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건(天安艦沈沒事件)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772 천안이 침몰한 사건이다.[1] 줄여서 천안함 사태 또는 천안함 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2]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였고, 한국을 포함한 5개국 7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3][4] 천안함의 침몰에서 인양, 조사 발표까지 대한민국 사회와 주변국의 관심을 끌었으며, 언론 등을 통하여 다수의 가설 또는 의혹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 중국의 극비리에 초청된 김정일 중국방문은 5훨 3~7일 임.
[편집] 개요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2010년 4월 24일 17시 현재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 [5] 한편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수색과정에서 3월 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김현진 상사, 김정호 상사도 실신해 치료를 받았다. 4월 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6]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초기에는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등 다양했으나 [7] 조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좁혀지고 있다. 정부와 민군 합동조사단은 어뢰에 의한 피격설을 제기하고 있으며 좌초설도 제기되었다.[8][9][10][11] [12][13]
2010년 5월 20일 조사단은 침몰 원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뢰에 의한 공격이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조사단은 발표문에서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절단되었으며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에서 폭발하였고 무기체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 규모의 어뢰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발생해역의 작전환경을 고려할때 소형잠수함정으로 판단되며 주변국의 잠수함정은 모두 자국의 모기지 또는 그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반해 황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기지에서 운용되던 일부 소형잠수함정과 이를 지원하는 모선이 천안함 공격 2∼3일 전에 황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기지를 이탈하였다가 천안함 공격 2∼3일 후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됐으며 폭발지연 인근에서 수거된 어뢰의 부품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산 무기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로써 북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며,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북선박이 우리 해역, 해상 교통로 이용을 불가하고 남북간 교역을 중단하는 조처를 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덭붙어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시 즉각 자위권 발동, UN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및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책임을 요구 할 것이다. 또한, 군전력 및 한,미 연합 방어태세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14] [15]
[편집] 일지
-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 대한민국 해군 제 2 함대 소속 양양급 1, 200톤 급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해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고, 46명이 실종되었다.
- 2010년 3월 26일 23시 30분 : 해양경찰청은 본청과 인천지청에 갑호비상령, 태안 · 속초지서,동해지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했다.
- 2010년 3월 26일 23시 50분 : 경찰청은 서울 · 인천 · 경기 · 강원지방경찰청에 을호비상령을 발령했다. [16]
- 2010년 3월 27일 : 정운찬 국무총리는 행정안전부를 통해 전 행정기관에 당직근무를 강화하고 모든 공직자가 유선 상으로 대기하도록 비상대비 체계를 발령했다. [17]
- 2010년 3월 29일 : 함미에 공기 주입 시작.
- 2010년 3월 30일 : 생존자 구조 작업을 벌이던 잠수요원 한주호 준위 사망[18]
- 2010년 3월 31일 : 기상 악화로, 구조작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구조팀은 선내진입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19]
- 2010년 4월 2일 22시 30분 : 수색작업을 나서던 저인망어선 금양 98호가 조난신호를 보내고 실종됐다.[20]
- 2010년 4월 3일 18시 10분 : 남기훈 상사의 시신 식당 안에서 발견 [21]
- 2010년 4월 7일 16시경 :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의 시신 발견.[22]
- 2010년 4월 8일 실종자 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의 만남[23]
- 2010년 4월 11일 천안함 사고 원인 규명할 민간, 군인 합동 조사단 구성[24]
- 2010년 4월 12일 끌어올린 함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냄[25]
- 2010년 4월 15일 천안함의 함미가 침몰 20일 만에 인양되었다.
- 2010년 4월 15일 오전 9시부터 함미 인양에 착수[26]
- 2010년 4월 15일 오전 11시 이후 방일민 하사, 서대호 하사, 이상준 하사 등을 포함한 36구의 시신 수습[27]
- 2010년 4월 22일 오후 9시 20분 박보람 하사, 연돌(굴뚝) 안에서 발견.[28]
- 2010년 4월 24일 천안함의 함수가 침몰 29일 만에 인양되었다.
- 2010년 4월 24일 오전 10시 54분 박성균 하사, 함수 자이로실에서 발견.[29]
-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침몰로 사망한 46명에 대한 영결식이 엄수됨.[30]
- 2010년 5월 19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해상에서 수거한 어뢰 파편에 '한자'가 표기된 사실을 근거로 이 어뢰가 중국제 '漁-3G' 음향어뢰로 사실상 결론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발표[31]
-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 군인 합동 조사단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였다.[32]
- 2010년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 천안함 사건 관련 담화문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력 도발시 엄중 대처하고 남북간의 교역 단절
- 2010년 6월 1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러시아 전문가팀이 방한하여 조사에 착수했다.[33]
[편집] 실종자 수색 및 천안함 인양
대한민국 해군은 27일 오전 수상함 10여 척과 해난구조함 평택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력을 사건 지점에 배치했다. 사건 지점에 배치된 100여 명의 해난구조대(SSU) 잠수 요원들은 선체의 구멍을 조사하고 있다. [34] 28일에는 실종자 수색을 위해 피격 위치에 광양함을 추가로 배치했다. [35] 수색 과정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침몰 지점으로부터 서남방 16마일 부근에서 구명복 상의 22개와 안전모 15개를 발견했다. [36]
29일 밤, 아시아 최대의 수송함인 독도함을 침몰한 천안함의 탐색 및 구조 활동을 지휘하기 위해 현장 해역에 긴급 투입했다.[37] 30일,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UDT 대원 한주호 준위가 작업 도중 실신해 후송 치료 중 사망, 순직했다.[38] 31일 함수쪽을 수색한 잠수사의 증언에 의하면, 격실 안에 물이 가득 차 있다고 했다.[39]
4월 2일 수색작업을 돕던 쌍끌이 어선 금양98호가 22시 30분쯤 조난신호를 보낸 뒤 실종됐다.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하여 침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탑승 선원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40]
4월 3일 천안함에서 시신 2구를 발견했는데, 그중 한 명은 남기훈 상사로 확인됐다.[41] 4월 3일 실종자 가족 측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며, 해군은 실종자 가족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42][43]
그리고 4월 7일 함미 절단면에서 김태석 상사가 발견되었다.[44]
[편집] 사망자 및 실종자, 생존자 명단
사망자와 실종자는 모두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아래 목록은 모두 특진 이전의 계급이다.
[편집] 사망자 명단
- 상사 : 김태석(기관 조정실), 남기훈(원사, 상사 식당), 문규석(중사 휴게실)
- 중사 : 박석원(기관부 침실), 신선준(72포 하부 탄약고), 김종헌(후타실), 민평기(승조원 화장실), 강준(기관부 침실), 최정환(승조원 화장실), 정종율(기관부 침실), 안경환(기관부 침실), 김경수(승조원 화장실)
- 중사(진) : 임재엽(72포 하부 탄약고)
- 하사 : 방일민(승조원 식당-기관부 침실 통로), 서대호(승조원 식당-기 관부 침실 통로), 이상준(승조원 식당), 차균석(유도 행정실), 서승원(디젤 기관실), 조진영(기관부 침실), 손수민(승조원 화장실), 문영욱(제독소), 심영빈(승조원 화장실), 조정규(기관 창고), 김동진(후타실), 박보람(배 밖 연돌), 박성균(자이로실)
- 병장 : 이상민(1988년생, 승조원 식당), 강현구(기관부 침실), 이용상(후타실), 이상희(기관부 침실), 이상민(1989년생, 기관부 침실), 이재민(기관부 침실)
- 상병 : 안동엽(기관부 침실), 박정훈(기관부 침실), 김선명(기관부 침실), 김선호(후타실), 정범구(전기 창고)
- 일병 : 조지훈(승조원 화장실), 나현민(기관부 침실)
- 이병 : 장철희(기관부 침실)
[편집] 최초 실종자 명단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보이기' 버튼을 누르세요! |
---|
|
[편집] 생존자 명단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보이기' 버튼을 누르세요! |
---|
|
[편집] 금양98호 침몰 사건
- 이 부분의 본문은 98금양호 침몰 사고입니다.
