 확인해보고 있
는 공간 에너지 신기술 전문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격월간으로 '뉴에너지 뉴스(New
Energy News)'라는 정보 소식지를 계속 발간해왔는데 그동안의 데이터베이스들이 종합적으
로 정리되어 인터넷 상에 올라와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세계적으로 연구 개발되고 있는 프리 에너지 장치들을 테마로 해서 각
각의 장치들에 대해 기존의 알려져있는 사실들과 최근까지의 새로운 정보들을 취합, 이에
근거하여 INE 연구진들에 의해 분류되어 리스트화되어진 것이다. 이 리스트는 전체적으로
크게 두 가지의 관점에서 장치들을 분류하고 있는데 첫째는, 사람들이 장치에 보여주는 관
심도(Interest)의 측면이고 다음으로 각각의 장치들이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연구 개발이 진
행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실들이 정말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가하는 실용화
(Commercialization)의 측면이다.
리스트에는 각각의 장치들에 대한 평가가 점수로 매겨져 0부터 10까지의 레벨로 표시되어
져 있다. 가장 높은 수치인 10이나 9의 경우에는 이미 실용화를 위한 프로토 타입 제작이
끝나 상품화 직전에 와있는 것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을 거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관심도 역시 가장 높다. 8-6의 레벨의 경우는, 장치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 자
체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이며 여러 사람들에 의해 재현 실험이 성공하였다는 보고가
나와있는 경우를 나타낸다. 5-4의 레벨은, 발명자 외에 또 다른 한 사람 정도가 재현 실험
에 성공했다고 보고되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다수에 의해 장치의 작동 상황이 목격되어진
경우를 나타낸다. 3-2의 레벨은, 발명자 혼자만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실의
진위를 아직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를 나타낸다. 1-0의 레벨은, 장치나 발명이 거
짓이나 오류였음이 객관적으로 판명되었거나 혹은 그러한 주장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많은
경우를 나타낸다.
그 이외로 장치에 대한 정보 자체가 거의 없거나 애매모호하여 객관적으로 레벨을 매기기
힘든 경우를 따로 모아서 M(More information is needed) 혹은 N(No information)으로 ?M
류해놓고 있다. 이㎝한 데이터:@劫병? 인탰 ?磁灼杉?새로운 연구 분야의 마지
막 부분에 인공 강우 실험이 포함되어 있으며, 오르고노미의 의학적 응용 분야는 이미 서구
대체 의학의 가장 커다란 주류로서 형성되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필자와 더불어 1994년 10월 대전에서 '한국정신과학학회'를 창립한 주역이자 신과학 기술의
세계적 동향을 가장 먼저 수집해온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방건웅 박사가 부산의 부경대 해
양학과 강용균 교수의 초청으로 인공 기상 조절 공학의 역사를 소개한 내용 중 기사화된 부
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기를 모아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을까? 지난 11일 부경대 해양공동연구소 세미나실에서
현재의 과학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날씨를 조절하려는 연구를
소개하는 세미나가 개최되어 관심을 끌었다. '에테르를 이용한 기상 제어 기술'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방건웅 박사는,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말
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겨왔지만 기와 염력 등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국내외에서 활발
히 진행되고 있다면서, 기의 실체에 대해서 수천 년 동안 한의학 등의 임상을 통해 증명되
어 왔고 실제로 이용되고 있는 만큼 비과학적이라고 무조건 무시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였
다. 특히 서양 의학은 암이나 고혈압 등 만성병 치료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제
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자연 현상도 많다는 것. 예를 들면 소리는 공기 입자의 진동에 의해
전달되지만 전자기파의 전달 방법은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
방박사에 따르면, 에테르를 이용한 기상 제어 연구는 1930년대 프로이트의 마지막 제자인
빌헬름 라이히 박사가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라이히 박사는 대기는 기와 비슷한 개념인 오
르곤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오르곤 에너지와 친화력이 강한 물을 이
용하여 대기 중의 오르곤 에너지 흐름을 ??자기 TV 화면에서 전개되던 영상들이 하얗게 사라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데이비드는 이때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는데 잠시후 깨어나보
니 생전 처음 보는 UFO 내에 자신이 와 있었으며 두 명의 우주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
다. 이들은 데이비드에게 자신들의 우주선 내부를 관람시켜주면서 특히 우주선 추진 장치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데이비드에게 똑같이 만들어보라고 권고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진실인지 환각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 이후로 그는 반중력 비행 접시
장치를 실제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지난 14년 간 데이비드는 4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실
제로 제작하였으며 어설프게 만든 이 프로토 타입 장치들을 작동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
다.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는 말 그대로 석유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아주 조악한 것이었
다. 이 드럼통 안에 그가 UFO 내부에서 목격하였던 것과 유사한 형태로 특수 영구 자석들
을 조립 배치시켜 놓았다. 조립을 마치고 난 후에 식사를 하면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실험
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놀라서 달려가보니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장치가
공중으로 치솟아 천장에 부딪치고 있었다. 잠시 후 얇은 슬라브 천장을 뚫고 이 드럼통은
하늘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이를 통해 이 장치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데
이비드는, 그 이후로 현재까지 조금씩 더욱 세련된 형태로 세 개의 프로토 타입 장치를 더
제작하였다.
