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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로돔 시아누크 [Samdech Norodom Sihanouk]캄보디아 왕

hanngill 2013. 3. 27. 15:08


노로돔 시아누크 [Samdech Norodom Sihanouk]


태어난 때 1922. 10. 31
태어난 곳 캄보디아 프놈펜
소속 국가 캄보디아
직업
본명은 Samdech Preah Norodom Sihanouk. 1922. 10. 31 캄보디아 프놈펜~.

캄보디아의 왕·총리·국가원수·대통령.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중립노선을 취했다. 아버지는 노로돔 수라마리트 공이었고 어머니는 1904~27년 캄보디아 왕을 지낸 시소와트의 딸 코사마크 네아리라트 공주였다. 1941년 시소와트의 아들인 모니봉 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는데 그때 나이 18세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젊은 혈기에 일본인에게 고무되어 프랑스로부터 캄보디아의 독립을 선언하려 했으나, 프랑스군이 다시 들이닥치자 1954년 프랑스가 인도차이나에서 물러나기까지 기다렸다. 1955년 1월 사회주의인민공동체를 결성하고 2월 국민투표를 통해 그 계획을 인정받았으며, 3월 2일 아버지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사퇴했다가 새 왕의 총리·외무장관·국제연합(UN) 상임대표를 지냈다. 5년 뒤인 1960년 4월 3일 아버지가 죽자 그 뒤를 이었는데 스스로를 왕이라는 칭호 대신 국가원수라고 칭했다.

그는 중립주의 외교정책을 내세웠다. 북베트남이 크메르 공산당(크메르루주)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 베트남 공산주의자가 캄보디아 동부지역을 기지로 하여 은밀히 작전하는 것을 묵인했다. 미국의 원조를 배제하고, 좌·우 양파의 급진주의자를 통제하고자 노력하여 캄보디아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가 온건정치를 편 15년 동안 다른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격변을 겪은 데 반해 캄보디아는 다소 불안하기는 해도 비교적 평화로웠고 번영을 누렸다. 

1970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 놀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쫓아내자 캄보디아도 베트남 전쟁에 더이상 중립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뒤 그는 베이징[北京]에 살면서 크메르루주 지하운동의 대변자로 활동했다.

1975년 크메르루주가 캄푸치아를 장악한 뒤 고국에 돌아왔으나, 크메르루주 정부는 그를 가택에 연금했다. 

1979년 1월 베트남군에게 함락당한 크메르루주 정부는 UN에 나가 크메르루주를 옹호하라고 그를 석방했다. 그는 베트남군의 침공을 고발한 뒤 크메르루주와도 관계를 끊었다. 

1982년 그는 베트남을 등에 업고 있는 중앙정부에 반대하는 3대 세력인 크메르루주, 반공산당 크메르 인민민족해방전선, 시아누크 중립주의 캄푸치아 민족해방운동으로 불안정하게 구성된 연립망명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계속해서 저항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1991년 과도정부인 캄보디아 최고민족평의회 의장에 선출되었다.

1993년 5월 UN이 주관하는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이 선거 결과에 따라 구성된 의회는 그 해 9월 군주제 복귀를 의결하고 시아누크를 다시 왕위에 앉혔다. 그의 아들 노로돔 라나리드는 제1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1997년 7월 제2총리인 훈 센이 쿠테타를 일으켜 라나리드를 축출했다. 1998년 시아누크의 중재로 라나리드와 훈 센은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하고 훈 센은 총리, 라나리드는 국회의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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