저인망어선 금양98호는 4월 2일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45]
침몰 원인은 천안함 침몰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며 캄보디아 선적 화물선 '타이요호(1천472t급)'와의 충돌 때문이다. 충돌한 뒤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는 타이요호는 사고 당시 조타실을 비워둔 채 운항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46] 한편, 정부는 실종자수색작업에 참여했던 금양호 98호선원들에 대해 '의사자'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47]
[편집] 실종자(전사자)가족협의회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은 2010년 3월 30일에 전체회의를 통해 46명의 천안함 실종 장병 가족당 1명씩의 대표를 뽑아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약칭 천실협)를 구성하였으며, 이 가운데 15 ~ 20명으로 실무단을 구성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발족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전원의 구조를 위해 마지막 1인까지 최선을 다할 것 △현재까지 진행된 해군과 해경의 초동대처 과정과 구조작업 과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할 것 △가족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마련할 것 등을 해군에 요구했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는 고 최정환 중사의 매형 이정국 씨가 맡아 활동해 왔다. [48]
실종자 가족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장교는 7명(중령1, 소령1, 대위2, 중위3) 전원 구조된 것에 대해 지휘책임 회피문제를 제기했으나 함장 최원일 중령은 선체의 구조상 장교들이 머무는 작전상황실이 선두에 위치했고 선미만 가라앉은 사고였기 때문에 장교들은 모두 무사한 것이며 자신도 초계함이 침몰할 당시 약 5분 동안 함장실에 갇혀 있어서 부하들이 함장실 문을 부수고 나서야 함장실 밖으로 나왔는데 이때는 이미 선미부분이 침몰하고 난 이후였다[49]고 진술했다. 사실 이 순간의 상황은 최원일 중령이 작전상황도를 검토하고 있던 도중 사고가 발생하여 최원일 함장이 함장실에 갇혀 있게 된 것을 부함장 김덕원 소령이 부하들을 데리고 와서 문을 부수고 최원일 중령을 구조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50] 또한 당시 초계함의 모든 전력이 차단되어 정전상태였기 때문에 함장인 최원일 중령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사고상황을 상부에 보고했다.[51]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2010년 4월 21일에 평택 제2함대 사령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족 전체회의를 통해 직계 가족으로 이뤄진 새 가족대표단 '천안함 전사자 협의회'(약칭 천전협)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새로 조직된 천전협은 천안함 희생·실종자 가족당 직계가족 1명씩이 대표로 참여해 모두 46명으로 구성됐으며, 아직 실무단을 따로 뽑지는 않았다. 천전협과 함께 5인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가 구성되어서 군과 장례절차를 협의할 예정이다.[52]
[편집] 영결식
2010년 4월 29일,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이 날 영결식에는 2800여 명이 참석해 천안함 장병들을 애도했다. 해군 제2함대 사령부 인근의 원정초등학교는 영결식이 열린 4월 29일 오전 10시를 기해 전교생이 묵념을 올렸다. 원정초등학교에는 천안함 희생 장병의 일부 자녀들도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결식은 국기경례 → 묵념 → 경위보고 → 화랑무공훈장 추서 → 조사 → 추도사 → 종교 의식 → 주요 인사 헌화 → 조총 발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희생 장병 46명(산화자 6명은 유품)은 국립대전현충원의 사병3묘역에 안장되었다. 또한 천안함 실종자들을 구조하려다 희생된 故한주호 준위도 묘역 인근에 안장되어 있다.
[편집] 침몰 원인
[편집] 합동 조사단의 조사 결과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
2010년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은, 가스터빈실 좌현 하단부에서 감응 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53] 민군 합동조사단은 한국측 10개 전문기관의 전문가 25명과 군 전문가 22명, 국회추천 전문위원 3명,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과학수사·폭발유형분석·선체구조관리·정보분석의 4개 분과로 나누어 조사하였다.
[편집] 근거
- 선체손상 부위를 정밀계측하고 분석해 보았을 때,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된 부분이 있었다.
- 주갑판은 가스터빈실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다.
- 함수, 함미의 선저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꺾인 것도 수중폭발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함안정기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부분의 수압 및 버블흔적, 열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함정의 절단 및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준다.
- 생존자와 백령도 해안 초병의 진술내용을 분석한 결과,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적인 폭발음을 1~2회 청취하였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과,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간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기둥을 관측했다는 진술내용 등은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현상과 일치하였다.
- 사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는 등 충격파 및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한다.
-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 지진파와 공중음파는 동일 폭발원이었으며, 이것은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
- 수차례에 걸친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수심 약 6~9미터,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대략 좌현 3미터의 위치에서 총 폭발량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어뢰를 활용한 공격에 제한을 받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편집] 증거물
침몰해역에서 프로펠러, 추진모터, 조종장치 등이 수거되였고, 이는 어뢰의 추진동력부로서 결정적인 증거물이다.
- 북한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 자료의 설계도에 명시된 크기와 형태가 일치하였으며,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 이라는 한글 표기는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방법과도 일치한다.
- “1번이란 글씨는 제조과정에서 기술자들이 써놓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완성품은 알루미늄 외피로 싸여 있어 이를 사용하는 북한군은 내부에 글씨가 있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54]
- 현장에서 수거된 어뢰 추진 프로펠러와 침몰한 천안함의 금속 부분의 부식 정도가 거의 비슷한 상태인 점도 어뢰 추진체가 함수와 비슷한 기간 동안 바다 속에 잠겨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55]
[편집] 다국적 연합정보분석
다국적 연합정보분석TF의 확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황해의 북한 해군기지에서 운용되던 일부 소형잠수함정과 이를 지원하는 모선이 천안함 공격 2~3일전에 황해 북한 해군기지를 이탈하였다가 천안함 공격 2~3일후에 기지로 복귀한 것이 확인되었다.
- 5월 15일 폭발 지역 인근에서 쌍끌이 어선에 의해 수거된 어뢰의 부품들(각 5개의 순회전 및 역회전 프로펠러 추진모터와 조종장치)은 북한이 해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만든 북한산 무기소개책자에 제시되어 있는 CHT-02D 어뢰의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 이 어뢰의 후부 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1번”이라고 잉크로 쓰여진 한글 표기는 대한민국이 확보하고 있는 또 다른 북한산 어뢰의 표기방법(4호)과도 일치한다.
- 러시아산 어뢰나 중화인민공화국산 어뢰는 각기 그들 나라의 언어로 표기한다. 북한산 CHT-02D 어뢰는 음향항적 및 음향 수동추적방식을 사용하며 직경이 21인치이고 무게가 1.7톤으로 폭발장약이 250Kg에 달하는 중어뢰이다.
[편집] 결론
침몰해역에서 수거된 결정적 증거물과 선체의 변형형태,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사체 검안결과, 지진파 및 공중음파 분석결과, 수중폭발의 시뮬레이션 결과, 백령도 근해 조류분석결과, 수집한 어뢰 부품들의 분석결과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되었다.
-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정도이다.
-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한 고성능폭약 250kg규모의 어뢰로 확인되었다.