80년대 말경부터는 피어 싱클레어라는 젊은 조력자가 생겼으며 최근까지 대부분의 작업은
이 싱클레어가 행하고 있다. 사진9는 석유 드럼통으로 만든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장치이며
사진10은 좀 더 세련된 타입의 프로토 타입 장치의 외형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가운데 원
추형 콘모양의 새까만 부분들이 영구 자석이 위치한 엔진 부분에 해당된다. 데이비드와 싱
클레어는 1996년의 제3차 뉴에너지 국제 심포지엄(ISNE; International New
Energy
Symposium)에서 자신들의 장치(Gravito Magnetic Device)에 대해 공식적으로 소개하고 있
는데, 여기에서 이 장치의 작동 원리와 세부 구조를 다음고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장치 윗 덮
개 부분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영구 자석 엔진 부분을 손으로 밀어내리면 이 장치는 작동
을 시작한다. 장치 윗 덮개 가운데에 위치하는 영구 자석은 커다란 고리형 자석으로서 모두
14개의 자석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것을 밑으로 끌어내리면 아래에 위치한 작은 고리
형 자석에 영향을 미치고 자석간의 반발력에 의해 이 고리형 자석들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고리형의 영구 자석이 한번 회전하기 시작하면 아무런 외부 동력이 없이도 회전이 계속
지속되며 이것은 전체 장치 속에서 특별한 에너지 상태를 유도한다. 이로부터 플라즈마 형
태의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점차적으로 그 색깔이 바뀌면서 동시에 중력 감소 현상이 발생하
여 결국은 공중 부상하게 된다고 소개도어 있다. 발명자들과 몇 사람의 관계자들의 증언 외
에는 아직까지 이 장치가 정말 작동되어 공중 부상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이 부족한
상태이다. 하지만 데이비드와 싱클레어가 현재 제작 중인 프로토 타입 장치가 완성되는 대
로 공식적으로 공개 시현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므로 이 장치에 대한 진위 여부도 조만간
확실해질 것이다.
핀란드에서의 반중력 소식
존 셜의 반중력 장치나 데이비드의 장치는 모두 특수 영구 자석과 고속 회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수 영구 자석의 고속 회전이 어떻게 반중
력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이러한 이론적인 면과 관련되어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
공해줄 지도 모를 특별한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어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전문
적인 과학자가 행한 실험 도중에 초전도체의 영구 자석을 고속 회전시키면 반중력 효과가
실제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세간에 흘러나온 것이다. 이 사실은 일반 잡지에서 먼저 기
사회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1996년 9월 1일자의 '선데이 텔레그래프' 잡지와 9월 21일
자의 '뉴사이언티스트' 잡지에서 처음 기사가 게재되어졌는데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
음과 같다.
"핀란드의 탬피어 대학(Tampere Univ.)의 유진 포드크레트노프(Eugene Podkletnov)박사
연구팀은 아주 우연히 물체의 중량이 현저히 줄어드는 반중력 현상을 발견하였다. 원래 이
들은 초전도체 세라믹으로 만든 고리형의 영구 자석을 솔레노이드 전자석 위에 띄워서 고속
회전시키는 실험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70K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세 개의 솔레노이드
코일 전자석으로 구성되어 있는 장치 시스템 위에다가 초전도성의 고리형 영구 자석을 띄워
놓고 고속 회전을 시키고 있을 때였다. 이때 연구팀의 누군가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
는데 이 담배 연기들이 장치 시스템 위에서 일직선으로 천장으로 솟구치는 것을 우연히 발
견하게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구팀은 이 장치 위부분에 모래 주머니를 놓고 중량
측정을 시도해보았는데 그 결과 모래 주머니의 중량이 현저하게 감소한다는 것이 측정되었
다.
최초의 측정때 0.3%의 중량 감소를 발견하였으며 이에 장치의 회전 속도를 5000 r.p.m 이
상 높인 2차 실험에서는 최대 2%의 중량 감소 현상을 측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측정을 확
대하여 이 반중력 현상이 어느 범위에까지 나타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장치 시스템 위로
직선적인 거리를 점점 멀게 하여 측정한 결과, 연구실 위층에서까지 어느 정도 유사한 중량
감소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놀라운 반중력 실험 결과가 전문 학술지에 먼저 게
재되지 않고 일반 잡지에서 최초로 기사화된 경위는 이러하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세계적으로 저명한 물리학 학술지인 '피지칼
리뷰(Physical Review)' 잡지에 연구 논문 원고로서 송부하였다. 피지칼 리뷰의 세 명의 편
집자들은 이 획기적인 연구 논문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결국 학술지에 게재하
기로 결정을 보게된다. 하지만 논문이 연재되기 직전에 포드크레트노프 박사팀은 연구 결과
를 공개하지 않기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논문 원고 자체를 회수하였다. 그 이후에 이러한
획기적인 결과가 감추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어떤 사람(학술지 편집자 중의 한 명
이거나 연구팀 중의 한 명)에 의하여 이 사실이 대중 매체에 전달되었던 것이다.
대중 잡지에 소개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템피어 대학측에 문의하였으나 이미 포드크레트
노프 박사팀은 자취를 감춘 후였으며, 템피어 대학측에서 말하기로는 포드크레트노프 박사
팀은 1992년도부터 템피어 대학에서 모종의 연구 프로젝트를 위임받아 수행하던 중이었으며
반중력에 대한 현상이 보도되던 무렵에는 더 이상 템피어 대학의 연구원이 아닌 상태였으므
로 이러한 실험 결과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앞서의 셜 장치와 데이비드의 공중 부상 장치와 마찬가지로 이 실험의 진위 여부
에 대한 확증은 아직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여러 전문가
들이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이들의 연구가 진짜라면 더욱 더 앞으로의 실제 연구는 극비리
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당분간 이들을 공개적으로 접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
각된다. 핀란드에서 전해진 반중력 현상에 대한 소식은 세계의 여러 초전도체 연구가들과
반중력 연구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며, 나아가 존 셜의 장치나 데이비드의 반중력 장
치에 대한 이론적 실마리도 제공하고 있다. 포드크레트노프 박사의 실험 결과는 장치 자체
가 공중 부상하는 타입이 아니라 일종의 반중력 공간이 생성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
하다. 이 장치 위로 생성되는 반중력 공간 속에서는 물질의 종류에 관계없이 어떠한 것이라
도 중량 감소 현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반중력 효과를 의심할 여지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제4장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대규모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서의 텔레포테이션 실험
1979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제목으로 텔레포테이션 실험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
야기를 담고 있는 책자 하나가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
으며 이 책에 담긴 내용의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사실 여부
를 떠나서 일반 대중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였던, 공간 이동과 시간 여행에 대한 책자의
내용들은 그 자체로 영화화되어 국내에서도 개봉된 바 있을 정도이다. 영화 '필라델피아
익
스페리먼트' 이전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 공간 이동을 다룬 오락 영화 '백 투더 퓨처
'
역시 그 주된 테마는 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얻어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먼저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의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 기지에서는 일련의
극비 비밀 실험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 실험의 최종 목적은 전함의 일종인 구축함을
일종의 전자기 차폐막으로 에워싸서 적의 레이더망에 전혀 포착되지 않도록 만드는 특수 군
사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현재 이 기술은 스텔스 전투기로서 기술적으로 성공리에
개발되어 있다.) 이 실험을 위하여 '엘드리지'라는 이름의 구축함이 건조되었고, 이 배 안
에
는 발전기와 변압기 및 전자기 장치들이 가득 설치되었다. 1943년 7월 20일 오전 9시에 최
초의 역사적인 실험이 행해졌다. 엘드리지호는 승무원들과 기술자들을 탑승시킨 상태로 필
라델피아 앞바다로 나아갔으며 배 안에 설치된 장치들을 가동시켰다. 메인 스위치를 올리고
장치들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드디어 엘드리지호는 레이더망에서 완전히 그 흔적을 감추었
다. 20여 분 동안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그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그 실험은 완전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배가 기지로 돌아왔을 때, 배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
대다수가 일종의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견되었다.
