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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ft–Katsura Agreement

hanngill 2012. 3. 26. 02:25

Taft–Katsura Agre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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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ft–Katsura Agreement (Japanese: 桂・タフト協定 Katsura-Tafuto Kyōtei) was a set of notes taken during conversations between United States Secretary of War William Howard Taft and Prime Minister of Japan Katsura Tarō on 29 July 1905.


The notes were discovered in 1924; there was never a signed agreement or secret treaty, only a memorandum of a conversation regarding Japanese-American relations.

Some Korean historians have assumed that, in the discussions, the United States recognized Japan's sphere of influence in Korea; in exchange, Japan recognized the United States's sphere of influence in the Philippines.

However, American historians examining official records report no agreement was ever made—the two men discussed current events but came to no new policy or agreement. They both restated the well-known official policies of their own governments. Indeed, Taft was very careful to indicate these were his private opinions and he was not an official representative of the U.S. government (Taft was Secretary of War, not Secretary of State).

 

 Details

The Taft–Katsura Memorandum (also commonly called the Taft–Katsura Agreement) consists of the meeting notes containing portions of a long, confidential conversation between Japanese Prime Minister Katsura and US Secretary of War Taft, held in Tokyo on the morning of 27 July 1905. The memorandum detailing these discussions was dated 29 July 1905.

Three significant issues were discussed during the meeting:

    First were Katsura's views on peace in East Asia, which according to him formed the fundamental principle of Japan's foreign policy and was best accomplished by a good understanding between Japan, the United States, and Great Britain.

    The second issue concerned the Philippines. on this, Taft observed that it was in Japan's best interests to have the Philippines governed by a strong and friendly nation like the United States; Katsura claimed that Japan had no aggressive designs on the Philippines.

    Finally, regarding Korea, Katsura observed that Japanese colonization of Korea was a matter of absolute importance, as he considered Korea to have been direct cause of the just-concluded Russo-Japanese War. Katsura stated that a comprehensive solution of the Korea problem would be the war's logical outcome. Katsura further stated that if left alone, Korea would continue to improvidently enter into agreements and treaties with other powers, which he said created the original problem. Therefore, Katsura stated that Japan must take steps to prevent Korea from again creating conditions which would force Japan into fighting another foreign war.

For his part, Taft concurred that the establishment of a Japanese protectorate over Korea would directly contribute to stability in East Asia. Taft also expressed his belief that President Roosevelt would concur in his views in this regard.
[edit] Korean reaction

Some Korean historians (e.g., Ki-baik Lee, author of A New History of Korea, (Harvard U. Press, 1984) believe that the Taft–Katsura Agreement violated the "Korean–American Treaty of Amity and Commerce" signed at Incheon on May 22, 1882 because the Joseon Government considered that treaty constituted a de facto mutual defense treaty while the Americans did not. The Joseon Dynasty, however, ended in 1897. In recent years, while the Taft–Katsura Agreement is all but an obscure footnote in history, the Agreement is attacked by some left-leaning Korean activists as an example of how the United States cannot be trusted with regards to Korean security and sovereignty issues.

가쓰라-태프트 밀약

가쓰라-태프트 밀약(일본어: 桂・タフト密約 (かつら・たふとみつやく)) 또는 태프트-가쓰라 조약(영어: Taft-Katsura Agreement)은 러일 전쟁 직후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문제를 놓고 1905년 7월 29일 미국과 일본의 당시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주최한 도쿄 회담에서 이루어진 대화의 기록이다. 이 협정의 내용은 미·일 양국이 극비에 붙였기 때문에 1924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기록에는 서명된 조약이나 협정같은 것은 없었고, 일본-미국 관계를 다룬 대화에 대한 각서(memorandom)만이 있었다.

각서에 따르면 일본 제국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 통치를 인정하며, 미국은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을 침략해 조선을 '보호령'으로 삼아 통치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일부 미국 역사가들은 이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에서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지거나 조약이 체결된 것은 아니므로 이는 미국이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에 협력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태프트는 자신의 의견이 미국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만의 의견이라고 말했다고 한다.[1]

미국은 러시아와 일본 간에 포츠머스 강화회담이 열리기 전에 이미 한국의 자치능력을 부정하고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이 비밀협정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배를 상호 양해한 일종의 신사협정이었다. 이 비밀협정에 의해서 미국의 한국문제 개입 가능성을 배제시킨 일본은 같은 해 11월 대한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했으며, 미국은 이를 지지했다.
목차
 

 배경

만주를 둘러싸고 일본과 러시아간의 갈등이 계속되던 1904년 2월, 일본은 대한제국과 한일의정서를 맺는 동시에 아더항 공격으로 러일전쟁이 발발하였으나, 러시아군은 패전을 거듭했고 제정 러시아는 내부의 혁명 세력의 반발로 인해 전쟁에 힘쓸 여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일본은 아더항을 함락시켰고 1905년 5월 대한시설강령을 통해 한반도 내 주요시설을 강점했으며, 대한해협의 동쪽 수로인 쓰시마 해협을 지나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던 러시아 제국의 발틱 함대를 침몰시켜 승기를 잡고 있었다.

러일 전쟁이 끝을 바라보고 있던 즈음,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5년 7월 미국 육군 장관 태프트를 도쿄에 파견하여 일본 수상 가쓰라 다로와 비밀회담을 가졌다. 이 후 러일전쟁을 종결시켰던 포츠머스 조약, 제2차 영·일 동맹을 계기로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을 세계 열강들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각서)은 일본 총리 가쓰라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간에 1905년 7월 27일 있었던 회동에서의 기밀로 분류된 대화 내용을 담고 있다. 각서는 1905년 7월 29일에 만들어졌다.

 내용

이 회동에서 다뤄진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 전반에 관한 논의 - 가쓰라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일본 외교의 근본적인 원칙이며, 이런 동아시아의 평화는 일본, 미국, 영국 간의 협조가 있을 때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에 관한 논의 - 태프트는 미국과 같이 강력하고 일본에 우호적인 나라가 필리핀을 점령하는 것이 일본에 최선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가쓰라는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어떠한 공격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한제국에 관한 논의 - 가쓰라는 러일전쟁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것은 대한제국이었다며, 일본이 대한제국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대한제국은 또 다시 다른 세력과 조약이나 협정을 맺어 러일전쟁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경솔한 모습을 보일 것이므로, 대한제국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러일전쟁의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가쓰라는 대한제국이 일본과 다른 나라 간에 전쟁을 하도록 만드는 상황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이는 일본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태프트는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을 갖는 것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동의했다.

태프트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이에 동의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했다.


 각서의 요지

    필리핀은 미국과 같은 친일(親日)적인 나라가 통치하는 것이 일본에 유리하며,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어떠한 침략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다.
    극동의 전반적 평화의 유지에 있어서는 일본 · 미국 · 영국 삼국정부의 상호 양해[2]를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미국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일전쟁의 논리적 귀결이고, 극동의 평화에 직접적으로 공헌할 것으로 인정한다.

[3]

 결과

이 비밀협정은 20세기초 미국의 동아시아대륙정책의 기본 방향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와 일본 간에 포츠머스 강화회담이 열리기 전에 이미 한국의 자치능력을 부정하고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이 비밀협정(1905.7.29)에 의해서 미국의 한국문제 개입 가능성을 배제시킨 일본은 그 해 8월 제2차 영일동맹(1905.8.12), 9월 포츠머스 조약(1905.9.5)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국제적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같은 해 11월 대한제국에 대해 외교권을 강탈하는 을사조약(1905.11.17)을 강요했으며, 미국은 이를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