[편집] 의문점
- 잠수정의 크기 : 조사단은 130t급 연어급 잠수정이 1.7t급 중어뢰로 공격하였다고 밝혔으나, 기술적으로 연어급 잠수정에 중어뢰를 탑재할 수 없다는 주장이 많으며,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무거운 중어뢰를 탑재하고도 해류가 강한 침몰 해역까지 다가와 단 번에 초계함을 두 동강내고도 전혀 탐지되지 않은 점이 의문으로 제기된다.[56][57] 하지만 몇몇 군 전문가들은 연어급 잠수정도 중어뢰를 충분히 탑재, 발사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58]
- 1번 글씨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자신들의 소행임이 들통나도록 '1번'이라고 써놓은 점은 가장 대표적인 의문점으로 꼽힌다.[59] 또한 소금물에 2개월 가까이 담겨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잉크가 그렇게 온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노동 1호'처럼 '번' 대신 '호'를 자주 써왔으며, 실제로 합동조사단이 7년 전 수거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에도 '4호'라고 써있었기 때문에[60] '1번'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표기방식이 맞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56][61]이러한 의혹들을 근거로 네티즌들은 아이폰에 1번을 써놓고 북한산이라고 하는 등 패러디를 양산해냈다.[62]그러나 탈북자의 증언에는 "(북한의)군수공장에서 무기를 식별하기 위해 페인트로 ‘몇 번’ 이렇게 표기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으며[63]국방부는 잉크의 성분이 물에 쉽게 분해되지 않는 유성 잉크나 유성 페인트로 쓰여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64]
- 또한 250kg의 화약이 폭발할 시 약 섭씨 300도에서 1000도에 가까운 열을 발생시키는데, 끓는 점이 150도정도인 잉크가 타버리거나 증발하지 않은 것도 의문점으로 꼽힌다.[65][66]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의 물리학과 교수는 "폭발 직후 어뢰의 추진 후부 온도는 쉽게 350°C 혹은 1000°C 이상까지도 올라가게 된다"며 "이러한 온도에서 유기 마커펜의 잉크는 타버리게 된다"고 주장했다.[67]또한 수중의 폭발로 인하여 열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1번 글씨는 타버리지 않았다는 조사위원회의 반박에 대하여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대 물리학 교수는 어뢰의 추진부에 칠해져 있던, 유성 잉크 보다 비등점이 높은 페인트가 타버린 점을 들며 조사위원회의 반박이 신빙성이 없음을 주장하였다.[68][69]그러나 국방부는 부식흔적으로 알려진 부분은 부식이 아니라 폭발당시 흡착된 알루미늄 성분이며[70]탄두로부터 글자가 적힌 추진체까지는 5미터라는 거리가 있고 특히 글씨는 바닷물이 차 있었던 부분이라 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1번이 적힌 부분은 강철 재질에 부식 방지용 페인트를 칠해 녹이 슬지 않았다고 밝혔다.[71]
- 물기둥 : 국방부는 최초 물기둥이 없었다고 했던 발표를 뒤집고, 100m짜리 물기둥에서 물방울정도만 튀었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과[56][72] 해병대 초병이 물기둥을 봤다는 진술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백색 섬광'이었다는 진술로 밝혀져 물기둥이 정말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엇다. 초병의 진술을 밝히지 않다가 두 달이나 지나서 발표 한 것에도 의문이 제기된다.[73] 천안함 생존자들은 물기둥을 본 사람이 없다.[74][75]
- 잠수함의 이동경로 : 합동조사단은 "공해의 수중을 통해 외곽에서 우회해 잠입한 뒤 야간에 사고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천안함을 타격하고 신속히 현장을 이탈해서 잠입했던 경로로 되돌아갔다"고 밝혔으나, 북한이 사전에 도발지점을 정찰했다는 보고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사고 당일 대청도 남쪽 해상에 고속정과 속초함, 그리고 천안함보다 탐지 능력이 뛰어난 P3C와 링스헬기, 그리고 주한미군이 보유한 U-2 정찰기, 미군 정찰위성[76]등이 있었고, 천안함 사고 해역에서 약 120km떨어진 곳에서 한국과 미국의 대잠 훈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77] 모든 군사 탐지 시스템에 포착되지 않으면서도 단 한 방의 어뢰로 천안함을 두동강 내 흔적도 없이 퇴각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72][59] 일각에서는 북한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스텔스' 잠수함을 이용했다는 설도 제기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스텔스 잠수함은 건조된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78]이러한 근거들 때문에 북한의 타격이 정말 맞다면 북한 잠수정의 기술력은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79]
- 온전한 시신들의 상태 :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의 좌현 약 3m 위치에서 총폭발량 200~300kg의 폭발하였다고 밝혔지만 사체검안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 등이 전혀 없었다.[80]
- 어뢰파편 수거:군이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두 달간이나 수색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뢰 파편을 찾지 못했지만, 쌍끌이 어선에 수거된 점도 의문으로 제기된다.[81][82]합조단은 군당군과 계약한 민간 어선에 폭 25M의 특수그물망을 투입하여 바닥을 흝은 끝에 닷새만에 어뢰조각을 찾아냈다.[83][84]
- 기술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술력으로는 버블제트 어뢰를 제작할 수 없으며, 독일제 어뢰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잠수정과 호환이 되지 않을 가능성, 호환이 된다 하더라도 독일제 어뢰는 장보고함 209급처럼 1200톤급에만 장착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정말 버블제트 어뢰를 사용한 타격이 맞는지 의문이 제기된다.[85]그러나 해군관계자는 버블제트는 감응식 센서가 장착된 어뢰로 덩어리 폭약이 300kg 정도만 넘으면 발생한다.고 밝히고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감응식 센서도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고 밝혀 버블제트 어뢰가 최신형이라서 북한이 보유하지 못하고 있으리라는 관측을 일축했다.[86]
- 선체 안의 상태 : 합동조사단의 발표대로 버블제트 어뢰로 인해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3~6m 거리에서 선체가 두 동강이 날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면 선체 곳곳에 충격의 흔적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흔적이 거의 없고, 심지어 탄약고에 있던 탄약들마저 그대로 정렬되어 있어 어뢰의 폭발을 받은 것이 맞는지 의문이 제기된다.[87]
[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의 주장
합동 조사단의 공식 발표에 대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강렬히 반발하며 이번 사건은 자신들과 무관한 사건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조사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88] 또한 한국정부의 이러한 발표에 대해 전쟁국면을 간주해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89] 5월 28일 북한은 외신들과 각국 대사관 관계자들을 초대해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천안함이 자신들과 무관함을 주장했다. [90][91][92]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 주민들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천안함 사건은 날조극”이라는 주장을 인터넷 사이트에 퍼뜨렸다.[93]
- 1. 북한은 130t 연어급 잠수정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 2. 북한 어뢰 수출관련 무기소개 책자를 배포하지 않았다.
- 3. 북한은 '호'라는 표현을 쓰지 '번'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으며 번호를 매길때 매직으로 쓰지 않고 기계로 새긴다.
- 4. 남측은 가스터빈실을 공개해야 하며 어뢰공격에 의한 것이었다면 터빈이 없어졌을 것이다.
- 5. 합조단에 참여한 국가가 미국과 '북 관련설'에 동조한 나라들로만 구성되었다. 외부와 차단된 체 제한된 조사만 했고 반대자를 추방했다.