인명 사고가 예상되는 이러한 상태에서도 전쟁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절정에 달하고 있던
당시의 전황으로 인해 생명체에 미칠 부작용을 염려할 틈이 없었던 탓인지, 한 달도 채 안
된 8월 12일 본격적인 두 번째의 실험이 실시되었다. 거의 100여 명의 군인들과 수십 여 명
의 기술자들이 탑승한 상태로 엘드리지호는 바다로 나아갔으며 예정된 시간에 실험을 실시
하기 위해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실험 장치들이 작동되어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발생
하면서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엘드리지호는 이윽고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 여기까지
는 별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바로 잠시 후에 엘드리지호 전체가 녹색의 후광으
로 덮이기 시작하더니 곧 이어서 배 자체가 그 모습을 완전히 시야에서 감추어버린 것이다.
레이더 상에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실제의 공간상에서도 사라져버렸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엘드리지호는 다시 필라델피아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필라델피아 해군
기지에서 배를 인양하였을 때, 당초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실종되
었으며 남아있는 사람들도 아주 격심한 정신 착란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실험이 되어버린 10월 27일의 세 번째 실험에서는 승무원을 한 명도 태우
지 않은 채 원격 조종으로 배 안의 메인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장치를 가동시키자 이번에도
엘드리지호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10여 분 후, 필라델피아 항구에서 442km 떨어져있
는 대서양 연안의 버지니아의 노폴크 항구에서 홀연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노폴크 항구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다시 텔레포테이션하여 원래의 필라델피아 항구로 되돌아온 엘드
리지호는 심한 화염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고, 배 안의 장치들은 모두 과열되어 심하게 손상
되어져 있었다. 현재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레인보우 프로젝트의
당시 수뇌부는, 결국 이 프로젝트를 마감하기로 하고 프로젝트의 총괄 진행자였던 폰 노이
만 박사를 맨하탄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전격 소환하였으며, 바로 얼마 후에 원자 폭탄이 개
발 성공된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진행 과정과 실험 결과들은 철저히 극비 사항으로
감추어졌으며, 실험에 사용된 엘드리지호는 완전 개조되어 전쟁이 끝난 후에 그리이스 해군
으로 양도됨으로써 이 실험에 대한 모든 흔적이 지워져 버린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1950년대 중반에 천문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UFO 연구가로서
도 잘 알려진 모리스 제섭(Morris K. Jessup)박사에게 일련의 편지들이 배달되었다. 카를로
스 알렌디(Carlos Allende)라는 이름의 한 선원이 보낸 그 편지들은 그동안 은폐되어온 필
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숨겨진 사건을 다시 거론하고 있었다. 카를로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앤드류(Andrew Furuseth)라는 이름의 화물선에서 일하고 있던 뱃사람인데,
1943년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 연안을 항해하던 도중에 어느 거대한 군함 한 척이 바다 위
에서 홀연히 사라졌다가 몇 시간 후에 다시 홀연히 나타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직접 목격하
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추적해 본 결과, 그 선원은 이것
이 바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극비 군사 실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알게된 이 놀라운 사건을 혼자만 간직하다가 이제야 모리스 박사에게 털어놓는다는 내용이
었다.
