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는 인생/Social Science

hanngill 2008. 10. 16. 19:04

 

1.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
    멋을 내다.  멋이 나다.  멋을 부리다.
 smartness; stylishness; foppery; dandyism;d udism

2.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
   한복의 우아한 곡선의 멋.   멋에 치여(흥에 이기지 못해) 중 서방질한다
   taste; charm; elegance;f lavor; humour; fun;  satire; wit; pun

 영어에 비슷한 말들이 있으나 우리말의 멋을 잘 표현하는 말은 없다.

멋이란

인간의 행동양식, 예술 ·기예 사물의 존재양식에서

한국인의 독특한 감각으로 여과() ·표출되는

미적 관념(), 또는 그 미적 형태.

멋을 나타낼 수 있는 외국어는 없다.

중국의 풍류()나 서양의 humour, mood 는 한국의 멋에 가까운 것일 수가 있으나  멋의 한 속성()으로서 멋의 한 단면이 될지언정 멋이라는 개념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영어에서의 ‘humour’ ‘fun’ ‘satire’ ‘wit’ ‘pun’  ‘dandyism’ ‘foppery’ ‘taste’도 멋의 한 속성으로서 부분적으로 유사개념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멋을 뜻하는 일반개념으로는 될 수 없다.
우리 말인 멋은 간단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멋은 고아()하지도 않고 속()되지도 아니하다.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요, 또 그렇다고 고정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멋의 美的인 내용은, 형태미 ·표현미 ·정신미 의 3각도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형태미:

멋이 나타낸 상태에 대한 관점이다.

첫째가 비정제성()이다. 이는 미술 ·음악 ·문학 등에서의 멋의 형태는 그 존재양태가 산술적이고 일률 ·정규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비정제성은 음악이나 시가()의 형식에서 나타난다.

한국음악은 아악 ·민속악 할 것 없이 무반음() ·5음계가 기초로 되어 있거니와, 이 무반음 ·5음계 진행을 깨는 것이 반음계 사용이다. 그것이 불건전하고 감상적이며 육감적이라 하여 기피되기도 했지만, 멋있는 율격()으로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정조(調)를 일탈한 가야금산조에도 멋은 흐른다.

이러한 비정제성은 시가에서 정형()의 틀을 부순다. 시조문학에서의 탈정형()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멋은 정상 ·정규를 일단 벗어나는 데서 비롯된다 해도 그 비정제성에 중심이 없고 통일이 없을 때 파괴된다. 그러므로 멋의 비정제성은 막연한 산만성이 아니라 중심과 통일을 가진다.

 

둘째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는 변화에의 의욕이다. 이 멋의 다양성은 ‘흥청거림’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그 흥청거림 때문에 통일을 깨뜨리고 균제()를 벗어난다는 뜻이다.

 

셋째가 율동성()이다. 멋이란 본디 생동태()의 미로서, 만들어진 다음에 보는 것이라기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보는 미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움직이는 가운데 잠깐 그치는, 즉 단절()의 멋도 포함된다. 빠르던 가락이 문득 그치면서 잠깐 쉴 때, 그 침묵의 순간 또한 멋을 주기 때문이다.

넷째로 곡선성()이다. 곡선미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한국의 춤이다. 회화나 목공예에서도 반달형의 곡선이 나타나고, 소리꾼들의 ‘엮고’ ‘휘이고’ ‘흥청거림’ 또한 곡선성의 표현이다.

표현미:

표현미로서의 멋은 멋이 나타나게 하는 구성력이나 표현방법의 문제이다. 멋의 표현적 특질로서 기초가 되는 것은 초규격성()이다. 격()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비규격성이다.
그 같은 멋 표현의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원숙성()이다. 멋을 체득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숙한 기법이 있어야 한다. 이미 있는 기법을 터득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멋을 지닐 수 있게 되는 법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좋은 본보기이다. 멋 표현의

 

둘째는 왜형성(), 즉 데포르마시옹이다. 정규형식에서 벗어나 약간의 왜곡이 형성될 때 생기는 멋이다. 멋 표현의

 

셋째는 완롱성()이다. 그것은 원숙에서 오는 잉여성()과 왜형에서 오는 해학성이 그 바탕이 된다. 다시 말하면, 여유와 유희의 기분에서 우러나는 표현원리이다. 구성진 소리들이 그렇고, 어깨와 손끝의 미묘한 율동을 보이는 춤이 그러하다. 문학에 나타나는 익살이나 재담 ·해학들 또한 그것이다.

정신미:

정신미의

첫째 특질은 무실용성()이다. 순수한 미적 충동이란 본디 실용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실용성이나 공리성()과는 관계없는 미적 충동이 생활과 결부되면서 생활예술이 발생했다는 것뿐이다. 그릇에 무늬를 새기지 않았다 해서 그릇으로서의 효용을 잃는 것도 아니며, 칼자루에 조각을 하지 않았다 하여 칼의 효용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르익은 기술행위와 정신적 열락()을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효용으로서의 실용성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초탈미()이다.

 

둘째로 들 수 있는 것이 화동성()이다. 멋에는 대립과 갈등이 없다. 조화와 질서와 흥취의 세계이다. 이 화동성은 고고성()과 통속성의 양면을 동시에 지닌다. 속중()과 더불어 즐길 수도 있되 그 오욕됨에는 물들지 않고 높고 깊은 경지에 노닐면서도 고절()에 빠져들지는 않는다.

 

멋 정신의 셋째는 중절성()이다. 멋은 비실용성이므로 사치성이 있다고 하겠으나, 직접적인 사치의 상태는 아니다. 사치만으로 될 때 멋은 깨어진다. 높은 교양과 고매한 사상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수련과 절제가 따라야 한다. 멋의 감정은 방종과 탐닉이 아니고 지적인 절제에 의하여 영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균형과 조화를 잡는 중절()에 정신적인 멋이 있다.

 

멋 정신의 넷째는 낙천성이다. 멋의 참다운 마음자리는 낙천성이다. 이 낙천성은 조화와 절도(), 성실과 유락()을 바탕으로 하여 유유자적하는 경지를 말한다. 멋의 유락은 외부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내부에서 찾는 것이며, 변화의 상태가 아닌 한적한 상태에서 찾는 낙도()의 경지이다. 그것은 선비정신이 찾던 마음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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