[편집] 대한민국 국방부의 재반박
대한민국 국방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장에 대해 설명자료를 내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제시한 주장을 분석해보면 한국의 일부 정치권과 인터넷 괴담을 인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94]이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장은 신뢰성이 없으며 반박은 되레 합조단의 조사결과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95]
- 1. 2006년 9월에 촬영된 구글어스 사진에는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 3척이 나타나며 "북한의 130t급 잠수정은 지난 2003년 중동국가(이란)에 수출한 사례를 확인했고 북한에 있는 130t급 잠수정이 식별된 영상정보 사진(정찰위성 사진)도 갖고 있다"[96][97]
- 2. 북한의 무역회사에서 작성해 제3국에 제공한 어뢰설계도가 포함된 무기 소개 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천안함을 공격한 신형 'CHT-02D' 어뢰 외에 2개의 신형 어뢰가 설계도면과 함께 상세히 등재돼 있다.[98][99]
- 3. 탈북자의 증언과 북한 '조선국어대사전' 등을 확인한 결과 북한에서 '호'와 '번'이 모두 쓰이고 있으며 2003년 입수한 북한 시험용 어뢰에도 4호라는 수기로 기록된 표기만 있었을 뿐 북한이 주장했듯이 기계로 새긴 것은 없다.[100][101]
- 4. 국방부는 가스터빈실 인양사진을 공개하면서 가스터진실 발전기, 조수기, 유수분리기, 가스터빈 덮개가 파손되었고 가스터빈도 파손되었다고 설명했다. 연소실과 압축기 일부만 남고 공기 흡입관과 파워터빈 및 폐기관은 유실됐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102]
- 5. "합동조사단에 참가한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이며 이중 스웨덴은 중립국"이며 "조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유지를 위해 외부의 압력을 배제했고, 모든 조사결과는 조사에 참여한 모든 조사관들의 의견을 종합해 만장일치로 확인했다"고 일축했다.[103]
[편집] 러시아 조사팀의 조사
2010년 6월 1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러시아 조사팀이 방한하였다. 이들은 천안함 침몰 증거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해군 기지를 방문해 선박 잔해와, 어뢰 잔편 등을 조사하였다. 이들은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뢰 잔편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이유, 1번 글씨가 남아있는 이유 등을 질문했다. 그들은 당시 서해안에 미군 핵잠수함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찰함인 천안함을 목표로 삼은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초계함은 수중음향 탐지시스템으로 주변을 모두 살필 수 있다. 천안함이 만약 어뢰에 의해 침몰됐다면 한국해군은 바로 ‘밥통’(飯桶:바보)"라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104]
[편집] 공식발표 이전의 가설들
조사단의 공식 조사결과 발표 이전에는 침몰 원인을 두고 다양한 설이 제기되었다. 침몰 원인에는 크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격설과 사고설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격설은 어뢰설, 매설기뢰설, 대함화기공격설을 말하고, 사고설에는 유실기뢰사고설과 좌초설, 선내폭발설, 자체결함에 의한 피로파괴설 등으로 나뉜다. 기뢰에 의한 사고의 경우, 한국전쟁이나 훈련중 "유실된 기뢰"라는 사고설과 북한이 고의적으로 "매설한 기뢰"라고 보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격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뉜다. 한편 위에서 나열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가설 중 외부충격에 의한 가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격설 모두와 사고설 중 유실기뢰사고설, 좌초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내부충격에 의한 것은 선내폭발설이 유일하며, 피로파괴설은 외부나 내부에 의한 충격, 그 어느 것도 아닌 경우이다. 일부에서는 좌초와 피로파괴가 순차적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105]
2010년 4월 15일 천안함 함미를 예인하여 조사하게 됨으로써 침몰 원인이 조금씩 밝혀졌다. 비록 잠정적이긴 하지만 민군 합동조사단 참가자중 일부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부충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4월 25일 합동조사단은 외부충격에 의한 폭발로 비접촉식 수중 폭발로 인한 침몰이라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격설, 그 중에서도 수중 버블제트 어뢰에 의한 침몰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106][107] [108] 김영삼도 북한 공격설을 주장했다.[109]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뢰에 의한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주장에 대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공격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공격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잠수정에 의한 어뢰공격과 인간어뢰에 의한 공격까지 포함하고 있다. 2010년 4월 2일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의 사고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내부폭발과 기뢰, 좌초, 피로파괴 등은 발생했을 가능성이 낮으며 폭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뢰 가능성이 기뢰 가능성보다 높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110] 이 어뢰가 함미를 직접 타격하는 직격어뢰인지 수중폭발로 인한 거품으로 공격하는 버블제트 어뢰인지는 더 조사를 해야 알 수 있다고 한다.[111] 4월 25일 합동조사단은 절단면과 내외부 육안검사를 볼 때 선체 절단면이 위를 향해 있는 점, 그을음과 열상 흔적이 없는 점을 들어 비접촉 폭발(버블제트)의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112]이어 4월 30일 사고현장에서 파편등 을 수거에 검사한 결과 RDX라는 화약성분이 검출되었고 재질은 어뢰의 외피를 구성하는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합금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113]
[편집] 근거
- 2010년 4월 15일 인양된 천암함의 파괴된 단면을 분석한 결과 선체 바닥 왼쪽의 철판이 안으로 휘어져 있어 외부폭발, 그중에서 어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민군 합동 조사단은 밝혔다. 각종 의혹들에 대해서는 유리창이 깨지지 않은 것은 함수는 방탄유리로 쉽게 깨지지 않고, 화약냄새가 없던 것은 수중에서 폭발하여 함정 내부까지 전달되지 않을 수 있고, 떼죽음 당한 물고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공기주머니가 터져 가라앉거나 조류에 떠밀려 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침몰 당시 백령도 지진 관측소에서는 TNT 180kg에 해당하는 지진파가 감지되었고 이는 중국 중어뢰(TNT 200kg)의 폭발력과 유사하며, 생존자도 강한 충격이 있었다고 증언했다.[114]
- 김태영 국방장관은 천안함이 침몰되었을 당시 북한잠수정 2척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국회에서 증언하였다. [115]
-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함경북도 모 기업소에서 열린 토요강연회에서 당세포 비서가 "최근 영웅적인 조선인민군이 원수들에게 통쾌한 보복을 안겨 우리 자위적 군사력에 대해 남조선이 국가적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한 것을 전했다.[116]
- 천안함 연돌에서 어뢰 탄약으로 추정되는 화약성분이 발견되었고 침몰 지점에서 수거된 알루미늄 조각에서도 동일성분이 발견되었다. 어뢰등에 사용되는 이 알루미늄 파편은 정밀 조사한 결과 한국 무기에는 없는 재질로 확인됐다.[117][118][119]
- 민군합동조사단은 현장에서 발견된 어뢰파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각인(刻印) 스타일의 일련번호가 찍힌 온전한 형태의 스크루 파편이 발견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행이라는 결정적 물증을 확보, 이것을 조사에 참여한 미국 영국, 호주 전문가들에게 확인시켜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120][121]
[편집] 반론
- 인양된 함수의 유리창이 깨지지도 않고 흠집도 거의 없어 어뢰 또는 기뢰에 의한 폭발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122]
- 일반적인 어뢰 공격시 발견되는 물고기 떼죽음, 화약냄새, 열기가 감지되지 않았다. [123]
- 현장에서 RDX, [124]HMX,[125]TNT [126]등 다양한 화약 성분이 발견되었지만, 그 용량이 0.000000000146그램에 불과한 미량이어서 직접적인 원인규명은 되지 않는다.[127][128]
[편집] 비슷한 주장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뢰공격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반)잠수정 등을 이용해 백령도 근해로 침투하여 사전에 기뢰를 매설해 두었는데, 천안함이 이를 모르고 지나가다 기뢰가 작동해서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이다.
- 대함화기공격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기뢰나 어뢰가 아닌 대함화기로 직접 공격했다는 주장이다. 4월 23일 류우익 주중 한국대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직접 공격해서 천안함이 침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129]. 황장엽 역시 천안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격해서 침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130]. 신원을 알 수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위장교가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이 천안함을 침몰시키도록 지시했으며 김정은은 천안함이 침몰하자 작전 성공에 대해 크게 기뻐했다고 증언했다는 보도가 있다. [131].