모리스 박사는 이에 흥미를 가지고 전설적인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비밀을 파헤치는
민간 모임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59년에 모리스 박사 자신이 공원
한 구석, 자신의 자동차 안에서 의문의 자살을 한 상태로 발견되어 더욱 커다란 의혹만을
남긴 채,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는 다시 전설 속으로 묻혀지고 만다. 다시 어언 20여 년이
지난 1979년 윌리암 무어(William Moore)는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행하여졌던 엘드리
지호의 실제 항해 일지를 추적하여, 그 당시 실험이 행해진 당시의 엘드리지호의 공식적인
항해 기록이 많은 의문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라는 화제
의
책을 출간했고, 이것이 다시 세인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이것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의 전말이다. 1979년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역사적인 사실인지 아니면 단지 픽션에 불
과한 것인지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은 날로 고조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사 보안적인 기
밀 사항이 그렇듯이, 이 또한 사건의 진위를 입증할 객관적인 물증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
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집중시키는 상황들이 연속
으로 일어났는데, 그것은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여 사건 전모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잇달아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필라델
피아 익스페리먼트 사건의 내용은 더욱 확장되어, 단지 우연히 발생한 대규모의 텔레포테이
션 실험이었다기 보다는 차라리 마치 SF소설에나 등장하는 일들이 현실에서 실제 상황으로
발생하였다는 더욱 놀라운 이야기들이 밝혀졌다. 즉, 엘드리지호가 공간 이동을 보여주었던
당시, 그 속에 탑승해있던 승무원 자신들은 소위 시간 여행을 경험하였다는 것이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증인들
가장 최근인 1990년대 초에 등장한 엔드류 드루(Andrew Storm. Drue)박사는 20여 년 간
미 해병대에서 근무하다가 1993년에 제대한 이후,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UFO 분야에
대한 연구와 소개 활등을 주로 해온 사람이다. 그가 세인의 주목을 받게된 것은 그 자신이
실제로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의 엘드리지호에 탑승하였던 기술자 중 한 사람으로서, 당
시 살아남은 생존자 중의 하나로 스스로를 밝히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그
를 방문하여 당시의 체험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고, 이를 계기로 그는 아예 대중 강연을 나
서게 된다. 1996년 캐나다에서 개최된 '96 지구촌 과학 회의(Global Science Congress)'에서
행한 초청 강연에서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 중의 일부분을 인용하자.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에 참가하였다고 이야기하
는데 그렇다면 그때의 상황이 어떠하였는지를 말해달라고 자꾸 요청해 옵니다. 그때의 상황
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죠. 얼마 전 '인터컨넥팅' 잡지에서 인터뷰하여 실렸던 글이 여기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읽어드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실험 장치들의 메인
스위치를 켜고 최대의 전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하는 일말의 공포심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스위치를 켜서 강력한 전자기장이 형성되자마자
곧바로 짙은 안개 같은 것에 휩싸였고 우리가 타고 있던 엘드리지호는 공간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나는 내 뒤에 위치해 있던 발전기 장치로부터 일종의 강력한 에너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충격의 여파로 몸이 산산조각나는 것 같았으며 눈앞에서는 섬광이 작열하여 장
님이 되는 것 같았다. ...기나긴 시간 여행 끝에 우리는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고 이때의 주
위 현장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해군 구조 대원들이 만신창이가 된 엘드리지호로 올라왔을
때에 그들은 이러한 광경에 질겁을 하고 말았다. 나는 들것에 실려서 작은 구조선으로 옮겨
졌다. 전체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21명 만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아예 120여 명은 그 자
취를 찾을 수조차 없었다. 이들은 엘드리지호가 다시 원래의 시점으로 돌아왔을 때 배 안에
남아있지 못했던 것이다...
자, 상상해보십시오. 자그만치 15백억 볼트의 전기가 흘렀다면 말입니다. 그때는 새벽이었
습니다. 우리는 실험 당시에 필라델피아 항구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삼엄한 보안 유지 이
야기를 자꾸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항구에서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댈러웨어로 향하는 도중이었지요. 181명의 승무원
중에서 5명이 전문 과학자였는데 나는 민간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이 계획
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는 엘드리지호가 막 건조되고 있는 중이었지요. 니콜라 테슬라가
제시한 설계도에 따라서 배는 건조되었고 다양한 장비들을 장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테
슬라가 이 실험을 끝까지 지휘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생물을 대상으로 실험할 경우에 발생
할 위험성을 깨닫고 테슬라는 이 계획을 철회하고자 하였죠. 그는 스스로 발을 뺐죠. 그러고
는 바로 뒤인 194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되었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죽었다고는 절
대 믿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부가 그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였거나 그의 측근이 그의 죽음을
위장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틀림없는 시간 여행자인데 그가 그
렇게 세상을 떠난단 말인가요. ...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이제는 지금까지 배워온 것과는
사뭇 다르게 시간을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개념은 하나의 연속된 일
직선 상에 놓여있는 시간적 개념입니다. ...시간은 오히려 병렬식입니다. 시간이란 사건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이러한 모든 사건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시간 여
행이 가능한 것이죠. 모든 시간은 현재입니다. 모든 사건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중
략...
자, 이제 여러분들에게 텔레포테이션이라는 기술이 이제는 실증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
고 있다는 실례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잡지를 보고 계시는 분이 계시나요? 1996년 2월호에 실려있는 이 IBM 광고를
보신 분 계십니까? 유럽에 있는 노부인이 일본의 노신사 분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내가 뭔가 좋은 것을 금방 공간 이동시켜 보내 드릴테니까'라고 말하는
광고 밑에 이런 코멘트가 달려 있군요. '한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구조를 완전하게 유지
하
면서도 공간 상의 다른 곳에 전송시키는 기술이 이미 현실화되었다. 마술 같은 이야기이지
만 미래에는 모든 컴퓨터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이 IBM 광고입니다. 그 내
면을 본다면 이미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테슬라는 이 기술을 이미 백 년 전에
개발하였던 사람이죠.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 훨씬 이전에 말입니다."
필라델피아 익스페리먼트가 실제로 실시되었던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실험이 수행될 수 있었던 기술적 기반이 이미 1943년 이전에 확보되어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여기에는 당대의 기라성같은 과학자들이 상당수 출현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핵
심적으로 거론되는 사람이 바로 니콜라 테슬라(Nichola Tesla) 박사이다.
1910년경에 교류 발전기 장치라는 획기적인 전기 발생 장치를 최초로 발명함으로써 현재
의 전기 전자 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문명을 역사상에 개막시켰던 테슬라의 방대한
과학적 업적은, 인류에게 최초로 불을 가져다 주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적인 위대성에 비
견될 만큼 현재에 다시 되살아나 급격하게 재조명을 받고 있다. 라디오 장치로부터 시작된
무선 통신 기술의 경우도 실제로 이것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마르코니가 아니라 바로 니
콜라 테슬라였으며, 테슬라의 친구였던 마르코니가 그의 발명을 도용하여 단지 먼저 발표한
것일 뿐임은 미국 법정에서도 현재 공인된 사실이다. 20세기 초의 당시 상황에서는 전혀 생
각해볼 수도 없었던 수많은 발명들을 내놓았던 대천재 니콜라 테슬라의 업적들은 거의 사장
되어 버렸고, 그 중 몇 가지만이 현재까지 실용화되고 있는데, 이것들만으로도 테슬라의 과
학적 업적은 가히 신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외의 묻혀져버린 테슬라의 수많은 발명들
가운데 몇 가지는 최근에 와서 다시 재현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1장에서 소개된 캐나다
의 존 허치슨의 반중력 장치도 니콜라 테슬라의 무선 송전 실험을 재현해보려는 시도 중에
서 발거뼈?갈아서 다시 플레이트 형태로 만
들고 이 얇은 플레이트를 캐시미르 효과가 발생하도록 매우 가깝게 겹겹이 배열한 뒤에 최
종적으로 그 위에 고리 형태의 영구 자석을 위치시켜놓은 실린더 형태이다. 실린더 내부의
양쪽 벽에 금속판을 위치시켜놓으면 이 금속판으로부터 전기가 발생한다고 한다.
