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는 인생/Histrory

Timur 티무르 (투르크 정복자) [태멀레인]

hanngill 2011. 4. 27. 07:58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투르크인 정복자

 Timour라고도 씀. 별칭은 Timur Lenk, Timurlenk(터키어로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뜻,

중국 이름은 첩목아(帖木兒)이다.

 

주로 인도에서 러시아를 거쳐 지중해까지 정복하는 과정에서 행한 야만적 행위와 그가 세운 왕조의 문화적 업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티무르는 투르크화된 바를라스 부족의 한 구성원이었는데 이 부족은 본래 몽골족의 일원이었고 칭기즈 칸의 아들 차가타이의 트란속사니아(대략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해당됨) 정복전쟁에 참여한 후 그곳에 정착하여 차가타이 한국으로 알려진 곳에서 성장했다.

 

트란속사니아의 당시 통치자 아미르 카즈간이 1357년 죽은 후 1361년에 트란속사니아의 중심도시인 사마르칸트를 침략한 카슈가르의 칸 투글루크 테뮈르에게 티무르는 충성을 맹세했다. 투글루크 테뮈르는 아들인 일리아스 호자를 트란속사니아의 총독으로, 티무르를 그의 대신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티무르는 얼마 후에 도주하여 자신의 처남이며 아미르 카즈간의 손자인 아미르 후사인과 연합했다. 수많은 방랑과 모험 끝에 그들은 일리아스 호자를 물리치고(1364) 트란속사니아 정복에 착수하여 1366년경 이 지역을 확고하게 장악했다. 1370년경 티무르는 태도를 바꾸어 발흐에서 후사인을 포위하고 그를 암살한 후에 자신을 몽골 제국의 복구자이자 차가타이 계통의 칸들 가운데서 유일한 사마르칸트 주권자로 선언했다.
그후 10년 동안 티무르는 자타(동부 투르키스탄)와 화레즘의 칸들과 싸워 1380년 마침내 카슈가르를 점령했다. 그후 러시아인들(그들은 마마이의 금장 한국, 즉 킵차크 한국에 대항해서 일어났음)에 대항해서 크림 반도의 몽골 칸인 토흐타미시에게 군대를 지원했다. 그의 군대는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폴타바 근처에서 리투아니아군을 물리쳤다. 1383년에는 헤라트 점령과 동시에 페르시아 정복전쟁을 시작했다. 당시 페르시아의 정치적·경제적 상황은 극도로 불안정했다. 일 한국 왕조로 알려진 몽골족 말기 지배자들의 통치 아래 나타나게 된 회복의 기미도 일 한국 마지막 왕인 아부 사이드가 죽은 후에는 좌절되었다(1335). 권력의 공백은 경쟁적인 여러 왕조들의 내부 불화와 분열을 야기했다. 서로 전쟁중이던 이들 공국들은 티무르에 대항해 상호협력하에 효과적인 저항을 도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호라산과 동부 페르시아 전역은 1383~85년 함락되고 말았다. 그리고 파르스와 이라크·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메소포타미아·그루지야는 모두 1386~94년에 함락되었다. 그 사이 간간이 당시 킵차크 한국의 칸인 토흐타미시와 교전을 벌였는데 토흐타미시의 군대가 1385년 아제르바이잔을, 1388년 트란속사니아를 침략하여 티무르의 장군들을 패퇴시켰다. 1391년 티무르는 토흐타미시를 러시아 스텝 지역으로 추격하여 그를 패배시키고 왕위를 빼앗았다. 토흐타미시는 군대를 다시 일으켜 1395년 카프카스를 침략했는데 쿠르 강에서 결정적으로 패한 후에야 전투를 포기했다. 티무르는 러시아로 진군하여 1년 동안 모스크바를 점령했다. 티무르가 원정 나가 있는 동안 페르시아 전역에서 발생한 반란은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도시들은 황폐해졌고 주민들이 대량 학살되어 해골이 산을 이루었다.
티무르는 이미 60세가 넘는 1398년에 델리의 이슬람교도 술탄들이 힌두교도들에게 지나친 관용을 베푼다는 것을 빙자하여 인도를 침략하여 9월 24일에는 인더스 강을 건너 대량 학살을 자행하며 델리로 진군해 갔다. 델리 술탄 마흐무드 투글루크의 군대가 12월 17일 파니파트에서 격퇴되면서 델리는 온통 폐허가 되었으며 다시 회복하기까지 1세기 이상이 걸렸다. 1399년 4월경 티무르가 옥수스 강을 건너 자신의 수도로 되돌아왔을 때 엄청난 양의 약탈품도 실려왔다. 루이 곤살레스 데 클라비호에 의하면 90마리의 생포된 코끼리들이 사마르칸트의 모스크를 건립하기 위해 채석장에서 돌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모스크 건설작업이 시작된 후 티무르는 그의 영토 일부를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술탄과 오스만 술탄 바예지드 1세가 점령한 데에 응징하려고 1399년말 생애의 마지막 대원정에 나섰고 아제르바이잔의 통치권을 회복한 후 시리아로 행군했다. 알레포를 급습, 약탈하고 맘루크 왕조 군대를 물리친 후 다마스쿠스를 점령(1401)하고 그곳의 공예기술자를 사마르칸트로 강제 이주시켜 다마스쿠스의 번영에 타격을 입혔다. 또한 같은 해 바그다드를 습격, 점령하고 그곳의 시민 2만 명이 대량 학살하였으며 기념물들마저 모두 파괴하였다. 그루지야에서 겨울을 지낸 후 티무르는 아나톨리아에 침입, 앙카라 근처에서 바예지드 군대를 격파하고(1402. 7. 20) 로도스 기사단에게서 스미르나를 빼앗았다. 이집트의 술탄과 요한네스 7세(그당시 마뉴엘 2세 팔레올로구스와 함께 비잔틴 제국의 공동황제)로부터 항복안을 받아들인 후 티무르는 사마르칸트로 돌아왔다(1404). 그리고 곧 중국원정을 위해 거대한 준비를 시작했는데 12월말에 출정하여 침켄트 서쪽 시르다리아 강변의 오트라르에서 1405년 2월에 병사했다. 그의 시체는 썩지 않는 향유를 바르고 흑단관에 넣어 사마르칸트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구르에아미르로 불리는 호화로운 무덤에 매장되었다. 죽기 전에 그는 영토를 생존한 두 아들을 비롯하여 손자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때문에 여러 해 동안 내분이 계속되다가 막내아들 샤 로흐에 의해 재통합되었다. 티무르는 생의 대부분을 정복과 파괴하는 데에 보냈지만 후계자들의 치세에 이르러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 초석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웅장한 건물로 사마르칸트를 아름답게 꾸몄고 그가 정복한 지역에서 많은 공예기술자와 장인들을 이 도시로 데리고 왔다.

 

DAUM 백과 

티무르왕조[Timur王朝]
1369~1508년에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던 왕조. 티무르가 세웠으며 수도 사마르칸트는 동서 무역의 요충지로 번영하였는데 우즈베크 족에게 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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