[편집] 기뢰사고설
대한민국 영토인 백령도 근해에 기존에 매설되었으나 미처 제거하지 않은 기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주장이다. 기뢰사고설로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 동해와 서해에 설치한 기뢰가 다 제거되지 않은 채로 바다 밑에 남아 있다가 강한 물살에 남쪽으로 흘러내려와 천안함에 부딪혀 폭발했다는 설과, 1970대 한국 해군이 전시를 대비해 설치한 것을 천안함이 실수로 건드렸다는 설이 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북한군 기뢰에 관하여 "비록 많은 기뢰를 제거했다고 하지만 물속에 있는 기뢰를 100% 수거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기뢰가 바다로 흘러내려 왔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힌 반면, 서해안에 설치된 한국군 기뢰는 현재 다 제거되었다며 한국군이 설치한 기뢰에 의한 사고였을 가능성을 일축하였다. 또한 염분이 강한 바닷물에서 30년이 지난 기뢰가 폭발할 가능성도 적으며 사고수역은 많은 어선들이 다니던 곳인데 갑자기 떠올라 폭발할 가능성도 낮다.[132] [133]
[편집] 좌초설
사고 근해에 있는 암초 또는 바다 바닥에 천암함이 부딪혀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인양된 함미에서 확인되는 긁힌 자국[134]과 해군 제2함대 사령부의 브리핑 자료, 해경에 구조요청 시 신고 내용, 백령도 주민들의 증언 등이다.
[편집] 근거
- 함미의 우측은 깨끗한 데 반해 함미의 좌측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사고 다음날인 3월 27일에 기자들에게 브리핑할 때 사용한 작전상황도에 등장하는 "좌초"라는 문구와 사고 시점의 수심을 4m로 적어 둔 것이 노출되었다.[135][136]
- 해경이 해군으로부터 "천안함, 밤 9시 30분쯤 좌초되었다"는 구조 요청을 받았다고 보도되었다. [137]
- 백령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고 지점 인근에 있는 암초에 천안함이 좌초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사고 지점에서 800m 떨어진 곳에 수중 암초가 있는데, 주민들에 의하면 이 암초가 "밀물 때는 잠겨 있어, 알아서 피해 다닌다"고 한다.
- 천안함 기관병으로 근무했던 박모씨는 연합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썰물 때 천안함의 스크루가 암초에 걸려 배의 함미가 위로 뛰어 오르면서 받은 충격에 그 충격음이 배 안에서 폭발음처럼 들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138]
- 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스크류가 회전 방향으로 찌그러진 점, 함미 인양시에 선체에서 물이 샌 점 등을 들어 좌초설을 주장했다. [139]
[편집] 반론
- 4월 25일 함수를 예인하여 조사한 결과 배의 밑이 온전한 것이 확인되었다. [140]
- 백령도 지진관측소에서 확인된 지진파를 설명할 수 없다.[141]
- 백령도에서 조업을 하고 있는 어민에 따르면 "사고 해역에는 암초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고 해역은 어민들이 평소 다니는 항로인데 암초는 발견되지 않았다" 고 증언했다.[142]
- 현장에서 어뢰에 사용하는 알루미늄 파편과 미량의 RDX, [143]HMX,[144]TNT [145]등의 화약성분이 발견되었다.
[편집] 선내폭발설
선내폭발설은 천안함 선내에 있는 함포탄과 어뢰가 노후화로 인하여 폭발했을 것이라고 보는 설과, 함 내부에서 불만이 있던 자가 일부러 폭발 사고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탄약고에 있는 무기들이 분리 보관되어 왔다는 점, 침몰 당시 화약냄새가 전혀 없었다는 점, 폭발로 인한 부유물이 주변에 없었다는 점, 그리고 평상시 사고를 칠 만한 사병들 또한 딱히 없었다는 점 때문에 신빙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146] [147] 또한 천안함이 인양된 이후 확인한 결과 내부의 폭발물은 안전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편집] 피로파괴설
‘피로파괴’란 미세한 균열이 장시간 누적된 충격과 압력에 의해 갑작스런 파괴로 이어지는 현상인데[148], 이번 천안함 침몰이 피로파괴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피로파괴가 침몰 원인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여러 증언과 어뢰, 기뢰 등의 폭발 가능성이나 좌초 가능성이 낮을 경우 가장 높은 개연성이 있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사고 직후 일부 실종자 가족들이 선내에 물이 샌다는 말을 실종자들에게 들었다는[149] 증언이 나옴에 따라, 수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작전 수행에 나섰기 때문에 배가 침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한편, 4월 23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연구원인 박선원 박사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여 "한국이 공개하지 않은 자료는 미국이 다 갖고 있다"며, "우리는 선체의 결함 이외에 다른 침몰의 요인을 알지 못한다"며 선내결함설에 무게를 실었다.[150] 그러나 천안함의 절단면은 깔끔하게 절단되어 있지 않고 찢겨 있는 상태여서 피로파괴설은 설득력이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으나[151][152] 절단면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여서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한편,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은 실종자 가족들이 제기한 선체결함 의혹에 대해서 “수리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물이 샌 적도 없다”고 말했으며, 생존 장병들과의 기자 회견에서도 "물이 샌다고 말하는 건 온도차로 습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두고 오해하는 것이다."라며 부인했다.[153] 최초 폭발 당시 백령도 지진관측소에서 관측한 지진파가 피로파괴에 의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출처 필요]
[편집] 좌초 후 피로 파괴설
좌초된 후 침수 등에 의해 피로파괴가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피로파괴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 중 하나인 절단면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아메리칸 스타호의 사례에서처럼 좌초 후 피로파괴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절단면이 매끄럽지 않고 찢긴 모양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154][155] 그러나 천안함이 예인된 이후 조사한 결과 배의 밑이 온전한 것이 확인돼 이 가설도 신빙성이 낮아졌다.[156]
[편집] 논란
이명박 대통령이 4월 1일 한나라당 의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있는 사실 그대로 국민에게 밝히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157] 관련된 의혹이 있다.
[편집] 대한민국 국방부의 진술 번복
대한민국 국방부는 사고 원인이나, 사고 시각 등에서 진술을 수차례 번복하였다.
- 어뢰설에 대한 답변 : 국방부 장관은 어뢰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어뢰는 사전에 소리가 탐지되는데 탐지된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한 4월 1일에는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서해기지에서 잠수정 2척이 보이지 않은데 대해 "그것이 꽤 먼 곳이기 때문에 저희 지역과 연관되는 움직임과는 연관성이 약하다"고 밝혔으나 합동조사단은 그 두척중에 한 척이 천안함을 공격했며 이와 정 반대되는 발표를 하였다.[158]
- 기뢰설에 대한 답변 : "기뢰는 다 제거되었다"고 주장하던 과거와는 달리 4월 12일에는 "아군 기뢰 전량 제거된 것 아니다."라며 진술을 또 번복하였다.[159]
- 보도 수단 : 국방부는 계속 최초 보고는 "휴대전화"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폭발 전에는 전혀 징후를 몰랐고, 폭발 후에는 전기가 나가서 휴대전화를 사용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에서 군함에 휴대무전기도 없느냐고 질타하자, 그 이후 언론보도에서는, 최초 보고는 휴대전화로 했는데, 나중에는 휴대무전기로 보고했다고 하면서 진술을 번복했다.