영구 자석 모터 및 초효율 전기 모터
자석이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성질과 자석이 철을 끌어당기는 성질을 이용하여 일
종의 영구 기관 즉, 무한 동력 장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 실제로 오래동안
지속되어져 왔음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와 발상들은 근대에 들어서 역학
과 전자기학의 기초가 마련되면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는 헛된 망상으로 결론지어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몽상가들의 영구 기관 발명을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졌으며,
1954년에는 미국의 바우만(Lee Bowman)이 최초로 영구 자석 모터의 제작에 성공하여 공개
시현을 한 기록을 볼 수 있다. 그 이후 최근까지도 여러 종류의 영구 자석 모터(즉, 영구 기
관)들의 성공적인 개발이 보고되고 있는데 이것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
하다고 여겨진다. 공간 에너지 신기술의 새로운 개념인 미지의 공간 에너지의 존재를 일단
긍정적으로 전제한다면, 무한 동력 장치로서의 영구 자석 모터의 실현 가능성을 전혀 배제
할 수만은 없다. 순수하게 영구 자석만을 사용하여 영구히 작동되는 자석 모터가 현실적으
로 실현 가능하다면 여타의 다른 초효율 장치와는 달리 입력 전원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므
로 효율성 계산을 둘러싼 논란 조차 없이 신기술의 새로운 에너지 개념을 검증 확인하기에
는 가장 적합하다.
최근까지 보고되고 있는 이러한 유형의 장치들 대부분은 순수한 영구 자석 모터
(Permanent Magnetic Motor: P.M.M)를 변형하여 영구 자석만을 사용하지 않고 전자석을
함께 사용, 장치 자체의 제어가 편리하도록 고안되고 있다. 하지만 전자석을 사용한다는 것
은 입력 전원을 기초로 하는 것이어서 무엇보다도 실제적인 프리 에너지 장치가 되기 위해
서는 출력 에너지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유형의 장치들을 순수
한 영구 자석 모터와 분리하여 초효율의 전기 모터(Overunity Electromagnetic Motor:
E.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초효율 발생을 넘어서서, 출력의 일부분을 다시 입
력 전원으로 피드백시켜 완벽하게 영구 작동하는 무한 동력 장치로 개발하는 것이 이들 연
구가들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미국 뉴에너지 연구소(INE)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살펴본다면,
19번의 뉴만 모터 장치, 20번의 가와이 자석 모터, 21번의 타카하시 자석 모터, 32번의 핀스
러드 영구 동력 장치, 33번의 리드 자석 모터, 34번의 미나토 자석 모터, 40번의 뮐러 자석
모터, 41번의 존슨 자석 모터, 42번의 에클린 자석 모터, 43번의 완라스 모터 발전기, 44번의
스톤버그 모터 발전기와 50번의 아담스 모터 발전기가 이들 유형에 속하는 장치들이다.
1. 리드(Troy Reed)의 자석 모터
미국의 발명가 트로이 리드의 장치는 영구 자석 모터(P.M.M) 계열 중에서 현재까지 가장
성공적인 경우로 소개될 수 있을 것 같다. 1990년 12월 15일에 리드는 그의 영구 자석 모터
를 처음 공개 시현하였다. 이때의 장치 작동 상황과 미국 TV의 뉴스라인(미국 TV채널 2
Night Cast News와 OKlahoma, Tulsa의 KOTV 6번)에서 소개한 화면 및 1991년 3월 1일
에 공개 시현한 내용이 비디오로 편집되어져 있다. 이 비디오 영상 자료에서 보여지는 리드
의 첫 번째 프로토 타입 자석 모터의 전체 외형은 약 5피트 정도이며 500파운드 무게의 장
치이다. 전체 장치의 구조는 외형상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쪽의 커다란 두
개의 금속 원반과 이들을 연결하는 회전 축, 그리고 회전 축을 조절하는 인젝트 부분과 회
전 금속 원반 둘레에 커다란 고리형 원반이 고정되어 있는 지극히 단순한 구조이다.
양 쪽의 회전 금속 원반에는 각각 가장자리에 8개의 영구 자석(네오디미움 세라믹 자석)
이 내부에 설치되어 있으며, 회전 금속 원반 바깥에 고정되어 있는 고리형 금속 원반의 내
부에도 마찬가지의 영구 자석이 8개씩 설치되어 있다. 발명가인 리드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단순히 자석끼리의 서로 밀고 당기는 원리에 의해 장치가 작동되며, 회전 축에 연결되어 있
는 스프링 인젝트에 의해 회전 방향과 적절한 회전 속도가 조절되어진다고 한다. 이 장치의
한 쪽 회전 원반에는 도르레가 부착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소형 발전기가 연결되어 있다. 비
디오 영상에서 보여주듯이, 발명가인 리드가 처음에 손으로 장치를 손으로 돌려주기 시작하
고 적당한 회전 속도에 도달하면 장치는 저절로 회전한다. 아울러 장치와 연결되어 있는 소
형 발전기가 회전하기 때문에 공짜 전기 출력이 발생하고, 이 전기 출력으로 전기 드릴이나
가정용 진공 청소기 등을 가동시킬 수 있음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이 장치를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가솔린이나 원자력 등의 어떠한 외부 에너지도 필요
하지 않으며, 처음에만 단순히 수동으로 작동시켜주면 되는 것이다.(처음 스타트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리드는 12V 소형 전기 모터를 사용하기도 한다.) 비디오에서 리드가 보여주듯이
이 프로토 타입의 장치에서의 전기 출력은 500W(67V)정도 발생하고 있다. 리드는, 최근에
개선되어진 시제품용 장치는 전체 무게를 훨씬 가볍게 개량하였으며 거의 7kW의 전기 출
력이 발생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현재 리드의 영구 자석 모터 장치는 미국 특허국에 특허
심사 중에 있으므로 더욱 구체적인 정보를 밝힐 수 없고, 특허가 취득되는 즉시로 시제품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리드는 말하고 있다.
