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圓佛敎]
1916년 4월 소태산(小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이 창시한 불교 계통의 신종교.
1891. 3. 27 전남 영광~1943. 6. 1.
원불교의 창시자.
호는 소태산(少太山). 농부인 아버지 박성삼(朴成三)과 어머니 유정천(劉定天)의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의 이름은 박진섭(鎭燮), 청년시절에는 처화(處化)라 불렀다. 원불교를 창립한 이후에는 제자들이 소태산 대종사(少太山大宗師)라 불렀다.
7세 때부터 우주와 인생의 근본이치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해 20년 가까운 구도생활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산신(山神)을 만나기 위한 기도를 했고 다시 도사(道士)를 만나려 고행을 계속했다. 산신이나 도사를 모두 만날 수 없게 되자 '내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입정삼매(入定三昧)에 빠지기도 했다. 26세 되던 해인 1916년 4월 28일 이른 새벽에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드디어 우주와 인생의 근본진리를 확연히 깨치게 되었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응보의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뚜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소태산은 스승의 지도 없이 스스로 깨친 진리의 경지를 이렇게 표현했으며, 또한 진리를 깨친 기쁨을 "맑은 바람 솔솔 불어 밝은 달이 두둥실 떠오르니 우주의 삼라만상이 저절로 밝게 드러나도다"(淸風月上時 萬像自然明)라고 표현했다.
소태산의 불교혁신의 중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태산의 불교혁신의 중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일원상(一圓相)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사은(四恩)의 신앙과 삼학(三學)의 수행으로써 모든 종교의 진리를 융통·활용한다.
② 모든 경전과 교서(敎書)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쉬운 말과 글로 평이·간명하게 편찬한다.
③ 교당은 교도가 많은 곳에 설치하고 남녀 교역자를 두루 양성해 원활한 교화를 도모한다.
④ 모든 신자는 정당한 직업을 가져 자력생활을 하고 사회발전에 공헌하며, 영혼구제에만 치우치지 않고 정신생활과 육신생활을 조화있게 한다.
⑤ 모든 의식과 예법은 진리와 사실에 근거해 간편을 위주로 하고, 시대에 맞고 대중이 다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
⑥ 법의 계통을 재가·출가의 차별이 없게 하고 법위의 높고 낮음에만 따르게 한다.
⑦ 출가 교역자에 대해 결혼을 법으로 제한하지 않고 각자의 뜻으로 결정하게 한다.
⑧ 교단의 운영에 재가와 출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참여한다.
소태산은 원불교의 창시자인 동시에 사회개혁가·농촌운동가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 예법개혁을 통해 당시의 번잡한 유교예법을 과감하게 혁신했으며, 허례폐지·미신타파·근검저축·공동출역 등을 통해 농민계몽과 생활개선에 앞장섰다.
늘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재능으로는 남다른 손재주 하나 없고 아는 것으로는 보통 학식도 충분하지 못하거늘, 나같이 재능 없고 학식 없는 사람을 그대들은 무엇을 보아 믿고 따르는가"라고 했다. 1941년에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전법게송(傳法偈頌)을 발표했다.
1943년 6월 1일 53세를 일기로 중앙총부에서 열반했다. 제자들은 소태산을 후천개벽의 주세불(主世佛)로 존숭하고 있으며, 흔히 그를 '평범한 성자'라 부른다.
원불교에서는 소태산이 열반한 6월 1일을 육일대재라 하여 기념한다.
1971년 소태산이 깨달음을 얻은 전라남도 영광의 영산성지 노루목에 그의 대각을 기리는 '만고일월'(萬古日月)이라 새긴 기념비가 세워졌다.
전라남도 영광 태생의 소태산은 소년시절부터 구도생활을 시작하여 26세 때인 1916년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깨닫고 원불교를 창립하게 되었다.
소태산은 깨달음을 얻은 지 몇 달 후 40 여 명의 신자를 얻었고, 이들 중에서 이재철·이순순·김기천·오창건·박세철·박동국·유건·김광선·송규 등 9명을 표준제자로 선택했다.
소태산은 처음 이들 9명의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운동· 영산방언공사· 혈인기도(血印祈禱)를 통해서 교단 창립의 기틀을 닦았다.
이러한 3가지 교단 창립의 기초작업은 1916~19년에 이루어졌는데, 특히 혈인기도는 3·1운동과 거의 같은 시기이다.
1919년 늦가을 소태산은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봉래정사로 들어가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제정·구상했다.
1924년에 이르러 전라북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지금의 익산시 신룡동)에 총부를 건설하고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교명(敎名)으로 교화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명칭은 1948년 '원불교'라는 정식 교명을 제정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소태산은 처음 깨달음을 얻은 후 옛 성현들이 깨우친 경지를 알기 위해 불교·유교·도교·그리스도교 등의 여러 경전을 열람했다. 그중에서 〈금강경 金剛經〉을 보고 "석가모니불은 성현 중의 성현이요, 발심(發心)으로부터 구도(求道)와 대각(大覺)의 경로가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따라서 나의 연원(淵源)을 석가모니불로 정하고 장차 불법(佛法)을 주체로 하여 새 종교를 창립하리라"고 결심했다. 소태산은 불법을 주체로 하되 종교개혁·인간개혁·사회개혁을 동시에 수행하려 했다.