- 어뢰모델 : 2010년 5월 19일 "합동 조사단은 지난주 백령도 해상에서 수거한 어뢰 파편에 '한자'가 표기된 사실을 근거로 이 어뢰가 중국제 '魚-3G' 음향어뢰로 사실상 결론낸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일제히 언론이 보도하였다.[160]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루만인 5월 20일 CHT-02D 어뢰로 변경되었다.[161]
- 물기둥 진술 : 물기둥에 대해서도 4월 8일에는 생존장병들의 증언을 토대로 "물기둥을 본 사람이 없다"고 발표하였으나,[162][163] 5월 20일에는 물기둥이 있었다고 번복하였다.[164]
- 버블제트형 어뢰 주장 : 사고 직후 폭발의 흔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버블제트형 어뢰라고 언론에 흘렸으며, 전문가들에 의해 버블제트형 어뢰는 미국 밖에 없다고 지적하자 근접신관을 장착한 직주 어뢰의 버블제트형 폭발이라고 말을 바꿨다.[165]
- 명단 통지 거짓발표 : 국방부는 사고 당시 "실종자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실종 사실을 알렸다"고 주장하였으나, 실제로는 언론에 4시간 먼저 명단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166]
[편집] 정보 은폐 의혹
- 교신 일지 :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천안함에 승선해 있던 한 장병이 가족과 휴대전화 통화를 하다 오후 9시16분쯤 갑자기 "지금은 긴급 상황이라 통화가 어렵다. 나중에 통화하자."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는 점을 지적했다.[167] 천안함과 제2함대 사령부 간의 교신 기록 중에 사고 직전인 9시 15분부터 22분까지 7분 분량의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서 의혹을 더하고 있다. [168]
- TOD 영상 은폐 : 군 당국은 그동안 사고 발생 장면을 찍은 화면(TOD 영상)은 없다고 밝혀왔으나, 이 동영상이 존재하며, 민군 합동조사단이 봤다는 증언이 보도되었다.[169] 또한 천안함에 근무하다 전역한 장병들은 "TOD영상은 항상 녹화하고 있는게 원칙"이라고 증언하였으며, 40분짜리 영상을 1분 20초로 편집하여 공개했다가 나머지 영상을 다시 공개하여 은폐 의혹이 불거진 점, 그 이후에 또 "40분 영상 이외의 영상은 없다"고 했으나 다른 영상이 더 있던걸로 또 드러났던 점, 침몰 전후의 장면이 모두 있지만 사고시각인 9시 22분의 영상만 없다는 점들 때문에 TOD 영상 은폐 의혹이 꾸준히 일고있다.[170][171]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합동참모본부 산하 정보분석처에 소속된 A대령과, 정보작전처에서 B대령을 비롯한 관계자들도 동영상을 봤다"고 주장했다.[172]
- 생존 장병들의 외부인 접촉 차단 : 생존 장병들은 전원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한 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외부인과의 접촉을 일시적으로 불허하기도 했다.
- 천안함 절단면 비공개 : 국방부는 유언비어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선체 인양시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을 그물로 은폐하고, 언론의 300야드 이내 접근을 차단한 채 작업을 진행했다. [173]
- 보안 서약서 요구 : 또한 인양 작업에 참여한 민간업체 관계자들에게 보안서약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한 백령도 주민들에 대해 기무사와 경찰에서 추궁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174]
- 가스터빈실 인양 : 가스터빈실이 침몰 해역에 그대로 있었는데도 찾지 못하고 뒤늦게 인양된 점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해난 구조 및 인양 전문가인 이종훈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가스터빈실은 함수, 함미가 부러진 자리에서 초기서부터 거기에 있었다. 군도 거기에 있었음을 처음부터 알고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왜 이제서야 인양됐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밝혔다.[175]
- 조사단의 구성원 문제 : 2010년 5월 3일 민간조사단으로 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신상철은 "침몰사고의 원인이 무엇이든 지휘통제 부실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조사를 전담하고 나서는 것은 문제가 많다", "국방부 발표를 보면 북한 소행으로 단정지어 놓은 상태에서 보복이니 응징이니 하면서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이런 조사를 믿을 수가 있나.", "비밀유지 각서를 썼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다만 어뢰나 기뢰에 의한 공격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며 정부의 은폐, 조작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176]
조사단의 구성원 문제나 은폐 의혹을 제기했던 신상철(서프라이즈 대표)에 대한 비판도[누가?] 존재한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외부 모 인사에게서 ‘신 씨가 가장 적합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신상철을 추천한 경위를 밝혔다.[177] 신상철은 조사단 회의에 1회에 한해 2시간밖에 안 있는 등 조사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채 군사기밀 공개를 요청하고[178] 진보성향 언론들을 통해 "미군 함선과 충돌했다" 혹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주호 준위 분향소를 방문한 것이 미군이 연루된 증거다" 등의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179] 이에 국방부는 "전문성이 없는 인사가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기에 적절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공식결론에 반하는 내용을 조사위원 자격을 내세워 주장하는 등 대외적으로 불신 여론을 조장하여 공신력을 실추시키고 있다"고 밝히고 민주당에 교체를 요청했고,[180]신상철을 추천한 것에 대한 민주당의 책임론도 제기되었다.[181] 민주당은 조사단 활동이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교체는 어렵지만 문제가 되는 활동에 대해서 앞으로 공명정대하게 할 수 있도록 감독하겠다고 밝혔다.[182]
[편집] 대한민국 국방부의 책임
대한민국 국방부에 의한 민군 합동 조사단의 발표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 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에 대한 책임 논란이 일고있다. 대한민국의 군형법 22조에는 "지휘관이 그 할 바를 다하지 아니하고 적에게 강복하거나 부대, 진영, 요새, 함선 또는 항공기를 적에게 방임한 때는 사형에 처한다"라는 조항과, "지휘관 또는 이에 준하는 장교로서 그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적과의 교전이 예측되는 경우에 전투준비를 태만히 한 자는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35조 1항의 조항을 들어 언론등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대해 군이 적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183][184]
[편집] 각계의 반응
조사단의 발표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잠수함의 이동 경로에 대해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185][186]
독일, 미국, 스웨덴, 영국, 일본, 캐나다, 태국, 호주 등 각국(가나다순)은 조사단의 발표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거나 인정하였다. 러시아와 중국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187]
[편집] 대한민국 국회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의 여야 정당들은 정 반대의 해석과 책임론을 주장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북한의 책임론을 주장하며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을 가했으며, 야당인 자유선진당과 미래희망연대도 이에 동조했다. 또 다른 야당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은 정부의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이후에는 해전에서 이렇다할 대응은 커녕 적의 움직임조차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타격당했다는 점을 들어 정부의 구멍뚫린 국방정책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정치권의 대립되는 책임론은 2010년 6월 2일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188] 또한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고 조사 발표날짜를 원래 5월 23일에 하기로 하였으나 이날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이기 때문에 너무 노골적이라 미국측의 반대로 앞당겼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189]
[편집] 각계 인사
- 도올 김용옥은 "천안함 조사 발표를 하는데 자기 부하들, 불쌍한 국민들을 다 죽여놓은 패잔병들이 개선장군처럼 앉아서 당당하게 발표하는 그 자세에 너무 구역질이 났다", "일본의 사무라이 같으면 그 자리에서 할복자살해야 할 감"이라고 말했다.[190]
- 강원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의 무장간첩 출신인 이광수는 "천안함이 날조되었다는 북한 주장은 엉터리" 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어뢰를 손수 정비한다. 정비하기 위해 분해하면서 (조립 때 혼선을 막을 목적으로) 1, 2, 3번 등 번호를 적는다."고 밝히고 "의혹을 제기하는 일부 인사들 언급을 보면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북한에서 14년간 잠수함에서 어뢰를 다루는 조타수와 수뢰수병사로 근무했었다.[191]
-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평가되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퇴임 고별강의에서 "(천안함 침몰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건으로 만든 것이기에 '사건화'다"라며 천안함 사건에 의문을 제기한 뒤, "천안함 사건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것이 한국사회"라고 말했다.[192]
-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은 "미국이 일본에서 철수 논란을 빚고 있는 오키나와 기지 주둔을 유지하기 위해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을 통해 한반도에 긴장감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천안함을 격침"고 주장했다.[193]
- 세계 자유지도자 70명은 대한민국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한국정부의 대북 대응조치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세계 및 아태 자유민주연맹 2010 연차총회에 참석한 참가국(70개국) 대표단은 북한이 최소한의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할 때 까지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모든 대북지원 및 교류를 전면 중단할 것을 총회 참석 대표들의 정부에 요청하기로 했다”며 “대북 제재 결의안이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될 수 있도록 자국 정부의 협조와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결의했다. [194]