1997년에 미국에서 제작 상영된 다큐멘터리 필름 '프리 에너지' 비디오에는 리드의 최신형
장치의 작동 상황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보이는 장치는 1991년도에 선보였던 최초의
프로토 타입 장치에 비해서 현저한 발전이 이루어져있음을 볼 수 있다. 먼저 전체 장치의
크기가 약 1/4 정도로 축소되어졌으며 출력은 오히려 향상되었다. 프로토 타입 장치에서는
처음에 손으로 돌려주던 것을 여기에서는 처음에만 잠깐 전기를 공급하여 장치를 돌리고 장
치가 적정 속도에 도달하면 자동적으로 입력 전원이 차단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치
는 여전히 동일한 속도로 회전하면서 장치에 내장되어 있는 소형 발전기를 통해서 공짜 전
기 출력을 발생시키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리드가 이미 이 장치를 새로운 청정 자동차의 엔진으로 사용하는데까
지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자동차의 기존 엔진 부분을 다 뜯어내고 자신의
자석 모터 장치로 대체시켜서 이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있다. 물론 이 자동차는 연료가 전
혀 필요없으며 시동을 걸 때 사용되는 전원이래야 고작 기존의 배터리뿐이다. 시동이 걸리
면 주행하면서 자동차에 내장된 소형 발전기에 의해서 밧데리가 재충전되어지므로 배터리를
매번 충전시킬 필요도 없다. 리드의 말을 잠깐 들어보자.
"...여러분들이 내년 쯤에는 이 장치를 가정용 발전기로서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저는 희
망하고 있습니다. 이 자석 모터의 또 좋은 점은 전기 자동차의 엔진으로서 사용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자, 이것은 정말 멋진 자동차입니다. 다른 자동차에는 내가 잡동사니들이라
부르는 잡다한 부속품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석 모터 엔진과
배터리 하나 그리고 두 개의 안전 스위치가 있을 뿐이죠... 이 차를 몰고서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어떤 곳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매번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플러그를 꽂아야 할 필
요도 없습니다. 정말 멋진 차입니다. 나는 이 차를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는 성공할 것입니
다. 이것은 바로 인류의 미래를 위한 것이니까요."
리드의 자석 모터와 마찬가지로 영구 자석 모터 계열의 장치로서는 노르웨이의 핀스러드
영구 동력 장치와 캐나다의 뮐러 자석 모터, 미국의 존슨 자석 모터와 에클린 자석 모터 등
이 보고되어 있으나 리드의 자석 모터처럼 성공적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2. 뉴먼(Joseph Newman)의 초효율 전기 모터
뉴먼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초효율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대표적인 신기술 연구자이
다. 그는 초효율이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자석 모터겸 발전기 장치를 개발하여 1980년
대 초에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나 당시의 미국 특허청은 초효율이라는 개념 자체를 인정하
지 않았으므로 이 특허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리하여 미국 특허청과 뉴먼 사이의 특
허 논쟁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뉴먼은 여러 차례의 공개
시현을 실시하였는데 그 중에서 1995년 8월 10일 자신의 모터 장치를 이용하여 12시간 동안
우물물을 퍼올리는 공개 시범을 가진 바 있으며, 이 시범에는 입력 전원이 거의 소요되지
않았고 또한 장치 자체도 전혀 가열되지 않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영구 자석 모터의 경우와는 달리 초효율 전기 모터 발전기 장치의 경우에는, 장치에 소모
되는 입력 전력과 장치에서 발생하는 출력 에너지-모터의 경우에는 동력 에너지인 토크로
나타나고 발전기의 경우에는 전기로 발생한다-를 서로 정확하게 측정 비교하여야한다는 어
려운 점이 존재한다. 이 측정이 객관적으로 정확하지 않을 경우 초효율 발생이 사실인지 아
닌지 확인하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발명가들은 측정에 관한 분석 전문가들이 아니
기 때문에 발명가 자신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다. 따라서 보다
객관적인 정보들이 더 필요할 것이다.
물 자체를 청정 연료로 사용하는 신기술들
물을 연료로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현재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기술 중 가장 실용적인 방
법의 하나가 바로 물을 전기 분해하는 방법이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와 산소로 분해되
어 기체로서 발생한다. 이때 발생한 수소와 산소를 함께 태우면 열이 발생하면서 다시 물이
생성되며, 이때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여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물이 수소와 산소가
되었다가 다시 물로 되돌아가므로 어떠한 공해 물질도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방법은
전기만 있으면 엄청나게 값싸고 깨끗한 방법으로 열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는 청정 에너지
기술이다. 또 이 기술은 기존의 자동차나 가정용 보일러 등에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을 '수소 에너지 프로젝트'라고 호칭하는데 기술 자체는 엄밀히 말한다면 기존의 과학
계내에서 이미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 개발되고있는 에너지 개발 기술에 불과하다. 현재
처럼 석유나 LPG 가스를 사용하는 것보다야 정말 청정 에너지 기술이기는 하지만, 조심스
럽게 수소 가스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불편의 소지가 남는다. 또한 수소 가스
를 따로 모아 LPG 가스처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 에너지 기술의 발상 차원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그치지않고 훨씬 새롭게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 신과학적인 기술들이 등장하
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과학적인 물연료화 기술의 하나로서 호주의 율 브라운 박사가 개발
한 브라운 가스 시스템-INE 장치 리스트에서 51번-을 첫 번째 예로 소개하자.