그래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를 내걸고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
무시선 무처선(無時禪無處禪),
동정일여 영육쌍전(動靜一如靈肉雙全),
이사병행(理事竝行) 등의 정신으로 생활종교운동을 전개했다.
1924년부터 약 20년간에 걸쳐 소태산은 익산총부에 주재하면서 교리와 제도의 제정, 각종 교서의 편찬, 제자들의 훈련, 교세의 확장에 주력했다.
원불교의 기본교리는 우주와 인생의 근본질서를 일원상(一圓相)이라 하고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4은이란 일원상의 진리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한 은(恩)에 입각한 4가지 존재분류이다. 이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은혜라고 파악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세계관·인생관으로서 천지은·부모은·동포은·법률은을 말한다.
4요란 4은의 정신에 입각하여 평등의 윤리로 세상을 구제하고 인류사회를 향상·발전시켜가는 4가지 행동강령이다. 곧 자력양성·지자본위(智者本位)·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를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4은4요의 신앙과 3학8조의 수행으로 일원상의 진리와 합일되는 인격자가 될 수 있고, 일원상의 진리가 지배하는 낙원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 원불교 교리의 핵심이다.
원불교의 근본교리를 종합하여 4대강령(四大綱領)이라고도 하는데, 4대강령이 실현되는 사회가 곧 원불교가 목적하는 최고의 이상사회·정의사회·낙원세계이다. 4대강령은 곧 정각정행(正覺正行)·지은보은(知恩報恩)·불법활용(佛法活用)·무아봉공(無我奉公)에서 결론을 얻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원불교는 국민계몽과 농촌생활향상에 주력했다. 총부 건설 이후 출가수행자들은 총부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교단의 창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봉공했다. 교단 초창기부터 산업부를 창설하여 과수원 경영, 야채·약초·묘목 재배, 양계·양돈·양토(養兎) 등의 축산업을 활발히 전개했다. 일제강점기에 총부는 모범마을이 되었고 전국 각처에서 산업부 시찰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43년 6월 1일에 소태산이 53세로 열반하고
수제자 정산(鼎山) 송규(宋奎:1900~62)가 후계 종법사가 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원불교는 일제의 탄압에서 벗어나 차츰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소태산이 교단의 방향을 교화·교육·자선의 3대사업으로 설정한 데 근거하여 교화기관으로 각처에 교당을 설립하고 교육기관으로 원광대학교·원광고등학교·원광여자고등학교 등을 차례로 설립했으며 자선기관으로 병원·고아원·양로원·복지관·자선원 등을 설립했다. 해방직후에는 전재동포구호사업·한글보급운동·고아원경영 등의 건국사업을 전개했다. 1953년에는 제1대 성업봉찬대회를 열어 소태산의 성업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켜갈 것을 다짐했다.
1962년 정산이 열반하자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가 후계 종법사가 되었다. 송규는 열반을 앞두고 동원도리(同源島理)·동기연계(同氣連契)·동척사업(同拓事業)의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최후 법문으로 발표하여 세계 모든 인류의 대동화합을 제창했다.
1971년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일원세계'라는 주제를 내걸고 개교 반백 년 기념대회를, 1991년 4월 소태산 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대회를 열어 도덕상실의 현대사회에서 정신을 개벽하여 도덕성을 회복하고 일원세계(낙원세계) 건설과 일원문화(원불교문화) 창달을 선언했다.
〈정전〉은 원불교의 기본교리를 밝힌 경전이며,
〈불조요경〉은 원불교 사상과 관련이 깊은 불경을 요약한 경전이다.
원불교의 최고 통치자를 종법사라 하고, 최고 결의기관으로 수위단회, 중앙집행기관으로 교정원, 중앙감찰기관으로 감찰원을 두어 교단을 통치하고 있다.
교도들을 훈련·교화시키기 위해 각처에 교당을 두고 있으며, 교당에 주재하는 교화자를 교무(敎務)라 한다.
재가교도와 출가교도를 두고 있는데 출가교도를 전무출신(專務出身)이라 하여 교단에 헌신봉공하고 있다. 재가 출신과 남녀 권리와 의무에 아무런 차별이 없다.
중앙총부는 전체교단을 통할하고 있고 교당을 효율적으로 관할하기 위해 각 교구(敎區)를 두고 있다.
신정절·대각개교절·석존성탄절·법인절 등 4축과 육일대재·명절대재 등 2재가 있어 이를 교단의 기념일로 하고 있다.
1992년 7월 현재 출가 교역자 1,400여 명, 훈련기관 11개, 문화기관 8개, 자선기관 42개, 산업기관 9개 등이 있다.
또한 1960년대부터 종교연합운동을 제창하고 있으며 미국·일본·캐나다·독일·오스트레일리아·카자흐스탄·프랑스 등지에도 20여 개의 교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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