- 이상우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은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사건은 북측이 비정규전이나 특수전을 특징으로 하는 제4세대 전쟁을 준비해왔음을 입증한 사례라고 밝히고 소규모 특수전부대로 대형 수상함을 격침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북한이 이런 비대칭전과 정규전을 배합하는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위협”이라고 강조했다.[195]
[편집] 여론 조사
조사초기인 4월 11일 리서치플러스의 여론결과 정부의 수사가“신뢰가 안 간다”는 응답이 59.9%에 이르렀다. “신뢰한다”는 응답은 34.9%에 그쳤다.[196]
공식조사결과가 발표된 5월 20일과 21일 코리아리서치센터(KRC)의 여론조사결과 응답자의 72.0%가 ‘합조단의 발표대로 북한 소행이 분명하다’고 답했다. ‘북한 소행이라는 합조단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은 21.3%였다. [197] 이명박 "대통령의 대응 및 국가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60.5%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데 반해 "정부 여당이 국가안보 사안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한다" 는 주장에는 26.5%만이 공감했고 "국가안보사안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야당의 주장에 동의 안한다"는 응답이 58.3% 였다. [198]
5월 30일 있었던 여론조사에서 64%의 응답자가 '정부의 조사를 신뢰한다'고 밝혔으나, '여당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응답도 67.2%에 달했다. 군 책임자 문책에 대해서도 73.9%가 찬성했다.[199]
[편집] 각국 정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국제사회는 많은 관심을 보였고 조사결과 발표 후 각국으로부터 국제사회의 대북규탄 메시지가 잇따르고 있다. 2010년 5월 27일 현재까지 국제기구 4곳 및 21개국이 대북 규탄성명을 발표했다. [200] [201]
반기문 UN사무총장 : "한국 정부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절제와 인내심을 가지고 침몰 원인의 규명을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을 통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진행해 온 것을 평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반 총장은 특히 "보고서에 적시된 사실 관계는 매우 엄중하다"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계속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202]
미국 : 백악관은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한 성명에서 "이번 공격 행위는 북한이 국제법을 무시한 용납할 수 없는 또 다른 사례"라고 비난하고 북한의 행위는 "고립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203] 또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5월 26일 천안함 사태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이 강하면서도 인내를 가지고 철저하게 진실을 규명한 것과 그후 대응책을 마련한 방식을 치하한다"며 "한국 정부가 취하는 조치들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204]
독일 : 독일 외무장관은 "민군합동조사단이 확인한 북한에 의한 천안함 침몰을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이것은 유효한 국제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 행위"라고 지적하고 한국 국민과 한국 정부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을 약속한다"고 밝혔다.[205]
유럽연합 : 유럽연합(EU) 외교 총책인 캐서린 애슈턴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아프리카 순방 중 성명을 내고 “나는 이처럼 악질적이고 지극히 무책임한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른 적절한 후속 조처를 취하는데 한국 정부 및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해 유엔 안보리 회부 등 국제사회의 대응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출처 필요]
프랑스 : 프랑스 외교부는 대변인 발표를 통해 북한의 어뢰 공격에 대한 한국 조사 결과 발표를 지지하고 북한의 이 같은 도발은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프랑스는 북한 측이 폭력 행위를 포기하고 국제적 협상 테이블로 복귀해 대화의 장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206]
스웨덴 : 천안함 사건 조사에 참여한 스웨덴은 20일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을 내린 조사결과 보고서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면서 북한에 대한 외교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빌트 장관은 "북한 어뢰가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우리는 이같은 행위를 단호하게 규탄하고, 유엔의 어떤 조처를 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207]
호주 : 스티븐 스미스 호주 외무장관은 "천안함은 의심의 여지없이 북한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한 것"이라며 "국제법과 지난 1953년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국제사회가 북한을 강력하게 비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도 천안함 사태를 적대적, 정당성이 없는 행위라고 비난 했다. [208]
인도 : 인도 외무부는 이날 발표한 '한국의 천안함 침몰' 제하 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는 천안함 침몰사건 원긴 규명을 위한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내용을 우리와 공유했다"며 "우리는 이번 사건을 규탄하며 비극적 인명손실과 관련 한국 정부에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인도는 대한민국이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성숙함과 자제력을 갖고 이번 사건을 처리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209]
뉴질랜드 : 머레이 매컬리 뉴질랜드 외무장관은 21일 해외 전문가들이 포함된 조사단이 전날 천안함 침몰 원인으로 규정한 북한의 어뢰공격을 "한반도와 지역 안보에 대한 심각하고, 고의적이며, 정당한 이유없는 도전"이라고 규정한 뒤 "북한의 지도자들은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얼마나 엄중하게 보는지에 대해 어떠한 착각도 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뉴질랜드는 한반도 안정을 꾀하기 위한 적절한 대응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유관국들을 지지할 것"이라며 "한국이 장병 46명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적 사건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점을 치하한다"고 덧붙였다. [210]
러시아 :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5일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드러난 것과 관련,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면서 북한에 제대로 된 신호를 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측과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211]
캐나다 :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는 천안함 침몰과 관련,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지지를 표명하며 북한에게 강력한 국제적 조치가 취해지도록 한국 및 여타 파트너, 동맹국들과 계속 논의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212]
일본 : 하토야마 총리는 5월 22일 "북한이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며 "국제적으로 협력해 확실히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한국을 확실히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 다시 북한이 이런 일을 일으키지 않도록 국제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213]
그 외 국가 : 스페인, 콜롬비아, 태국, 일본, 동티모르 가 각각 비슷한 내용의 북한 규탄성명을 발표했다.[출처 필요]
[편집] 해외 언론
- 공식조사발표 전
- 4월 말, BBC는 "북한의 소행이라면 그런 행동이 얼마나 도발적인 건지를 알면서도 북한이 해군 방어를 강화하지도 않은 채 공격을 감행했을 리 없다", "만약 3차 세계대전을 시작할 의도가 없었다면 (북한은) 그렇게 못한다"며 "이것이 바로 (북한의 어뢰가 아닌) 기뢰라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보도했다.[214]
- 4월 26일, LA타임스는 국제위기관리그룹(ICG)의 북한 전문가 대니얼 핑크스톤과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워싱턴의 관리들이 자신에게 천안함이 어뢰 공격을 받았다면 매우 경악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관리들은 기뢰 가능성에 더 신뢰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214]
- 4월 28일,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중국의 경제적 영향권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중국의 전략적 의도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214]
- 뉴스위크의 카터 연구원은 "한국의 근시안적 보수파들은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쌀을 보내는데 필요한 적은 액수의 돈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출처 필요]
- 4월 22일, 파이낸셜타임스는 "남한은 통일을 갈망하면서도 경제·사회적인 비용을 감내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215]
- 4월 30일, 아사히신문은 "국제합동조사단이 지금까지 현장주변에서 입수한 파편 약 330점은 모두 천안함 함체였다."며 "북한 개입설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보도했다.[216]
- 5월 1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국민 사이에서는 예상외로 북한에 대한 공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지난 수십 년간 북한의 테러공격과 핵위기 조장 등을 경험하면서 북한의 행동에 둔감해졌고 "한국 국민의 엇갈린 감정은 동포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통일을 궁극적인 목표라고 배워온 이 같은 민족주의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만약 천안함이 일본의 실수로 인해 침몰했다고 가정해 보라. 한국 국민의 분노는 엄청났을 것"이라고 말했다.[217]
- 공식조사발표 후
- 5월 2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설을 통해 “실패로 끝난 화폐 개혁과 식량위기, 김정일 국방위원장 후계 문제 등을 비롯한 내부 문제로 북한은 파괴 행위와 암살에 의존하는 70년대식 전술로 돌아섰다”면서 “북한의 공격을 묵과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해외 자금원을 봉쇄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안일 수 있다”고 권고했다.