1. 브라운(Yull Brown) 가스
브라운 박사는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호
주에 정착하여 무공해 에너지 기술 개발에 전념해온 과학자이다. 그는 물을 전기분해하는
실험을 오랫동안 수행하던 중에 기존의 과학 지식으로는 이해되지않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
하였다. 물을 전기 분해시키면, 음극과 양극의 두 전극 쪽에서 각각 수소와 산소가 기체로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 수소와 산소를 함께 태우면 폭발을 일으키면서 다시 물이 된다는 것은
상식적인 과학 지식이다. 그러나 율 브라운 박사는, 다른 물질들이 전혀 섞이지 않도록 한
상태에서 순수한 수소와 산소 가스만을 화학당량 비율인 2:1로 아주 정확하게 혼합시켜서-
화학적으로 말하자면, 수소 분자 2개와 산소 분자 1개가 결합하여 물 분자 하나를 만든다-
연소시켜 보았더니 신비로운 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일상적으로 모든 폭발 현상이 그렇듯이 그냥 수소와 산소를 적당히 태울 때는 외부 팽창
성의 폭발 현상(Explosion)이 발생하는 반면, 수소와 산소가 지극히 순수한 화학 당량비로
존재하는 상태에서 태울 때는 내부 중심을 향하여 수축하는 응집성 폭발 현상-이것을 기존
의 Explosion에 대비시켜 Implosion이라 부른다-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응폭
현상에 의해 실험 장치 용기 내부는 초진공 상태가 형성되었으며 이때 발생하는 열 에너지
도 내부로 응집하는 경향을 가지면서 예상치못한 엄청난 고온 상태를 형성시켰다. 응폭 현
상 시의 고온의 열 에너지는 세라믹과 금속을 동시에 용접시켜버릴 만큼 강력하다. 이 현상
은 새로운 용접 기술로서 개발되어 현재 국내에도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초진공 상태를 형
성시키는 응폭 현상을 이용하는 새로운 자동차 엔진도 일본에서 현재 개발 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수소와 산소 기체를 혼합하여 태울 때는-외부 팽창성 폭발-대략 섭씨 2,700도
정도의 열이 발생하며 푸른색 불꽃을 형성한다. 그러나 브라운 가스에서 발생하는 불꽃은
최소한 섭씨 6,000도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금속들 중에서 녹는 점이
가장 높다고 하는 텅스텐을 승화시킬 수 있을 정도이며 어떠한 금속도 동시에 녹일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식되어온 이종 금속들 간의 용접이 가능하게 되었다. 심
지어 세라믹의 경우에도 용접이 가능하다. 브라운 가스에 의한 불꽃은 연소 과정에서 내부
로 응집하는 성향을 여전히 지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불꽃이 분산되지 않고 초점을 형성하
여 마치 레이저 광선처럼 분사된다. 이러한 특성은 불꽃과 직접적인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
는 한, 섭씨 280도 이상으로 주변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도 확실히 알 수 있
다. 브라운 가스가 활용 가능한 분야로는 용접기와 난방기 외에도 브라운 가스 자동차, 브라
운 가스 진공 펌프, 브라운 가스 특수 소각로, 브라운 가스 보일러 등을 들 수 있으며, 최근
에는 방사성 폐기물을 비롯한, 각종 처리하기 어려운 폐기물의 처리에 적용하는 방안도 연
구되고 있다.
2. 신에너지 혁명을 선도하는 상온 핵융합
통상의 수소 에너지 프로젝트처럼, 물을 전기 분해하여 수소와 산소로 분해시키고 이들을
기체 상태로 모은 뒤 다시 이들을 태워서 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제반 기술들은 여하간 상
당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않고 즉, 물로부
터 수소와 산소를 발생시킬 필요도 없이, 물에다 약간의 전기만 가해주어도 물 자체로부터
엄청난 열 에너지가 발생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수소를 태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의 엄청난 초효율의 열 에너지가 발생한다면... 이러한 꿈같은 이야기가 상온 핵융합 기술로
서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상온 핵융합이라고 불리우는 이 꿈의 신기술은 신에너지 기술의 제반 분야에서 확고
한 선두 주자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실제로 실용적인 청정 신에너지 기술로서 상온 핵융
합 기술이 어떤 것인가를 다소 과장되게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겨울날 집안의 난방을 위하여 하루에 몇 리터씩이나 기름을 태워야 할 필요없이, 손
전등에 사용하고있는 조그마한 전기 배터리 하나만 사용하면 충분히, 상온 핵융합 기술로
고안된 가정용 난방 장치를 통해 하루 종일 뜨거운 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된다. 혹은 대
형의 상온 핵융합 스팀 발생 장치를 통해 발전소를 가동시켜서-당연히 기존의 화력 발전소
나 원자력 발전소는 필요가 없어진다-마을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되는데 이때
원천적으로 상온 핵융합 발전소를 가동시키는 에너지는 대형의 배터리 몇 개면 충분하다...
패터슨 파워셀-INE 데이터 리스트에서 제2번-은 현재 개발되고 있는 상온 핵융합 장치
중에서 상용화에 가장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상온 핵융합 시스템에서는 물을 전기 분해시
킬 때 특수한 전극 시스템을 사용하여 물의 전기 분해에 필요한 전기 에너지보다 더 큰 열
에너지가 출력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패터슨 파워셀은 간략히 말해, 물을 전기 분해시키는
특수한 전기 분해 장치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이때의 전기 에너지(예를 들어 4V짜리 건전
지)보다 거의 1,000배 가량의 열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열 에너지는 난방용이나 또
는 발전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 따라서 상온 핵융합 분야는 가장 유망한 물 연료화 기술의
한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3. 기타 물 연료화 기술
현재 전세계적으로 에너지원 고갈과 환경 오염의 위기감 속에서 청정한 대체 에너지의 개
발 필요성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시급하다. 대체 에너지 기술의 하나로서, 물을
연료화하는 기술은 최근 개발이 속속 보고되고 있어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95년 12월 17일 영국의 채널 4TV에서는 '물로 달린다(It runs on water)'라는 제목으로
물 연료화 기술 개발 상황을 1시간동안 취재 방영하였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실용화에
이른 물연료 시스템으로 다음의 세가지 발명을 소개하고 있다. 1. 패터슨 파워 셀(Patterson
Power Cell) 장치, 2. 스탠리 마이어이 물 연료 자동차(S.Meyer's Water Powered Car), 3.
