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는 인생/Philosophy·LOGICS

[성리학] 기고봉, 기노사

hanngill 2007. 8. 13.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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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승 [奇大升, 1527~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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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발췌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3권)을 편찬하는 등 주자학에 정진하였다. 32세에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었다.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편지로 유명하다.

 

본관  행주

  고봉 ·존재, 시호 문헌

별칭  자 명언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전남 나주

주요저서  《고봉집》 《주자문록》《논사록》

 

 

본문

 

본관 행주(幸州). 자 명언(明彦). 호 고봉(高峰) ·존재(存齋). 시호 문헌(文憲). 전남 나주(羅州) 출생. 1549년(명종 4)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5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고 사관(史官)이 되었다.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주서(注書)를 거쳐 사정(司正)으로 있을 때, 신진사류(新進士類)의 영수(領袖)로 지목되어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삭직(削職)되었다가, 1567년(명종 22)에 복직되어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

 

이 해 선조가 즉위하자 집의(執義)가 되고, 이어 전한(典翰)이 되어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에 대한 추증(追贈)을 건의하였다. 이듬해 우부승지로서 시독관(侍讀官)을 겸직하다가, 1570년(선조 3) 대사성(大司成) 때 영의정 이준경(李浚慶)과의 불화로 해직당했다. 후에 대사성에 복직되었는데 이듬해 부제학이 되어 사퇴하고, 1572년 다시 대사간을 지내다가 병으로 그만두고 귀향하는 도중 고부(古阜)에서 객사하였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특출하여 문학에 이름을 떨쳤을 뿐 아니라, 독학으로 고금에 통달하여 31세 때 《주자대전(朱子大全)》을 발췌하여 《주자문록(朱子文錄)》(3권)을 편찬할 만큼 주자학에 정진하였다. 32세에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항(李恒) ·김인후(金麟厚) 등 호남의 석유(碩儒)들을 찾아가 토론하는 동안 선학(先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학설을 제시한 바가 많았다. 특히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편지는 유명한데, 이것은 유학사상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사칠이기론(四七理氣論)의 변론 후 이황은 그의 학식을 존중하여 대등한 입장에서 대하였는데, 이 논변의 왕복서한은 《양 선생 사칠이기왕복설(兩先生四七理氣往復說)》 2권에 남아 있다.

 

또 서예에도 능했으며 사후 1590년(선조 23)에는 생전에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주문(奏文)을 쓴 공으로 광국공신 3등(光國功臣三等)에 추록(追錄)되었고 덕원군(德原君)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峰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주요저서에는 《고봉집(高峰集)》 《주자문록(朱子文錄)》 《논사록(論思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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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정진 [奇正鎭, 1798~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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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 후기의 학자. 송대(宋代)의 철학자 주돈이 ·장재(張載)·정이·주희(朱熹) 등의 성리학을 독자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대성하였다. 서경덕(徐敬德)·이황(李滉)·이이(李珥)·이진상(李震相)·임성주(任聖周)와 함께 성리학의 6대가(六大家)로 일컬어진다.

 

본관  행주

  노사

별칭  자 대중, 시호 문간

활동분야  문학, 성리학

출생지  전북 순창

주요저서  《납량사의》 《노사문집》

 

본문

본관 행주(幸州). 자 대중(大中). 호 노사(蘆沙). 시호 문간(文簡). 전북 순창(淳昌)에서 태어나 장성(長城)에서 자랐다. 8,9세에 이미 경사(經史)에 통했고, 유학(儒學)에 전심하여 진사(進士)에 합격한 후, 여러 번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다가 후에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이르렀다. 송대(宋代)의 철학자 주돈이(周敦) ·장재(張載)·정이(程)·주희(朱熹) 등의 성리학을 독자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대성하였다.

 

40세 이후 그에게 경학을 공부하려는 선비들이 모여들었고 그의 사상은 손자인 우만(宇萬)과 많은 제자들에게 전수되었다. 조선 유학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서경덕(徐敬德)·이황(李滉)·이이(李珥)·이진상(李震相)·임성주(任聖周)와 함께 성리학(性理學)의 6대가(六大家)로 일컬어진다. 저서에 《납량사의(納凉私議)》 《노사문집(蘆沙文集)》 등이 있다.

 

인물 > 철학 > 동양철학 > 한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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