- 5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이날 ‘천안함호 침몰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조사 과정에 해외 전문가들을 참여시키는 등 한국 정부가 매우 신중히 결론을 내렸다”고 긍정 평가한 뒤 “미국과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은 실패로 귀결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북한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보여줬다”며 “유화정책은 북한의 행동을 변하게 하기는 커녕 악화시켰다”며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 5월 20일, 산케이 신문은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가 사실일 경우 북한의 잠수정 운용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보도하였다. “사고 현장은 수심이 40~45m. 로 얕은 바다에서 잠수함 작전 행동은 곤란하다며“과거에도 좌초하거나 어망에 걸리는 등 북한의 조함(操艦)기술도 낮다고 여겨졌다”라고 말하고 “이번 작전에 특화된, 기량 향상을 위한 맹훈련을 반복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숙달된 모습’”이라며 놀라움을 표현하며 “북한이 이번 공격과 같은 능력을 갖춰왔던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뿐만이 아니라, 주한미군이나 해상자위대에게도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218]
- 5월 21일,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을 통해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전문가가 참가한 합동조사단이 물증까지 제시한 만큼 이번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었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는 객관적으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북한이 전날 발표를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지난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이나 일본인 납치 등의 전례를 감안하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 5월 26일, 중국 인민일보의 국제문제전문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사설에서 북한은 한국의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증거제시와 대응조치에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으나 이에는 사실상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 없다고 지적하고 북한의 반응은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성의있는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한국이 제시한 천안함 침몰증거와 대응조치가 미국,일본,서방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고 더구나 국제 언론들의 보도와 한국 외교의 노력으로 세계 여론이 한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북한의 대응은 수동적이라는 점을 북한은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0]
- 5월 29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천안함 사태 이후 대응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권위와 결의를 보여줬다"면서 "김정일이 경고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또 비핵화와 경제지원을 철저히 연계하는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원칙적이지만 완강하다"라고 평가했다. [221]
- 의혹 제기
- 5월 24일, 영국의 기자출신 저널리스트 스콧 크레이튼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수거된 어뢰잔해와 합동조사단이 제공한 어뢰 설계도면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으나[222] 합동조사단은 이를 일축했다[223].
- 5월 26일, 독일 도이체벨레 및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는 독일 총리실 직속 외교정책연구원 수석 연구원 마르쿠스 티텐 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부의 천안함 조사 발표내용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마르쿠스 티텐 박사는 민군 합동 조사위원회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주축이 되는 위원회이며 한국의 선거를 앞두고 특정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주장을 하였다.[224][225]
- 5월 31일, 미국의 탐사저널리스트 웨인 매드슨은 글로벌 리서치에 기고한 글에서 천안함 사건은 미국 특수부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였다.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이용해 일본의 오키나와 해군기지 존속을 도모하고자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226][227]
- 5월 31일, 러시아 모스크바 일간지 프라우다(PRAVDA)는 "러시아, 한국 갈등에 휘말리다"라는 기사에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한국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인 콘스탄틴 아스몰로프의 말을 빌려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는 러시아 옵저버(참관단)들이 초기 조사과정부터 참여했다면 더욱 객관적이었을 것"이라며, "사망자 명단에는 병사들만이 있고, 장교는 없다. 더욱이 환자들은 어뢰 공격시 통상 나타나는 타박상이나 골절상을 입은 이들이 없다"는 점을 들며 "전체적인 스토리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여러 팩트가 있다"고 보도했다.[228] 러시아의 또 다른 일간지인 리아노보스티도 극동담당 대통령 특사를 지냈던 콘슨탄틴 풀리코브스키와 인터뷰를 통해 "나는 개인적으로 북한이 그 배를 침몰시켰다는 데 대해 심각한 의심을 갖고 있다"며 "왜,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나는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229]
[편집] 영향
- 2010년 3월 26일 : 미국 뉴욕시장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가격은 온스당 1015.40 달러로 전일 대비 11.30달러(1%) 올랐다. 관련 전문가는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침몰 사건'과 같은 불확실한 정치, 경제적 상황에는 금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언급했다. [230][231]
- 2010년 3월 26일 : 미국 뉴욕 증시인 다우존스ㆍS&P500ㆍ나스닥 지수는 프랑스와 독일이 그리스 지원안에 대해 합의했다는 소식을 호재로 받아들이며 순조롭게 출발하다가 초계함 침몰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장 막판에는 소폭 상승했다. 하락세로 돌아서게 된 이유로는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른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었다. [232][233]
- 2010년 3월 31일 : 미국 국방부는 "천안참 침몰 원인 아직 불명확하며, 실종자 수색 작업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234]
- 2010년 3월 28일~2010년 4월 18일 :대한민국의 일부 예능 방송이 결방했다. 뮤직뱅크를 비롯한 가요 프로그램과, 개그콘서트, 무한도전 등 코미디 프로그램이 2~3주 결방했다. 해당 방송 시간대는 상대적으로 오락성이 낮은 예능 재방송 프로그램과 특선영화, 드라마 재방송 등으로 대체 편성되었다.[235]
- 2010년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천안함 사태로 인한 북풍,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안보정책이 가장 중요한 변수중 하나로 꼽혔다.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패배를 하였는데 그 원인중 하나로 천안함의 북풍몰이로 인한 역풍이라는 주장도 있다.[237]
[편집] 사후 조치
- 사고 직후 미국은 원인 조사와 구조 작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다. 천안함 침몰 직후인 4월 1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위로 전화를 걸고 사고 조사와 구조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238]
- 미군은 사건 발생 즉시 해군 ‘살보함’등 4척을 현지에 파견하여 한미합동 구조 활동을 전개했다.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은 4월 7일 오전 황의돈 부사령관과 함께 사건 현장인 백령도 해상 독도함을 찾아 한미 구조장병들을 격려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와 존 맥도널드 작전참모부장, 구마타오 주한 미 해군사령관도 동행했다. 샤프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한미는 동맹에 입각해 긴밀한 협조를 통해 승조원 구조에 전력을 다해 왔으며, 앞으로 인양작전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239]
-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한 미국 전문조사단 15명이 4월 16일 민.군 합동조사단에 합류했다. 조사단 인원들은 20척의 퇴역함정에 대한 폭발 및 무기실험을 한 경험이 있고 해군 안전조사와 구조물 파괴공학, 무기사고 조사 및 피해, 통제, 인양 분야의 전문가이며 이들 중 3명은 지난 2000년 10월12일 예멘 아덴항에서 미 해군 구축함 `콜'이 자살테러범에 의해 폭발했을 당시 사고조사에 참여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240]
- 미국은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날 경우 안보리에 회부하겠다는 대한민국의 입장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241]
[편집] 국제 연합 회부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이 사건을 회부하는 것 등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242] 미국은 대한민국, 중국, 일본과 공동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43] 이에 대해 유엔사 군정위는 "북한군의 어뢰 공격을 받고 천안함이 침몰한 결론에 대해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할 예정 이라고 밝혔다.[244]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PU28sXrq5xI
'時事 · 나의 時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U.N. to Condemn 'Attack' On Ship (0) | 2010.07.09 |
---|---|
먼저 사람됨됨이를 보고 그 사람 말을 판단하라. (0) | 2010.06.14 |
눈물로 호소합니다! 강물 쉬는 곳 죽이지 마세요 (0) | 2010.06.09 |
[스크랩] 천암함 관련 " 1번" 진위 (0) | 2010.06.08 |
[스크랩] Alleged NKorean submarine attack came near US-South Korea anti-sub maneuvers (0) | 2010.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