그리그의 초음파 물 점프(Grigg's hydrosonic pump) 장치. 이 세 가지 발명은 물을 연료로
사용하여, 경제적이면서도 무공해의 에너지원을 얻어내려는 최근의 신기술 현황을 대변하는
것들이며 또한 현재 실용화에 성공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패터슨 파워 셀은 상온 핵융합 장치 시스템의 대표적인 예로서 이미 소개되었지만, 외형
상 분류하면 상온 핵융합 또한 물의 연료화 기술의 한 종류로 대별할 수 있다. 따라서 상온
핵융합 분야는-매체로서 중수가 아니라 경수를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가장
유망한 물 연료화 기술의 한 가지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의 마이어 물 연료 자동차-INE
리스트에서 45번-의 경우에는 브라운 가스 시스템과 유사하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물의 전
기 분해를 이용하는 기술이다. 마이어의 설명에 의하면, 자신이 발명한 특수 전기 분해 장치
에 의해 물로부터 이온화 수소와 산소가 발생되며 이 혼합 기체를 연소시키면 강력한 폭발
과 함께 다시 물이 생성된다. 따라서 기존의 자동차 엔진에 이 장치를 부착시켜 가솔린 대
신에 물을 연료로 자동차를 주행시킬 수 있으며, 실제로 마이어는 기존의 자동차를 약간 개
조하여 물을 연료로 해서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로 주행하는 시범을 여러 차례 선보이고
있다. 여하간 마이어의 장치 시스템도 브라운의 장치와 마찬가지로, 물의 전기 분해에 의해
수소와 산소 가스 형태를 만들고 이것을 연소시키면서 다시 물로 되돌리는 과정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 전체 과정을 통하여 전기 분해에 필요한 입력 전기 에너지보다 훨씬 엄청난 양의
열 에너지를 출력으로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소개된 그릭의 하이드로소닉 펌프 장치는 물을 화학적으로 분해하지않고 단지
매체로만 사용하여 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기술이다. 미국의 그릭(James Griggs)이 개발한
이 장치는 물을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것만으로 짧은 시간안에 물이 데워져서 온수 및 스팀
이 발생하는 장치이다.(미국 특허 5,188,090) 현재 화석 연료를 태워서 물을 데우는 기존 보
일러 시스템이 비하면 탁월한 청정 기술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이 장치가 관심을 끄는
또다른 이유는 물을 고속으로 회전시키기 위한 전기 모터에 입력되는 전기 에너지보다 물이
데워져서 발생하는 열 에너지가 더욱 많다는 사실이다. 온수인 경우에는 120%, 스팀인 경우
에는 140% 정도의 초효율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초효율 발생에 대해서는 더욱 확실한
검증이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새로운 난방 장치 그 자체로서도 전망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릭의 하이드로소닉 펌프와 유사하게 물을 고속으로 회전시킴으로써 스팀을 발생시키는
장치로는 유스마르 서모제너레이터(Yusmar Thermo-generator)가 있다. 몰도바(Moldova)의
유리 포타포브(Yuri S. Potapov)가 발명한 이 장치는 가정용 난방 장치로서 이미 동유럽에
서 시판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에 고속의 회전력을 주어 소용돌이(Vortex) 흐름을 극대화시
키면 물속에 캐비테이션(Cavitation)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열 에너지를 방출하는 원인
이라 여겨지고 있다. 에너지 변환의 효율성에 대해서 발명자 포타포브 자신은 약 300%의
초효율을 주장하고 있으나 현재 다른 실험자들의 검증 결과로는 65%에서 150% 정도의 초
효율까지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초효율 발생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셈이다.
위와 같이 물 그 자체를 이용하는 청정 에너지 기술 이외에도, 기존의 화석 연료를 초활
성화하여 완전 연소시키는 새로운 청정 기술들도 주목할 만하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미국
의 팬톤(Paul Panton)은 특수한 소용돌이(Vortex) 흐름만으로도 연료가 초활성화되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연료 초활성화 장치를 개발하였다. 이 장치를 기존의 자동차에 부착하여
폐식용유나 엔진 오일 등 조악한 가연성 물질만을 연료로 해서 주행이 가능하며 또한 완전
히 무공해 연소되는 공개 시범을 여러 차례 보인 바 있는데, 1997년 5월 미국 덴버에서 개
최된 제4회 뉴에너지 국제심포지엄(International New Energy Symposium)의 공개 시연에
서도 성공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기술들이 앞으로 실용화되려면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도 그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지고 있으며 앞으로의 에너지와
환경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더 많은 관심이 주어wu야 할 것이다. '프리 에너지-제로 포
인트를 향한 경주(Free Energy-The Race to Zero Point)' 비디오 자료에서 나레이터가 강
조하는 말 가운데 일부분을 인용하면서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이 시간에 여러분은 진실로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고 있는 발명가들
과 그들이 펼치고있는 환상적인 발명품들을 보게될 것이다. 니콜라 테슬라에서 최근의 상온
핵융합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프리 에너지의 세계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중략... 지금까지 수십 명의 발명가와 그들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현재 수천 명까지는 아니더
라도 적어도 수백 명 이상의 과학자들과 발명가 그리고 기업가들이 이 놀라운 기술을 연구
하고 개발해서 성공적으로 실용화하기 위하여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기존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호기심에 가득찬 이
열린 세계를 옹호하고 미지의 것을 끌어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앞으로 우리의 생존은
바로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달려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러분이 미래를 결정
하는 기초를 얻기에 충분한 정보를 주고자 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삶과 함께 우리 지
구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로 포인트를 향하여 경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결승점에서
여러분을 다시 뵙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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